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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3-45화> 안군의기억3

바다의기억 |2006.10.21 01:29
조회 5,669 |추천 0

드디어 소집해제 되었습니다.

 

월요일 부턴 완전한 자유의 몸이네요.

 

모쪼록 먹고 살 궁리라도 좀 해야겠습니다.

 

 

============================== 공부 해야지? =============================

 

 

 

두 번째 기회는 탱고 연습이 시작되면서 찾아왔다.


룸바, 왈츠까진 무난하게 마스터해왔던


민아가 슬럼프에 빠진 것이다.


반면 기억이 녀석은 무슨 비법을 썼는지 일취월장이고....


또 한번 바운드 어택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 슬로우, 슬로우, 퀵, 퀵. 어때? 쉽지?


= 어머, 이거 재미있네요.



난 매일 연습이 끝나고 가희와 탱고 연습을 했다.


본래 춤에 좀 소질이 있던 그녀는


나의 적절한 레슨에 힘입어


snello(재빠르게)하게 탱고를 배워갔고,


그녀의 이런 모습은 민아에게 자극이 되기에 충분했다.



= 저.... 오빠, 저도 좀.... 같이 배울 수 있을까요?



장장 일주일 동안 맘에도 없는 탱고 연습을 한 끝에,


민아는 미끼를 물었다.



= 넌 왜 끼어들고 그래? 오빠랑 연습하고 있는데.



어줍지 않은 선민의식에 빠져있던 가희는


매몰차게 민아를 밀어내려 했지만,


미끼가 고기를 쫓는 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


난 일단 가희를 달래놓고


민아에게 sussurando(속삭이듯)하게 말했다.



= 미안하지만... 내일 저녁은 안 될까?

지금은 가희랑 연습중이니까...



그 다음부턴 말할 것도 없이 노브레이크였다.


난 con bravura(대가답게)하게 그녀에게 탱고를 지도해 주었고,


그녀는 마른 스펀지에 물이 스미듯


빠르게 스텝들을 익혀갔다.


Con grazia(우하하게), dolce(달콤하게).....



이로써 그녀에게 확실한 빚 하나를 만들어 놓은 난


그걸 어떻게 활용할지를 놓고 머리를 굴렸다.


저녁식사에 초대할까?


아니면 영화? 드라이브?


일단 보다 확실한 성공을 위해선


그 빚을 키워놓아야 한다는 판단 아래


난 그녀에게 주말 연습을 권했다.



= 아직 탱고 연습도 더 필요한 것 같고...

룸바도 기억이 때문에 제대로 연습 못하고 있으니까

주말에 연습해보는 게 어때?



뭐든 한 발 담그기가 어려운 법.


그녀의 대답은 =OK= 였다.



이제야 좀 본궤도에 오른 듯한 작업상황에


난 참을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하지만 행운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 기..... 기억아..... 어, 어쩐 일이야?


= 어제 가방을 좀 놓고 가서....



연습실에서 주말 연습을 갖는 광경을 기억이에게 들킨 그녀.


도저히 심각한 상황으로 발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금상첨화로 녀석은 나를 구타하기까지 했다.


main destra(오른손으로),


main gauche(왼손으로),


furioso(난폭하게)....


자존심도 상했고, 아프기도 했지만


이 모든 게 그녀를 묶어둘 빌미가 될 것을 생각하니


그 고통마저 뿌듯하게 느껴졌다.



더 쳐라, duramente(거칠게), con impeto(격렬하게)!!



= 그만 놔, 얌전히 갈 테니까.



녀석이 자리를 떠난 뒤,


douloureux(고통스럽게)하게 누워있는 나에게 뛰어온 그녀는


갖은 사과의 말들을 늘어놓으며 눈물을 흘렸다.



= 미안해요 오빠.... 괜찮아요? 입술에 피나요...


= 괜찮아. 네가 말려준 덕분에...


= 어떡해요.... 저 때문에...


= 아유, 이게 왜 너 때문이야. 그냥 운이 없었던 거지. 하핫.


= 어떻게 사과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 응? 저기..... 그럼.... 사과의 의미라면 좀 그렇지만....



난 결국 그 일을 건수로 잡아


그녀와 주말에 불꽃놀이 구경을 가기로 했다.


불꽃놀이라면 밤에 볼 수밖에 없으니


늦은 시간에 불러낼 수 있고,


나란히 앉아야만 하는 자리배치로 스킨십도 자유롭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최적의 선택이었다고 자신하면서 찾아간 고수부지 공원.


그곳에서 난 또다시 녀석과 마주쳤다.



= 불꽃놀이 보러 오셨습니까?


= 뭐, 그렇지. 어제 연습시간엔 별 일 없었나?



민아 동생과 함께 왔다는 녀석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난 입이 근질근질한 걸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내가 지금 누구랑 같이 온 줄 알면 기절할 걸?



하지만 아무리 입이 근질거려도


장장 1년 만에 찾아온 데이트 기회를


이렇게 끝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이번 한 번만은 참기로 했다.



불꽃놀이가 끝나고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


어쩐지 길 아래쪽이 소란스러웠다.


슬쩍 내려다본 그곳엔 남자 세 명이 모여


허공에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



= 퍽, 퍽, 퍼퍽 =



아니, 허공이 아니었다.


온통 검은색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어두운 길 위에 쓰러져 있었다.


기억이 말고 저렇게 입는 사람이 또 있었나?



= 오빠, 도와줘야하지 않아요?


= 응? 아... 경찰에 신고라도 해줄까?



그냥 지나쳤다간


민아에게 냉정한 사람으로 찍힐까 걱정된 난


경찰에 신고전화를 해놓고 돌아섰다.


세상 참 험해졌구나... 라고 생각하며.



기억이 녀석의 사고 소식이 들려온 건 바로 다음날이었다.


이제 막 본격적인 연극 연습이 시작되는 마당에 터진 사고로


연극부는 심각한 공황에 빠졌다.



= 이 일을 어떻게 하냐?


= 빨리 할망구한테 연락해봐!

배역 지정부터 대대적으로 엎어야 돼!



가장 문제가 되었던 건 역시 민아의 참가여부였다.


다른 배역이야 어떻게든 한다 쳐도


그녀가 빠진다면 연극은 최소가 연기,


최악의 경우 취소까지도 고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 그녀의 대답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였다.


기억이 녀석의 부상이 심각해서


자리를 비울 수 없다는 그녀의 설명.


하지만 이 연극에 굉장한 기대를 걸고 있던


연출과 다른 동아리 대표들은 필사적으로 그녀를 설득했고,


결국 5일 만에 그녀를 연극부실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이런 걸 손 안 대고 코풀기라고 하는 건가?



아무래도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핼쑥해진 얼굴의 그녀.


연습 시간 내내 계속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는 것처럼


안절부절못하는 그녀의 모습에


난 뭔가 숨겨진 이야기가 있음을 직감했다.



= 우리도 기억이 병문안 좀 가야하는 거 아냐?


= 아... 안 그러셔도 돼요. 기억이가... 사람들 보기 미안하다고...


= 그래? 음.... 그래도 나중에 한 번 가보자.



특히 함께 병문안을 가자는 연출의 말에


기겁을 하고 손을 내젓는 그녀의 행동에서


난 대략적인 사건의 전말을 추정할 수 있었다.


짜 맞추려고 해도 이렇게 안 될 것처럼


일사천리로 흘러가는 상황에 난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이러려고 그동안 일이 그렇게 꼬였던 거구나.



성벽은 허물어지기 시작했고,


파수꾼은 자리를 비웠다.


남은 일은 단숨에 그녀가 있는 비밀의 방까지 치고 들어가는 일.



= 민아야, 괜찮아? 요즘 계속 심기가 안 좋아 보이는데....


= 오빠....


= 응, 말해 봐. 무슨 일인데?


= 우리.... 불꽃놀이 갔던 날 봤던... 있잖아요,

왜....깡패들한테 맞고 있던...


= 응. 그 사람이 왜?


= 그 사람이.... 기억이였어요.


= 뭐? 무슨 말이야 그게?


= 그 자리에 있던 게... 기억이였다고요.

도와줬어야 하는데.... 그 때 도와줬으면...

지금처럼 다치지 않았을 텐데....



..... 듣는 나도 황당한 마당에


그녀의 심정은 오죽했겠는가.


위기에 처해 있던 그를 못 본 척 지나쳤다는 죄책감에선지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 민아야, 너무 그렇게 자책하지 마.

그 땐 기억이가 그러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던 거잖아.

알고 한 일도 아닌데 그렇게 죄책감 가질 것 없어.


= 게다가... 기억이는 그게 오빠가 시킨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 뭐? 어.... 어째서?


= 모르겠어요. 그냥 무작정.... 오빠가 나쁜 사람이라고...


= 확실히 내가 미움 받을 짓을 많이 한 건 맞지만....

그렇게까지 생각할 정도였나?

나중에 찾아가서 제대로 사과해야겠는걸...


= 아녜요, 일단 상황이 수습되거든... 그때라도...



예전 같으면 무슨 고민이 있건


=아녜요, 아무 일도...= 라고 넘겼을 그녀가


이렇게 술술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만 봐도,


그녀가 약해지고 있는 건 분명했다.



얼음성이 무너지는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졌다.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남은 일은 리그 밖으로 밀려난 녀석을


완전히 재기불능으로 만드는 것뿐이었다.


물론,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찾아보면 반드시 길이 보일 거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던가?



하지만 이런 내 노력이 결실을 맺기도 전에


녀석은 먼저 은퇴선언을 하고 나섰다.



= 이해해 준 것 같아 다행이네. 한나야, 그만 가자.



가야할 때를 알고 가는 사람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말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존재했던 것 같았다.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처량하게 공연장을 나서는 녀석의 모습이 갑자기


grave(장중하게)해 보였다.



= ......... 기.... 기억아....기....기....



갈 곳 잃은 어린양 같은 그녀를


어르고 달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주변으로부터 공인된 커플사이가 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기억이 녀석은 병원에서 개념제거수술을 받았는지


민아의 동생과 눈이 맞은 천하의 악당을 자처해주었고,


그간의 모든 정황이 나를 위해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 민아야, 어디 가고 싶은 곳 없어?


= ..... 가고 싶은 곳이요?


= 응, 이럴 때일수록 기분전환하고 심기일전해야지. 바다 보러 갈까?


= ..... 그래요, 그럼.



모든 게 계획대로 된 건 아니었지만 결과는 완벽했다.


모든 건 내 손안에 들어왔고,


더 이상의 방해요인 같은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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