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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이젠 지겹습니다.

해킹녀 |2006.09.21 01:08
조회 293 |추천 0

전 16살의 한 소녀입니다.

엄마, 아빠, 남동생 이렇게 4명의 식구입니다.

그냥 오늘은 정말 마음이 아파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엄마를 닮아서 눈물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는 잘 울지않죠.

저희 집은 제가 초등학교 들어가던해 아빠가 회사를 다니시다

사업을 하신다고 나오시는 바람에 경제사정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아빠가 술을 좋아하시는 터라 저의 어릴 적 기억에는 매일밤 엄마 아빠의 싸움 소리에

마음이 너무 아파서 혼자 이불을 덮고 울던 기억밖에는 없습니다.

지금 생각나는 거라곤 7살때 엽서를 써놓고 집을 나갈려고 했던 기억밖에는

아빠는 가정에 다정하신 분이 아니셨습니다.

아빠와 놀러갔던 기억 여행을 갔던 기억 소풍을 갔던 기억이라곤 그나마 자부하는

저의 기억에는 있지 않습니다.

애들은 16년 살면서 아빠와 놀러간적 이 한번도 없다고 하면 뻥치지 말라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본 아빠의 모습은 항상 술에 밤늦게 들어와 TV리모콘을 들고 잠들어 버리는

아빠의 모습밖에는 없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만요.

지금은 그런 아빠의 모습이 한 없이 초라해보이고, 그런 아빠가 너무 싫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되던해에 저보다 4살어린 6살의 동생과 아빠와 이렇게 3이 살게 되었습니다.

처음 엄마와 결혼할때 부터 결혼을 반대하시던 할머니 때문에 엄마가 어쩔 수없이

저희를 놔두고 이혼을 하시게 됬었거든요.

전 그 충격에 6개월간 스트레스성 위염약을 그 어린나이에 먹어야 했습니다.

저의 초등학교 3학년때의 기억은 약먹은 기억 뿐입니다.

그리고 4학년 거짓말들로 1년을 보냈습니다. 생각하시는 어른들께 그냥 뭐 자습서 산다고

뻥치고 그런 거짓말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행복한 가정인척 엄마가 있는척 거짓말하는 기억들말입니다.

매일 같이 거짓말을 밥먹듯 했습니다. 엄마와 어제는 뭐했다고, 아빠와 뭐했다고,

그 때마다 저의 가식적인 모습들이 하나씩 늘어갔습니다.사람들 앞에서 밝은 척 애쓰는 모습.

저를 아시게 되는 선생님들은 저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엄마가 없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 말 정말 저에겐 가슴아픈

말이였습니다. 그만큼 저에겐 행복해보이려고 앞에서만 애쓰는 가식이 늘어간다는 거였으니까요.

그렇게 4학년 할머니와 막내고모와 아빠와 동생과함께 엄마의 사랑을 받아야 할때

매일 동생을 챙기며 자랐습니다.

그 후 5학년 어느 순간 아빠가 엄마와 저희를 만나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우연히 만나 다시 만나게 된 것 같습니다.

그 후 우리는 시골 작은 동네에 들어가서 아주 싼값에 집을 짓고 다시 살게되었습니다.

그 때는 엄마와 다시 살 수 있다는 그 기쁨에 그냥 마냥 좋았습니다.

앞 뒤 돌아볼 시간이 없었으니까요. 이젠 엄마가 생겼으니까요.

그렇게 1년 저의 초등학교 6학년 겨울 매일 들리던 싸움이 정말 크게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아빠와의 싸움은 너무 너무 심하게 퍼져만 갔습니다 전 그것에 못이겨

가출을 하게되었습니다. 12월 21일 반팔티셔츠에 긴 트레이닝 바지하나만 입고,

시골에서 나가 시내로 갔습니다. 너무 추웠습니다. 사람들은 밤이라 아무도 다니지 않고,

갈 때도없었을 뿐더러 저에게 있는 돈은 2만원 뿐이였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그냥 상가안에서 지새고 난 후에 2틀 째 되던날 옆집에 살던 아저씨가

저를 찾아서 그렇게 집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저에게 미안하다며

울며 불며 미안하다며 다신 너에게 상처안주겠다며 약속했습니다.

아빠도 저에게 약속했습니다. 전 그 약속이 정말 지켜질 줄 알았습니다.

아니 아닐 껄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지막 희망을 걸어보았습니다.

하지만 역시나였을까요. 중1 엄마와 아빠의 싸움은 더더욱 빈번해져

매일 아빠는 술에취해 집에들어와 엄마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엄마는 차라리 죽자며 칼을 가져왔습니다. 무서웠습니다 정말 엄마가 죽어버릴까봐.

한 30분을 그렇게 씨름하다가 결국 아빠가 엄마를 막고 그냥 말싸움만 오갔습니다.

하지만 이미 저는 그 시간 눈물이 많이 흘려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힘들어 왼쪽팔목을 칼로 그었습니다. 다행히 동맥에 빗나갔는지

피가 나긴했지만 죽진 않았죠. 그래서 엄마가 걱정할까봐 팔을 긴옷으로 가린채 그 다음날

병원에 가서 꼬맸습니다. 엄마한테는 미술시간에 찢겼다고 하고,

엄마는 알고 계셨겠죠 사실은 그게 아니란걸 하지만 엄마는 제가 더 마음아플까봐

별 말씀은 안하셨습니다. 전 그 때 부터 가난이 싫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애들이 흔하게 신고다니는 나이키 아디다스 신발도 한번 신지 못했습니다.

아니 사달라고 때를 써보지도 못했습니다.

너무 일찍 가난을 경험한 터인지 그런말 하기에는 저희 집 사정을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요.

처음 중학교 올라올 때 아이들은 새신발 새가방을 들고 학교에 들어갈 때

저는 어떤 오빠가 준 헌가방과 5000원짜리 캠퍼스화를 신고 학교에 갔습니다.

중학교를 전학온 터라서 아이들과 마음을 열고 얘기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 또 4학년 때 거짓말로 가식으로 가득했던 저로 변하게 되었죠.

또 웃었습니다. 더 많이 웃었고 더 많이 즐거워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저는 근심걱정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가식적인 저의 2번째 얼굴에

사람들을 속게 됬었죠. 그 때부터 자존심이란건 저에게 없어진지 오래입니다.

친구들에게 항상 자존심버리고 살기 일 수 였고, 괜한 텃새만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흔히 나가는 시내에 가서 메이커 옷 한번 사본적 없고,

백화점 세일기간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옷사러 갈때 한번도가본적 없습니다.

나이키 라든지 폴로 이런 메이커는 중2때 저에게 어떤한 아이가

"넌 메이커도없니?" 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중1때는 아예 모르고 살았으니 쪽팔림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중2때 한 아이가 저에게 가난하다고 하는 말에 가난이 쪽팔리단거 알게되었습니다.

TV에선 가난해도 아주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저희가정은

가난한데 가정도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어느 순간 방문을 잠가버리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 후론 집과 엇나가기 시작했죠. 한동한은 아는 친구를 통해 가끔 술을 하기도 했습니다.

친구가 담배도 알려줬지만 담배만은 힘든 가정형편에 엄마가 저를 믿고 가는데

엄마를 배신할 수 없어서 담배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엇나가면서 학교성적은 점점 상위권에서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논 것도 있었지만 중2때부터는 공부가 어려워지기 시작하더니 힘들어졌죠.

다시 원래의 생활로 방황3개월만에 돌아왔지만 점점어려워지는 공부에

학원한번 다녀보지 않은 저는 적응이 되지 않았죠. 아이들은 선행학습이다 뭐다.

그후 저는 시내로 이사를 왔습니다 빛을 엄청 얻어서

아니 아빠가 뭣모르고 그냥 집을 계약하고 계약금을 넣어버린 이유로

아빠는 또 다시 사업을 한다며 시골집을 판 2000만원으로 관광버스를 하나 샀습니다.

그것도 가장 안좋은 걸로요 결국 중3때 폐차되었습니다 빛만 더 진채로.

저희 집은 계속 어려워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작은집으로 이사를 가게 될 것같습니다.

거기다 엄마는 많이 아프신데 건강검진도 받지못하십니다.

저의 이런 가족사..이젠 지겹습니다.

 

16년동안 한번도 행복하지 않았던 삶...

어떻게 하면 이제 벗어날 수있을까요?

 

 

이젠 정말 지겹습니다 모든걸 내려놓고 싶은데...

죽음이란 단어가 가깝게 느껴지지만 무섭습니다. 그런 생각하는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언제쯤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정말 자신이 없습니다...

이젠 정말 힘들어서 모두 포기하고 싶습니다...

 

더이상 아빠의 술취한 모습과 엄마와 싸우며 엄마가 밥없다고 식사할께 없다고 할때도

아빠는 그냥 " 그럼 굼겨!" 하는 말과  저보고 저정도면 많이 컸다고,

지가 알아서 살아야지 하는 말도 지겹습니다.

 

저 기껏해봐야 이제 16살입니다.

한참 꿈많고 하고 싶은것 많을 2 .8 청춘이란 말입니다.

제가 알면 뭘 얼마나 알고 이해하면 얼마나 이해하고  얼마나 행복하면  행복하겠습니까/?

 

자기와 상관없다는 무책임한 아빠. 엄마가 간간히 가져오는 밥으로

혼자 밥먹고 나가 저녁은 친구들과 술과 안주로 먹고 와 배부르게 먹고도

집에와서 저희가 간간히 먹는 라면도 다 먹어버리는 ...

지금 먹을꺼 밝힌다고 할찌는 모르겠지만.

저희는 그렇습니다. 왜냐면 일주일에 밥있는 날이라곤 한두번이니까요.

이런 어려운 환경이 친구도 사귀지 못하게 방해해버립니다.

친구들은 매일 약속만 많이하고선 돈이없어 가지못하는 저를 그냥 괜히 빠진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전 솔직히 정말 놀러나가고 싶습니다 애들 시내가서 옷하고 신발살떄 저도 사고싶고,

애들이 학원숙제에 전전긍긍 힘들어 할떄 저도 같이 얘기하고싶고,

애들이 외식했다는 말 들을떄마다 저도 정말 가족끼리 짜장면이라도 하나 먹고싶고,

애들이 영화보고 왔다고 할 떄 저도 영화같이 보고싶은데...

돈이 정말 없는걸 어쩌겠습니까...

이제 친구들과의 약속을 어떻게 깨야할찌 어떻게 둘러대며 빠져야할찌

그것도 힘듭니다..

 

가난한 생활...

환경을 이기는 사람이 되라는 말 이젠 정말 귀에 박힐정도로 그 말만 들어도

정말 세상이 저를 짓누르는 것만 같습니다.

가난을 정말 등에 업고 사는저..이젠 정말 행복하고 싶습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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