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메이저리그에 올라가긴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내년이 있다. 현재 소속팀에서 불가능하다면 다른 곳을 물색할 수도 있다. 나는 여전히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고 있다”
야구선수로서 환갑에 가까운 나이 36살. 1990년 데뷔 이후 국내 프로야구 리그에서 44승 49패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선수. 한 때 ‘불펜에서만 선동렬’이라는 별명과 함께 ‘새가슴’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받았던 최향남.
그런 그가 올 초 메이저리그에 도전한다며 미국행 비행기를 탔을 때 주변의 시선은 차가웠다. 그로부터 8개월 남짓 흐른 지금, 그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산하 버펄로 바이슨스(트리플A)에서 7승 5패, 방어율 2.60의 기록을 세우며 호투하고 있다.
1년이 채 안 됐지만 마이너리그 생활은 그에게 충분히 ‘눈물 젖은 빵’이었다. 실제로 그는 한국에서 입에도 안 대던 햄버거로 자주 끼니를 때웠다. 마이너리거인지라 처음에는 구단에서 휴대전화와 통역도 지원해 주지 않았다. 6월 한달 동안을 제외한 시즌 내내 중간계투 요원으로 불펜을 지키고 있다. 불펜 특성 상 한 달에 쉬는 날은 고작 하루다.

지난 4월 15일, 버펄로 바이슨스 홈구장인 던 타이어 파크 경기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최향남 선수. [화면캡쳐 = MLBpark.dong.com / 사진 = '서정청년']
7월 중순, 시즌 후반기에 들어갈 무렵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부상자 명단(DL)에 올라야 했다. 젊은 선수들에게 경기에 나설 기회를 줘야 한다는 감독의 생각 때문이었다. 전반기 5승5패라는 수준급의 성적표도 그에게 별 도움이 안 됐다. 아직도 그는 중간계투 요원이다. 간혹 선발에 나서는 것도 ‘땜질’일 뿐이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기에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다만 메이저리그에 좀 더 가까워졌다는 사실만으로 그는 즐겁고 행복할 뿐이었다. 어느새 소속팀 내에서 ‘스마일맨’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13시간의 시차를 뛰어넘어 그와 전화로 만났다. 캐나다 오타와에서 경기를 치르고 인근 숙소에 머무르고 있던 그는 간만에 한국 현지인과 통화한다며 친근하게 대화에 응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올해 안에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담담히 말했다. 한 때 감독이 “항상 여권을 가지고 다녀라, 언제 메이저리그행 비행기를 탈지 모른다”고 했던 순간들도 꿈처럼 지나갔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항상 최선을 다할 뿐이다”며 “기회는 언제든 온다”고 굳은 믿음을 잃지 않고 있다.
그의 좌충우돌 마이너리그 생활기를 들어본다. 다음은 그와 일문일답.
"좀더 센 상대와 붙고 싶었는데..올해 메이저리거 될 가능성 10~20%"

최향남 선수는 2004년부터 2005년까지 국내 프로야구 리그에서 기아 소속으로 공을 던졌다. [사진=연합뉴스] ▲ 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고 있는가.
한국에서 야구선수 생활을 하면서 가졌던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1997년부터 1998년까지 성적이 조금 나왔다.(그는 LG트윈스 시절 1997년과 1998년에 각각 시즌 8승과 12승을 기록했다) 15승이나 20승 투수과 비견할 수는 없지만 뭔가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센 상대와 붙어보고 싶었다. 그 꿈을 항상 품고 있었다. 그 이후 몇 차례나 더 큰 시장으로 진출을 시도해왔다. 사실 일본리그 진출도 추진해 봤다.
▲ 지난해 11월 23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 스카우트인 이승준씨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기까지 주변의 만류는 없었는가.
내게 직접 가지 말라고 이야기한 사람들은 없었다. 당시 기아와의 계약 내용에 언제든 미국에 갈 수 있다고 돼 있었기에 구단도 막지 못했다. 다만 주위에서 방출선수이고 나이도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으냐는 반응을 보이긴 했다.
하지만 그동안 혼자 많은 준비를 해왔다. 더불어 자신감도 있었다. 신체조건과 마음가짐을 볼 때 절대 불가능하지 않다고 스스로 판단했다.
▲ 언제쯤 메이저리거가 될 수 있다고 보는가.
올해 메이저리거가 될 확률은 10~20% 정도다. 솔직히 구단의 태도가 달라졌다. 맨 처음 트리플A로 왔을 때부터 6월까지는 구단에서도 메이저리그 승격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7월 중순 후반기가 시작된 이후 감독이나 코치나 지역 언론에서나 메이저리그를 고려하지 않는 분위기다. 한 때 감독이 “항상 여권을 지니고 다녀라, 언제 메이저리그행 비행기를 탈지 모른다”고 했던 말도 쏙 들어갔다. 올해 클리블랜드가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기에 내년 시즌을 대비 40인 로스터에도 젊은 유망주를 많이 기용할 것이다. 지금 상황으로는 그 안에 못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 올해 좋은 성적을 내지 않았는가.
대부분 중간계투로 나섰다. 6월 한 달 동안 대여섯 경기를 선발로 뛰었고 12일에는 땜질 선발로 승리를 따내기도 했다. 그런데도 7승 5패, 방어율 2.60이면 괜찮은 성적이다. 하지만 구단에서는 나이를 가장 큰 핸디캡으로 보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바로 며칠 전인 12일에 6이닝 1피안타 5탈삼진 1실점(비자책)을 기록하는 좋은 성적을 냈는데도 여전히 중간계투다. 크게 월등하지 못한 내 실력도 문제인 것 같다.
"다친데도 없는데 부상자 명단 올라 황당..추신수 아직 못 만나"

던 타이어 파크 불펜에서 연습공을 던지고 있는 최향남 선수. 그는 시즌 내내 중간계투 요원으로서 불펜을 거의 매일 지키고 있다. [화면캡쳐 = MLBpark.dong.com / 사진 = '서정청년'] ▲ 시즌 후반기 시작 전에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전반기를 5승5패로 마무리했고 몸 상태도 좋았다. 황당했다. 나중에 감독에게 물었더니 젊은 선수를 키우기 위해 빈자리를 만들었던 것이라고 했다.
▲ 만약 메이저리그에 입성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답이 잘 안 나온다. 지금이라도 한국에 돌아가 올해처럼 잘 던지면 될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 어렵게 왔다. 앞으로 가야할 길도 있다. 쉽게 포기할 수 없다. 만약 재계약에 실패하면 다른 팀으로 보내달라고 말할 수도 있다. 올해 메이저리그에 못 간다면 내년도 있다.
▲ 현재 클리블랜드 소속으로 뛰고 있는 추신수 선수와 교류가 있는가.
아직 만난 적은 없다. 원래 잘 모르던 선수다. 트레이드된 지 얼마 안 된 추선수도 바쁠 것이고 나 역시 살아남기 위해 바쁘다. 기본적으로도 홈구장이 서로 세 시간 거리로 떨어져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 열심히 잘하길 바랄 뿐이다.
▲ 한국리그에서 더 편하게 선수생활을 할 수도 있지 않았는가.
장담할 수 없다. 2004년부터 2005년까지 기아에서 뛰는 동안 시합에도 많이 못 나갔다. LG에서 어깨 부상을 당했고, 수술 후 재기하지 못해 방출된 선수라는 편견도 꽤 작용한 것 같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없지 않은가.
"'불펜의 선동렬'? 극복한지 오래..미래를 꿈꾸는 지금이 가장 행복"

최향남, 그에게 야구는 인생이자 행복이다. [사진=연합뉴스] ▲ 꼬리표처럼 따라붙던 ‘불펜의 선동렬’이라는 별명을 알고 있는가.
사실 듣기 좋은 이야기는 아니다.(웃음) 그런 시기가 있었다는 것도 인정한다. 반면 선수로 데뷔하자마자 성공한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 싶기도 하다. 당시 최고의 감독이었던 김응룡 감독이 어린 나이였던 내게 칭찬을 너무 과하게 하셨던 것 같다. 실력에 비해 부각이 많이 되다 보니 그런 별명도 붙은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제는 경험으로 극복 가능하다. 프로생활만 17년 째다. 올해 성적도 그걸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 미국에 온 지 8개월이 지났다. 영어 실력은 늘었는가.
이제 좀 들린다. 물론 간단한 영어들이다. 문장으로 말하는 건 아직 쉽지 않다. 하지만 어디로 간다. 뭘 하고 싶다 등은 말할 수 있다.(웃음) 한 번은 캐나다로 경기하러 가는 것을 못 알아들어 여권을 가져가지 않은 적이 있다. 캐나다 국경 코 앞에서 다시 돌아왔다가 뒤쫓아 가는 헤프닝도 있었다. 이때 왕복 10시간을 더 까먹었다.
▲ 마이너리거이기에 받은 설움이 혹시 있었는가.
처음 여기에 왔을 때 구단에서 휴대전화와 통역요원을 지원해 주지 않았다. 말도 안 통하는데 정말 곤욕이었다. 그러다 5월 초쯤 휴대전화를 받았다. 이 전화로 스카우트인 이승준씨에게 전화를 걸어 통역을 부탁하기도 했다. 좀 더 지난 후 이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국인 통역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그나마 경기장 안에서 말을 많이 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다행이다. 선발이 아닌 중간계투 요원이라 한 달에 단 하루만 쉴 수 있다는 것도 설움이라면 설움이다.
▲ 먼 외지에서 식사는 문제없는가.
한식은 잘 못 먹고 지낸다. 가끔 햇반과 고추장, 김으로 때우는 것이 행복하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입도 안 대던 햄버거를 자주 먹고 있다. 의외로 든든하고 소화도 잘 되는 편이다. 나중에는 오히려 동료 선수들이 패스트푸드점 햄버거를 먹지 말라고 하더라. 요즘에는 음식점에서 만든 햄버거를 자주 먹는다.
▲ 지금까지 야구를 하면서 후회한 적은 없는가.
단 한 번도 없었다. 항상 내가 부족한 것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표현해 왔다. 부족한 것이 많은데도 지금의 내가 있도록 도와준 주변 환경에 깊은 감사를 할 뿐이다. 다만 앞으로 야구인으로 남을 생각은 없다. 다른 일을 하고 싶다.
▲ 야구를 그만두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뜻을 제대로 펼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우리나라 스포츠계 대부분은 폐쇄적이다. 인맥이 없으면 코치나 감독하기가 어렵다. 감독이 그만두면 그 아래 코치도 함께 일을 관둬야 하는 경우도 많다. 주변 상황과 관계없이 꿈을 펼칠 수 있는 일, 그런 일을 찾아볼 생각이다.
▲ 메이저리거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해달라.
메이저리거든 한국에서 야구선수로든 항상 몸 관리를 잘하라고 말하고 싶다. 아마추어 시절에도 프로의식을 갖고 야구를 하라고 권하고도 싶다. 트리플A 소속 선수들 대부분이 20대 초중반이다. 이들은 결혼도 일찍 하고 오로지 야구만 생각하고 산다. 인생이 바로 야구이고, 야구가 곧 인생이다. 적어도 야구선수가 되려면 그래야 할 것 같다.
▲ 지금, 행복한가. 행복하다면 그 이유를 말해달라.
최소한 한국에서 노장으로서 선수생활을 끝내는 것보다 훨씬 행복하지 않겠는가.(웃음) 현실적으로 말하면 아직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것, 열정 그 자체가 힘이 나는 것이고 행복한 이유다. 이와 같은 도전을 좋게 봐주시는 팬들이 있어서 행복하기도 하다. 앞으로 더욱 힘을 내서 내년에는 더 좋은 성적으로, 메이저리그에 올라갈 수 있도록 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