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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나게 들이대는 그녀 - 최강자의 병명

이원영 |2007.03.02 03:04
조회 10,820 |추천 0

PC통신 시절부터 글을 써 온 나는

 

아마도 인터넷 작가 가운데 가장 고참일 것이다

 

같이 활동하던 다른 작가들은 제각각 다른 길로 갔고

 

(대표적으로는 DC인사이드 대표인 김유식)

 

나는 시나리오 작가로 계속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쓴 지 오래된 만큼 독자들도 다양하고

 

초등학생부터 내 글을 읽고 20대가 된 사람도 많다


 

 

최강자

 

주민번호 861231 - 2xxxxxx


 

 

겉모습만 본다면 영락없는 가출 고딩틱한 외모지만

 

똘망똘망 까칠까칠 꽤나 야무진

 

그러나 동문서답의 귀재일 정도로 엉뚱한

 

무엇보다도 7800원짜리 도라에몽 캐릭터 지갑에

 

수백만원과 VVIP 카드를 가지고 다니는 정체 모를 여자애는

 

초등학생 때부터 내 소설의 광팬이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막무가내로 우리집까지 날 쫓아와서는

 

날 구석에 몰아 세우고는 속삭이듯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 오빠 글 보면서 울고 웃고 자랐거든요...

 

 내 삶의 가장 즐거운 추억이었어요...

 

 나... 죽기 전에 마지막 추억으로...

 

 잠자리라는 걸 꼭 해 보고 싶거든요...

 

 그 잠자리를... 오빠하고 하고 싶어요...“


 

 

정신이 번쩍 났다


 

 

‘잠자리를 오빠하고 하고 싶었거든요...’


 

 

이 말도 충격적이었지만


 

 

‘나... 죽기 전에...’


 

 

이 말에서 정신이 번쩍 났다

 

죽기 전이라니...?

 

설마 이 여자애...

 

죽을 병이라도 걸렸단 말인가...?


 

 

최강자는 이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 혼자 분위기에 흠뻑 빠져서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자기 얼굴을 막 들이대는게 아닌가

 

나는 얼결에 손으로 최강자 얼굴을 탁 잡았다


 

 

“자, 잠깐만요. 우, 우리 대화 좀 합시다”


 

 

최강자는 막무가내로 얼굴을 밀어붙이며 말한다


 

 

“대화는 좀 있다 하구여 일단 상황이 급하니까...”

 

 

 

“무, 물어볼 게 있다구요”


 

 

내가 필사적으로 밀어내자 강자가 버럭 화를 낸다


 

 

“아 쒸 남자가 뭐 이러냐! 왜 자꾸 밀어 내는데!”

 

 

 

“막무가내로 댐비니까 그러죠-_-;”

 

 

 

“치! 막무가내로 댐비는 거 아니라구요

 

 옛날부터 상상했었구 연습도 했었다구요“

 

 

 

“무슨 덮치는 걸 연습까지 해요-_-; 그것보다 최강자씨

 

 좀 전에 나한테 한 말... 사실이예요?“

 

 

 

“무슨 말이요?”

 

 

 

“그러니까요...”


 

 

최강자는 궁금한 듯 날 빤히 쳐다보았다

 

차마 죽을 병이 걸렸냐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뭔데 그렇게 망설여요?”

 

 

 

“아니요... 그러니까... 아까 나한테 말한 게 전부 사실인지...”

 

 

 

“난 거짓말 같은 거 안 하거든요

 

 뭘 물어보려는 건지 몰라도 내 말은 전부 사실이예요“


 

 

최강자의 눈은 정말로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아이는...

 

정말로 얼마 못 산단 말인가...


 

 

정말로 얼마 못 사는 게 맞다면

 

더더욱 잠자리는 말도 안 된다

 

죽음을 언급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잠자리를

 

아무 상관 없는 나하고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일단 나가죠. 나가서 밥부터 먹죠”


 

 

난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 일어났다

 

그러나 최강자는 앉은 채 꼼짝도 안 했다


 

 

“뭐 해요 안 일어나고. 나가서 밥부터 먹자구요”

 

 

 

“싫어요. 일단 해요. 하고 나가서 밥 먹어요”

 

 

 

“하, 하긴 뭘 해요-_-; 그러지 말고 일어나요 얼른”

 

 

 

“싫어요. 하기 전엔 여기서 꼼짝도 안 할 거예요”

 

 

 

“이봐요 최강자씨. 진짜 겁 없이 자꾸 이럴래요?

 

 그렇게 중요한 걸 처음 보는 나하고 하고 싶어요?

 

 그리고 해 본 적도 없다면서요?

 

 이거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거 아니예요

 

 마음의 준비도 그렇고 몸의 준비도 그렇고

 

 하여튼 이런 저런 거 다 준비 된 다음에 하는 거라구요“

 

 

 

“오빠 왜 자꾸 내 말 무시해요?

 

 나 오빠 처음 보는 거 아니라니까요?

 

 초등학생 때부터 언제나 같이 함께 있었다니까요?

 

 이미 준비 끝내고 오빠 찾아 온 거라니까요?

 

 그리고 솔직히 겁나는 건 내가 아니라 오빠 아니에요?

 

 뭐가 그렇게 겁나길래 줘도 못 먹어요?

 

 내가 그렇게 매력 없는 거예요?“


 

 

우와 이건 뭐...

 

완전 자기만의 생각으로 똘똘 뭉쳐 사는 놈 아닌가


 

 

이런 놈한테는 사회적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런 놈이라서 잘 아는데-_-;

 

이런 놈들은 자기 상식이 곧 세상의 상식이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면 세상 없어도 옳은 것이다

 

이런 놈은 설득시키려면 끝도 한도 없기 때문에

 

살살 꼬셔서 돌아 가는 게 상책이다


 

 

“저기요 강자씨”

 

 

 

“네 말씀하세요”


 

 

최강자는 굳은 신념에 찬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니놈이 어떤 말을 하든 내 갈 길 가겠다는 모습이다


 

 

“나도 강자씨하고 하... 고 싶거든요”

 

 

 

“정말요?”

 

 

 

“그럼요. 이 세상 어느 남자가 강자씨 같은 여자랑

 

 하... 는 걸 마다하겠어요. 근데요 옛말에 이런 말도 있잖아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구...“

 

 

 

“금강산도 식후경?”

 

 

 

“네. 일단 밥은 먹구 해야죠. 에너지도 엄청 소비될 텐데”

 

 

 

“그럼 내가 금강산만큼이나 매력적이라는 뜻이야요?”

 

 

 

“당근이죠. 금강산이 아니라 록키산맥이나 에베레스트 산...”

 

 

 

“가요 오빠! 얼른 가서 밥 먹구 와요!”


 

 

강자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서 내 팔짱을 꼈다

 

방금 전까진 심각하던 놈이 이젠 완전히 들뜬 표정이다

 

진짜 이쪽 캐릭터들 단순한 건 알아줘야 한다니깐


 

 




“아웅~~ 배부르당~~~”


 

순식간에 밥을 두 공기 반이나 해치우신 최강자는

 

마치 임산부라도 된 듯한 표정으로

 

나오지도 않은 배를 흐뭇하게 쓰다 듬었다-_-


 

 

얘 정말 죽을 병 걸린 거 맞나?

 

전혀 아픈 애 같지가 않잖아


 

 

“식욕과 성욕은 비례한다는데

 

 나 너무 식욕이 좋은 거 아닌가 몰라 *^^*“


 

 

막 찌개에 수저를 가져가던 나는

 

강자의 말에 흠칫 수저를 멈추고는

 

그대로 상에 수저를 올려 놓았다


 

 

“어? 오빠 왜 그만 먹어요? 얼마 먹지도 않았잖아요?”

 

 

 

“아... 요즘 영 식욕이 없어서-_-...”

 

 

 

“그래요? 앗싸~ 그럼 얼른 집에 가요”


 

 

식욕이 없다는 내 암시에도 불구하고 혼자 신난 최강자

 

이 녀석 몸엔 잠자리 못해서 죽은 처녀 귀신이라도 붙어 있나

 

그러나 날 물로 보지 말라구

 

내게도 필살의 무기가 있다구!


 

 

“앗!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난 시계를 보며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어쩌죠 이거? 피씨방 교대 시간이 다 됐는데”

 

 

 

“어? 정말요?”


 

 

최강자는 미처 생각지 못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난 한껏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지금 빨리 가야 되는데”

 

 

 

“음... 피씨방이라...”


 

 

최강자는 골몰한 표정으로 뭔가를 생각했다

 

얘 또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아 불길해 X 2


 

 

“그래요. 가요 피씨방”


 

 

강자가 뭔가 결정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해 보니까 피씨방도 괜찮을 거 같아요”


 

 

뭔 말이야...

 

밑고 끝도 없이 피씨방도 괜찮을 거라니...


 

 

“뭐가 괜찮다는 거예요...?”


 

 

난 불길한 기분으로 물었다

 

최강자는 해맑은 미소로 말했다


 

 

“피씨방에서 하는 것도 괜찮은 거 같다구요

 

 뭔가 변태스럽고 좋잖아요 *^^*“


 

 

 

쿠궁....................................................


 

변.태.스.럽.고.좋.잖.아.요

 

변.태.스.럽.고.좋.잖.아.요

 

변.태.스.럽.고.좋.잖.아.요

 

변.태.스.럽.고.좋.잖.아.요


 

 

 

 

난 말도 안 나오는 더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저, 저기요 최, 최, 최강자씨...

 

 피, 피씨방은 컴퓨터를 하는 곳이지

 

 그, 그짓을 하는 곳이 아니잖아요...“

 

 

 

“에이 왜 그래요 오빠~

 

 그럼 뭐 비디오방은 비디오를 보는 곳이지

 

 그 짓을 하는 곳은 아니잖아요?“

 

 

 

“앗... 당연히 비디오방에선 비디오만...

 

 ... 하여튼 비디오방이랑 피씨방은 다르잖아요“

 

 

 

“괜찮아여 괜찮아. 누군 첨부터 비디오방에서 했겠어요

 

 다 하다 보면 익숙해지구 그런 거예여

 

 그리구 오빠네 피씨방은 야간에 손님 한 개도 없더구만“

 

 

 

“헉... 단골 손님 두 사람은 맨날 오거든요”

 

 

 

“에이 알았어요 알았어. 하여튼 무지하게 소심하다니깐

 

 그럼 그 단골 손님 두 사람 없을 때 하믄 되잖아요“


 

 

이리하야...

 

난 또 다시 최강자 페이스에 휘말리게 되었는데...






 

 

지금 시간은 새벽 1시...

 

현재 피씨방 안에는

 

저쪽 금연석에

 

단골 두 사람이 게임을 하고 있고

 

이쪽 카운터에는

 

일하는 나를 밀어내고 최강자가 앉아 인터넷 하고 있다


 

 

다행스럽게 마지막 손님이 막 나가기 직전에

 

단골 두 사람이 들어와서

 

최강자와 나와의 불미스러운 일은 아직 벌어지지 않은 상태다

 

단골들은 밤 새서 게임하니까

 

아무래도 오늘은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지 않을 듯 하다


 

 

근데...

 

조금 서운한 마음도 없잖아 있-_-...


 

 

“오빠~ 나 이 글 되게 좋아하는데~”


 

 

내 홈피에서 글을 뒤적이던 강자가 눈빛이 초롱해져 말한다


 

 

“무슨 글이요?”


 

 

내 글 좋다는 말에 괜히 흐뭇해서 되물으니

 

강자는 큰 목소리로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거요 원조교제! 나 원조교제 되게 좋아해요!”


 

 

원조교제라는 말에 단골들이 흠칫 놀라 이쪽을 쳐다본다

 

사실 ‘원조교제’라는 단편글의 원 제목은 ‘14년의 러브스토리’였다

 

네티즌이라면 한 번쯤 읽어 봤다는 이 단편은

 

인터넷의 모든 사이트와 게시판에 올려지는 것도 모자라

 

당대 최고 야설 사이트였던 ‘소라 가XX' 까지 올려졌고

 

사이트 특성상 제목이 ‘원조교제’로 탈바꿈-_- 되어서는

 

근친상간, 강간소설 등에 눈이 뒤집혀 접속한 놈-_-들이

 

이 글을 읽고 감동해서는 ‘원조교제’라는 왜곡된 제목으로 퍼트려서

 

결국 ‘원조교제’라는 제목으로 굳어버린 슬픈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단골들은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지 못하잖는가

 

단골들은 놀란 표정으로 나와 최강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완전 큰일났다

 

단골 눈엔 아마 최강자가 당연히 고딩으로 보일 것이다

 

난 잽싸게 수습에 들어갔다


 

 

“이거 원래 제목은 14년의 러브...”

 

 

 

“나도 이런 원조교재 하고 싶당~”

 

 

 

“헉!... 그, 그러니까... 이 글 제목은 원래...”

 

 

 

“오빠 나하구 원조할래요? 나 오빠랑 원조 하고 시퍼~ *^^*”


 

 

닝기리...

 

최강자는 해맑은 목소리로 날 쳐다보며 말했고

 

단골들은 얼음처럼 굳어서는 우리 눈치만 무지하게 살폈다


 

 

“하, 하하... 왜 이래요 최강자씨. 당신 86년생이잖아 하하

 

 나이도 늙었으면서 무슨 원조교제를 하하“


 

 

난 단골들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단골들을 설득하기엔

 

최강자의 꼬라지는 영락없는 가출 고딩이었다


 

 

“오빠오빠~ 나도 원조교제 하고 싶어여~~

 

 나 돈 많거든여 오빠~~

 

 나랑 원조교제 해여~~ 잉잉~~~“


 

 

강자는 아예 징징거리며 대 놓고 목소리를 높인다

 

단골들은 더 이상 듣기에 민망했던지

 

서로 눈치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할게요”

 

 

 

“앗... 벌써 가시게요?”


 

 

난 절박한 심정으로 그들에게 말했다


 

 

“좀 더 하시죠. 제가 다섯 시간 무료로 넣어 드릴게요”

 

 

 

“다섯 시간이요?”


 

 

단골들은 마음이 흔들리는 듯 서로를 쳐다보았다


 

 

“네. 라면하고 음료수 서비스도 드...”

 

 

 

“계산해 드릴게여~”


 

 

순간 최강자가 손님들 손에서 돈을 휙 빼앗더니


 

 

“그럼 안녕히 가세요~ 살펴 가세요오~~”


 

 

순식간에 계산을 해서는

 

손님들 등을 떠밀면서 밖으로 쫓아내는 게 아닌가-_-...


 

 

“저, 저기요! 잠깐만요!”


 

 

난 절박한 심정으로 단골들을 쫓아갔다

 

그러나 강자는 엄청난 힘으로 내 팔을 잡고 늘어졌다


 

 

“이거 놔요! 못 가게 잡아야 된다구!”

 

 

 

“절대 못 놔. 다시 오면 어뜩해”

 

 

 

“그걸 지금 말이라구 해요! 단골이라곤 꼴랑 둘 밖에 없다구”

 

 

 

“안 돼. 절대 못 놔. 가려면 날 죽이고 가”

 

 

 

“아 진짜 이 여자가 눈에 뵈는 게 없나!”


 

 

난 열 받아서 최강자의 팔을 확 뿌리쳤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버럭버럭 고함을 질렀다


 

 

“너 지금 뭐 하자는 짓이야!

 

 하지 말라면 그만 해야지!

 

 정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치잖아!“

 

 

 

“......”


 

 

내 목소리가 너무 컸던 것일까...

 

최강자는 전혀 뜻밖이었는 듯

 

놀란 표정으로 날 멍하게 쳐다보았다


 

 

놀라도 너무 놀란 최강자의 표정을 보니

 

약간은 미안한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은 그걸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어서 가서 단골들 오해를 풀어야 했다


난 무표정한 얼굴로 강자의 놀란 얼굴을 외면하고 뒤돌아섰다

 

그 때였다


 

 

“ㅁㄹㅇㅁㄴㅇㄹㅁ”


 

 

순간 최강자의 입에서 알 수 없는 신음소리가 들려오더니


 

 

“우당탕탕~!”


 

 

최강자가 갑자기 눈 흰자위가 뒤집히면서

 

의자에 부딪치면서 그 자리에 쓰러지는게 아닌가!


 

 

“최, 최강자씨!!”


 

 

난 비명을 지르며 최강자에게 달려 들었다

 

최강자는 엄청난 경련으로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입에 거품을 물고 발작을 일으켰다......


 

 

<다음편에 계속...>

 

 

작가 홈 : http://www.cyworld.com/harang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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