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긴대학 공포란(www.humoruniv.com) 에서 퍼왔는데 .. 게시판 성격에 안 맞으면 지우겠습니다..
허락 받고 퍼왔습니다.
- < 그의 독백 하나 : 녹색의 공포 > -
나는 ‘녹색’을 싫어한다.
‘녹색’은 나의 마음속 깊은 곳의 알지 못할 공포심을 끌어낸다.
언제부터 난 녹색을 싫어하게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아도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 그래, 그때부터였다.’
아마도 대학 다닐 시절 꾸었던 그 악몽이 있은 후로부터 인 것 같다.
그날의 꿈 이후로 아침 이슬을 머금은 풀잎처럼 투명할 듯이 빛나는 밝은 녹색을 보면
난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곤 한다.
- < 그의 독백 둘 : 벌레의 공포 > -
초등학교 무렵부터 시작 된 것 같다.
난 벌레가 싫었다. 아니 벌레가 싫다기 보다 혐오스러웠다.
우리 집은 넓은 마당이 있었다.
주변의 친구들이 와서 같이 간이 야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꽤 여유 있는 마당 이었다.
그 넓은 마당엔 많은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각종 열매를 머금은 앵두나무, 대추나무 그리고 과실수 이외에도 벽을 타고 흐르는 넝쿨
들까지 우리 집의 마당에는 마치 정글처럼 많은 나무와 풀들이 숨쉬고 있었다.
어느 여름이었다.
친구와 간이 야구를 하다가 공을 흘리는 바람에 나는 대추나무에 들이 박을 수 밖에 없었
다.
- 투두둑
무언가가 나무에서 떨어졌다.
그건 녹색 빛깔의, 아주 진한 녹색이었지만 내장이 보일 듯이 투명한 송충이 같은 벌레였
다.
나는 너무 깜짝 놀란 나머지 손을 휘휘 저으며 마구 달리면서 울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달려가 하루 종일 칭얼거렸었다.
그렇게 송충이 같은 벌레에 물린 나의 팔은 그날 하루 종일 퉁퉁 부어 올랐다.
하지만, 나는 물거나 쏘지 않는 벌레들은 곧잘 괴롭히곤 했다.
집안 잔디에서 늘 볼 수 있었던 메뚜기와 잠자리 그리고 개미들은 거의 나에 의해서 잔혹
하게 고문 당한 채로 전멸 되곤 했다.
젓가락으로 해부 하기, 돋보기로 초점 맞추어 태우기, 물속에 집어넣어 익사시키기 ……
그때는 벌레가 너무 싫었고 지금은 벌레가 두렵다. 아니 무섭다고 해야 할까?
남자가 뭐 그런걸 무서워 하냐고 하곤 하지만 나는 벌레가 들어오면 지금도 우리 마누라
를 부른다.
"여보, 저기 이상한 벌레 좀 ... "
우리부인은 싱긋 웃고는 이제 “남자가 뭐 이런걸 무서워하고 그래요?”라는 말 조차 하
지 않고 내 시야에서 그 벌레를 치워준다..
그녀는 대학에서 생물을 전공해서 그런지, 벌레에 대한 거부감이나 공포가 전혀 없다.
(오히려 좋아하는 쪽에 가깝다.)
- < 그의 독백 셋 : 그녀와의 결혼 > -
내가 열심히 대학생활을 하고 있을 무렵(난 나 나름대로 자부하는 연애 한번 안 해본 순
진한 ‘모범학생’이었다.), 여학생이 얼마 되지 않는 우리 학교에는 새로운 퀸카 후배
가 들어왔다고 한바탕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그녀는 서울과학고 출신이라고 했다.
공부만 하던 내게까지 소문이 들릴 정도인걸 보면 그녀에 대한 소문은 그야말로 학교 안
의 최대 화제 거리 중 하나였던 것 같다.
난 당시 한국에서 과학영재만을 모아 놨다는 KAIST라는 곳에서 학사과정에 재학하고 있었
다. 당시 내가 다닌 학교에서 여학생의 비율은 10퍼센트 되지 않았기 때문에, 들어 오는
신입생 중 여학생들은 곧잘 남자 선배들의 관심의 대상 이곤 했다. (심지어는 석사과정
에 수학하고 있는 선배들까지도 관심을 가질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 중, 학번과 학년을 통틀어 최고의 미녀라는 유명했었던 여자가 바로 그녀였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뒤 엎은 채 난 그녀와 캠퍼스 커플이 되었고, 지금은 내 옆에서
항상 나의 팔베개를 곱게 하고 자는 그녀는 나만의 '여보'가 되었다.
- < 그의 독백 넷 : 죽음을 부르는 악몽 > -
난 꿈을 꾼 적이 거의 없었다.
남들이 꾸었다는 큰 시험 전 날의 꿈이나, 복권을 사기전의 대박이라는 꿈은 물론 사소
한 꿈도 별로 꾸어본 적이 없다.
다만 대학생이던 때, 너무 피곤해서 지쳐 잠든 어느 날 며칠간 내가 밥도 잘 먹을 수 없
게 날 괴롭힌 하룻밤의 그 악몽은 있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그 기억도 거의 저만치 있는 듯 잘 점점 멀어져 갔다.
그런데, 내가 박사 과정을 마치고 생명공학연구소에 첫 출근한 오늘밤 난 완전히 잊은
줄만 알았던 ‘그 꿈’에 나온 그것이 나의 깊은 밤을 노크하고 있다.
- 그래 그건 ‘개미’가 나오는 꿈이었다.
지금 나의 꿈속에서 다시 그 ‘개미’가 너무나 혐오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났다.
몸통은 투명하다 못해 눈이 부실 듯 하다, 그리고 마치 고등학교 시절 현미경으로 관찰
한 엽록체의 푸르스름한 녹색빛을 연상 시키는 듯한 묘한 색깔이 온 몸에 발라져 있다..
이제 그 옛날 꾸었던 꿈이 생각이 난다. 아주 명확하게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또렷하
게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꿈에 나왔던 ‘그 것’이 바로 이 ‘개미’ 같은 것이었다.
크기는 내 엄지 손톱만한 정도다.
개미치고는 무척 큰 느낌을 주고 너무나 징그럽다.
빨리 마누라를 불러 개미를 쫓아 버리고 싶지만 몸이 잘 움직이질 않는다.
'이렇게 큰 개미가 있던가?'
잠시 지독한 호기심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하지만 나의 그런 호기심도 잠깐, 어느덧 그 개미들은 내 다리로 몰려드는 모습이 보이면
서 나는 지독한 공포와 혐오감에 빠져든다.
징그러운 그것들이 내 다리에서 무언가를 자꾸만 실어 나른다.
그리고 내 다리에선 점점 힘이 빠지고 있다.
'가위에 눌린 걸까? 어서 일어 나고 싶다 …… '
하지만 힘이 풀린 다리는 내 몸을 지탱해 주지 못한다.
그리고, 이젠 꿈에서 깨어 날 수가 없다.
나는 그냥 주저 앉아있다.
다리에는 힘이 풀리고, 난 두 손만으로 내 상체를 들어올린 체 내 다리가 변해 가는 것
을 보고 있다.
문득, 그 지독한 공포와 혐오감 속에서도 나의 머리는 딴생각을 한다.
'내 다리가, 내 다리가 마치 사막 같다. 너무나 황량해진 사막 ......'
아니다, 실제로 그렇게 내 다리의 살들은 수분을 잃은 체 쩌억 쩌억 갈라지는 형상이 되
어 간다. 이제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다리의 피부가 아니다. 가무잡잡한 나의 다리에 붙
어 있던 피부는 점점 검붉은 색을 띠면서 쪼그라든다. 이젠 갈라진 대지처럼 그렇게 볼품
없이 앙상해져만 간다.
하지만 다리에는 이제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 어떤 통증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 꿈이니까 ...... 꿈인데 뭐...'
나는 꿈속에서도 꿈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 같다. 아마도 현실에서 이런 일이 일어 날
수 없을 것이란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제 현실이 아니라는 확신에 찬 나는 좀 더 과감하게 나의 꿈을 관찰한다.
내 다리는 군데군데 검붉은 자국과 함께 말라버린 고목의 껍데기처럼 갈라진 모습으로 앙
상하게 뼈가 보일 듯 말듯 징그러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다리에서 모든 수분이 빠져 나가고 있는 게 틀림없다.'
나의 공학적 관찰은 이 꿈속의 현상에 대해 자연스럽게 정의하고 있다.
‘저 개미 같은 놈들이 옮기는 둥그런 물체는, 그 투명하고 둥그런 물체는 낸 다리의 피
부와 더 깊은 곳에서 나의 몸을 지탱하는 세포들의 수분인가?’
나의 꿈에 대한 해석은 점점 더 과학적이 되어간다.
깨어있는 현실에서 보다 더 나는 날카롭고, 관찰에 대한 해석이 자유로워진다.
이젠 조금 더 자세히 관찰하고 싶어진다.
나는 팔에 힘을 주고 몸을 조금 일으켜 세우려 한다.
- 끄응
몸에 잘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하지만 이제 ‘관찰’하기에는 좀 더 좋은 자세가 되었
다.
다리 근처의 개미들은 입으로 무언가 둥글고 투명한 것들을 아직도 끊임없이 옮기고 있
다.
'정말, 개미들의 크기가 상당히 큰걸.. ?'
좀더 자세히 관찰한 나는 그것이 개미라고 단정지었다. 잘록한 허리 그리고 몸통 그리고
몸체의 구조는 영락없는 개미이다. 그런데, 아까 누워서 볼 때 보다 조금 큰 것 같다.
몸통을 감싸고 있는 개미의 껍질은 내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그 녹색이었다. 언제나 알지
못할 공포에 나를 휩싸이게 했던 그 색깔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두렵지가 않다.
아마도 내가 꿈이라는 것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어서이기 때문인 것 같다.
'호주에는 녹색 식물만을 먹어서 엽록소 색깔인 녹색빛을 띄는 개미가 있다던
데 ...... '
이제 나는 꿈속에서 지켜 보는 이 이상한 것의 정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다.
그런데 갑자기 팔 언저리가 따끔하다.
- 아얏 ……
꿈속에서의 고통이 아주 약간이었지만 나를 공포 속으로 다시 몰아넣고 있다.
‘꿈속인데 ……’
더 이상 꿈속의 내가 생각할 틈도 없이 팔에 힘이 풀려간다.
난 이제 당황스러워하고 있다.
‘이건 꿈인데 …… 꿈인데 ……’
꿈속인 것을 자각시켜 보지만 나의 팔에는 자꾸만 기운이 풀려 나가고 내 몸을 지탱할
수 없던 나는 ‘털퍼덕’ 하며 바닥으로 완전히 누워 버린다.
‘천장이 없다.’
역시 꿈이었는지, 누워서 바라보는 하늘에는 천장이 없다. 칠흑 같은 어둠만이 있을 뿐이
다.
‘이렇게 어둡다면 개미들을 보지 못했겠지 …… 그래 … 이건 꿈이니까 …’
다소 공포감을 걷어낸 나는 다시 안도의 한숨을 쉰다.
하지만 자세 때문에 난 더 이상 그 이상한 개미들을 관찰할 수가 없다.
그리고 점점 몸이 나른해 진다.
이상하리 만큼 편안하게 잠이 온다.
꿈속인데 깊은 피곤함이 밀려 들고 있다.
- < 그와 그녀의 이상한 아침 > -
"여보, 여보 일어 나야죠!!"
"아이차암, 지금이 몇 신데 ...... 당신 오늘따라 이상하네 ..."
한참 밥을 하고 있던 윤정은 오늘따라 일어나지 않는 태곤을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그간
박사 논문을 위한 실험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했고, 새 직장으로 옮기면서 긴장이 좀 풀
렸나 하는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방으로 깨우러 갔다.
"여보! 이러다 늦겠어요 ... 아침은 드시고 가셔야죠 ?"
평소 잠버릇이 심하던 태곤은 항상 이불을 발로 차서 침대에서 뒹구는 모습을 하고 있었
는데, 오늘따라 이불 속에 푹 들어간 채로 아무런 대답이 없다.
"일어나세욧! 쫌"
안되겠다는 생각에 앙칼진 소리로 태곤에게 소리치며, 이불을 걷어 올린 윤정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만 기절을 하고 말았다.
- 꺄악 …….
- < 묻혀 버린 진실 >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 교수인 이윤성교수는 이런 시체를 본 적이 없었다. 아니 학
계에 보고된 바도 없었던 것 같았다.
그의 주위에는 시체를 운송해온 대전 지검의 담당 형사와 레지던트들 그리고 이윤성교수
의 긴급지원을 부탁 받고 달려온 고려대학교 법의학 교수인 문국진박사가 있었다.
"급성 노화인가? 이렇게 라피드(Rapid) 하게 진행되는 에이징(Aging)은 일례가 없는 것
같은데?"
문국진교수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아닌 것 같습니다. 부인의 말로는 그 전날 잠들기 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했습니
다. 하루 아침에 급성 노화가 와서 사람이 이렇게 된다는 건 불가능해 보이는데요."
이윤성교수로선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간 공부하고 겪어봤던 어떤 케이스에도 이런
시체가 나온다는 것은 불가능 해 보였다.
"시체의 부인인 사람의 말로는 아침에 깨우려고 이불을 걷어 보니, 남편이 이렇게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굉장한 충격을 받았더군요."
대전지검 특수부의 강형사 역시, 징그러운 시체에서 잠시 눈을 떼고선 말을 이어 갔다.
"체내 검사 소견은 어떤가? 약물 반응이나 기타 특이할 만한 사항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마치 어린아이처럼 시체를 바라보던 문국진교수가 궁금함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빠른 말투로 질문을 해 댔다.
"약물 반응은 현재까지 조사한 바로는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체내의 모든 수분이
거의 다 빠져나갔습니다. 글쎄, 뭐라고 해야 하나 ... 심지어 혈액의 수분마저 다른 성분
은 제외 한 체 수분만 제거된 사체입니다. 현재 검사 결과로는 사체내의 ‘H2O’가 깨끗
이 증발하듯 98퍼센트 이상 제거되었습니다. 이렇게 피부가 갈라지면서 몸 전체의 피부
가 오그라들고, 눈동자 역시 소멸 되었지만 놀랍게도 수분이 제거된 눈동자 껍질은 고스
란히 남아 있습니다. 또한 혈관 절개부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혈관의 헤모글로빈을 비롯
한 혈액 성분은 고형화 되어서 모두 남아 있는 듯 합니다. 저로선 정말 종잡을 수가 없습
니다. "
이윤성교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말투로 말을 계속 이어 갔다.
"정말로 몸에서 수분만 급속 증발 시킨 듯 합니다만, 외부의 열이나 기타 화학 물질 등
에 의 한 현상이었다면 조직 파괴 현상이 보였을 텐데 그런 징후는 전혀 보이질 않고
…… "
문국진교수는 이윤성교수의 말을 듣을면서도, 시체의 이곳 저곳을 메스와 핀셋으로 관찰
해 나갔다. 그러더니 갑자기 뒤를 확 돌아 보며 갑작스런 질문을 던졌다.
"여기, 여길 좀 보시게나! 이곳에 보이는 이 하얀 덩어리들은 무엇인가? 체내 유기 성분
이 나 프로틴(Protein, 단백질)이 응고되었다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구형이고 또한 생성
위치도 이상하지 않은가? "
이윤성교수는 이상한 시체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있다가, 갑자기 문국진교수가 질
문을 던지자 화들짝 놀라며 그곳을 주시 했다.
이젠 교수로서도 학자로서도 정년에 가까운 나이가 된 문국진교수였지만, 역시 문교수의
관찰은 예나 지금이나 날카로웠다. 그가 지적한 다리의 피부가 갈라진 틈 사이로 마치 응
결된 듯 보이는 지름 1mm 정도의 둥근 구형의 흰색 덩어리들이 군대 군데 보였다.
"글쎄요, 유기물이 응고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성분인지 몇 가지 검사를 해 보겠습니
다."
이윤성교수는 문국진박사가 지적한 물질을 가리키며 레지던트로 보이는 이에게 지시했다.
“여기 샘플 채취 해서 XRD를 비롯한 성분분석을 해서 오늘 내로 나한테 결과를 보고하
게.”
그 외에도 몇 가지의 검사를 주문한 이윤성교수는 문국진교수를 비롯한 일행들과 해부실
을 빠져 나오면서 말했다.
" 현재로서는 기초적인 검사만을 해 둔 상태입니다만, 제가 좀 더 조사를 한 후에 정식으
로 보고서를 만들겠습니다. 문 박사님께서 이것 저것 좀 도와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정중하게 문국진교수에게 협조를 부탁 했지만, 이교수는 이 전무후무한 사체의 발견을 본
인만의 업적으로 돌리고 싶은 욕심도 들었다. 하지만, 혼자서 이 사체를 조사하기에는 나
이가 젊은 교수로서 별로 자신이 없었다. 그에게는 자신의 연구를 입증해 줄 권위자가 필
요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일단 강형사는 언론에는 이 일을 알리지 않는 것이 좋을 듯 하네.
괜히 시끄러운 일이 생기면 우리한테도 머리 아픈 일들이 많으니까. 그리고 이 사체는 독
립된 보존 실이나 실험실로 일단 옮기기로 하세. 일단 타살이 아닌 것은 확실한 것 같으
니 사체 검안 보고서는 과로누적 및 미지의 급성 장애에 의한 심장마비로 함세 ...... "
강형사 역시, 포르말린의 역겨운 냄새와 그 괴상한 시체에서 벗어나서 상쾌한지, 아까의
얼굴을 잔뜩 찌푸린 표정에서 생글거리는 미소를 되찾고선 문교수의 의견에 동의 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일단, 상부에도 돌연 사에 의한 죽음으로 보고를 해 두었으니까요.
다행히 뭐 큰 살인사건이나 그런 일은 아니기 때문에 언론에서 그렇게 관심을 보일 사안
도 아닌 듯싶습니다.”
- < 나, 김 윤 수 > -
그토록 예뻐서 모든 남학생들의 관심의 대상이던 윤정이의 남편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
었다.
경찰과 윤정이의 말에 따르면 그 사건은 단순한, 과로에 의한 돌연사라고했지만 장례식장
에서 만난 윤정이는 마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울지도 못하고 멍하니 허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윤정이의 남편이었던 태곤 선배는 KAIST내에서도 항상 최고학점을 자랑했던 물리학과 학
생이었다. 윤정이는 항상 자기 공부를 옆에서 열심히 도와주던 태곤 선배를 잘 따랐고,
결국 많은 남학생들의 질투와 부러움 속에서 그렇게 결혼까지 하였다.
생명 과에 재학 중이던 윤정의 학업을 도와주다가 석사과정에서는 생체물리학을 전공하
게 된 태곤선배였다. 그렇게 열정적인 사랑과 부인과의 공통적 공감대를 만들려고 애썼
던 그 태곤선배의 죽음 뒤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었을까? 식구들 조차 그의 사체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냥 땅에 묻히는 관만 보았을 뿐이라고 했다.
그나저나, 최근 들어 남편을 잃은 윤정이가 내게 전화를 자주 한다. 정말로 많이 힘들어
하고 있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그런 윤정이 오늘 나에게 상의할 것이 있다면서, 우리 집
에 잠시 들르겠다고 한다. 그런 윤정의 말에 나는 가슴이 자꾸만 ‘콩닥콩닥’ 뛰는 기분
이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그녀는 결혼 하고 나서도 처녀적의 그 아름다움과 매력을 전혀 잃지
않고 있었다.
‘하긴 두 사람 사이에 아이도 없었으니까 ...... ‘
'어린애도 아닌데 내가 왜 이럴까? 하긴 나라고 남자가 아닌 것도 아니고...... 학창시절
엔 무척이나 그녀를 좋아했었는데 ……’
자꾸만 이상한 생각이 들던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남편을 잃은 지 얼마 안된 그녀에게
이런 마음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죄책감이 들었다.
정신을 차려 윤정이가 온다는 마음에 혼자 살고 있는 내 아파트를 둘러 보니 이건 정말
가관이다.
집에 밥해먹고 안 치운 접시들은 나뒹굴고(먹은 지 한달 된 비빔면이 하얀 곰팡이에게 식
량을 공급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만들어진 우유곽이며 음료수 병으로 만든 임시 재떨이
(사실 방 전체가 하나의 재떨이였다.)들은 널브러져 있었으며, 쓰레기는 근 한 달간 버
린 기억이 없었다. (그냥 방이 하나의 거대한 쓰레기통이었다.)
심지어 이제 바퀴와 개미를 비롯한 각종 벌레들은 어엿한 우리 집의 동거인이라는 듯이
여기 저기를 활보하고 다녔다.
'자식들 이제 인간은 눈에 보이지도 않나? 피하지도 않는군 …… '
오래간만에 집 청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한 때는 정말 좋아했던 그녀에
게 이렇게 사는 나의 모습을 보이긴 싫었다.
'노총각이 사는 쓰레기통이구먼 완전히 ……'
나는 일단 벌레들을 한꺼번에 박멸할 벌레폭탄 한방을 약국에서 사고, 이 막대한 양의 쓰
레기를 해 치울 거대한 쓰레기 봉지를 구입해야겠다는 마음과 함께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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