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그 우울한 肖像?
이제 다시 ‘아침이슬’을 불러야 할 때
50대는 외롭다.
눈에는 노안이 오고, 이는 흔들리고,
몸 어딘가는 좋지 않고, 다리는 후둘거리고….
육체적으로는 그렇게 몰린다
가정에서는 마누라나 아이들에게 몰린다.
직장이나 사회에서는 후배들에게 몰린다.
그러다 보니 정신적으로 위축돼 소극적으로 변한다.
‘매에는 장사 없다’고 온갖 잔매가 누적된 50대는 이토록 외롭고 수척하다.
그림1 자화상 ─ 어중간한 중늙은이
50대는 해방이후세대,
곧 ‘한글세대’의 맏형으로 일제시대의 근대적 교육에서 벗어나
그래도 현대적인 교육을 받고 자랐다.
본격적으로 도시로 진출한 세대다.
때문에 그들은 이전의 부모나 선배들의 세대와 단절된다.
농경·지역 사회가 산업 도시 사회로 급작스럽게 전환되던 시기에 앞섰던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함. 노년도 중년도 아닌 이들, 이름하여 ‘중늙은이’다.
‘오십지천명’(五十知天命)이라...
곧 이제부터는 세상을 체념하고 살라는 뜻이로고.
참으로 산다고 해도 살 것 없는 인생,
아둥바둥 몸부림이나 발버둥칠 것 없이 하늘의 뜻이나 우주의 의지에 따라 살라는 말이렷다.
그림2 소묘 ─ 머리도 꼬리도 없는 사회
“머리는 잘라내고 꼬리는 키우지 않는 게 구조조정입니까?
몸통, 허리만 가지고 우리 사회가 도대체 뭘 하겠다는 얘기이고 어디로 가겠다는 얘깁니까?"
구조조정후 50대의 볼엔소리이다.
이미 정년이란 제도는 파괴된 지 오래다.
그들에게 명예퇴직이라는 멋들어진 수사가 붙지만
따져보면 자연스러운 세대교체가 아니라 인위적인 퇴출, 속어 그대로 ‘밀퇴’를 뜻한다.
‘한글세대’의 맏형이라는 50대가
역시 맏형답게 세대교체의 고리 선두에서 총알받이로 희생당하고 작금의 시대적인 흐름 앞에서는 어이없으리만큼 맥없이 무너지고 있다.
그림3 풍경화 ─ 평균수명 늘고 정년은 짧다
인생을 곧잘 반환점 없는 마라톤에 비유한다.
그렇다고 해도 50대라는 나이는 없는 반환점도 넘어선 나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도 평균수명이나 건강수명이 늘어나면
정년이나 노동연령도 늘어나야 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일 텐데 거꾸로 그쪽으로는 줄어들고 있으니
억울하다 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회 분위기다. ‘일중독증’. 가정보다 회사, 개인보다 조직을 우선으로 일에 매달려 살아온 세대가 50대다.
출장길의 자동차 안이나 비행기 안에서 잠을 자며
불철주야로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니고 전국 구석구석을 헤매고 다녔다.
곧 이들은 ‘오프라인’ 시대, ‘아날로그’ 시대의 마지막 세대가 되는 셈이다.
그림4 정물화 ─ 중저음 목관악기
50대를 악기로 표현하자면 어떤 악기의 어떤 음색이 적당할까.
중년은 관악기가 어울린다. 그것도 목관악기쪽이다
40대는 그런대로 ‘색소폰’이 어울려 들지만
50대는 ‘바순’을 닮은 중저음(重低音)이 어울린다. ‘바순’의 음은 현악기의 ‘첼로’와 가장 닮았다
50대, 그들은 누구인가.
현대적이고 본격적인 대중문화의 장을 연 세대들도 그들이었다.
기본적인 영어 해득 능력을 가진 이들 세대의 문화는
분명 이전의 ‘엽전문화’나 ‘고무신문화’와 구분된다. 트로트 일변도의 대중음악이 팝송으로, 또는 록이나 포크송 등으로 다양해져 갔다.
마지막작품 다시 부르는 노래 ‘아침이슬’
이제 50대는 ‘아침이슬’을 다시 불러야 할 때다.
이리 밀리고, 저리 몰리고 주눅들어 기어들다 보면
그야말로 어정쩡하고 어중간한 ‘중늙은이’로 주저앉고 만다.
그냥 당하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거꾸로 치고 나가야 한다.
모름지기 ‘한글세대’의 맏형답게 의연하게 부닥쳐 나갈 일이다.
맏형인 50대가 더 버텨줘야 우리 사회도 발전한다.
아직 ‘황혼기’나 ‘실버세대’는 아니지 않은가.
시간으로 치면 늦은 하오. 아직 밤은 멀었다.
1970년대 젊은 시절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한 ‘데모’를 하면서부터 애창해 왔던 바 ‘아침이슬’이었음에
2000년대인 지금은 자신의 인생이나 생활습관, 정신자세를 뒤바꾸는 갱신, 개혁을 위한 노래로 다시 부르고 나서야 한다.
*.2002년 5월호 월간중앙에서 작가 김 도형님이 쓴글을 요약하였습니다.
지난번 라이게시판에 올린것입니다..
自 然 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