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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 주인은 제발 보지 마세요

김정미 |2003.04.11 16:46
조회 16,785 |추천 0

햇빛이 쨍쨍 내리 쬐이는 한 낮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산비탈 우리집에서 조금 내려오면 개울이 있고 그 곳이 공동 빨래터인 셈이다

항상 그곳엔 북적거림이 있고 사람의 살아있음이 진하게 배어있는 장소이다

아침부터 모여들기 시작한 동네 아낙네들은 교대로 빨래를 하고 하루해가 저물도록

사람이 끊이지를 않는다

단 조용한 시간이 한번은 주어지는 데 바로 점심식사 시간이다

그 시간이면 모두들 하던 일을 잠시 내 버려두고 각각의 집으로 돌아간다

공동의 빨래터옆에는 자연산 탈수기가 길게 나뭇가지에 매달려있다

이름하여 빨래줄인 것이다

언제나 만국기처럼 펄럭이는 옷들을 바라보곤 기분이 상쾌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햇빛과 적당한 바람으로 뽀송 뽀송 말라가는 깨끗한 옷들을 바라보는 일은 늘 즐거움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그날도 혼자서 빨래터를 지나게 되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개울가엔 사람의 그림자를 찾아 볼 수 없었고 만국기만이 상쾌하게 펄럭이고

있었다

고개들어 펄럭이는 옷들을 한번 쳐다보고 난 후 맑게 흐르는 개울물을 바라보느라 고개를 숙인

나의 눈에 갑자기 띄는 종이 한장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배추잎사귀였다

분명 그것은 만원짜리 지폐가 분명했으니 내 눈은 휘둥그레 질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큰 돈이 길가에 떨어져 있다니 믿을 수가 없었고 순간 내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순간적인 생각이었겠지만 그 돈이 금덩어리로 보였던 것같다

설익은 감을 주워 기뻐하던 소박한 정미의 마음에 갑자기 욕심이 생겨나면서 누가 볼 새라

서둘러 그 거금을 주워 들었다

그런데 돈이 조금 젖어 있는게 아닌가 

집히는 바가 있어 순간적으로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바로 머리위에 청바지가 주머니가 열린체

바람에 펄럭이고 있는게 아닌가

아~ 나는 이제야 그 내용을 알 것같았다

그러나 이 순간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거금이 내 손아귀에 들어왔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나는 두근 거리는 마음을 주체할 길이 없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깊이 할 겨를이 없음을 의식한 나는 우선 이 자리를 빠져나가야 한다

점심먹고 이곳을 오던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영판 오해받기에 쉽상이고 보면 빨리 꼬리를 감추는

길 만이 내가 할 급선무인 것이다

사정없이 뛰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나를 잡으러 뒤따라 달려오는 것만 같아서 불안한 마음 가득히 마구 달렸다

"내 돈 내놔라~~" 귓가에 마구 들려오는 듯도 하고 말이다

우선 급한대로 골목길에 잠시 몸을 숨겨 숨을 돌리기로 했다

그러나 아무도 나를 따라오지 않았고 주위가 조용한 것을 확인하고서야 서서히 아주 태연하게

그 장소를 빠져나오게 된 것이다

되도록이면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고 고개를 떨구고 어떻게 집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집에 돌아오자 마자 방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 물기가 아직도 가시지 않은 거금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혹시 내가 그림을 착각한 것은 아닌가..."

"혹시 위조 지폐는 아닌가" 문풍지로 들어오는 햇빛에다 돈을 갖다대고 무슨 감정이라도 해 보려는듯이

이리저리 살펴보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비록 그동안 만져본 적은 없지만 보아온 경험만으로도 분명히 만원짜리 지폐인 것 만은

분명하다

정말 천하를 얻은 기분이었다 하늘을 날 것만 같았다

얼마 산 인생도 아닌데 행운이 너무 빨리 나에게 도래한 것만 같아서 미안하기도 하다

그러나 어차피 찾아온 행운인데 마다 할 이 누가 있겠는가

그저 순응하는 의미로 그 돈을 받아 요긴하게 잘 사용하면 나로서는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 것이

될 터이니 이제부터의 행동만이 중요한 것이다

그후...

정미의 삶은 180도로 달라졌음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흥분의 순간이 지나고 이제 나의 의지로 감정을 가라앉힐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그 순간이 지나자 이제 고민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 돈을 어떻게 감출것인가

엄마가 알아버리시는 날엔 어떻게 나오실지 상상이 되어지기에 나는 목숨을 다해 이 돈을

엄마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보관해 두어야만 한다

장롱속도 믿을 수 없고, 서랍속도 더더욱 불안하고, 장판밑도 아니고...

마땅한 생각이 떠오를리 없는게 지금까지 귀한 것을 접해보기나 했으며 당연히 감출일이 생겨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또한 오늘의 이 엄청난 사건은 누구에게도 말을 할 수가없다

친한 친구는 물론 심지어는 하나님께도 고백할 수는 없다

이 비밀은 나의 일급비밀로 지정하여 죽음까지 가져가야만 한다

이건 순전히 나 만의 문제이고 내가 짊어지고 가야한 멍에이며 그렇기 때문에 누구와 상의를 할

수도 없고 오직 내 스스로 해결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건 행복한 고민이긴 하지만 역시 고민은 머리를 아프게 하고 별 묘안이 떠오르지 않자 이내

시무룩해져 있었다

아무리 머리를 때굴 때굴 굴려봐야 진전이 없자 나는 다시 잠바를 입고 밖을 나가보려고 생각했다

엄마의 손길이 쉽게 미치는 집안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안하기 그지 없으므로 바깥쪽에 혹시

감춰둘 공간이 있을까 찾아보려는 것이다

아~ 그런데...잠바를 입는 순간에 갑자기 섬광같은 묘안이 스치고 지나가는 게 아닌가

그렇지~바로 이곳이야

다름아닌 빨간 잠바속이 생각이 난 것이다

스폰지를 뜯어낸 공간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퍼뜩 든 것이다

스폰지가 없으니 겨울이긴 하지만 별로 입을 일 없으리라 여기신 엄마는 그 잠바를 세탁할 생각도

하지 않으시니 이 겨울동안 금고역활을 하기엔 안성마춤이라는 생각이 난 것이다

그 생각에 미치자 갑자기 자신이 그렇게 대견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다시 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 이제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잠바 겉감과 속감 사이에 적당한 공간을 확보하여 일단 바느질를 해 놓고 그 속에 꼬깃 꼬깃하게

접은 만원짜리를 집어 넣고 다시 꿰맸다

아 그 순간의 기쁨이란 어찌 말로 다 표현하리요

스폰지대신 돈을 넣은 내 빨간 잠바는 걸어다니는 금고가 되었으며 새 잠바를 입을 때의 기분과도

비교가 되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앞가슴에 천하를 품고 다니는 정미는 이제는 더 이상 천덕구러기도 외톨백이도 아니다

이제 마음만 먹으면 내가 갖고 싶은 것을 모두 얻을 수 있으니까

이젠 눈깔 사탕 한알에 비굴한 표정 지을 필요도 없고

놀러다니면서 툇자 맞을 필요도 없고...이제 모든것들을 이 돈이 다 해결해 줄테니까 말이다

이제 잠바는 더 이상의 외출용만니 아니다

외출용은 물론이거니와 잠옷도 되고 작업복도 되고 그야말로 24시간 동거동락을 같이하는

유일 무이한 동반자로서 굳건한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있다

그 후부터는 잠도 깊이 잘 수가 없고 입맛도 별로 없으며 친구의 재잘거림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심지어는 선생님의 말씀도 귓전을 스쳐갈 뿐이다

그러나 그게 뭐 그리 대수겠는가

중요한 것은 내 품에 거금이 살아 숨쉬며 언젠가 주인의 부름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잠바가

있다는 사실만이 전부인것을.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마음도 어느정도 가라앉고 안정이 되어갈 즈음

드디어 거금을 사용할 날이 도래하고 말았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옷속에 실밥을 풀고 돈을 끄집어 내기에 이르렀다

그리곤 되도록이면 내 얼굴을 잘 모르는 가게로 달려가 돈을 내밀었다

누군가 아마 나를 관심있게 지켜봤더라면 분면 손이 떨리고 있음을 눈치챘을 것이다

과자를 사고 나는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돌려받은 거스름돈이 장난이 아니었다

천원짜리 지폐가 무려 아홉장에다가 백원짜리 지폐가 또 아홉장 그리고 오십원짜리 십원짜리해서

잔돈을 한보따리 받아든 것이다

그 떨림은 말로다 표현할 수가 없었고 만원짜리 한장 달랑 들고 나서던 그 순간과는 또 다르게

그 많은 돈을 주체할 길이 없어 가슴은 또 다시 방망이 치기 시작했다

손에 든 과자는 관심밖이고 누가 볼 새라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어떻게 달려 집으로 돌아왔는지 모른다

돈의 부피가 커진 만큼 정미의 고민의 부피도 그만큼 커지고 말았으니

할 수 없다 역시 빨간 잠바만한 보관장소는 없을테니 어쨌든 엄마가 오시기 전에 감추기 작업을

마쳐야 한다

이번엔 길고긴 작업의 순간이 이어지고 드디어 작품이 완성되었다

그 작업의 내용은 이렇다

지폐 한장씩을 꼬깃 꼬깃 가장 작게 구겨서 놓고 그 돈이 들어갈 공간을 여러군데 확보하여 만들어놓고

각각의 공간에 그 돈 하나 하나씩을 넣고 다시 꿰매는 것이다

태어나서 이렇게 긴 시간 바느질을 해 본적도 없거니와 나의 놀라운 솜씨에 저절로 감탄사가

우러나올 지경이었다

드디어 돈들은 내 팔 한귀퉁이에, 허리춤에, 겨드랑밑에, 양쪽 가슴에, 각각의 의무를 띄고

부르심의 그날까지 자리잡고 있어야만 한다

알라딘의 명령을 기다리는 거인처럼 말이다

이제부터 정미의 장미빛 미래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인기가 급상승함은 물론이거니와 모두들 내 사탕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선녀야~ 노올자" "않 놀아"

"나 과자 많다"
문이 활짝 열리고 달려나와 나를 반기는 그 기쁨이라니...

"너네집 부자 됐는 모양이네"

"그 돈 어디서 생겼니?"

이젠 스폰지 리본은 관심도 없다 돈주고 산 리본이 어느새 머리에 꽂혀 있고 엄마 눈을 피해

이불속에서 만화책도 원 없이 볼 수 있었다

내 잠바는 더 이상의 잠바가 아닌 정미의 요술 방망이였으니...

정미의 화려한 겨울은 이렇게 하루 하루 흘러가고

잠바금고속의 돈도 물흐르듯 흘러가고...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어느 순간 이상한 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아직 잠바속에 얼마간이라도 돈이 남아 있을텐데 서서히 관심이 없어지는 나를 보게 된 것이다

어느날은 돈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잊고 지내게 되었고 급기야는 돈을 꺼내기 위해 꿰맨 자리를

뜯는 일도 귀찮아 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러고 보니 더이상 나의 기쁨이 되어주거나 우쭐거림이 되어주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서서히 겨울이 가려나보다

빨간 잠바도 잠바속의 돈도 아무런 의미가 되어주지 못할 즈음에 봄은 저만치 오고 있었던 것이다

잠바를 벗고 지낸 날들이 여러날,

그럴 즈음,

어느날 잠바를 찾아 이리저리 방안을 뒤지고 있었다

"엄마 내 잠바 어디갔어?"

"스폰지도 없는 옷 내년 겨울에 입을 수 없길래 겨울옷 정리하면서 버렸다"

이럴 수가...

아직은 돈이 남아 있는 내 잠바가 가출을 하다니요

이렇게 해서 사연많은 나의 잠바는 정미곁을 영원히 떠나버렸답니다

 

이렇게 나의 유년의 추억담이라고 세상에 내 놓긴 했지만 우려되는 점은...

혹시 그때의 청바지 주인이 이 글을 보게 된다면 정말 큰일입니다

이자까지 포함해서 갚아달라고 하면 이보다 더 큰 낭패는 없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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