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토요일입니다.
기념으로 버닝~.
=============================== 연타 ============================
= 여기서 마하데비와 가네샤(인도 신화에 나오는 두 신)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건 어떨까?
= 아냐, 그럼 아프로디테가 너무 불쌍하잖아.
= 그렇지만 가네샤가 아프로디테랑 맺어지면
아프로디테를 좋아하는 알렉산더는 어떡해?
실의에 빠진 아프로디테를
알렉산더가 위로해주면서 또 새로운 사랑이...
그날 이후, 인형놀이에 필요한 스토리를 짜고,
그에 맞춰 인형놀이를 하는 건
그녀와 나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가 되었다.
= 그럼... 여기서 알렉산더의 숨겨둔 아들이 나와야겠네?
= 그렇지, 적당한 인형이 없을까?
= 음.... 안 돼, 다른 인형들은
이미 역할이 정해져 있는 걸.
엄마한테 사달라고 해야겠다.
각각의 인형은 각각의 인생이 있고
이 중 많은 수가 친인척 관계로 묶여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인물이 필요할 땐 새로운 인형이 추가되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그녀의 인형들은
증식을 거듭해 왔던 것이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섭렵한
엄청난 양의 문학적 데이터베이스를 근거로
차마 생각해본 적도 없는 스토리들을 계속해서 떠올려냈던 그녀.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녀의 이런 독특한 정신세계는
실생활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인형들 각각의 인생을 진행시켜가는 인형놀이를 제외한
어떤 일에도 관심이 없던 그녀는
학교에선 따돌림의 대상이자, 기피대상 1호였다.
워낙 자기만의 세계가 확고한 탓에
본인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했지만...
난 무던히 그녀를 세상 속으로 끌어내기 위해 애썼다.
어떻게 하면 저 재능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을까?
인형놀이를 대신할만한 더 좋은 방안은 없을까?
그래서 떠올린 게 바로 연극이었다.
= 언니, 우리 이거 보러 가자.
= 응? 뭔데 그게?
= 미녀와 야수 뮤지컬 공연.
= 글쎄..... 그다지.....
= 어어? 그럼 이제 인형놀이 같이 안 할 거야.
밖에 나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그녀를
협박하다시피 끌고 간 나였지만,
그 한 번의 공연이 그녀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 한나야... 저런 거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 글쎄, 학교 연극부 같은 데 가서 계속 연습하면 되지 않을까?
= 연극부?
그렇게 그녀는 연극을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좀 이상한 애=에서
=연극부의 히로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그녀가 소중히 하던 인형들은 하나 둘
=오래토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라는
해피앤드를 맞이하고 지하실로 숨어들었다.
그녀에게 난 매우 절대적인 존재였다.
난 그녀의 첫 인형놀이 상대였고,
처음으로 연극이라는 것을 알려준 사람이었다.
난 그녀에게 사람을 사귀는 법과
자신을 꾸미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세상을 사는 게 서툴렀던 그녀는
늘 나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며 조언을 구해왔다.
그건 우리가 부모님의 사정으로 인해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내 동생이었다.
분명 그녀는 내 언니였지만,
난 동생을 보살피는 기분으로 그녀를 이끌어주었다.
하루하루 발전해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 건
정말 보람찬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어느 날,
우리 사이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 한나야, 나 오늘 정말 재밌는 사람 만났어. 기억이라고 하는데....
= 기억이가 얼마나 자상한지 아니? 오늘 식당에서...
= 기억이 수학 정말 잘하더라.
어제 하루 배우고 시험 쳤는데 다 알겠는 거 있지?
= 나..... 기억이 좋아하는 것 같아.
그건 정말이지.... 불쾌한 느낌이었다.
내가 열심히 가꾸어놓은 꽃을
누군가 정원채로 가져가 버린 듯한 허탈감.
그리고 소외감....
그녀가 그런 소식을 전해올 때마다
내 맘속에선 날강도처럼 내 공든 탑을 낚아 챈
상대방에 대한 증오가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 감정이 폭발한 건 겨울방학을 앞두고
간만에 한국에 놀러왔던 때였다.
= 이번에 공연한 테이프가 이거야? 봐도 되지?
= 아....응. 그런데.... 아, 아니야. 그냥 봐.
한국에 올 때마다 그간 그녀가 했던 공연 비디오를 보는 건
내 큰 즐거움 중 하나였기에,
난 그날도 어김없이 새로운 비디오를 찾아 시청에 들어갔다.
그리고 난 보았다.
= .............
내 소중한 장미꽃이 첫 키스를 빼앗기는 장면을.
= 아하하.... 그거 원래 대본엔 없던 장면인데 애드리브다?
둘 다 너무 연기에 몰입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거든.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랬나 싶어.
그녀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웃었지만
난 당장이라도 목 놓아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그녀가 나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그녀가 내 품에서 벗어나 내 손이 닿을 수 없는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 언니 나 잠깐 나갔다 올게. 핸드폰 빌려가도 되지?
감당하기 힘든 충격과 실의 속에서
기억이란 사람을 향한 강렬한 분노를 발견한 난
곧장 집을 나와 학교로 향했다.
그를 만나서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지만,
최소한 그 면상은 직접 확인해볼 필요성이 있었다.
하지만 택시에서 내린 다음
어디부터 찾아야 할지 막막해져버린 나.
잠시 그의 소재를 파악할 방법을 찾아 고심하던 중
처음 보는 세 사람이 내게 다가왔다.
= 저.... 뭘 찾고 계세요? 저희가 도와드릴까요?
뭐야 얘들은? 헌팅을 하려면 혼자 와야지
이렇게 떼거지로 몰려와서...
사람 협박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사람이 이렇게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으면
알아서 피해야지 눈치 없게 어딜 들이밀어?
센스라곤 눈곱만치도 보이지 않는 바보 삼인방의 등장에
가뜩이나 불쾌하던 기분이 짜증으로 변화하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순간 반짝하고 떠오르는 아이디어.
난 곧장 이들을 이용해 그를 골탕 먹일 계획을 구상해 나갔다.
= 어머? 지금 혹시 헌팅하는 거예요?
= 예? 아, 아뇨.... 꼭 그런 것만은....
= 에~ 그럼 쪼금은 헌팅하는 거 맞네요.
잘 됐네요. 저도 심심했는데.
일단 세 사람을 내 편으로 끌어들일 필요성이 있었던 난,
그들과 함께 학교 안을 구경하며 이런저런 말들을 나누었다.
그 사이, 언니의 핸드폰으론 열심히 문자를 보내
먹이를 끌어들일 함정을 팠다.
= 아직 학교에 있어?=
= 응, 아직 수업이 안 끝나서 =
= 그렇구나 오늘 저녁에 밥 먹으러 올래? =
= 나야 좋지 =
= 그럼 다섯 시 반에 우리 집으로 와~♥=
일단 그렇게 그를 유인할 미끼를 던져놓은 난
집으로 전화를 걸어 언니에게 약속 사실을 알렸다.
= 언니, 기억이란 사람한테
저녁에 밥 먹으러 가도 되냐고 문자 왔는데 어떻게 해?
= 그래? 알았다고 답장 보내줘.
안 그래도 소개시켜주려고 했는데 잘 됐네.
만약을 대비해 핸드폰에 남은 문자를 조작하는 일은 간단했다.
휴대전화엔 발신자 번호를 수정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으니까....
이정도 바탕작업을 해놓고 나서
난 세 사람과 함께 근처 커피숍에 들어가 차를 마셨다.
이제 이들을 꼬드겨서 그 날강도에게 된통 한 방 먹여줘야 하는데....
= 저.... 그런데 오늘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어요?
아까 서계실 때 보니까 표정이 영 어두우시던데.
= 고백했다가 차였거든요..... 오늘.
= 예? 차여요? 한나씨처럼 예쁜 분이?
= 뭐... 사람 취향은 다 제각각이라잖아요.
제가 그 사람 취향이 아니었던 거겠죠.
= 아니, 대체 어떤 놈이 한나씨를 차요?
= 이렇게 생긴 사람인데.... 혹시 알아요?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릴지 모른다고 직감하며,
난 확인용으로 챙겨 온 그의 사진을 내밀었다.
그 사진을 본 세 사람의 깜짝 놀란 듯 소리쳤다.
= 어? 이 사람 얼마 전 공연에서 사채업자 맡았던 사람 아냐? 맞지?
= 어머, 이 사람 아세요?
= 아니 뭐 개인적으로 아는 건 아니고요...
연극부 공연 때 봤어요.
어유~ 이렇게 사채업자처럼 생긴 사람이 뭐가 좋다고 한나씨는....
아니, 그보다 이 얼굴로 어떻게 한나씨를 찼데요?
정말 자존심 상하셨겠다.
= ...... 저... 그럼 세분, 혹시 제 부탁 하나 들어줄 수 있으세요?
= 예? 무슨 부탁인데요?
= 이따 5시 쯤 되면.... 이 사람이 버스 정류장으로 올 거거든요.
그럼.... 그때 조금만 골탕 좀 먹여주세요.
시비를 걸어주셔도 좋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자존심이 상해서 안 되겠어요.
= 시...시비요?
= 예, 그냥 말로 조금만.... 대신 제가 영화랑 저녁 쏠게요.
반은 진심, 반은 장난으로 시작했던 그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그 때 난 상상도 못했다.
= 죽어! 죽어! 죽어어~!!
난 그냥 그의 기죽은 모습을 좀 보려고 했던 것뿐이지만,
어느새 시작된 싸움은 버스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버렸다.
유리창이 깨어지고, 누가 흘린 것인지 모를 피가
커튼이며 시트를 붉게 물들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총기 관련 사고가 터지는 미국에서도 본적 없던
처참한 광경이 코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 하아....하아.... 하아....
그 수라지옥을 헤치고 마지막에 남은 사람은 언니의 남자친구였다.
몽롱한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거친 숨을 내쉬는 그의 모습은 뭐랄까...
승자라기엔 너무나 초라했다.
당당하게 자신의 입지를 확인한 수컷이 아니라,
죄를 짓고 숨을 곳을 찾는 범인 같았다.
곧 경찰들이 버스에 들이닥치면서,
난 인파에 숨어 몸을 피했다.
세 사람.... 살았을까?
기억이란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걸까?
아까 그 사람 망치로도 맞았는데....
영영 팔을 못 쓰게 된다거나...
혹시 감옥에 가서 몇 년 씩 못나오는 건 아닐까?
세 사람이 내 이름을 대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제야 덜컥 겁이 난 나는 두려움에 눈물을 흘렸다.
내가 왜 그런 짓을 했지? 나 이제 어떡해?
= 이제와? 한나야.
= .......
집으로 돌아온 난 곧장 내 방으로 들어가
이불 속에 몸을 숨겼다.
머릿속엔 지금 생길 수 있을 것 같은
최악의 상황들이 끝도 없이 떠올랐다.
장난삼아 철로에 돌을 올렸더니 열차가 탈선해 버렸다.
모형 비행기를 가지고 놀고 있었는데
이륙 중이던 비행기 유리창에 맞아서 비행기가 추락해버렸다.
왜 일이 이렇게 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