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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옴) [Particles] #10 운명의 열쇠

양광운 |2003.03.12 01:16
조회 503 |추천 0
오늘은 여기까지만 퍼오겠습니다. 보시는 분 많으시면 또 퍼지요 .. ㅡ.ㅡa        
- < 발견 > -

나는 약 기운이 아직 남아서인지 휘청거리며 연주가 서 있는 곳으로 걸어 갔다. 그렇게

비틀비틀 거리는 내 모습이 웃겨 보였는지, 연주는 실소를 머금고 나한테 한마디 던졌

다.


"하여간, 잘도 자더라 ...... 꼬박 30시간이나 잔 거 알아 ? ... 어휴 ... 대학원생 애들

이랑 조교 애들이 와서 누구냐고 캐물어서 입장 곤란해서 혼났다."


시계를 보니 난 정말 30시간 정도 그 구석방에서 잠들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넌 좀 잤어?"

나는 연주에게만 모든 걸 맡겨놓고 신나게 자버린 게 미안해서 커피 두 잔을 뽑아 들고

는 연주에게 물었다.

"응, 나도 눈 좀 붙였어. 교수 휴게실에서 ...... 호호호 ... 거기서 자고 있는데 노교

수 한 분이 나 침 흘리면서 자는걸 봤나 봐 ... 자기 양복을 덮어 놓고 가셨더라고 ...

호호호 ... 휴게실 탁자에는 교수들의 연구를 위한 취침공간이 꼭 필요할 것 같다는 메모

와 옷은 세탁하지 않고 돌려줘도 괜찮다는 메모가 남겨져 있더라 ... 호호호"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아졌는지 그녀는 연신 웃어대며 말했다.

"그나저나 ...... "

내가 채 말을 꺼내기도 전에 연주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니가 준 비디오와 그 개미라고 바득바득 우기던 것과 나머지 것들은 모두 봤

어 ...... 그리고 태곤 선배의 시체가 여기 서울대학 병원 법의학과에 보관되어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시체 열람신청서를 해당 교수에게 전자 우편으로 보내놨다."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댄 연주는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 뭔가 이상해 ... 너의 캠코더에 찍혀 있는 영상은 니가 초점을 잘못 잡

는 바람에 확실히 확인하진 못했지만 여태까지 학계에는 보고된 바가 없는 현상이었

어 ... 다만 ..."

아직도 지끈지끈한 머리 때문에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의 설명을 듣던 나는 그녀의 다음

말을 듣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씨저리안[caesarean section], 즉 제왕절개의 유래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복벽절

개술'에 대한 출생에서 비롯 되거든, 근데 사진이 없는 초기의 고대 의학문헌, 아니

지 ...... 당시에는 의학이라기 보다는 종교나 철학적 문헌에 기록된 의학적 기록에 윤정

이와 유사한 사고가 난 케이스가 있는 것 같아 ..."

나는 좀 당혹스러웠다. 최근의 현대적 의학에 의해 의술은 점점 발전해 가지 않았는가?

그런데 윤정이와 같은 끔찍한 경우가 최근의 예가 아닌 과거의 문헌에서만 나타난다

니 ......

그녀는 나의 표정과는 상관없이 본인의 말을 계속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음 어쨌든 캠코더에 찍힌 상황으로서는 많은 것을 알 수가 없을 것 같아. 직접 윤정의

시체를 보지 않는 이상은 말이야. 그래서 내가 국립의료원을 통해 포항에 안치되어 있는

시체의 부검을 요구 했어 …… 네가 보호자니까 너만 동의하면 될 꺼야."

내가 잠들어 있던 사이에 연주는 많은 것들을 고민하고 조사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진실

을 알기 위한 많은 준비를 능숙하게 그 사이에 다 해 놓고 있었다.

"여기 병원 법의학과 데이터베이스에 의하면 죽은 태곤 선배의 시체에도 뭔가 이상한 점

이 있어 ...... 데이터 베이스에 부검 사진을 저장 하는 게 일반적인데 아무 기록도 남

아 있지가 않거든 ... 사인은 단순히 심장마비로만 적혀있고 …… 심장마비라는 게 일반

사람들은 심장의 어떤 질병으로 생각하지만 ...... 의사들로서는 사인이 정확하지 않을

때 적어두기 굉장히 편리 한 용어이기도 하거든 ... 하여튼 이건 그야말로 미스터리 한

의학적 케이스 인 것 같다. 나로서는 세계 최대의 의료정보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는 NIH

의 자료들을 샅샅이 검색 했지만 어떤 힌트도 얻을 수 없었으니까 ……."

연주는 커피를 한 손에 들고선 나에게 마치 학생을 가르치듯 자세히 설명해 주려고 꽤나

애쓰고 있었다.



- 음, 그럼 아직까지 별다른 성과는 없는 건가 ……



다소 실망한 마음에 혼잣말을 중얼거렸는데,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는지 그녀는 나의 혼잣

말에 조금은 흥분한 말투로 설명을 이어 갔다.


"무슨 소리야? 니가 가져다 준 것들로는 아무것도 종 잡을 수가 없었단 말이야. 옆에서

도와주지도 않고 거의 이틀을 연달아 잠만 잔 주제에 ...... 하여튼 ... 니 말처럼 아직

까지는 윤정의 사고에 대해서 어떤 단서도 찾을 수 없었어 ... 그렇지만 아마도 그녀에

대한 (1)프로파일링[Profiling]을 해 보고 좀 더 많은 기록들과 자료를 본다면 납득할 만

한 이유를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아 ...... "

하지만 그녀의 말을 종합 해 보면 상황이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윤정이의 알 수 없는

처참한 죽음도, 갑자기 내게 닥쳐온 이 재앙에 대한 어떤 힌트도 주어지지 않았다.

‘사실, 윤정이 죽은 이유를 이제 와서 알아본들 ……’

점점 내가 그녀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알아내려 하는 것이 무의미 하다는 생각들이 몰려

왔다.



하지만 체념하는 듯 기운 빠진 나의 목소리를 들은 연주는 빙긋 웃더니 무슨 비장의 무기

를 준비 했다는 듯이 내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실망하지 마시라고! ...... 당신이 가져온 그 바퀴인지 지렁이인지 … 아차 개미라고 했

지 ...... 하여튼 그거라고 우긴 통에 담아온 물질에 대한 분석은 굉장히 흥미로운 데이

터가 나왔거든 ... 그리고 윤수씨 옷에 묻어 있던 윤정이의 혈흔과 생체 세포에서도 이상

한 점이 많이 발견 되었어 ... 아마 ... 윤수씨가 그렇게 궁금해 하는 윤정의 알 수 없

는 죽음에 대한 열쇠 일지도 몰라."


커피를 한 손에 든 채 이상한 사진들을 넘겨보던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지도 앉고 무

척 흥미롭다는 듯이 그 것들만을 주시하면서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흠 ...... 그래서 말인데 ... 일단 내 설명을 좀 듣고, 윤수씨도 나를 좀 도와 줘야 할

것 같아 ..."

사실 그녀의 죽음이 지금은 한 없이 슬플 뿐인데 어떤 이유에서라도 그녀의 죽음의 원인

을 파헤쳐 봤자 내게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죽은 그녀가 살아 날 수 있는 것도 아니었

다.

이런 생각은 점점 더 나를 괴롭게 만들었고 그런 모습을 지켜 보던 윤정은 마치 경고 하

는듯한 담담한 목소리로 나직이 말했다.

"니가 나한테 도와 달라고 했을 때는 나도 당혹스러웠어 ...... 하지만 이제 나도 학자로

서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거든 ...... 그러니까 윤정의 죽음이 아무리 슬퍼도 날 도와줘

야 해 ... 그리고 ... 아직 살아있다는 너의 아기를 위해서라도 ..."


나는 '너의 아기'라는 말을 듣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 아기라니? 아기한테 무슨 일이라도 있단 말이야?"


아직 인큐베이터에서 2주 이상을 있어야 한다는 아기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지 갑자

기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 오기 시작했다.


"아니, 사고 당일 윤정이의 주치의와 통화를 했는데 아직 아기한테 별 이상은 없

데 ...... 하지만 너의 그 윤정의 피와 살점이 묻은 옷과 니가 개미라고 가져다 준

이 '이상한' 샘플을 고려 할 때 ... 너의 아기도 결코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어 ……"

그녀는 단정짓는 듯한 말투로 냉정하게 ‘안전하지 않다’라는 것을 나에게 강조 하였

다.

'샘플 ...... 피 ... 그리고 아기가 안전하지 않다고 ... ?'

나는 미칠 것만 같았다. 머리가 깨져서 폭발할 것 같았다. 갑자기 속에서 무언가 올라 오

는 것 같았고 코를 타고 따뜻한 무엇인가가 흐르는 것 같았다.

"자 이걸 써 ...... "

연주는 자신의 손수건을 나에게 건넸다.

"무슨 남자가 칠칠 맞게 코를 흘리고 그러냐 ....... "

연민 어린 표정으로 그녀가 나를 응시했다. 나의 표정이 자뭇 심상치 앉게 느껴졌는지 그

녀는 애써 편안한 말투를 쓰면서 나를 토닥거리며 대화의 화제를 돌렸다.

"내가 준 약이 좀 독할 거야 ...... (2)아티반[ATIVAN]이라고 속......수면 효과는 좋은

데 ... 한 알만 줄걸 그랬나 ... 난 불면증이 심해서 보통 두세 알씩 먹걸랑…"


그녀는 나의 굳은 표정을 풀어 주려는 듯 아까의 화제를 일상적인 대화로 자연스럽게 돌

리고 있었지만 나의 머릿속에는 아기에 대한 생각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기가 위험하다면, 안돼 ...... 아기만은 ... 우리 아기만은 ...'


아기는 죽은 윤정과 살아있는 나 사이를 잇고 있는 유일한 것이었고, 그녀와 나 사이의

남아있는 사랑의 결실이었다.


"일단 내가 널 도와 줘야 할게 뭐야?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다 할게 뭐든지 할

게......"

아직은 머리며 온 몸이 정상이 아닌 듯 불쾌한 기분이 엄습했지만, 애써 참으며 그녀를

재촉했다.

고개를 갸웃 거리며 나를 쳐다보던 연주는 내 등을 자기 손바닥으로 한대 '탁' 치면서 다

시금 특유의 장난스러운 말투로 돌아왔다. 나의 긴장한 모습을 풀어주고자 하는 의도였

다.


"이봐, 밥 먹고 바깥 공기 좀 들이 마시고 와서 마저 하자고 ...... 멀쩡한 남자 하나 잡

았다는 소린 나도 듣기 싫다구 ... "


- < ‘z세포’ > -


"보여?"

"아니, 뭘 보라는 건데?"

"거기.. 두 개의 네모난 것 ......"

"흠 ...... 난 잘 모르겠는데 ..."

"그럼 마이크로 필름으로 인쇄해서 보자 ...... 내가 설명 해 줄게 ..."



연주는 나에게 맛없는 병원 밥을 먹이고 나서는 약 냄새 나는 병원을 산책이랍시고 한 바

퀴 구경시켜 준 뒤 나를 응급실로 끌고 가서 간호사에게 무언가를 지시하여 알 수 없는

주사를 맞게 했다. 무슨 주사냐고 캐묻는 내게 자기가 친구를 죽이겠냐고 쥐약이나 마약

은 아니니까 걱정 말라고 하면서 나를 다시금 그녀의 퀴퀴한 실험실로 데려왔다.


그렇게 다시 나를 실험실로 끌고 온 그녀는 무슨 실험 장비들과 생물의 신비에 대해서 나

한테 열띤 강의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내용을 난 알아 들을 수 없었다.

고등학교 이후 '바이오'가 들어간 책을 안본지가 벌써 몇 년이 지난 나로서는 그녀의 용

어 자체가 모두 생소 한 것들이었다.

"어휴, 이 돌탱이시키 ...... 나이 들더니 더 돌탱이가 됐네 !!"

나의 멍한 표정에 결국 그녀도 지쳤는지 털썩 의자에 주저 않더니 나에게 푸념을 하기 시

작 했다.

"그만 두자 그만둬 ...... 이제 와서 본다고 니가 알겠냐 ... 그냥 내 요점만 말하마."

체념한 듯 그녀는 한숨을 쉬어가며 나를 구박했다.

'진작 그러지 ...... 내가 이 나이에 생물학 박사 학위 받겠냐?'

속으로만 생각하고 차마 너무도 진지한 표정의 그녀에게 말하진 못했다.



"잘 들어 이제부터 ...... 이 누나가 찬찬히 설명을 해줄테니까 말이야 ..."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마신 그녀는 다소 상기된 표정을 하고 설명을 이어갔다.

"여기 니가 개미라고 우기며 들고 온 검은 필름 통에 들어 있던 건 뭐냐 면, 음 ......

쉽게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세포야."

‘세포라고?’

난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무언의 항의(抗議)를 보냈다.


"쉽게 말해서 ...... 음 ... 너 아메바는 알지 ?"

그녀의 질문은 아주 단순 한 것이었지만 질문을 하는 그녀의 표정과 말투는 어딘지 모를

노교수(老敎授)와 같은 위압감이 있었다.

"그럼 내가 아무리 생물학의 전무하다 해도 아메바를 모르겠냐? 나도 한때는 공부 좀 했

다고 ...... 너무 무시하는 거 아냐 ?"

애써, 난 그 위압감을 이겨 보려는 남자의 자존심이 발동하여 구차한 투정을 부렸다.

하지만 나의 이런 반응과는 상관없다는 듯이 그녀는 침묵 속에서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

는 듯 보였다.


"니가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그때 니가 가져온 그 진주빛깔의 구슬은 바로 하나의 세포

를 가진 단세포라는 거야!"

난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메바가 단세포 생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검은 통

에 들어 있던 것이 단세포라는 것은 내가 가진 생물학의 상식으로는 해석(解析)되지 않았

다.

"그럼 그 세포는 윤정이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어떤 세포란 말이야?"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듯한 갸우뚱한 표정을 하고 이제는 더욱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에

게 물었다.

"아니, 그건 음 ...... 아닌 것 같아. 인간의 세포 중에 그런 식의 모양을 한 단세포가

있을 리는 없으니까. 더 솔직히 말하면 세포학에 관련된 모든 데이터 베이스를 뒤져도 그

런 구조를 가진 세포는 있을 수가 없어 하지만 현재 여기 존재하고 있으니까 현재로서는

뭐라고 정의 내릴 수 없다는 게 내 결론이야 ......"

그녀의 복잡한 말에 나의 머리 속은 점점 더 뒤죽박죽이 되어 갔다. 있을 수가 없는 것

이 존재한다는 표현은 과학자로서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나의 머리 속의 현상

에 대한 해석의 논리는 점점 그 중심을 잃어갔다. 결국 머리 속이 정리되지 않은 나는 머

리카락을 쥐어 뜯는 시늉을 하면서 그녀에게 시비를 걸었다.


"그럼 결국 그 세포는 미지의 존재라는 거야? 지금 무슨 엑스파일 이야기 하고 있는 거

냐?"

"아니, 엑스 파일이라면 차라리 미국내의 모든 의학적 사고에 대한 케이스를 검색 할 수

있는 내가 데이터 베이스에서 찾아 볼 수 있겠지만 불행히도 그건 생물학적으로나 물리학

적으로도 존재 하기 힘든 구조를 가진 세포야. 하여튼, 이 부분은 복잡하니까 나중에 다

시 설명 하기로 하고 니가 준 나머지 하나의 녹색의 물질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그것도

어떤 화학적 유기물질로 판명됐어 즉 생물학적 물질이라는 말이지 …… 다만 그 유기질

역시 구조가 독특한 데다가 색깔을 이루는 물질에 대한 성분분석이 아직 이루어 지지 않

아서 그것에 대한 정체 역시 아직은 뭐라고 대답을 해 줄 수가 없을 것 같다."

한참을 땅바닥을 쳐다보며 그녀의 알 수 없는 대답들에 대한 결론을 정리하던 나를 바라

보던 그녀는 손으로 내 이마를 짚어 고개를 들어 올리며 눈을 맞추고 이야기 했다.

"이봐 이봐 ...... 그렇게 머리 아파 하지 말라구 ...... 그건 내가 고민할 문제니까. 당

신이 도와 줘야 할 건 따로 있다고 ...... 설마 당신한테 지금 생물 공부를 시킬까봐서

그렇게 잔뜩 쫄아 있는 건가 ?"

내가 이해하지 못해 괴로워 하는 것이 뻔히 보였는지, 그녀는 다소나마 내 마음을 풀어주

려고 애쓰는 듯 '건들건들'한 말투를 섞어 쓰면서 말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고마워 해야 할 나였지만, 남자로서의 질투심이 발동된 나는 약간 비꼬

듯이 그녀에게 받아 쳤다.

"근데 넌 무슨 미국 보건소인지 뭔지에 있다면서 ...... 그렇게 아는 게 많냐 ?"

나는 그녀가 워낙 뛰어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NIH'라고 불리는 무슨 미국 국

립 보건 단체에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내 앞에서 마치 교수인양 굴고 있는 그녀에

게 시비를 걸듯이 말한 것이었다. 물론 그건 나의 혼란스럽고 복잡한 마음이 다소 풀렸다

는 뜻으로 건넨 농담이기도 했다.

"야 이놈아! 보건소라니!"

그녀는 나로선 처음 본 과장된 몸짓과 그녀답지 않은 거칠고 흥분된 목소리를 내고 있었

다.

"넌 무식하게 미국 국립 보건원도 모르느냐? 미국에선 NIH 수석 연구원이면 연방 하원 의

원하고 비슷한 대우를 받는다고 …… "

물론 그녀도 나의 농담의 의미를 잘 파악하고 있었지만 거기에 대한 화답이라도 하는 듯

더욱 과장된 표정과 목소리를 내며 오른손을 들어 큰 모션으로 내 엉덩이를 ? 퍽 - 때리

면서 말했다.


"자꾸 그렇게 무식한 거 티 내지 말고, 이 누나가 하라는 거나 좀 해라!?"

"도대체 내가 해야 할게 뭔데? 뭔데 그렇게 강조하는데 ...... ?"

그녀와의 서로를 배려한 말다툼에 그녀와 나 사이의 흐르던 조금은 어색 했던 분위기는

이제 점점 친밀함으로 바뀌어져 갔다.

"음 간단해. 너 전자공학과 출신이잖아. (3)엔시스[ANSIS]라는 프로그램 다룰 줄 알지?"

"엔… 엔시스? 수 … 수치 해석용 솔루션 말이야?"

역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었다. 석사 과정에서 늘 쓰던 솔루션 이름이 머리 속을 맴돌기

만 했다. 어쩌면 내가 너무 긴장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말은 어떤 말투로 말

을 해도 그렇게 강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응, 맞아 (4)에프이엠[FEM]솔루션인 엔시스 …… 그걸로 내가 여기 적어둔 컨디션에 대

한 시뮬레이션을 좀 해 줬으면 좋겠어 …… 어 그리고 …… 변수는 외부의 '압력'으로 해

서 ……"

마치 교수가 학생에게 숙제를 내 주듯 어느덧 연주의 손에는 컴퓨터로 인쇄된 둥근 구형

의 물체에 대한 스케치와 많은 공식이 적혀 있는 종이가 들려 있었다.

"에휴.. 이건 또 언제 만들었냐? ... 교수님이 시키시니 제자는 해야지 뭐 ..."

나는 그녀의 노력과 준비에 고마웠지만 빈정대듯 투덜렸고 한편으로는 내심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기쁘게만 느껴졌다.

"몇 가지 실험을 해 봤는데 굉장한 결과들이 나왔어. 그래서 하는 말인데 니가 주어온

그 동그란 세포덩어리는 정말 아주 신기한 물건이더라 ......"

내 뺨을 톡톡 두드리며 이젠 마치 정말 자기가 나의 지도 교수인양 실험실에 마련된 간

이 칠판 앞에 서서 펜으로 그림까지 그려가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난 이 세포의 이름을 '제트쎌[Z-Cell]이라고 하기로 했어. 아직 그 물질의 특성이나 성

분, 그리고 DNA구조와 같은 실험 자료들을 얻으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 하겠지만 일단

내 연구실에 있는 장비로 실험한 결과 다음과 같은 특성들이 발견 되었거든 ...... "



그녀는 칠판에 정신 없이 자신이 직접 'Z-cell'이라고 명명한 세포의 특성에 대해 손수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

1. 본 세포는 외부 세포막 외에도 내부에는 물질의 전달을 차단하는 차단 막이 있는데

이 차단 막의 형태가 'N'자형을 그리고 있다.

[다만 내가 처음 발견하였고 'Z'가 더 멋있기 때문에 'Z-Cell'이라고 부르기로 함]

2. 세포를 둘러싼 외부 막의 성질이 동물성 세포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원형질막의 특성

이 식물세포의 성질과 유사함 [특수한 세포벽이 존재함]

3. 세포 자체의 물리적 특성이 높은 연성을 가지고 있고, 세포막이 강한 강도를 동시에

가지고 있어서 세포의 절개가 쉽지 않음

[다이아몬드 커팅 커터로도 쉽게 절개가 되어지지 않음]

4. 세포막 주변에는 윤정이의 혈액과 같은 성분으로 보이는 헤모글로빈이 엷게 막을 이루

며 퍼져 있었다. 간이 DNA검사를 해본 결과 윤수의 옷에 묻어 있던 윤정의 혈액에서 나

온 헤모글로빈과 동일 성분이 거의 확실함 [상세 조사 필요]

5. 세포는 물과 반응하여 급속한 분열이 일어남 다만 급속한 분열과는 달리 세포 자체의

성장이 없어서 점점 쪼개져서 작게 나뉘어지는 느낌임

[이런 현상은 마치 물을 부으면 세포가 녹는 것처럼 느껴짐]

6. 일정이상의 광량을 쬐면 세포가 다시 성장하는 것으로 보임.

[빠른 세포의 분열속도와 비교할 때 세포의 성장속도는 매우 더딘 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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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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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한참을 그녀는 마치 족집게 문제 강사처럼 칠판에 적어 내려가더니, 나에게 몽땅

기록해 두라고 시켰다.

'내가 무슨 학원 수업 듣는 고3 수험생인가 ......'

그녀의 교수 같은 행동에 한마디 비꼬려던 나는 그녀의 선생님이 감시하는 듯한 무서운

눈초리에 얼른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어 모두 입력해 나가기 시작했다.

"넌 내가 적어준 걸 열심히 공부 해 보도록 해. 시뮬레이션을 할 때 도움이 될 꺼야. 이

누님이 보기에는 나 역시도 아직 좀 더 조사해 봐야 할 것이 많이 남은 것 같구

나 ...... 흠 ... 이 세포 덩어리와 처 초록색 유기물 덩어리가 아마 너의 부인인 윤정이

의 죽음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 같아. 만약 ...... 어떤 질병이나 변이 세포에 의한 죽음

이었다면 이제 갓 태어난 너의 자식한테도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여서 ... 심란한

너의 마음은 알겠지만 이 누님이 숙제를 내 준 것이니 빨리 해 오도록 하여라 ... "

'흠 ...... 그런가 ... 저건 ... 음 .. '

난 칠판에 적힌 글을 보며 열심히 이해하려고 애썼지만 나로서는 거기 적힌 내용 만으로

생물학적인 지식을 해석 하기가 쉽지 않았다.

"야!, 근데 아까부터 너 자꾸 왜 ...... 나한테 누나 행세를 하려 하는 거지 ?"

칠판을 바라보며 머리에 쥐가 날 것 같던 나는 분위기도 바꿔 볼 겸 결국 그녀에게 시비

를 걸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 시비에 대꾸를 할 생각도 없는 듯 그녀는 내 손을 잡아 끌

며 시덥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 흠, 당근 내가 너보다 2달 먼저 태어났잖니 ...... 그건 그렇고 이쪽으로 좀 와봐 ...

좀 봐야 할 게 있어 …… "

나는 시비를 받아 주지 않고 시종일관 선생 같은 말투로 말하는 그녀에게 또 한번 농담

을 던졌다.


"어쩔씨구리 ...... 이게 외간 남자의 손을 막 잡아요 ? "

그녀는 더 이상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나를 투명한 유리 통이 있는 실험대 앞으로 안내했

다.

"외간 남자는 무슨, 한번 결혼한 남자는 난 관심 없으시니 이거나 보시게나 ......"

그녀가 지적한 그곳에는 늘 생물실험실에서 볼 수 있었던 하얗고 조그마한 쥐가 한 마리

들어 있었다.

"내가 이상한 현상을 발견 했거든 ...... 아까 물에 의해서 용해 되듯이 분열 되어버린

세포를 쥐한테 주입했어 ... 근데 별다른 반응이 없더라구 ... 물론 외견상도 그렇지만

생 물리 화학적인 검사에도 별다른 이상을 보이지 않았거든, 실험 체 백 마리에게 일단

투여 했는데 단 두 마리는 약간 이상한 증상이 나타났어 ... "

그녀는 마치 귀엽다는 듯이 손에 장갑을 끼고 쥐 꼬리를 잡고 버둥 거리고 있는 쥐를 바

라 보다가 내 얼굴에 그 쥐를 들이 밀었다.

"에헴 ...... 이 쥐가 ... 바로 그 아주 특별한 증상이 나타난 쥐야 ..."

뭐가 특별하다는 건지는 설명도 해 주지 않은 채 그녀는 쥐를 다시 통에 집어 넣고 아까

이야기 하던 백 마리의 쥐에 대해 다시 설명 했다.

"그 백 마리의 쥐 중에 단 두 마리 쥐의 혈액에서 갑작스러운 헤모글로빈의 수치 저하가

일어났거든 ...... 그리고 체내 수분량이 급속히 줄어 들면서 ... 소디움 농도가 높아 졌

어 ... 그래서 난 그 두 마리 중 한 마리 쥐로 이런 저런 실험을 했는데 ... 음 ... 결과

가 보고 싶으면 뒤를 돌아봐 ..."

계속 호기심 어린 눈으로 쥐를 바라보며 실험 결과를 떠들던 그녀를 보던 나는 [뒤를 돌

아봐]라는 한마디 말에, 정말 무심결에 뒤를 [휙~]하고 돌았다.

"으 .. 으 .. 우우우웩 ... "

실험대 옆에 있는 통을 붇잡고, 나는 토악질을 해 대기 시작했다.

'그때 ...... 그때와 똑같아 .. 그때 ......"

투명한 통 안에는 쥐의 시체가 들어 있었다. 사방으로 몸이 갈갈이 찢겨져서 투명한 유

리 통에 피와 살점이 튀어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악몽 같던 윤정의 분만 실에서의 사건

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런 모습을 보고 토악질이 멈추질 앉았다.



'퍽...... 퍽..'

토악질을 하고 있는 내 등을 손으로 쳐주며 연주가 말을 이어갔다.


"짜식, 사내 자식이 비위가 약하긴 ...... 아무리 그래도 넌 이걸 봐야 해 ... 나랑 같

이 이걸 꼭 봐줘야 해 ……"

연주는 아까와는 달리 떨리고 긴장된 목소리 말하고 나선 쥐가 들어있는 투명한 통에 무

언가를 손에 들고 다가갔다.




- 퍼 엉 …


그 소리는 마치 1회용 라이터를 높은 곳에서 던졌을 때 들리는 폭발음 정도였다. 밀폐된

유리 공간에서 조그마한 쥐는 그렇게 큰 소리를 내며 터져 버렸다. 슬로우모션 처럼 눈

에 들어온 그 장면은 쥐의 몸이 찢겨 진게 아니라 터진 것이라는 걸 잘 보여주고 있었

다. 단지 연주가 그 쥐에 어떠한 행위도 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그 유리통속

으로 접근하자 마자 그렇게 쥐는 폭발 해 버렸다.


터져나간 쥐의 시체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던 연주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히 원인은 나도 모르겠어 ...... 이 쥐에게는 여러 가지 실험을 했었는데 별 반응

이 없었거든 …… 단지 실험을 위해서 꽤 오랜 시간을 굶겼기 때문에 다른 패턴의 실험

을 하기 위해 쥐가 먹을 것을 상자 옆에 잠시 두었을 뿐인데 …… 그냥 그 순간에 이렇

게 펑 하고 …… 난 너와 함께 내가 본 사실에 대해 검증하고 싶었어 … 혼자서는 너무

두려웠으니까 …… 그렇지만 윤정이가 분만 실에서 있었던 사건과 이 쥐에게 일어난 현상

과의 상관 관계에 관해서는 아직은 단정 지을 수 없을 것 같아 …… 확실한 걸 알려면

더 많은 실험들이 필요 하겠지 …… 하지만 적어도 네가 자는 동안의 실험으로 이 제트세

포가 이 어려운 문제를 푸는 데 최소한 십 퍼센트의 열쇠라는 건 확실해 졌어 ……"

말이 끝나자 마자 그녀는 이제는 지쳤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 저으며 쥐가 있는

통을 잠시간 바라보더니 이내 기운이 빠진듯한 몸짓으로 등을 돌려 소파에 기댔다.


"아 ...... 정말 나도 모르겠다. 이젠 정말 머리가 안 돌아간다. 나도 잠 좀 자야겠다.

뭘 생각해도 이제는 머리만 아프다 ……"

내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동안 아마 그녀는 거의 수면을 취하지 못 한 모양 이었다. 그

렇게 피곤한 듯 소리치자 마자 그녀는 금새 코를 골며 잠들어 버렸다.

그녀에게 실험실 한 켠에 있던 모포를 덮어준 나는 그녀가 적어준 공식이 적힌 종이를 들

고 그곳을 나왔다. 나로선 더 이상 그녀에게 있어봤자 방해만 될 뿐이었다.



'내 아들 ...... 내 아들에게도 그런 일이 생긴다면 ... 안돼 ... 안돼 ... 그것만은'

나의 머릿속엔 윤정이가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 자꾸만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아까 쥐의 모습과 겹쳐져서 동영상처럼 펼쳐졌다. 그리고 아직 얼굴 한 번 제

대로 보지 못한 나의 자식에 대한 위기감이 몰려 오기 시작했다.

나는 차를 타고 연주가 있던 곳을 빠져 나오면서 나의 아기만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생각

을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리고 무슨 수가 있더라도 윤정이의 죽음에 대한 비

밀을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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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로파일링[Profiling]

일반적으로 범죄 수사를 할 때 사용되는 기법 중에 하나로서 범인의 유형에 관한 구체적
인 정보를 수사진에게 제공하기 위한 훈련된 노력이라고 정의된다. 프로파일링은 1971년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일선 수사진들을 도와주기 위하여 FBI에서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자료화 하여 그걸 바탕으로 범인에 대한 성향을 예측한다. 실제 범죄에 대한 프로파일링
의 경우 범죄 사진의 현장, 주변인물에 대한 관계, 법의학의 보고서, 피해자의 배경 등
을 종합하여 작성한다. 본문에서는 범죄에 적용하는 케이스가 아닌 희귀 질병을 연구하
는 연주가 윤정에게 일어난 특이한 증상에 대한 고찰을 위한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다.
즉 범죄에 적용되는 양식과 같이 질병의 이력, 현상에 대한 사진 및 보고서, 주변 사람
들 및 환자의 심리상태, 접촉 인물 등의 총체적인 자료를 통한 종합적인 신 질병에 대한
케이스 분석을 하는 툴로서 ‘프로파일링’을 소개 한 것이다.

(2) 아티반[ATIVAN]
로라제팜[Lorazepam]성분의 신경 안정제이다. 일반적인 시중의 수면 유도제 보다는 훨씬
강력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향 정신병 약물로서 중독성이 있으며 의사의 처방이 없이는
구할 수 없다.

(3) ANSIS
어떤 물리적 현상에 대한 수치적 해석을 컴퓨터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프로그
램이다. 물리학과를 비롯 전자, 항공, 토목 등 다양한 학문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4) FEM
'Finite Element Method'라 불리는 수학적 문제 해결 방법의 하나로서 어떤 물리적 현상
을 해석하기 위하며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 혹은 어떤 물질적 변화 등에 대한 그래프나 외
형을 작은 요소로 나누어 일정한 규칙을 적용시켜 결과 값을 얻는 방법이다. 본문을 이해
하기 위하여 쉽게 생각하면, 물리적 현상에 대한 컴퓨터를 이용한 시뮬레이션 방법중의
하나로만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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