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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실비아 플라스"의 미친년 퍼포먼스, 그 갈급함과 체념의 순간들- <숨>

최다함 |2009.05.17 12:01
조회 118 |추천 1

 

치유가 아니라 치유의 환상이다.

만큼 끔찍하지만, 보다 무력해졌다.

어쩌면 그것은 위태로워 보이는 좌절이지만

적어도 타협이나 섣부른 화해가 아니며, 김기덕의 사유는 여전히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부딪쳐 길을 뚫고 그 위에서 스스로를 시험한다. 가장 "영화적인" 작품이다.

문학이 아니라 영화, 그러니까 대사나 줄거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장면의 구성과 배치에 의해 의미와 쾌감을 전달하는 영화의 본원적

의미를 가장 잘 살린 영화이다. 한국 영화에서 만큼 언어 이전의 '감각의 논리'를 영화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성공한 작품은 없는 것 같다.

 

 

황진미

 

 을 거칠게 읽는다면 아마도 이런 것일 게다. 남편의 외도로 방황하던 유부녀가 우연히 자살을 기도하는 사형수에 관한 뉴스를 보고, 그에게 설명할 수 없는 이끌림을 느껴 사계절을 선물하고 사랑을 나눈다. 이를 안 남편과 실랑이를 벌이지만 남편은 그녀를 이해하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사형수와 강렬한 교감을 나눈 후 가정으로 돌아온다. 한편 사형수는 시종 그녀와의 관계를 시기해 오던 어린 죄수의 손에 죽는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단순할까? 을 유부녀와 사형수의 불가능한 사랑 쯤으로 요약하기엔 석연찮은 점들이 꽤 많다.

 첫째, 생판  모르는 사형수를 찾아가 기이한 퍼포먼스를 벌이는 그녀의 행동을 어찌 이해해야 할까? 그녀의 행위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녀의 욕망이 무엇이고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더 논해야 하지 않을까? 둘째, 사형수는 어차피 죽을 텐데 왜 굳이 자살을 시도하는가? 그는 죽기를 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죽음이 연기되는 것을 원하는 걸까? 셋째, 그녀는 왜 남편과 함께 돌아가고, 사형수는 어린 죄수에게 목을 졸리는가? 이에 대해 답해 보자.

 

1. 그녀는 누구인가? 미친년, 예술가, 실비아 플라스

 

 많은 평자나 관객들이 그녀를 '남편의 외도로 인해 상처받은 유부녀'로 파악할 뿐, 그녀가 예술가라는 점을 간과한다. 그녀는 조각가이고, 9살에 경험한 죽음을 주기적으로 재경험하는 미친년이다, 그녀는 마치 최면 상태 혹은 무당이 빙의되었을 때처럼, 그때의 기억으로 직접 들어갔다가 나와 가끔 그런다고 말한다. 죽음에 매혹된 (미친) 여성 예술가가 남편의 외도로 괴로워한다.. 이쯤에서 누군가 연상되지 않는가? 그래.. 실비아 플라스!

 실비아 플라스는 9살과 22살에 자살을 시도하였으며, 31살에 시도한 자살은 성공한다. 그녀는 죽음(자살)을 하나의 예술(퍼포먼스)로 인식하고 있으며, 반복해서 경험하고 시연한다. 그리고 말한다. 남자들을 먹겠노라고, 9살의 자살 시도는 아버지의 죽음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녀는 이후로도 아버지에 대한 상념이 많았고, 아빠 라는 시에선 아빠를 파시스트에 비유한다. 잘나가는 시인 테드 휴즈와의 첫 만남에서 뺨을 물어뜯었던 그녀는 결혼 후 남편의 외도로 깊은 우울증에 빠지고, 결국 가스 오븐으로 자살한다.

 의 그녀는 그림의 욕망을 아버지에게 제지 당했던 예술가로 날개 달린 자아상을 빚는다. 10년 전 예술가 남편과 단풍나무에서 봄이 타오르는 느낌으로 만나 사랑했지만, 남편의 외도로 허망해진다. 그녀는 죽음에 중독된 예술가이자, 남편과의 강렬했던 만남을 복원하길 갈구하며, 남자들을 먹을 듯이 달려드는 유사-실비아 플라스 이다.

 그녀가 실비아 플라스와 다른 점은 죽음의 황홀경이 자살을 통해선 얻어질 수 없으며, 어쩔 수 없을 때에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죽음 앞에 섰을 때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즉 그녀는 자살이 아닌 죽음에 매혹된다. 그녀가 사형수를 찾아간 이유는 사형수가 바로 자살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죽음에 직면한 자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와 죽음을 직면한 느낌을 나누고 자신의 어린 시절과 남편과의 추억을 되새기기 위해서이다. 그녀는 사형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사형수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사형수는 그녀에게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죽음의 표상이며, 미친년 퍼포먼스의 관객이자, 자기-치유적 사이코드라마의 상대역일 뿐이다.

 

-중략-

 

 은 매우 윤리적인 텍스트이다. 여기서 윤리란 (유부녀가 방황하다 가정으로 돌아가는 윤리가 아니라) 실재를 갈구하다가 그 불가능성을 깨닫고 일상적 판타지를 받아들이는 윤리를 말한다. 보안과장으로 직접 지시되는 '신의 자리'에 앉아, 윤리의 상상 실험을 해 보인 김기덕 감독에게 찬사를 보낸다.

 

출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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