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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인(同居人)#3

창작 東 |2006.11.23 21:42
조회 410 |추천 0

 은우가 보고서를 작성하려는 듯 PC앞에 앉아 있었다. 눈은 모니터를 보고 있었지만 손가락이 움직이질 않았다. 머릿속에는 온통 미정에 대한 걱정과 자신의 행동에 대한 분노뿐이었다. 회상을 하듯 의자를 젖히어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도시. 빌딩에서 비춰지는 불빛이 아등바등 살아가는 사람들 같아 보였다.

 뭔가 생각난 듯 책상에 놓인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리고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이부장님. 김은우입니다. 일전에 말씀드린 일 처리해주세요. 되도록 빨리 부탁드립니다.” 은우의 목소리가 가볍게 떨렸다.

 다시 창문 밖을 바라보다가 퇴근을 하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사무실을 나갔다.






  정희가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응급실에서 나가겠다며 고집을 피우던 미정이 쓰러지는 바람에 오후강의를 하지 못하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원장님.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서요. 내일 출근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정희의 얼굴이 발그스름해졌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도 조 선생이 강의를 했으니 내일 출근해서 얘기하도록 합시다.”차분하면서도 날카롭게 말했다.

 “네. 내일 뵙겠습니다.” 정희가 통화를 끝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손목시계를 보았다. 저녁 8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부모님이 캐나다에 도착하기까지 2시간이 남아 있었다.

 정희가 미정이 입원해 있는 병실로 들어갔다. 미정이 잠들어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퇴원하겠다며 억지를 쓰던 미정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평온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걱정이었다. 미정의 핸드폰이 잠금장치가 되어있었고 옷가지엔 신분증 외에 아무런 연락처가 없었다. 오로지 누군가 미정의 핸드폰으로 전화오기만을 바랠 뿐이었다.

 배가 고파왔다. 잠들어 있는 미정을 뒤로하고 정희가 미정의 핸드폰을 들고 병원 식당으로 향했다.






 소피아와 주아가 주아의 방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호텔로 갈려고 했지만 주아가 한사코 만류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만 주아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기로 했다.

 “내일부터 뭐 할 거니?” 주아가 침대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우선 영국으로 입양되기 전에 있었던 입양아 보호소에 가 보려고 해. 시간이 많지 않거든.” 소피아가 애써 밝게 웃으려는 듯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벌써부터? 내일은 나랑 서울 구경도 하고 하루쯤은 쉬면 안 되니? 귀하신 푸드스타일리스트 온다고 여기저기에 얘기 다 해두었는데.” 주아가 토라지듯 얼굴을 씰룩거리며 말했다.

 “미안해. 주아야. 난 여기 놀러온 게 아니잖아. 이십년을 기다렸어. 이제 나를 낳아주신 그 분을 만나고 싶어.” 소피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알아. 오히려 내가 미안해.” 주아가 소피아를 안아 등을 토닥여 주었다.

 “고마워. 한국에 네가 없었다면 오지 못했을지도 몰라.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 소피아가 주아를 안았다.






 정희가 오피스텔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미정이 다니는 회사 동료와 연락이 되었다. 병원으로 온다는 얘기를 듣고 집으로 왔다. 피곤한 하루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기위해 느린 걸음으로 오피스텔로 들어서고 있었다. 부모님이 이민을 결정하고 이민날짜가 잡히자 아파트에 혼자 살기 싫어 일주일전에 오피스텔로 이사를 했었다.

 마침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해 문이 열리고 있었다. 키가 큰 남자가 엘리베이터에 탔지만 정희를 기다려 주는 듯 문이 계속 열려 있었다. 정희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엘리베이터에 타자 남자가 층수 버튼을 눌렀다. 정희가 살고 있는 10층 이었다.

 “고맙습니다.” 정희가 눈인사를 하며 말했다.

 남자가 아무런 대답 없이 엘리베이터 층수 표시판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10층에 도착했다는 알림음이 울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남자가 내리지 않고 있자 정희가 먼저 내렸다. 뒤이어 남자가 내렸다. 정희의 몸이 가볍게 떨렸다. 왠지 무서운 생각이 떠올랐다. 복도 맨 끝 1010호를 향해 정희가 남자의 행동을 보다가 갑자기 뛰어갔다. 디지털 도어 록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문을 닫자마자 긴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해서 인터폰으로 현관 앞을 봤지만 남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거실 소파에 앉았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오디오 리모컨을 누르자 ‘폴라 압둘(paula abdut)’의 ‘러시러시(rush rush)'가 흘러나왔다. 눈을 감았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지금쯤 캐나다에 도착했을 것 같았다.



 은우가 예전에 미정이 살았던 오피스텔을 찾아왔다. 오피스텔에 도착할 쯤 이 부장으로부터 연락이 왔었다. 미정이 아직도 이 오피스텔에 사는 게 확실해졌다.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 이상한 행동을 하는 여자를 봤지만 관심밖에 일이었다. 오로지 은우는 미정을 만날 생각 밖에 없었다. 1009호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렸다. 초인종을 누르려다 그만두기를 몇 번이나 하고 있었다. 숨을 고르고서 초인종을 눌렀다. 아무런 인기척이 나지 않았다. 다시 눌렀지만 조용했다. 노크하듯 현관문을 두드려보았지만 오피스텔에 없는 것 같았다.

 핸드폰이 울렸다.

 “예 김은우입니다.”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신세아예요.” 차갑고 날카로웠다.

 “무슨 일이시죠?” 무뚝뚝하게 말했다.

 “지금 만났으면 해요. 지난번 거기로 오시죠?” 명령조로 말했다.

 “늦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세아씨를 만날 이유가 없습니다.” 단호하게 말했다.

 “만날 이유 있습니다. 지금 오세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은우가 발걸음을 돌렸다. 마음이 가벼워지는 듯 했다. 비록 오늘은 만나지 못하더라도 내일은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겨났다. 하지만 세아를 만날 생각을 하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또 무슨 트집을 잡을지 알 수 없는 여자였다.






 핸드폰 벨소리에 정희가 화들짝 놀라며 눈을 떴다. 벽시계를 바라보았다. 12시였다.

 “여보세요.” 잠이 들깬 표정으로 하품을 하며 전화를 받았다.

 “정희니? 엄마야. 잘 도착했다고 전화했어. 자다 일어난 모양이구나.” 울먹이시는 듯 목소리가 젖어있었다.

 “엄마. 잘 갔어?” 정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반갑게 말했다.

 “응. 잘 도착했어. 저녁은 먹었니?”

 “응. 엄마 울고 있어?” 정희가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아니야. 울긴. 거긴 지금 한밤중이겠구나. 여긴 오전인데.”

 “시차적응 안되겠네.”

 “우리 딸 잘 있고 엄마가 또 연락할게. 아버지가 부르시는구나.”

 “네. 엄마도 몸 건강하세요. 시간 걱정하지 말고 언제라도 전화해.”

 “응. 알았어. 식사 거르지 말고 꼭 챙겨먹고 건강해야 해.”

 “네.” 정희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었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터전을 꾸려나가실 엄마를 생각하니 울컥 눈물이 났다.






 미정이 꿈을 꾸는 듯 허공에 손짓을 하며 헛소리를 했다.

 “정민씨 정민씨 가지마세요. 정민씨......” 감긴 눈 사이로 눈물이 흘렀다.

 “팀장님. 김팀장님. 괜찮으세요?” 미정의 헛소리를 듣고 놀라 깬 유미가 미정의 부르며 말했다.

 “정민씨 정민씨.”

 유미가 간호사를 호출하는 버튼을 누르자 간호사가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팀장님이 이상합니다.” 유미가 놀란 눈으로 간호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열이 내렸습니다. 체온은 정상이네요. 꿈을 꾸는 것뿐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체온과 링거 양을 확인하면서 말했다.

 “그럼 입원은 얼마나 해야 하는가요?”

 “낼 아침에 깨어나면 바로 퇴원해도 됩니다. 별다른 증세는 없어 보이니까요.”

 간호사가 병실을 나가고 유미가 미정을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평소에 말라보이던 체형이 오늘따라 더 초라해 보였다.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로 얼룩진 미정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예전에 정민과 자주 가던 칵테일 바에서 은우가 세아를 만나고 있었다. 은우가 룸으로 들어왔지만 다리를 꼬고 앉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은우가 세아와 거리를 두고 앉았다.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여자였다.

 “김은우씨. 당신 뭐가 그리 잘났어?” 술에 취해 혀가 꼬여 있었다.

 은우가 대꾸하지 않았다. 여기에 왜 왔는지 잠시 후회를 하고 있었다.

 “그년은 복도 많아. 정민씨와 당신에게서 사랑을 독차지 했잖아. 빌어먹을 년.”

 “술에 취했어. 당신 오늘만큼은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은우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앉아. 어딜 가려고. 당신은 아직 모르지. 정민씨가 왜 죽었는지.” 양주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듣고 싶지 않아. 당신들이......” 은우가 세아 앞에 놓인 양주병을 가져와 앉았다

 유리잔에 가득 양주를 부어 들이켰다.

 “오. 술 좀 하는데……. 하긴 당신도 괴롭겠지.” 세아가 검지로 은우를 가리키며 말했다.

 은우가 다시 유리잔에 양주를 부어 한입에 털어 넣었다.

 “나는 말이야. 당신이 처음부터 좋았어. 정민씨와 정략약혼만 아니었다면 난 주저 없이 당신을 택했을 거야. 근데 말이지. 우스워. 나도 우습고 당신도 우습고 지 혼자 발광하다 죽어버린 그 놈도 우스워.”

 “그만하지. 내 친구에 대한 모독은 더 이상 들어줄 수가 없어.” 은우가 화가 난 듯 유리잔을 벽을 향해 던졌다. 유리잔이 ‘퍽’하는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 났다.

 “성질은 여전하군. 일 년 전이나 지금이나.” 세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은우 곁으로 다가왔다.

 “그만 가겠어. 당신도 일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잖아.” 은우를 잡는 세아의 손을 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갈려고. 그래 가라. 하지만 난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당신도 조심해야 할 걸.”

 세아를 뒤로하고 은우가 칵테일 바를 나왔다. 겨울 새벽공기가 차가웠다.






 소피아가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차 적응이 필요했지만 두근거리는 마음 때문에 미리 맞춰둔 알람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일주일이라는 시간 안에 자신을 낳아준 생모를 찾아야만 했다.

 소피아가 옷을 갈아입고 일층으로 내려왔다.

 “아침부터 어딜 가게요?” 운동복 차림의 주아 어머니가 말했다.

 “일어나셨어요? 일찍 움직이려고요. 입양아 보호소에 가 보려고 합니다.”

 “어딘지는 아나요?”

 “약도 가지고 찾아가려고 합니다.”

 “잠시 여기에 앉아 봐요.” 주아 어머니가 소파로 걸어가며 손짓을 했다.

 “네.” 소피아가 소파에 앉았다.

 “주아한테 얘기 들었어요. 생모를 찾으러 왔다던데 내가 도와줄게요. 주아의 부탁도 있었고 소피아가 남같이 느껴지질 않아요. 영국에 있을 때 주아가 신세도 많이 졌다고 해서요. 그리고 소피아 같은 유능한 인재를 놓치기도 싫고요.”

 “아닙니다. 신세라니요. 오히려 주아가 제 한국어 선생님이었는걸요. 주아 아니었다면 한국에 오는 게 더 늦어졌을 겁니다.”

 “아무튼 내가 도와줄 테니 삼일만 주세요. 그리고 영국에 돌아가지 말고 여기서 우리랑 같이 살아요. 관련절차도 내가 다 알아서 해줄 테니 그렇게 해요.”

 “생각할 여유를 주세요.”

 “그럼. 오늘은 나랑 회사에 같이 출근해요.” 주아의 어머니가 소파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소피아가 자리에 멍하니 앉아 벽을 바라보았다. 직접 찾기에 너무 짧은 시간이라 걱정은 했지만 자신을 낳아준 부모님을 남에 손에 찾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거절 할 용기도 나지 않았다.

 

 

 

 

-창작 東이 알립니다- 이번주는 좀 한가합니다. 기억이라는 녀석이 달아나기전에 오늘 #3을 올리고 갑니다. 어제부터 목이 잠기는게 감기가 올려나 봅니다. 독자님들도 감기 조심하시구요. 저도 오늘부터 관리 들어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 외롭습니다. 독자님들!! 저 외롭습니다.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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