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은 아름다운 곳이다
사람이니 뭐니가 좀 많긴 해도 말이다
예전엔 누군가의 선물을 사야 할 때 들르곤 했었다
옷이니 장신구니 하는 것들 말이다
거긴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거든
어떤 물건 딱 하나를 사기 위해 시외버스를 타고
명동에 다녀간적도 있었다. 하루를 공쳐가면서 말이다
웃기지 않아?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간단한데
그땐 인터넷이 없었거든
그곳이 아름다운 이유는 또 명동성당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성당에 다니는 것과는 다른 이유이다
나는 데모니 뭐니를 하다가 꿀리면 데모대 사람들이
그곳으로 숨는 것이 정말 흥미로왔다
이 시대에 성지가 존재한다는 증거가 아니냔 말이다
도망쳐온 데모대를 두둔하는 신부니 뭐니가 멋있었다
인간띠를 둘러 백골들을 막아서는것 말야
또 그곳이 아름다운 이유는 로얄호텔 때문이다
나는 가끔 날씨좋은 주말이나 우울한 저녁무렵 그 앞에 서있곤 했다
거기서 수와진에 안상수 노래를 들으면서 말야
가끔 모금하라고 갈구는게 좀 깨긴 했지만 말이다
게토레이를 마시고 담배를 두서너여남은대 정도 피우고 나면 MK가 나온다
MK는 정말이지 고양이같이 생겼다. 작고 눈이 크거든
그래서 가끔 화를 내면 무섭지만 보통은 귀여운 편이다
사실은 좀 많이 귀엽다. MK를 한 번 봤어야 하는데...
그렇지만 MK는 나보다 두 살이 많았다
한 번은 MK와 남산에 간 적이 있었다. 남산은 가깝거든
문득 남산 초입에 오를 무렵 불현듯 미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듯 손을 내밀며 손을 잡자고 했다
MK는 돌연 성난 암코양이로 돌변하더니 "뭔소리야" 라고 소릴 질렀다
정말 무서웠다. 그때 MK의 얼굴을 봤어야 하는데...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했냐 하면, 그냥 남산을 올라갔다
그땐 밤이 깊어갈 무렵이어서 솔직히 난 좀 무서웠다
남산공원엔 깡패니 뭐니가 많다고 들었거든
그렇지만 깡패를 직접 본적은 한번도 없다. 아무튼 무서웠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냐 하면 빨리 내려가자고 그랬다
그런데 남산을 내려올 무렵에 MK가 갑자기 나를 보더니
생긋 웃는 것이었다. 그 모습은 정말 황홀하리만치 귀여웠다
다른건 다 버리고라도 그때의 MK의 얼굴만은 봤어야 하는건데...
그러더니 MK는 내 손을 덥석 잡고는 내려가기 시작했다
세상에... 남산을 내려갈때까지 말야. MK랑 내 손에서 흐른 땀이
땅을 적실 지경이었다니까
아무튼 나는 그날 확실히 알았어. MK는 나를 동생으로만 생각한단걸
그렇지만 그날 서로의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릴 때,
내가 먼저 가버리려고 했더니 MK는 내게 버럭 화를 냈어
"너는 무슨 남자가 그러니!"
그렇다고 해서 내가 버스를 타지 않았느냐면 그런건 아냐
나는 그런 소릴 들었다고 해서 버스를 타지 않는건 웃기는 짓이라 생각했거든
버스를 타고 오면서 내내 생각했어. 왜 MK는 내게 그런 소릴 했을까 하고
마치 영화 <내 마음의 풍금>에서 전도연이 "왜 그랬을까?" 하고 생각하듯이...
거 왜 있잖아, 이병헌이 전도연을 살짝 꼬집은걸 갖고 온갖 억측을 하는거
아무튼 버스를 타고 오면서 내 마음은 온통 뒤죽박죽이었어
MK가 나를 남자로 생각한단건가? 아니면 그냥 의례적으로 그래야한단걸까?
언젠가는 MK와 로얄호텔 옆 골목에 있는 중국집에 갔었다
MK가 내게 특별히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겠다고 했었거든
나는 은근히 기대를 했지. MK는 잡채밥 두 개를 주문했어
문제는 내가 그 당시 양파를 전혀 먹지 못했다는거야
양파를 못먹다니, 웃기는 일이지. 지금은 물론 먹지만...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냐면 잡채 당면과 밥만 먹고 양파는 골라냈지
MK는 측은한 눈빛으로 "이건 양념이랑 같이 먹어야 하는데..."를 연발했어
나는 특별히 맛있는걸 먹지도 않으면서 MK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어
그 후로 우리는 중국집에 가질 않았던 것 같아
주제가 명동에서 이미 MK로 넘어가버렸군. 되돌릴수도 없네...
솔직히 말해 명동을 생각하면 MK가 떠오르는건 사실이야
물론 MK 말고도 명동에서 만난 사람은 많아
누군가와 처음 만나기도 하고 누군가를 떠나보내기도 했던 것 같아
하지만 명동을 생각하면 MK가 먼저 떠오르는건 어쩔 수 없지
언젠가 MK가 사진을 한 장 준적이 있었어. 내가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말야
그 사진은 잔디밭에 걸터앉은 MK의 독사진이었지
사실 그 사진은 MK의 매력이 채 30%도 살아있지 않은 사진이었어
사진을 찍은 사람을 때리고 싶을만큼 말이지
그래도 나는 그 사진을 아꼈다. 그래서 다이어리에 넣어뒀지
그런데 내가 개를 한 마리 키웠는데, 이름은 잘 기억이 안난다
어느날 그 녀석이 내가 없는새 다이어리를 다 물어뜯어버렸어
그러니 그 사진이 어떻게 됐겠어. 당연히 망가져 버린거지
그날 그 강아지는 나한테 무지막지하게 비참할만큼 많이 맞았다
내가 개를 그렇게 때린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MK와는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겨버렸어
나는 아마도 우리는 연인이니 뭐니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그래서 직장이니 뭐니를 옮기고 차츰 연락이 끊어져버렸지
내가 그 도시를 떠나기도 했고 말야
그런데 어느날 MK가 내가 사는 도시에 나타났어. 여름휴가라더군
MK는 내 옥탑방에 오자마자 까만색 비닐봉지에서 양파니 당근이니를 꺼내더니
카레를 만들기 시작했어. 마치 카레를 만들려고 온 사람처럼 정성들여서 말야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카레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맛있게 먹어줬지.
카레를 만들려고 200Km를 달려온 사람에게 그건 예의거든
MK와 나는 바닷가에 가서 수영도 하고 홍합도 따고 그랬던 것 같아
밤이 되어도 MK는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어
그래서 MK에게 방을 내주고 나는 옥상에 스티로폴을 깔고 잠을 잤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카레를 해주려고 200Km를 달려온 사람에 대한 예의지
더럽게 모기가 많더군. 죽는줄 알았다니까...
새벽에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살짜쿵 방으로 들어갔지
자는 MK의 모습은 정말 귀여웠어. 그걸 봤어야 하는건데...
나는 자꾸 기분이 이상해져서 MK를 만지고 싶어졌어. 내가 미쳤지...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냐면 MK를 깨워서 바다를 보러 가자고 했어
전날 하루종일 바닷가에서 놀고나서 지쳐서 잠들었는데,
새벽부터 자는 사람 깨워 또 바닷가엘 가자고 하다니 미친놈아냐?
아무튼 MK와 나는 바다니 뭐니를 보고 돌아왔지
MK가 돌아가던 날, MK는 내게 뭔가 하고픈 말이 있는 것 같았어
그래서 옥상에 나란히 앉아 나는 MK와 얘기니 뭐니를 하려고 했지
MK는 힘든 것 같았어. 그래서 돗자리에 그냥 누워서 눈을 감아버리더군
순간 나는 MK를 안고 싶어졌어. 그래서 옆에 나란히 누워 팔을 둘렀지
MK의 가슴이니 뭐니가 팔에 닿았지만 MK는 별 내색 않았어
그래서 내가 무얼 했냐하면 MK의 이마에 입술을 댔어
아...나를 미친놈이라고 해도 좋지만, 그때 나는 문득 깨달았어
그동안 MK에게 고백하지 않은게 죽도록 후회스러웠던거야
그때 MK가 말했어.
"너 나 좋아하니?"
"응"
MK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어
"나도 널 좋아해. 하지만 사랑은 아닌 것 같아."
나는 문득 거절을 당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 왠지 모를 낭패감 말야
MK는 계속 눈을 감은 상태로 말했어
"너를 안보고도 살아지니까...아마 사랑은 아닌 것 같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뭐랄까, 답답함 같은게 느껴졌지
그날 고속버스터미널에서 MK를 배웅하면서, 왠지 다시는 MK를
볼 수 없을 것같은 기분이 들더군. 그래서 나는 말할 수 없이 우울했어
MK의 얼굴을 똑바로 보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나는 자꾸 먼곳만 쳐다봤어
MK가 버스에 오르고 창가에 앉은 MK는 자꾸 날더라 가라고 하더군
그래도 나는 꿋꿋이 서서 MK가 작은 손을 흔드는걸 쳐다봤어
MK를 보내고 집에 돌아왔는데,
MK가 앉았던 돗자리며 MK가 깎은 참외껍질이며
MK가 한 솥 끓여놓은 노오란 카레가 여기저기 널려 있는거야
그래서 그날은 많이 울었다. 자꾸만 눈물이 나더군...
내가 하려는 얘기는 여기까지야. 그 후론 다시는 MK를 보지 못했지.
명동을 떠올리면 가끔 MK를 생각하곤 해. 저 꽉 막힌 인파를 뚫고
귀연 미소를 지으며 내게로 달려오곤 했던 그 모습 말이야
이제 MK는 이 곳에 없지만 그래도 명동은 여전히 아름다운 것 같아
사랑이니 뭐니도 아닌듯한 그 감정, 대체 뭐였을까?
* 이런 회상을 글로 적는다는 것이 그리 잘하는 짓이 아니란건 안다.
아내가 그저 남편의 습작 정도로만 봐주었으면 좋겠다. 사랑해 현주야...
** 내일의 [오늘의 talk]을 기대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