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7월 20일 미국 동부 표준시로 오후 9시 56분.
전세계의 10억 여 명이 숨을 죽이며 지켜본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간이 지구를 벗어나 다른 천체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던 것이죠.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암스트롱이 가벼운 동작으로 월면을 걷던 모습,
알드린이 '고요의 바다'에 꽂힌 성조기에 엄숙하게 경례하던 모습 등을 기억할 것입니다.
당시 암스트롱은 달에 첫 발을 내딛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한 사람의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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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30여년이 지난 지금, 이것은 여전히 20세기 최대의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최대의 업적으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최대의 '사기'로...
처음 듣는 분도 있겠지만,
달 착륙에 관한 음모 이론(conspiracy theory)은 아폴로 11호가 방송된 69년 당시부터 계속되어왔습니다.
음모 이론이란 한마디로 달 착륙이 지구 상의 어느 스튜디오에서 조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말도 안된다구요?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주장들이 있습니다.
이제부터 저는 달착륙 음모론을 둘러싼 일련의 논의들을 정리해서 보여드릴 것입니다.
물론 지지하는 쪽의 의견도, 반박하는 쪽의 의견도 있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설득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주제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진실에 한걸음 더 다가가는 누군가가 나오는 것입니다.
때문에 저의 글에 있는 실수를 지적해주거나 자신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도록 허락해준다면, 저는 제 작은 수고에 대한 커다란 보답으로 여길 것입니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달착륙 이전의 일련의 사건들을 간단히 정리해보겠습니다.
(이후로 편의상 경어를 생략합니다)
Phase 1 : World War Ⅱ ![]()
2차 대전이 끝난 후 미국과 소련이 열을 올린 것은 '전리품 획득' 이었다.
미국은 1945년 5월 독일이 항복한 후 "페이퍼 클립 작전"이라 불리는 독일 과학자 흡수 계획을 통해 많은 과학자들을 미국으로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수확은 독일의 V-2 로켓 계획을 선두지휘했던 발터 도른베르거 장군과 폰 브라운(Wernher von Braun)을 비롯한 120 여 명의 계획 입안자와 핵심 과학자, 기술자들을 거의 고스란히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V-2 로켓은 2차대전 동안 런던, 파리 등을 공격했던 최초의 탄도 미사일로 미국과 소련이 가장 관심을 가진 전리품이었다)
게다가 미국은 포츠담 회담의 합의를 통해 패전국 독일의 공장 시설을 임의로 철거하지 않는다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로프토이 부대' 라는 미 육군의 특수부대를 투입, 독일의 V-2 제조공장에 난입해서 화물 트럭으로 3백대 분량의 V-2 로켓 부품과 설비, 비밀 문서 등을 싣고 가버렸다.
그에 비해 소련이 얻은 것은 보잘 것 없었다.
당시 미국과 소련이 독일의 로켓 기술을 탐낸 이유는 보다 무거운 탄두를 탑재하고 멀리까지 공격할 수 있는 탄도 미사일(ICBM)을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우주 개발의 첫번째 과제 역시 무거운 적재물을 우주 공간으로 쏘아올릴 수 있는 강한 로켓 추진력이었기 때문에, V-2 기술을 고스란히 손에 넣은 미국은 우주 개발에서도 자신들이 소련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때문에 1955년 이후 소련이 인공위성 발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미국은 "고작 독일의 과학자 몇 명을 데려다놓고 연구하는 수준" 이라고 일축하는 분위기였다.
Phase 2 : Sputnik
그러나 1957년 10월 4일 소련은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Sputnik, 러시아어로 '동반자')를 발사해 지구 궤도에 올리게 된다.
이 기념할 만한 사건은 많은 사람들을 감격시켰지만, 미국에서만은 훗날 '스푸트니크 충격(Sputnik shock)' 이라고 불릴 만큼 당시 미국인들, 특히 미국의 정치가들의 자존심에는 큰 상처를 입혔다.
더군다나 스푸트니크 1호의 무게는 83.6kg 으로, 당시 미국에서 계획하고 있던 뱅가드(Vanguard) 인공위성 무게의 10 배나 되었다.
그리고 스푸트니크 1호가 아직 궤도를 돌고 있던 같은 해 11월 3일, 소련은 1호보다 더 무겁고 큰 스푸트니크 2호를 발사하는 데 성공했다.
2호의 무게는 500 kg 정도로 1호의 6배나 되었는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생명체가 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라이카(Laika)'라는 이름의 개로, 아쉽게도 궤도 비행 도중에 죽고 말았지만 무중력 상태의 지구 궤도에서 생물이 어떤 영향을 받는 지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스푸트니크 2호는 소련이 우주생물학을 비롯한 우주개발과 연관된 여러 분야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사람을 태운 유인 우주선을 발사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세계에 공표한 것이었다.
처음에 미국의 전문가들은 소련의 잇단 인공위성 발사 성공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태도를 취했다.
미국이 의구심을 가진 것은 인공위성 자체보다는 인공위성의 크기와 무게였다.
당시 미국은 인공위성을 궤도 상에 올려놓는 발사체, 즉 로켓 기술에서 소련을 앞지르고 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련이 그처럼 큰 인공위성을 쏘아올릴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는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자국의 인공위성이 발사될 경우를 대비해서 만들어놓은 거대한 추적 장치의 망원경은 이러한 의구심을 말끔히 씻어주었다.
망원경은 거대한 아령 모양의 스푸트니크 2호가 길이 2.4 m, 무게는 0.5 톤 이상으로 추정된다는 분명한 사실을 밝혀주었다.
위성발사 경쟁에서 미국의 압도적인 승리를 확인시켜줄 것으로 굳게 믿었던 위성추적 장치가 얄궂게도 경쟁국인 소련의 승리 사실을 확인해주는 도구로 활용된 셈이었다.
그리고 이후 소련은 루나(Luna), 보스토크(Vostok), 보스호트(Voskhod) 등의 무인ㆍ유인 우주선을 발사하면서 우주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Phase 3 : NASA
소련의 회심의 일격은 미국으로 하여금 우주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만들었다.
1958년 7월 29일 Dwight D. Eisenhower 미 대통령은 NASA(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 설립안을 통과시키고, 같은 해 NASA가 설립된다.
NASA는 43년간 항공관련 연구를 해왔던 NACA(National Advisory Committee for Aeronautics)의 연구소들과 8,000 여 직원을 인수해 1958년 10월 1일 활동을 시작하고, 이후 몇 달에 걸쳐 미해군의 Vanguard satellite project 를 비롯해 미육군과 공군, 그 밖의 다른 여러 기관의 우주관련 사업들을 흡수하면서 이후의 미국의 모든 우주계획을 담당하게 된다.
58년 NASA 는 첫번째 유인 우주 프로그램인 Mercury(머큐리) 계획을 발표하고, 63년 종료될 때까지 6번의 유인 우주비행을 통해 우주에서의 인체의 활동 능력 등의 연구를 한다.
하지만 Mercury 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본격적인 달탐사 계획 Apollo(아폴로) 로 넘어가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수준임을 느끼고, NASA는 두 계획을 연결시켜줄 Gemini(제미니) 계획을 61년 발표한다.
Phase 4 : Vostok
1961년 4월 21일, 소련은 최초의 유인 지구궤도 비행에 성공함으로써 다시 한번 미국과의 경쟁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게 된다.
역시 이번에도 아무런 사전 발표없이 조용히 추진되다가 어느날 갑자기 전 세계를 놀라게 하는 소련 특유의 방식이었다.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Yuri Alekseyevich Gagarin) 소령을 태운 보스토크 1호는 지구를 한바퀴 돌고 러시아의 한 농장에 무사히 착륙했다.
Phase 5 : Apollo
1969년 7월 20일, 계속 열세에 놓여있는 듯 했던 미국은, Apollo 11 의 달 착륙선 Eagle 이 두 명의 승무원과 함께 달 표면에 성공적으로 착륙함으로써 소련과의 우주 경쟁(space race)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게 된다.
Apollo 계획을 mission 별로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Apollo
이 사고로 계획이 일년간 연기되었는데, 본래의 계획대로라면 2월 21일 Apollo 1 mission 이란 이름으로 실행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Apollo 1 mission 은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Apollo 2, 3이란 이름도 마찬가지로 배정된 적이 없다) Apollo
1968. 12. 21 ~ 27.
Saturn Ⅴ 로켓을 이용한 첫 발사 실험으로, 달 궤도를 10바퀴 돌고 귀환. Apollo
Phase 6 : Race Over
미국은 1972년까지 총 6Phase 6 : Race Phase 6 : Race Over
미국은 1972년까지 총 6차례의 유인 달 착륙을 성공시킨 후 "달 탐사에 드는 막대한 비용에 비해 소득이 적다"는 이유로 이후 달 탐사 계획을 전면 중단할 것을 발표했다. 그리고 소련은 1976년 8월 9일, Luna 24 를 끝으로 더 이상 달에 탐사선을 보내지 않았다.
1969년 미국이 Apollo 11의 달착륙을 전세계에 생중계했을 때, 공산권 국가들은 일제히 이 방송이 조작된 것이라며 반발했다고 한다. 왜였을까?
혹시 기술면에서 미국에 앞서거나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했던 소련의 눈에도 미국의 달 착륙 기술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냉전 상황이었음을 감안한다면 별 이유 없이 적대국의 성공을 시기하는 태도로 해석할 수도 있다.
자 그럼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1969년 미국이 Apollo 11의 달착륙을 전세계에 생중계했을 때, 공산권 국가들은 일제히 이 방송이 조작된 것이라며 반발했다고 한다. 왜였을까? 혹시 기술면에서 미국에 앞서거나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했던 소련의 눈에도 미국의 달 착륙 기술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냉전 상황이었음을 감안한다면 별 이유 없이 적대국의 성공을 시기하는 태도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왜 이후에라도 소련은 인간을 달에 내려보내지 않았냐는 것이다. 소련은 유인 달 착륙을 시도조차 하지 않고 줄곳 무인 탐사선만으로 일관해왔다. 지금까지 달표면에 성공적으로 연착륙한 7 대의 Luna 탐사선 중에서, 3 번은 달 샘플을 지구로 회수했고, 2 번은 탐사 로봇 '루노호트' 를 내려놓았다.
그럼 이것으로 충분했을까?
달에 내려간 미국의 우주비행사들은 특별히 지질학 교육을 받았으며, 그 중 한명은 실제로 지질 학자였다. 지구로 가져올 수 있는 샘플의 양에는 엄격한 제한이 따르기 때문에, 그들은 달의 역사를 말해주는 중요한 암석이나 흙을 고를 줄 아는 능력을 갖춰야 했던 것이다. 또한 형편없는 TV 화질을 대신해서 직접 눈으로 다양한 지층을 분석하고 그 정보를 지구의 지질학자들에게 전해주는 역할도 해야 했다. 이것은 착륙 지점 바로 밑의 흙을 분석하는 정도의 탐사선이나 조그마한 탐사 로봇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미국은 달 착륙선을 '연구 기지' 삼아서, 그 근방에다 성조기를 꽂고 최고 75시간을 머무르며 탐사 활동을 벌였다. 이는 앞으로 있을 지 모르는 달 개발에 있어서 선점권 등을 주장하기 위한 근거가 될 수 있다. 마치 남극 개발처럼 말이다. 하지만 소련은 그런 권리를 주장하기가 곤란하다. 이처럼 적어도 달 탐사가 목적이었다면 달에 인간을 보내지 않는 것은 여러가지 이유에서 불합리하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소련이 끝까지 무인 탐사선만을 보낸 것은 결국 인간을 보낼만한 기술이 없었다는 뜻일 수 있다. 소련의 기술이 미국에 비해 그렇게 뒤떨어졌던 것일까?
앞 장의 요약에서 대충 알 수 있겠지만, 소련은 미국과의 우주경쟁에서 상당부분 앞서고 있었다. 그 증거로 우주경쟁이 시작돼서 막바지에 접어들때까지 소련의 주요 연구 업적에는 거의 예외없이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Soviet UnionUnited StatesDateAchievementDateEquivalent1957. 10. 04.최초의 인공위성 발사
- Sputnik Ⅰ1958. 01. 31.Explorer 11959. 09. 12.최초로 달의 근접 사진 촬영
- Luna 31964. 07. 28.Ranger 71961. 04. 12.최초의 유인 지구궤도 비행
- Vostok 11962. 02. 20.Friendship 71962. 08. 12.최초의 랑데뷰
- Vostok 3 & 4 (수 km 접근)1965. 12. 15.Gemini Ⅵ & Ⅶ (수 m 접근)1965. 03. 18.최초의 우주 유영
- Voskhod 21965. 06. 03.Gemini Ⅳ1966. 02. 03.최초로 달표면에 연착륙(soft landing)
- Luna 91966. 06. 02.Surveyor 11966. 04. 03.최초로 달 궤도에 진입
- Luan 10자료를 찾지 못했음1968. 09. 14.최초로 달 궤도를 돌고 귀환
- Zond 5 (무인)1968. 12. 21.Apollo 8 (유인)
1962년 소련이 두 우주선을 서로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접근시켰을 때, 미국의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이 소련을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그만큼 우주 경쟁에서 소련은 미국에 비해 상당히 앞서고 있었다. 물론 미국에 비해 뒤쳐진 분야도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몇 년만에 전세가 완전히 뒤바뀔 수 있을까?
미대통령 John F. Kennedy 는 61년 연설에서 "60년대가 끝나기 전에 미국이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고 무사히 귀환시킬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었다. 당시 미국의 미비한 기술 수준을 고려할 때 달 착륙의 가능성을 전혀 예측할 수 없었을텐데, Kennedy 의 발언은 거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과 같은 수준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미국은 69년 인간을 달에 내려놓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이 달 착륙을 조작했다면 그럴만한 동기가 있어야한다. 그래서 몇 가지를 추측해보았다.
첫째,당시는 냉전이 극에 달했던 상황이었고, 양 진영의 대결은 점차 무력 대결에서 경제, 과학 쪽의 대결로 옮겨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소련이 '핵개발'을 능가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거대 과학(Big Science)에서 확실한 주도권을 잡고 우주를 '개척'해 나가는 것을 미국이 태연하게 보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달에 갈 수는 없어도 간 것처럼 꾸미기는 쉽다. 게다가 소련만 속일 수 있다면 나머지 다른 국가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둘째,당시는 핵무기에 대한 위험성이 크게 부각되어 있어서, '스푸트니크 충격' 이후 미국 국민들은 소련이 인공위성을 이용해 핵무기를 사용할 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여 있었다. 정부는 이런 국민의 위기감에 어떤 식으로든 반응할 수밖에 없으며, 가장 효과적인 대응 방법은 우주개발 분야에서 소련을 앞지른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셋째,당시 미국 내에서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전 시위가 거세지고 있었다. 국민의 관심을 밖으로 돌리고 전쟁을 계속하기에 달 탐사는 아주 효과적인 소재가 될 수 있다.
넷째,Apollo 계획에 들어간 돈만 해도 254억불, 1990년 가치로 환산했을 때 950억불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여기에 NASA의 다른 프로젝트들에 들어간 돈까지 합하면 실로 천문학적인 액수의 금액이 될 것이다. 돈을 노렸다면 그야말로 사상 최고의 벌이가 될 수 있다.
그럼 본격적으로 달 착륙이 거짓인지 아닌지, 음모 이론가들(conspiracy theorists)이 내세우는 증거들을 토대로 살펴보기로 하자.
※ 자료로 사용한 사진은 별도로 출처를 밝힌 몇 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NASA Homepage 에서 다운받은 것이다. 모든 사진에는 크기와 선명도 이외에 일체의 수정을 가하지 않았음을 밝혀둔다
1. 그림자 Ⅰ
달에는 대기가 없다. 지구의 1/6인 달의 중력은 대기를 붙잡아둘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 표면에 도달하는 태양광선은 지구에서처럼 대기층에 의해 반사도 되지 않고, 또 구름이나 먼지 등의 장애물을 거치지 않고 바로 도달하므로 훨씬 밝고 강하다.
(지구 대기는 30% 정도의 태양광선을 반사시킨다) 또한 지구에서처럼 공기 중의 분자들에 의해 빛이 산란되지도 않는다.
그 결과 달에서는 빛에 의해 발생하는 명암의 명도차가 지구에서보다 심하다.
그래서 빛이 비추는 곳은 더욱 밝게, 그늘이 진 곳은 더욱 어둡게 보이게 된다. 지구에서는 공기 중의 분자가 빛을 흩어놓고, 또 지상의 여러 물체들이 다양한 각도로 빛을 반사시키고 있기 때문에 그늘에도 빛이 들어가서 '어두운' 그림자가 생기기 쉽지만, 달에서는 '볼 수 없는' 그림자가 생기기 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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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떤 사진들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분명히 더 어두워야 할 것같은 그늘 부분이 지구에서처럼, 심지어는 지구에서보다 더 밝게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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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사진에서 땅에 드리워진 그림자 부분은 보이지 않는데 비해 우주복 부분이 너무 밝게 보인다.
사진은 '역광' 상태다. 별도의 조명이나 반사판이 사용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언뜻 생각하면 달 표면에 의해 반사되는 빛을 지적할 수 있지만 저 정도로 우주복 부분을 비추려면 달 표면은 반짝거릴 정도여야 할 것 같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사진의 여기 저기에서 보이는 그림자들은 더욱 밝아져야 할 것이다.
이번에는 오른쪽 사진의 달 착륙선 측면을 잘 보자.
조그맣게 붙어있는 성조기가 또렷하게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은 아마도 그늘인 것 같은데,
성조기 주변은 어둡고 성조기만 밝게 보이는 상황은 뭔가 설명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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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사진과 가운데 사진을 저 맨 위에 있는 사진과 비교해보자.
위치상으로 비행사들은 착륙선의 커다란 그림자 속에 있는 듯한데 그늘에 가려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햇빛을 직접 받는 것도 아니고 어중간한 그늘 속에 있는 것은 왠지 어색해보인다. 비행사는 차치한다고 해도, 우리가 보고 있는 착륙선의 면은 햇빛을 받지 못하는 부분이다.
그 부분까지 밝게 보인다는 것은 뭔가 태양 이외의 조명이 존재했다는 가정을 필요로 할 것 같다.
오른쪽 사진에서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보고 있는 착륙선의 면은 태양빛을 받지 못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아까 본 사진과 같이 'UNITED STATES'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밝게 보인다.
아래는 위의 왼쪽 사진과 같은 장면이다. (색감이 많이 다른데, NASA의 사진들 중에는 이런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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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은 FOX TV 방송 중에 나왔던 내용인데, 동영상 소스를 찾을 수 없어서 방송 내용을 캡쳐했다.
역시 착륙선의 그림자 속에서 비행사가 빛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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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이론가들은 위의 사진들이 달에서 찍힌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달에서의 유일한 광원은 태양뿐인데, 위의 사진들은 또 다른 광원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한가지를 더 고려해야 하는데, 바로 "지구"다. 일반적으로 달에서는 태양이 유일한 광원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지구에 달이 있는 것처럼 달에서는 지구가 밤을 밝혀준다.
게다가 지구는 달보다 크다. 달에서 보는 보름일때의 지구는 보름달과 비교할 때 13.5 배의 면적에다가 밝기는 68.4 배나 된다고 한다.
그러나 지구가 그렇게 밝다고 해도 역시 지구에서 나오는 빛은 본래 태양의 반사광일 뿐이다.
태양이 있는 상황에서는 거의 영향력이 없다고 볼 수 있다. 보름달의 밝기는 태양 밝기의 1/465,000 이라고 한다.
단순히 계산해도 지구의 최대 밝기는 태양의 1/6798 에 불과하다. 물론 지구-달 사이 거리는 지구-태양 사이 거리의 1/389 이라는 것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런 수치들이 과학적으로 정확이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는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구가 얼마나 밝은가, 그리고 태양과 같이 있을 때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가 하는 것은 위의 사진들을 설명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사진을 찍을 당시 지구가 떠 있었다면 달 표면의 그림자들 모두가 밝아져야 하기 때문이다.
2. 그림자 Ⅱ
태양과 같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광원은 서로 거의 평행한 그림자들을 만들어내지만,
반면 스튜디오의 조명처럼 상대적으로 가까운 거리의 광원은 광원을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뻗어나가는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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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서는 태양이나 지구 이외에 다른 광원이 없기때문에, 달 표면에 드리워진 모든 그림자는 당연히 왼쪽 그림처럼 항상 평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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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사진에 찍힌 그림자들은 평행하지 않다.
착륙선의 그림자와 오른쪽 아래에 있는 암석들의 그림자에 연장선을 이어보면, 마치 사진 바깥쪽 왼편에는 거대한 라이트가 세워져 있을 것 같다. (이 사진은 NASA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없어서 다른 사이트에 있는 것을 옮겨왔다. Apollo 14 임무 중에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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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사진 역시 다른 사이트에서 옮겨온 것인데, 달에서 송신된 TV 화면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길이와 방향을 가진 그림자들을 설명하기가 힘들다.
오른쪽은 Apollo 11 의 Neil Armstrong 과 Edwin Aldrin 이 깃발을 세우는 장면이다.
왼쪽이 Armstrong 인데, 그의 그림자에 비해 Aldrin 의 그림자는 길이가 1.5 배 가까이 된다.
하지만 사진은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의 평면에 옮겨놓은 것이기 때문에, 사진 상에서 그림자의 방향이나 길이를 가늠하는 것에는 많은 변수가 따를 수 있다.
오른쪽 그림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매끄럽지 않은 지면의 굴곡과 경사 등에 의해 그림자가 길거나 짧게, 휘어지게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단 오른쪽 사진의 광원은 충분히 멀리 떨어져있지 않기 때문에 좋은 자료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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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펄럭이는 성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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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서 찍어온 사진이나 영상을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펄럭이는 성조기를 보고 이상하게 여겼을 법도 하다.
진공 상태인 달에서는 바람과 같이 깃발을 움직이게 할 만한 요소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펄럭이는 깃발은 실제로 확인이 되고있으며, 사람들은 이것이 달착륙이 거짓인 증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달에 가져간 성조기는 사실 펄럭이는 것처럼 보이도록 특별히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아폴로 계획은 상당 부분 정치적 선전이 목적이기도 했기때문에, 그들은 극적인 효과를 위해 이런 깃발을 준비했다고 한다.
다음 동영상에서 깃발의 움직임을 눈여겨 보자.
일단 지면의 흙이 날리는 것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을 보면, 바람때문에 깃발이 펄럭이는 것 같지는 않아보인다.
결국 문제는 과연 진공 상태에서 깃발이 저런 식으로 움직일까 하는 것이다. (물론 동영상의 조작 가능성이 있지만 그런 것은 일단은 논외로 하기로 하자)
우리는 진공 상태를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몇몇 정보들과 상상력을 가지고 추리해 보아야 한다.
저 위의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깃발의 윗쪽은 깃대 끝부분에 수평하게 달려있는 가로대에 매달려 있다.
우리가 지구에서 깃대를 잡고 빙글 돌린다고 생각해보자. 수평한 가로대는 깃대를 따라 돌아갈 것이고 깃발도 따라 돌게된다.
하지만 공기의 저항으로 인해 깃발의 아래쪽은 윗쪽에 비해 뒤쳐져서 따라갈 것이다. 슈퍼맨이 날아갈 때 망토가 뒷쪽으로 펄럭이는 이유와 같다.
하지만 진공에서라면 그렇지 않다.
슈퍼맨이 아무리 빨리 난다고 해도 망토는 슈퍼맨의 등에 가만히 놓여있을 것이다.
따라서 깃발도 전혀 기울어짐이 없이 축 늘어진 상태에서 깃대를 따라 돌지 않을까 하는 것을 일단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부분은 추측일 뿐 확신은 없다. 나의 상식으로 상황을 재구성하는 데에 한계가 있고, 또 동영상 자료의 양과 질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덧붙여서, 깃발과 관련된 다른 동영상 중에는 비행사가 가한 힘만으로는 설명이 애매한 것들도 있다.
다시 말해 실제로 바람과 같은 외부의 힘이 존재한다는 논란의 여지를 안고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NASA 홈페이지에서 아직 소스를 찾지 못했고, 본인이 가지고 있는 동영상의 특수한 포멧(WMV)으로 인해 편집해서 일부분만을 올리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자료를 찾은 후에 올리도록 하겠다.
4.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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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의 그 유명한 발자국 사진을 보면, 마치 찰흙에 찍어놓은 것처럼 발자국이 두터운 것을 볼 수 있다.
음모 이론가들 이거 구라라고 주장한다. 수분이 전혀 없는 달 표면에다가,
지구에서의 1/6 정도의 무게를 가진 "가벼운" 우주인이 저런 깊고 뚜렷한 발자국을 만들 수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말이 안되는 것만은 아니다. 달에는 대기가 없기 때문에 흙이나 먼지, 화산재 같은 것들이 날려가지 않고 가만히 쌓이게 된다.
오랜 시간에 걸쳐 별다른 압력을 받지않고 두껍게 쌓여온 먼지층이라면 우주인의 몸무게로도 충분히 깊은 발자국을 남길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달에서 찍어온 사진에서는 우주인들과 월면차(LRV, Lunar Roving Vehicle)의 발자국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단 한군데 발자국이 있어서는 안되는 곳이 있는데, 바로 착륙선의 아래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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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가 없는 달에서는 낙하산이 소용없기 때문에 착륙하기 위해서는 역분사 방법을 사용해야한다. 간단히 말해, 착륙선이 달표면으로 떨어지는 동안 가속도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역추진 분사를 해서 낙하 속도를 줄이는 것이다.
착륙선 무게는 약 15 톤. 물론 중력이 지구의 1/6 인 달에서는 2.5 톤이 된다. 이 정도 무게를 공중에 떠 있게 하려면 상당히 강한 로켓 추진이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착륙선이 달 표면에 접근하는 동안 계속되는 로켓 분사로 그 아래쪽의 먼지는 모두 날아가버릴 것이고, 그렇다면 착륙선 주위에는 어떤 발자국도 찍힐 수 없다.
만약 먼지층이 상당히 두터워서 로켓 분사에 날아가고도 여전히 발자국이 찍힐 정도로 먼지가 남은 것이라면, 착륙선 아래쪽은 주위에 비해 눈에 띄게 움푹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깊은 먼지층에 착륙했다면 주변에 찍힌 비행사들의 발자국은 훨씬 더 깊어야 한다. 하지만 6 번에 걸쳐 달표면에서 찍어온 사진들을 보면 그 비슷한 것은 찾을 수 없고, 다만 착륙선 주위에 여기저기 나있는 발자국들을 쉽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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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음모론을 반박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아폴로 11호 착륙 당시, 아랫쪽에 있는 커다란 분화구(오른쪽 그림)를 피하기 위해 착륙선을 횡방향으로 이동시켰다는 것이다.
그래서 착륙선은 수직이 아니라 비스듬히 내려오면서 착륙했고, 따라서 아랫쪽의 먼지가 충분히 날아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2001년 5월 5일에 방영됐던 SBS의 방송에서는 착륙선이 미끄러진 흔적을 그 증거 중의 하나로 제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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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언뜻 생각하기에도 착륙 순간에 착륙선이 수평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위험한 상황이다.
아랫쪽 지면의 경사나 구성 성분, 암석과 같은 장애물 등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수평방향으로 움직이며 착륙하다가는 자칫 착륙선의 한쪽 다리에 많은 부담이 가서 손상이 가거나 혹은 착륙선 자체가 쓰러질 위험도 있다. 이런 경우 2명의 비행사들은 귀환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착륙선을 수평 방향으로 이동시켰었다고 해도, 착륙 전에는 보정을 통해서 수직으로 착륙하도록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일부러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여러 사진들을 살펴봐도 아폴로 11호 당시 그렇게 미끄러지면서 착륙한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가지 더, 달에 착륙할 때는 착륙선의 분사가 아랫쪽의 먼지를 날리게 한다. 달 표면에 쌓인 먼지층의 두께가 어느 정도 되고 먼지의 입자들이 고운 것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많은 양의 먼지가 높이까지 날릴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따라서 착륙선이 착륙한 다음 먼지들이 가라앉는다면 착륙선의 footpad 위에 먼지가 쌓여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위의 사진을 보면 그런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달이 진공 상태임을 감안한다면 설명이 될 것 같기도 하다.
지구에서는 이런 경우 사방이 공기로 꽉 채워져 있기 때문에, 먼지 뿐만 아니라 공기도 같이 힘을 받는다.
분사로 인해 힘을 받은 공기는 바깥쪽으로 강한 힘을 받지만 바깥쪽에 있는 공기의 저항으로 인해 위로도 솓구치고 곧 직선이 아닌 곡선 형태의 공기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물론 먼지는 이런 공기 흐름의 영향을 받아 사방으로 날린다.
하지만 진공 중에서라면 먼지는 바깥쪽으로 그대로 날려가게 되고 약간의 먼지만이 윗쪽으로 날려가게 될 것 같다.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실제로 어떻게 될지를 알려면 유체역학 등의 보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할 것이다)
아래는 Apollo 11 착륙선의 분사구 주변을 잘 보여주는 사진들이다.
잘 알려진 음모 이론가라 할 수 있는 Bill Kasing은 착륙 시의 로켓 분사의 세기를 고려할 때 분사구 아랫쪽의 지면은 패여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참고로 NASA의 일러스트를 보면 착륙선의 분사구 아래에 분사로 인한 패인 지형을 묘사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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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지구에서 우주비행사의 무게가 장비를 합해 120 kg 이었다고 치면 달에서는 20 kg 정도이다. 이에 비해 달착륙선의 무게는 어떤가? 착륙선이 낙하하면서 어느 정도의 연료를 소비하는 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넉넉하게 잡아 대략 5 톤 가량을 연소시킨다고 하자. (착륙선 전체 무게는 약 15톤이다) 그럼 달 표면에 도달했을 때 착륙선 무게는 대략 1.7 톤 정도가 된다. 이 무게는 비행사의 80 배가 넘는다.
더욱이 착륙선은 서서히 지면에 다가가다가 footpad 아래로 늘어뜨려져 있는 1.8 m 길이의 접촉대가 땅에 닿으면 엔진을 정지시키고 지면으로 떨어진다.
본래 하강하던 속도도 있는 데다가 얼마간의 높이를 자유낙하 하는 셈인데, 결코 '사뿐히' 착륙한다고는 할 수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착륙선의 footpad 는 비행사의 발자국보다는 꽤 깊이 더 들어가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이 사진들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footpad의 면적이나 약간 둥그스름한 모양을 고려한다 해도 뭔가 조금밖에 안들어간 듯한 느낌이다. (물론 정확히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는 직접 재현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음모이론가들은 착륙선 모형을 세트장으로 옮길 때 살짝 내려놓기만 했기때문이라고 말한다.
5. 이상한 사진 Ⅰ
"Man on the Moon" 이라는 제목이 붙은 아래 사진은 아마 달착륙 관련 사진 중 가장 유명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사진에서는 처음에 예로 들었던 사진과 같이, 역광 위치인데 비해 우주복 부분이 너무 밝다.
<Apollo 11, Edwin E. Aldrin><확대한 사진>
그리고 또 하나, 이 사진에서 이상한 점은 바로 카메라의 시점이다.
우주인들이 선외활동(EVA)에 이용한 가슴에 부착하는 70 mm 카메라에는 총 5 x 5 = 25 개의 십자선이 표시되어 있는데, 그 중 나머지보다 큰 가운데 십자선은 이 사진에서 Aldrin 의 발목 부분에 위치해있다.
다시말해 이 사진의 촛점은 Aldrin 의 발목 쪽에 맞춰져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가슴에 부착된 카메라를 아래로 향하게 해서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에서처럼 상대방의 머리 위쪽을 볼 수 있을까?
그러려면 카메라의 위치가 최소한 머리보다는 높아야 가능한데, 카메라가 가슴에 붙어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상식적으로 그런 높은 시점은 나올 수 없다.
그러나 두사람이 경사면에 서 있어서 사진을 찍은 Armstrong 이 더 높은 곳에 서 있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사진을 자세히 보면 Aldrin 은 무릎을 약간 굽히고 있고, 그가 서있는 곳은 약간 패여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위와 같은 사진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을 간단하게 꾸며보았다.
두사람 사이의 거리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사진에서 약간 보이는 footpad 와 Aldrin 사이의 거리, 그리고 Aldrin 의 헬멧 visor 에 반사된 착륙선 다리와 Armstrong 과의 상대적 거리 등을 고려해서 적용했다. (내가 보기에는 Aldrin 과 footpad 는 상당히 가깝게 붙어 있고, Armstorng 은 착륙선의 다리가 본체와 만나는 부분 정도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림에서는 가능한 오차를 고려해 두 사람 사이의 거리와 움푹 파인 지형 등을 더 과장해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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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저 정도의 가파른 경사가 나왔다. 물론 오차의 여지가 많은 그림이지만, 대부분 어느 수준 이상의 경사가 있어야한다는 사실에 동의할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Apollo 11 당시 착륙선 주위에서는 그 비슷한 경사를 찾아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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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것은 Apollo 12 EVA 중에 가슴 카메라로 찍은 사진인데, 역시 비정상적으로 높은 시점을 보여준다.
이번에는 이 사진의 색상, 명도 대비(contrast)를 높여보았더니 또 다른 재밌는 결과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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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흥미있는 결과일 뿐이지, 이 사진 한장만 가지고 기술적인 증명을 해보일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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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ollo 11 당시 선외활동은 단 한번 있었고 소요시간은 2시간 30분 정도였다. 착륙선에 들어가서 안테나를 떼고(혹은 붙이고) 다시 나오는 식의 경우는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원래 안테나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것인 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6. 이상한 사진 Ⅱ
먼저 주목할 것은 그림자의 방향인데,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그림자들이 서로 평행하지 않고 제각각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
이번에는 월면차에서 안테나 오른쪽을 자세히 보자. 분명히 십자선이 피사체의 뒷쪽으로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왼쪽은 원래 사진을 확대한 것이고, 오른쪽은 다른 개인 사이트 있는 것을 옮겨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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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선은 카메라의 렌즈 안쪽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상식적으로는 이런 사진이 찍힐 수가 없다.
하지만 가능한 경우가 있다고 한다. 밝은 대상을 촬영할 경우 가장자리가 명확하게 나오지 않고 번지게 되는데, 이것은 필름사이에서 빛이 산란되어 옆의 유제층에까지 감광이 되는 현상 때문이라고 한다. 별 사진을 찍을 때도 밝은 별이 더 크게 나오는 것도 같은 경우다.
오른쪽 그림들에서 확인해보자. 실제로 흰색 부분이 번져서 십자선을 가린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사진의 왼쪽 아래에 있는 암석을 보면, 윗부분에 알파벳 'C' 가 새겨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역시 오른쪽은 다른 사이트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사진은 특별히 NASA 홈페이지에 있는 것을 링크시켜 놓았다. 직접 확인해보시길...
* NASA Photo ID : AS16-107-17446

7. 달 착륙선
높이 6 m, 무게 15 톤의 착륙선은 아마도 크기에 비해 가장 많은 임무를 수행한 우주선일 것이다.
일단 착륙선의 상당 부분은 착륙과 이륙을 위한 2 개의 로켓 엔진과 연료가 차지하고 있다. 거기에다 크게는 승무원을 위한 산소와 컴퓨터, 통신 설비, 온도 조절장치 등이 필요하고, 그 밖에 비행사들이 메고 나갈 PLSS(Portable Life Support System)와 달 표면에 설치할 실험 기구들인 ALSEP(Apollo Lunar Surface Experiments Package), 카메라 등등이 실려야 한다. 여기에다 Apollo 15 이후에는 월면차도 추가된다.
어떤 사람들은 1960년대 후반의 기술로는 우주선의 부피를 모두 컴퓨터로 채워도 모자랐을 것이라고 말한다. 에니악(ENIAC)이 만들어진 것이 46년, 집적 회로의 개발이 58년의 일이다. 이때는 4 비트 프로세서가 개발되기도 전이고, 당시의 메모리는 지금과 비교하면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착륙과 이륙, 도킹을 계산하고 실행하는 데 필요한 컴퓨터라면 상당한 부피를 차지하지 않았을까?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실제로 어느 수준의 컴퓨터 연산 능력이 필요한 지는 본인으로서는 알 수 없다.
아래 동영상을 보자. 왼쪽은 달 표면에 착륙하는 장면이고, 오른쪽은 이륙하는 장면이다.
<Apollo 16 - Landing on the Moon> <Apollo 14 - Take Off from the Moon>
로켓엔진의 소음은 약 140 - 150 dB(데시벨)이라고 한다. 하지만 착륙이나 이륙 중의 교신을 들어보면 착륙선 내부에서는 엔진의 소음이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떻게 된 것일까?
하지만 소리는 매질을 통해 전달되는 에너지이다. 따라서 매질이 없는 진공 상태의 우주 공간에서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간단히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엔진 소음은 착륙선에 붙어있는 엔진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착륙선 동체가 매질이 되어서 소리를 전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따라서 추측에 불과하지만 착륙이나 이륙시에도 엔진음이 들려야 할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왼쪽의 착륙 동영상 뒷부분의 소리를 잘 들어보면 착륙선이 달 표면에 내려앉는 순간 '쿵'하는 소리가 들린다. (물론 이 소리는 착륙선 내부에서 나는 소리일 가능성도 있다)
왼쪽 동영상은 임무를 마친 Apollo 17 달착륙선이 사령선과의 도킹을 위해 달 괘도를 향해 이륙하는 장면이다.언뜻 보기에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로켓분사를 사용한 이륙과는 많이 다르다. 진공 중이라 해도 로켓 연료에는 산소가 포함되어 있기때문에 커다랗게 뿜어져나오는 화염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속도도 조금 이상해보인다. 지구에서 로켓을 발사할 때를 생각해보자. 엔진이 점화되고 분사가 시작된 직후에는 잠시 멈춰있다가 서서히 가속해서 올라간다. 하지만 왼쪽 동영상에서는 출발하는 처음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마치 가속도 운동이 아니라 거의 등속도 운동에 가깝게 움직이는 듯이 보인다. (물론 중력이 작다는 것도 고려해야한다)
때문에 음모 이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동영상이 세트장에서 꾸며진 것이라고 말한다.<Apollo 17 - Take Off from the Moon>
반면 음모론에 반박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일단 화염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런 특별한 연료를 썼기 때문이고, 약간 보이는 불꽃은 배출된 가스가 아랫쪽 발사대와 충돌해서 생긴 것이며, 불꽃이 아랫쪽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방으로 튀는 것은 진공상태의 특성상 그렇다는 것이다.
8. 같은 배경
아래의 두 사진은 Apollo 15 임무 때 찍은 것들이다. 각 사진에 배경으로 나와있는 언덕의 모습을 비교해보자.

사진을 찍은 각도가 약간 다른 것을 감안한다면, 두 사진에서의 언덕은 동일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없다. 모든 달 사진에서 절대 움직일 수 없는 물체가 있는데 바로 착륙선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착륙선은 임무를 마치고 귀환할 때도 그 하단 부분은 그대로 남게 된다. 따라서 같은 배경을 두고 찍었다면 반드시 착륙선도 똑같이 찍혀있어야 한다.
물론 NASA에서는 두 장소가 서로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과연 저렇게 똑같은 모습을 한 언덕이 인접해있을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위의 사진은 동영상을 캡쳐한 것이다. FOX TV 방송 중에 나왔던 내용인데, 동영상 소스를 찾을 수 없어서 방송 내용을 옮기도록 하겠다.
이것은 Apollo 16 임무 중에 찍은 자료라고 한다. NASA의 설명에 따르면 왼쪽 사진과 오른쪽 사진은 약 2.5마일 떨어진 곳에서 하루의 시간 차이를 두고 찍은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언뜻 보기에도 두 사진은 동일한 곳에서 찍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9. 방사능
지구는 태양풍(solar wind)과 태양계 밖에서 오는 우주선(cosmic rays)의 각종 대전 입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공격받고 있다. 이 높은 에너지를 지닌 입자들은 강한 투과력으로 인해 생명체의 조직이나 전자 기기에 치명적인 손상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지구는 여기에 대해 '자기권' 이라는 보호막을 가지고 있어서 이런 입자들을 대부분 차단해버린다.
하지만 이 자기권 내에는 '밴앨런복사대(Van Allen radiation belt)'라 불리는 고에너지의 입자군이 있다. 내층(지상 약 3,000~5,000km)과 외층(13,000~20,000km)의 두 부분으로 나눠져 존재하는 이 영역은 주로 고에너지의 양성자와 빠른 속도의 전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안에 들어가면 주위에서 여러 개의 핵폭탄이 동시에 터진 것과 같은 엄청난 양의 방사능에 노출되게 된다. (이 높은 에너지의 입자들은 은하우주선(銀河宇宙線)이나 태양풍이 지구의 대기입자와 충돌할 때 튀어나간 중성자가 베타붕괴되어 생긴 것들이다)
따라서 이 밴앨런대를 통과해 먼 우주로 여행하는 모든 기계나 생명체는 반드시 충분한 '보호막' 을 갖추어야 한다. 물리학자 Ralph Rene의 말에 의하면 이 밴앨런대의 방사능을 차단하려면 1.8m 두께의 납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Apollo 우주선의 외부벽은 얇은 두께의 알루미늄이었고, 비행사들의 우주복 또한 유리섬유, 알루미늄섬유, 실리콘섬유로 되어 있었다. 한 마디로 방사능에 대해서는 거의 무방비였던 셈이다.
Fox TV 와의 인터뷰에서 한 러시아 우주비행사(Boris Valentinovich Volinov)는 구 소련이 인간을 달에 보내지 못한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강력한 방사능이 승무원과 기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알 수 없어서였다고 말한다. 참고로 역사상 지금까지 행해졌던 모든 유인우주계획 중에서 이 밴앨런대를 통과한 것은 Apollo 계획 뿐이었다.
여기에 대해서 NASA는 이렇게 해명한다. 실제로 당시 NASA도 이 문제가 큰 걸림돌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냉전이라는 정치적 상황과 케네디가 1960년대가 가기 전이라고 말한데서 오는 시간적 압박감으로 인해 달 계획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모든 준비가 갖춰지기 전에 시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비행사들이 모두 군인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민간인도 한 명 참가하지만)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들이 무사했던 것은 밴앨런대를 통과하는 시간이 비교적 짧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문제가 되는 것은 밴앨런대 뿐이 아니다. 우주 공간에서는 수시로 방사선의 공격을 받을 수 있고, 특히 태양으로부터 나오는 대전 입자의 흐름인 태양풍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게된다. (태양풍은 태양으로부터 1AU(천문단위; 태양-지구간 거리)의 거리에서 1㎤ 당 1~10개의 입자를 가지고 있으며, 평균속도는 500km/s이고, 태양표면에서 폭발이 있을 때는 2,000km/s에 달한다. 주 성분은 전자, 양성자, 헬륨원자핵 등이다.)
Apollo 계획이 진행되었던 1969년부터 1972년은 11년의 태양 활동주기 중에서 태양풍의 강도가 세지는 7년 간의 '태양 극대기(solar maximum)' 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는 태양 표면에서 '플레어(flare)' 라는 자기 에너지의 격렬한 폭발이 빈번하게 발생하는데, 하루 평균 15개의 플레어가 강한 x선을 방출한다고 한다. 또 한번의 극대기 중에는 평균 7-8 번 정도 커다란 규모의 플레어들이 몇시간에서 며칠에 걸쳐 발생하는 특이한 경우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1972년 8월의 경우에는 역사상 관측된 가장 강한 태양풍이 발생해서 지구 저궤도(Low Earth Orbit)에서 선외활동을 하고 있는 우주비행사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방사선이 벤앨런대를 뚫고 침투했다고 한다. (참고로 Apollo 16 은 72년 4월, Apollo 17 은 12월에 발사되었다) 그리고 이런 강한 플레어가 발생하는 경우 밴앨런대 내의 방사능 세기는 1,000배까지 증가한다고 한다.
※ 강한 플레어는 한 시간에 100 rem(방사선의 작용을 나타내는 단위, 생리적 뢴트겐 당량) 정도의 방사선을 내보낸다고 한다. 이에 비해 일반인의 방사능 허용 수치는 일년에 0.1 rem 이고, 특별한 경우에는 최고 0.5 rem 인데 이 경우 이후 5년간 일년 평균 0.1 rem 을 넘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병원에서 가슴 x-ray 사진을 한 번 찍을 때 받는 조사량은 0.01 rem,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 당시 반경 30 km 의 소개지역 내 평균 조사량은 1.5 rem 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바로 달 탐사에서 죽은 우주비행사는 없다. 뿐만 아니라 방사능에 노출된 후 겪게 되는 암이나 탈모 등의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도 없었다. 때문에 음모이론가들은 비행사들이 달에 다녀온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지구 궤도를 돌다가 귀환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또 하나 방사능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은 카메라의 필름이다. 필름은 x선 등에 의해서 손상을 입을 수 있고, 심할 경우 emulsion이 녹아내리기도 한다고 한다. (공항 등에서도 필름은 x선 검색대를 통과시키지 말라고 경고한다) NASA는 카메라가 특수하게 코팅되어 있다고 말하지만, 과연 실제로 달 표면에서와 우주 여행 중의 강한 방사선을 차단할 수 있었는 지 의심이 간다.
10. 별
NASA가 공개한 사진 중에는 달의 하늘 부분에 별이 찍혀있는 것이 단 한장도 없다. 달에는 대기가 없기때문에, 지구에서와 같은 푸른 하늘 없이 바로 우주 공간이 드러난다. 따라서 달에서는 낮에도 별을 볼 수가 있고, 당연히 사진에도 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 이론가들은 NASA가 그 복잡한 별들의 배열을 일일히 위조할 수 없었기 때문에 모두 지워버렸다고 주장한다. 만약 실수가 발견된다면 천문학자들이 바로 알아차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달에 가져간 카메라로는 별을 찍을 수 없다고 한다. 인간의 눈은 일반 필름에 비해 1만배 정도의 관용도를 보이는 데다가, 대뇌가 망막에 맺힌 상을 지각하는 과정에서 '잔상'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는 달에서 별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카메라의 필름은 같은 노출로, 선경에 있는 밝은 피사체와 배경에 있는 어두운 피사체를 동시에 담을 수 없다.
후자에 해당하는 별을 필름에 담으려면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오랜 노출로 찍어야한다. 예를 들어 밤하늘을 배경으로 시내의 도로를 찍는다면, 짧은 노출일때는 별 없이 도로만 찍히고, 긴 노출일때는 별과 함께 자동차의 라이트들이 길게 이어진 그런 사진을 얻게 되는 것이다. 달 탐사에 일부러 긴 노출을 이용해서 사진을 찍었을 리 없으니 아마도 별은 찍히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별을 사진에 담는 것은 상당히 쉬운 일이다. 고정시킬 수 있는 카메라를 하나 더 가져가거나, 가슴 카메라에 셔터 스피드를 조정하는 기능을 추가해서 적당히 빛을 통제하고(예를 들어 태양을 등지거나 착륙선의 그늘에 들어가서) 잠시동안 노출 시키면 반박하기에는 충분한 별사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NASA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단 1g 이라도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면 빼야 한다. 그리고 별 사진을 찍으려고 달에 가는 게 아니다."
11. 극심한 온도차
달에는 대기가 없기 때문에 표면 온도가 낮에는 127 ℃ 까지 올라가고, 밤에는 -153 ℃ 까지 떨어진다. 하지만 한번에 7시간 이상 (Apollo 15 이후) 선외활동을 벌인 우주인들이 더위나 추위 때문에 불편함을 느꼈다는 언급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이 온도에서는 필름이 녹거나 얼어버리게 된다. 우주복과 카메라의 방열, 방한 기능이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짐작하기가 어렵다.
또 하나, 대기가 없다는 것은 온도차가 클 뿐만 아니라 온도 변화도 급작스럽게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시간 내에 일어나는 커다란 온도 변화는 착륙선의 동체뿐만 아니라 달 표면에 설치한 여러가지 실험 기구들에게도 심각한 파손을 초래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 대한 반박이 있다. 진공 중에서는 열을 전달할 매질이 없기 때문에, 달 표면의 온도는 표면에 접촉되어있는 비행사의 발을 제외하고는 다른 곳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당히 설득력 있는 지적이다. 달 표면 온도가 지구에서보다 훨씬 높게 올라가는 것은 첫째, 대기에 의해 차단되지 않는 더 강한 태양빛을 받기 때문이고, 둘째, 역시 대기가 없기 때문에 태양빛을 받으면 받는만큼 온도가 고스란히 계속해서 상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위의 가설이 옳다면 비행사는 달 표면보다 짧은 시간동안 태양빛을 받고, 또 그늘에 의해 태양빛이 차단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달 표면보다는 온도가 적게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낮은 온도 쪽은 해결이 되지 않는다. 우주 공간 전체의 평균 온도는 절대온도 약 3K, 즉 섭씨 -270℃ 정도로 차갑게 식어있는 상태다. 태양빛을 받지 않는 동안 달 표면의 온도가 계속 떨어지는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달 착륙은 태양이 뜨지 않는 달의 밤 동안 이루어진 적도 있다. 뜨겁게 달구어진 달에 비해 차가운 우주비행사는 어쩌면 더 낮은 온도로까지 식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때문에 우주복의 방한 능력은 매우 뛰어나야 할 것 같다. (※ 이 부분의 내용은 추측일 뿐입니다. 틀린 내용이 있으면 지적 바랍니다)
12. 의문의 죽음들
(1) Virgil Ivan "Gus" Grissom달에 첫 발을 내디디기로 되어있던 사람은 원래 닐 암스트롱이 아니라 거스 그리슴 이었다. 여러 번의 우주 비행 훈련에 참가했던 그는 국가적인 영웅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우주 계획의 문제점에 대해 거리낌없이 말을 하던 비평가이기도 했는데, "누군가가 죽게될 것이다 (Someone is going to get killed)"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Fox TV 방송 내용. 어떤 문맥에서 이 말을 했는 지는 나와있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죽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라는 식으로 해석될 수 있을지도 모르죠.)
그러던 어느날, 불의의 사고가 발생했다. 1967년 1월 27일, 모의 발사시험 도중 사령선(Command Module)에 화재가 발생해서 거기에 타고 있던 Grissom을 비롯한 Edward White, Roger Chaffee 등 세 명의 비행사의 생명을 앗아간 것이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세 명의 승무원이 사령선에 사령선에 들어간 직후 그리슴은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잠시 후 훈련은 재개되었다. 얼마 후 과도한 산소공급으로 인해 경보음이 울렸고, 환경계통 담당자는 별 문제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다음 그리슴과 관제실과의 통신에 문제가 생겼고 이윽고 사령선과 관제실, 발사대 주변 사이의 통신 문제로 번졌다. 그 때 사령선의 승무원 중 한 명이 인터폰으로 타는 냄새가 난다고 말했고 그 순간 불이 크게 번졌다. 결국 승무원들은 끝내 탈출 해치를 열지 못하고 화상과 질식으로 숨졌다.
좀 더 자세한 사건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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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날, 불의의 사고가 발생했다. 1967년 1월 27일, 모의 발사시험 도중 사령선(Command Module)에 화재가 발생해서 거기에 타고 있던 Grissom을 비롯한 Edward White, Roger Chaffee 등 세 명의 비행사의 생명을 앗아간 것이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세 명의 승무원이 사령선에 사령선에 들어간 직후 그리슴은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잠시 후 훈련은 재개되었다. 얼마 후 과도한 산소공급으로 인해 경보음이 울렸고, 환경계통 담당자는 별 문제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다음 그리슴과 관제실과의 통신에 문제가 생겼고 이윽고 사령선과 관제실, 발사대 주변 사이의 통신 문제로 번졌다. 그 때 사령선의 승무원 중 한 명이 인터폰으로 타는 냄새가 난다고 말했고 그 순간 불이 크게 번졌다. 결국 승무원들은 끝내 탈출 해치를 열지 못하고 화상과 질식으로 숨졌다.
Apollo 1Summary of EventsJanuary 27, 1967Tragedy struck on the launch pad during a preflight test for Apollo 204, scheduled to be the first Apollo manned mission. It would have been launched on February 21, 1967, but Astronauts Virgil Grissom, Edward White, and Roger Chaffee lost their lives when a fire swept through the Command Module (CM). The astronauts entered the Apollo at 1:00 p.m., Friday, 27 January 1967. Problems immediately arose. The first problem occurred when Gus Grissom entered into the spacecraft and hooked up to his oxygen supply from the spacecraft. He described a strange odor in the spacesuit loop as a "sour smell". The crew stopped to take a sample of the suit loop, and after discussion with Grissom decided to continue the test. The next problem was a high oxygen flow indication which periodically triggered the master alarm. The men discussed this matter with environmental control system personnel, who believed the high flow resulted from movement of the crew. The matter was not really resolved. A third serious problem arose in communications. At first, faulty communications seemed to exist solely between Command Pilot Grissom and the control room. The crew made adjustments. Later, the difficulty extended to include communications between the operations and checkout building and the blockhouse at complex 34. This failure in communications forced a hold of the countdown at 5:40 p.m. By 6:31 the test conductors were about ready to pick up the count when ground instruments showed an unexplained rise in the oxygen flow into the spacesuits. One of the crew, presumably Grissom, moved slightly. Four seconds later, an astronaut, probably Chaffee, announced almost casually over the intercom: "Fire, I smell fire." Two seconds later, Astronaut White's voice was more insistent: "Fire in the cockpit." Procedures for emergency escape called for a minimum of 90 seconds. But in practice the crew had never accomplished the routines in the minimum time. Grissom had to lower White's headrest so White could reach above and behind his left shoulder to actuate a ratchet-type device that would release the first of series of latches. According to one source, White had actually made part of a full turn with the ratchet before he was overcome by smoke. Spacecraft technicians ran towards the sealed Apollo, but before they could reach it, the command module ruptured. Flame and thick black clouds of smoke billowed out, filling the room. Now a new danger arose. Many feared that the fire might set off the launch escape system atop Apollo. This, in turn, could ignite the entire service structure. Instinct told the men to get out while they could. Many did so, but others tried to rescue the astronauts. The intense heat and dense smoke drove one after another back, but finally they succeeded. Unfortunately, it was too late. The astronauts were dead. Firemen arrived within three minutes of the hatch opening, doctors soon thereafter. A medical board determined that the astronauts died of carbon monoxide asphyxia, with thermal burns as contributing causes. The board could not say how much of the burns came after the three had died. Fire had destroyed 70% of Grissom's spacesuit, 20% of White's and 15% of Chaffee's. Doctors treated 27 men for smoke inhalation. Two were hospitalized. After removal of the bodies, NASA impounded everything at launch complex 34. On 3 February, NASA Administrator Webb set up a review board to investigate the matter thoroughly. Engineers at the Manned Spacecraft Center duplicated conditions of the Apollo 204 without the crewmen in the capsule. They reconstructed events and the investigation on pad 34 showed that the fire started in or near one of the wire bundles to the left and just in front of Grissom's seat on the left side of the cabin -- a spot visible to Chaffee. The fire was probably invisible for about five or six seconds until Chaffee sounded the alarm. The exhaustive investigation of the fire and extensive reworking of the CMs postponed any manned launch until NASA officials cleared the CM for manned flight. Saturn 1B schedules were suspended for nearly a year, and the launch vehicle that finally bore the designation AS-204 carried a Lunar Module (LM) as the payload, not the Apollo CM. The missions of AS-201 and AS-202 with Apollo spacecraft aboard, unofficially known as Apollo 1 and Apollo 2 missions, carried only the aerodynamic nose cone. In the spring of 1967, NASA's Associate Administrator for Manned Space Flight, Dr. George E. Mueller, announced that the mission originally scheduled for Grissom, White and Chaffee would be known as Apollo 1, and that the first Saturn V launch, scheduled for November 1967, would be known as Apollo 4. The eventual launch of AS-204 became known as the Apollo 5 mission (no missions or flights were ever designated Apollo 2 and 3). From NASA SP-4204, Moonport, A History of Apollo Launch Facilities and Operations.
Apollo 1 Accident※ 녹음된 내용은 2001년 2월 15일 미국에서 방영되었던 FOX TV 방송의 일부분입니다Unfortunately Grissom's worse fears were soon realized. On January 27, 1967, two years before the first Moon landing, Grissom and his crew boarded the Apollo 1 capsule for a full skill simulation. The problems began almost immediately. First the capsule's communications systems failed. 불행하게도 그리슴의 불안감은 곧 현실로 나타납니다. 첫 달착륙 2년 전인, 1967년 1월 27일, 그리슴과 승무원들은 모의훈련을 위해 아폴로 1 사령선에 탑승합니다. 그리고 문제는 곧바로 발생했습니다. 맨 처음 사령선의 통신 장비가 이상을 일으켰습니다. COLTROLLER:"Do you copy?""들립니까?"COLTROLLER:"No. I didn't read you Chuck at all. I can't read you Chuck. You want to try the phone?""아니요. 전혀 안들렸어요. 들리지 않습니다. 전화로 해볼까요?"GRISSOM:"How are we going to get to the Moon when we can't talk between two buildings!""두 건물 사이에서도 얘기를 못하는데 달에는 어떻게 가겠습니까?"GRISSOM:"I can't hear a thing you're saying.""말하는 소리가 하나도 안들립니다."Suddenly the capsule burst into flames with the astronauts sealed inside. 갑자기 승무원들이 탄 사령선이 불길에 휩싸였습니다.산소는 반응성이 매우 높은 기체이기 때문에 비행사에게 순수 산소를 공급하는 것은 위험하다. 작은 불꽃만 튀어도 바로 폭발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주비행사들은 우주선이 출발하기 몇시간 전부터 100% 산소를 호흡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몸속에 녹아 있는 질소가 없어져야만 압력이 감소됐을 때 이것이 가스방울로 방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Apollo 1 모의훈련은 이런 실제 상황과 같은 조건 하에서 이루어졌고, 공급 계통에 문제가 생겨 산소가 과다하게 공급되면서 화재의 주요 원인이 된 것 같다.
Fox TV 와의 인터뷰에서 그리슴의 가족들은 그것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가 고의로 일으킨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자료로 나온 신문 기사를 볼 때, 아마도 사고 당시부터 주욱 그렇게 주장했던 것 같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나와있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NASA가 그 사건에 대해 자신들에게 충분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고 말한다. 사고 조사에서 발견된 것이 무엇이며, 조사에 어떤 기관이 개입되었는 지도 알 수 없었다고 말한다.
물론 우리는 객관적이기 힘든 피해자 가족들의 심정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통신 계통에 문제가 생긴 후 화재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뭔가 우리의 시선을 잡아끄는 듯하다. 만약 통신에 문제가 없었다면 비행사들이 살 수 있었을까?
사령선 내부는 밀폐된 공간이다. 만약 화재가 발생한 직후 신속한 조치를 취해서 산소 공급을 차단했다면 불은 곧 꺼졌을 수 있다. 그렇다면 승무원들 중 누군가가 해치를 열었을 것이고, 전원이 죽는 참사는 면했을 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은 어설픈 추측에 불과하다. 실제로 관제실에서 산소 공급을 차단할 수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순수 산소가 위험한 기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런 장치 정도는 있을 법도 하다.
(2) Thomas Ronald Baron (Safety Inspector)
보고서의 분량이 500페이지에 달했다면, 분명 그 내용은 평범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도 생각해야 한다. 만약 정말 아폴로 계획이 조작이었고, 그가 그 사실을 알았다면 그렇게 자신있게 발표할 수 있었을까? 그럴 수 없다. 그 정도 규모의 조작극은 국가 차원에서나 가능하다. 당연 정부의 고위층이 연관되어 있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는 그 비밀을 폭로하는 것의 대가로 자신의 목숨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따라서 아무런 대책없이(사실 대책이라는 게 있기도 힘들지만) 사실을 발표한다는 것은 너무나 무모하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얘기다)
그러나 그가 별로 높은 직책에 있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그는 아폴로 계획이 진짜라는 전제하에서 조사를 진행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달탐사 계획이 조작이었다면 당연히 많은 헛점들이 노출되었을 것이고, Baron은 달탐사가 조작이라는 데까지는 생각지 못한 채 그의 보고서를 완성했을 수 있다. 이 경우라면 그의 적은 NASA가 되는 셈이고, 그는 정부와 국민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보고서를 발표하는 데 그런 큰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다.
어쨌거나 1964년과 1967년 사이에 10명의 우주비행사들이 이상한(방송의 표현대로라면) 사고로 죽었고, 그 수는 NASA의 전체 우주비행사의 15% 였다고 한다.
아폴로 계획에 참여한 인원은 25만명, 간접적으로 동원된 사람들까지 합하면 75만명에 달한다. 음모이론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이 많은 사람들이 입을 맞춰서 사실을 은폐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음모이론가들이 주장하기로는, 아폴로 계획은 부분별로 세세하게 나눠져 있어서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리고 만약 조작이었다면 그 사실을 아는 소수의 사람들 중에 우주비행사는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13. AREA 51
# 왼쪽은 AREA 51의 경고 표지판들의 공통적인 내용들을 모아서 재구성해 본 것이다
달착륙이 지구의 스튜디오에서 연출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 AREA 51이 그 촬영장소라고 생각한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해주듯 러시아의 스파이 위성이 촬영한 사진들을 보면, AREA 51 안에는 영화 음향효과실을 닮은 격납고들 외에도, 달의 표면과 같이 메마르면서도 분화구들로 덮인 땅이 보인다고 한다.

위의 오른쪽 두 사진을 보면, 각각 중앙과 왼쪽 윗부분에 사각형 모양으로 배열된 4개의 건물이 있는데, Fox TV 방송에서는 이것이 영화 음향효과실을 닮았다고 한다. 음향효과실 건물이 어떤 모양인지는 모르지만, 인터넷에서 이미지를 검색해봤더니 대체로 둥그스름한 지붕을 가진 직사각형 모양의 단층 건물이었다. 오른쪽은 마찬가지로 이미지 검색의 결과로 나온 AREA 51의 사진인데, 아마도 그 4 개의 격납고를 찍은 것인 듯 하다.
※ 사진과 음성은 Fox TV 방송에서 따온 것이고, Apollo 11 임무 때의 것인듯 하다.
Even astronauts acknowledge the similarity of the terrain.
(심지어 우주비행사들조차도 지형의 유사함을 인정합니다)
"It has a stark beauty all its own. It's like much of the high desert of the United States."
(황량하지만 그 나름대로 아름답다. 미국의 high desert 지역들과 흡사하다.)
14. Capricorn One
1978년에 개봉된 영화 Capricorn One 은 미국 정부가 화성계획을 조작해서 전세계를 기만하려 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영화의 제작자인 Paul Lazarus는 Fox TV 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 저는 나사의 능력이었다면 인류최대의 사기극을 감행할수 있었다는것을 분명히 믿습니다.
달에 아무도 안보내고, 텔레비젼 세트장에서 재창조를 하는 것이지요.
그 당시에도 그런 일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정도 기술은 있었거든요."
15. 밀고자
음모 이론가들은 달탐사 계획에서 발견되는 헛점들이 실수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NASA 내부에 있는 '밀고자들'(whistle-blowers)이 일부러 만들어 낸 것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이 이른바 밀고자들이 달착륙의 조작에 동참했었지만, 어떤 이유에선가 진실을 알리기위해 일반인에게 공개될 사진 등의 자료에 Apollo 계획이 거짓이라는 단서들을 교묘하게 숨겨 놓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에 실제로 자신이 그 밀고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Bill Kaysing 인데, 이 사람은 Apollo 달착륙선 제작에 관계했던 Rocketdyne 사(社)의 technical writer 로 일했었다. 물론 그가 실제로 '밀고자'일 수도 있지만, 다른 이유로 인해 (예를 들면 유명해지고 싶거나 혹은 회사에 대해 쌓인 불만이 있어서) 일부러 거짓말을 하고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소위 밀고자들이 남겼을 수 있는 '단서'들은 앞에서 살펴본 것 말고도 다른 재미있는 것들이 있다.
16. 달탐사 계획의 명칭
NASA의 달탐사 계획의 명칭은 아폴로(apollo)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태양신의 이름이 아폴론, 로마식으로는 아폴로다. 어째서 달탐사 계획에 태양신의 이름을 사용한 것일까? 달의 여신인 아르테미스(artemis), 혹은 디아나(diana)라는 이름은 뭔가 적합하지 않았던 것일까?
17. 암스트롱의 대사
Neil A. Armstrong 은 달에 첫 발을 내딛고는 이런 말을 했다.
"That's one small step for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이것은 한 사람의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입니다)
어딘가 어색하다. 'man' 앞에 관사 'a' 가 빠졌기 때문이다.
아폴로 임무에 관한 어떤 책에서(책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저자는 암스트롱의 저 유명한 대사를 인용하면서, 그는 아폴로 11호의 commander로 선택됐을 때부터 그의 역사적인 대사를 고심했었는데 그 때는 분명 'a' 가 있었다고 언급한다. 그리고 지구로 귀환한 이후의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왜 'a' 가 빠졌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책에도 (Roger D. Launuis, 1998, Frontiers of Space Exploration) 암스트롱은 후에 자신의 대사를 "one small step for a man" 으로 정정했다고 나와있다.
그럼 이 유명한 대사를 한번 거꾸로 돌려서 들어보자. ![]()
[forward play][backward play]
흥미롭게도 중간 부분이 이렇게 들린다. No, man never step ...
만약 'a' 가 있었다면 never 로는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동일한 자료를 놓고 달착륙이 진짜임을 지지하는 사람이 있다. David John Oates라는 이름의 연구가는 reverse speech(일상적인 말을 거꾸로 돌린 것)에는 그 사람의 잠재의식이 투영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여러 유명 인사들의 말을 예로 들고 있으며, 그 중의 하나가 이 암스트롱의 대사다. 그는 저 위의 부분이 확실하게 "man will space walk.." 로 들린다고 말하면서, 아폴로 계획이 진짜인 증거라고 주장한다. 암스트롱이 실수로 'a' 를 빠트린 것은 그러한 잠재의식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
Reverse Speech 의 보다 자세한 내용 ![]()
18. 잇다른 성공
정확한 계산은 아니지만, 흔히 한 번의 Apollo 임무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여기에 동원된 기기들이 99.9999%의 정확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당시의 모든 기술력이 총동원되어야 했던 정교한 작업이었고, 또 여러 NASA 관계자들이 회고하듯이 달탐사 계획은 누구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던 모험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미국은 7번의 시도 중에 6번을 성공시켰고,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단 한명의 희생자도 내지 않았다. 물론 꼭 사람이 죽거나 실패를 해야 어려운 임무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럴 확률은 높지 않다.
Apollo 11부터 17까지 각 임무의 간격은 길게는 9개월, 짧게는 4개월이었고, 평균 약 6.8개월마다 한 번씩 로켓이 발사되었다. 7번이라는 적지 않은 발사 횟수를 고려할 때 각 임무에 사용된 기기는 이 평균 6.8개월의 기간 동안 제작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추측일 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 많은 부품들을 제작, 조립, 점검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으로서 그 기간은 그다지 충분해 보이지는 않는다.
19. 우주비행사들의 태도
달탐사 우주선에 탑승한다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다. 그것은 지구에 사는 모든 인류를 대표하는 일이며, 또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달 표면을 밟은 12명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달에 첫 발을 내딛은 최초의 인간으로 기억되는 닐 암스트롱은 귀환 이후 칩거 생활에 들어갔으며 일체의 인터뷰를 거부했다.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경험을 공식적으로 자신있게 시인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있다.
20. NASA 의 태도
지금까지 음모 이론은 여러 차례 신문, 잡지, 방송 등의 매체에 등장했고 책으로도 출반되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그런데 왜 NASA는 이런 모욕적일 수 있는 험담에 대해 아무런 대응이 없는걸까? NASA의 대변인이 "우리는 그런 데까지 신경 쓸만한 여유가 없다"라고 말한 것을 제외하고는, 우주비행사나 NASA 관련 직원 어느 누구도 여기에 대해서는 일체의 공식적인 언급을 거절해오고 있다.
실제로 달에 다녀왔다면, NASA가 이를 증명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일거라고 생각한다. 정말 그들이 달에 간 적이 없어서일까?
하지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Apollo 11 이 전세계적으로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지만 그 이후의 임무들은 그러지 못했듯이, 우주 사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일시적이다. 아마도 우리의 일상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거의 느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다가 우주 사업에는 상당한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많은 미국인들은 대신 그 돈을 사회 복지를 위한 공공 사업 등에 사용하기를 바란다.
따라서 NASA의 입장에서는 가능한 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지속시키는 것이 우주 사업을 계속하는 데에 유리할테고, 그런 의미에서 음모 이론에 대해 도망치는 듯한 연기를 하는 것은 관심을 끄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지 모른다.
21. 부분 조작설
음모이론가들이 제시하는 NASA의 자료들 중에는 조작된 것이 확실해보이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음모론에 반박하는 사람들은 부분 조작설을 내세운다. 즉 달에 착륙한 것은 실제였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해 거기에서 찍은 사진이나 영상 등 자료의 질이 너무나 낮았기 때문에 이런 증거 자료들만 조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달착륙 계획의 목적 중에 정치적 선전도 있었기 때문이다. 우주 경쟁은 장거리 핵 공격을 가능하게 하는 로켓 발사체의 개발에서 시작되었다. 무거운 핵탄두를 실어 나르는 탄도미사일은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에 대기권 밖을 지나가야하기 때문이다. 결국 당시의 우주 경쟁은 냉전 시대에 자본주의 국가의 우세함을 무력이 아닌 기술력으로 과시한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었다.
아무튼 이런 부분 조작설은 반박하기 곤란한 조작설의 증거에 대한 좋은 반론이 되고있다.
22. 그 밖의 다른 추측들
어떤 사람들은 미국이 실제 달에 착륙하긴 했지만 그들이 달에서 발견한 어떤 것을 은폐하기위해 사진 등의 자료나, 혹은 임무 전체를 조작했다고 주장한다. 그 '어떤 것'에 대한 추측은 다양하지만, 대체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모아지는 것은 "외계인의 흔적" 이나 "고대인의 유산" 등이다.
그래서 혹자는 미국 정부가 계속해서 은밀하게 외계인과 접촉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 예로 예전에 통신 상에 나돌던 UFO 관련 글이 있었다. 그 내용은 미국이 AREA 51 기지에서 외계인의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는 것과 이와 관련된 MJ-12라는 특수 기구에 대한 것이었다. 흥미로운 글이기는 하지만 출처가 불분명하고 사실 여부도 검증되지 않았기때문에 여기에 전문을 옮기지는 않겠지만, 그 중 흥미로운 내용 한 가지를 소개해 보겠다. (검증되지 않은 내용이므로 틀린 점이 있으면 지적바랍니다)
미 공군의 B-2 스텔스 폭격기는 제트분사구가 위로 30도 정도 기울어져 있는데, 그러한 상태로는 절대로 엔진출력을 낼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라고 한다. 결론은 스텔스는 반중력장치를 이용하는 항공기로서 분사구는 단지 방향전환용이라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걸프전에서 찍은 한 영상이라고 하는데, 물론 직접 확인은 하지 못했다. 아무튼 그 영상은 B-2기에서 발사한 미사일의 뒷부분을 역시 B-2에 달린 카메라로 찍은 것인데, 마치 비행기가 공중에 정지된 상태에서 찍은 것처럼 고정된 위치에서 고정된 앵글로 흔들림이 없이 찍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외에도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B-2기는 소음도 없을 뿐더러 수식이착륙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런 것들은 미국의 '로즈웰 UFO 사건'과 같은 또 다른 음모 이론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 같다.
자료 출처 : keiske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