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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로맨스 9편

운비 |2007.04.12 00:25
조회 1,190 |추천 0

간단한 미경의 소개를 끝내고 미경은 앞으로 업무를 볼 자리에 가 앉았다. 다소 어색한 분위기 때문에 적응이 잘 되지 않지만 나름대로 미경은 잘 보이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사무실 사람들은 다 좋은 사람들처럼 보였다. 친절하게 대해주고 일도 잘 가르쳐주었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은 지영과 같은 사무실에서 짜증나게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게 지금 미경은 너무 좋았다. 그럼 도대체 지영은 어느 부서에서 일하지.. 이런 의문도 들었다. 일은 하기는 할까? 그런 생각을 하니 웃음부터 나왔다.

 

과장님: 자 퇴근들합시다. 내일은 다들 시간 비워두세요 신입사원 환영식할겁니다.

 

미영은 순간 아무런 행동도 못했다.  내일은 안된다고 중요한 일이 있다고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분위기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좋은척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
미경은 눈치를 보면 주섬주섬 퇴근 준비를 했다.  사무실을 빠져나오니까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쉿고 있었다. 그만큼 긴장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김미경(핸드폰을 받으며) 여보세요.

최승민( 회사 앞에서) 친구야 놀자. 빨리 나와라

김미경: 지금 어디야.

최승민: 널 멀리서 보고 있지. 곧바로 직진해서 나오면 날 볼 수 있어.

김미경: 회사 앞이야.

최승민: 글쎄.. 나오면 알 수 있겠지. 천천히 걸어오지 말고 빨리 뛰어와. 빨리 빨리

 

승민의 말대로 뛰기 시작했다. 핸드폰을 든 채로.. 회사 건물 밖으로 나온 미경은 자신을 보고 있는 승민과 정면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잠시 두 사람은 똑같은 포즈로 서로를 바라보고 그렇게 서 있었다.  이 거리에 두 사람만이 존재하듯 그렇게 정지된 시간 속에 서 있었다.


최승민: 첫 출근 소감은?

김미경; 긴장되고, 떨리고.. 그랬어.

최승민: 김미경이 긴장하고 떨렸어. 그런 모습 언제 한번보고 싶다.

 

미경이 먼저 핸드폰을 내리고 승민에게 다가갔다.

 

김미경: 어쩐일이야.

최승민: 꼭 무슨일이 있어야 널 볼 수 있는거야. 그냥 왔어.

김미경; 그럼 나와 잠시 어디 같이 갈래.

최승민: 좋아.

 

솔직히 미경도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다. 천천히 이렇게 걷다보면 생각이 날거라고 생각했다. 

 

최승민: 어디로 가고 싶어.

김미경; 어디로 가고 싶은게 아니라,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어.

 

학교 다닐때는 버스비가 아까워 4km를 늘 걸어다녔다.  따로 운동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만큼 많이 걸어다녔다.  그게 생활이었다. 승민이는 알까?  아마 승민이는 모를것이다. 변화된 모습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승민이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최승민: 태욱이와는 왜 친하게 지냈어.

김미경: 무슨 말이야.

최승민: 다른 친구들과는 어울리지 않아도 입학식때부터 넌 태욱이와는 친구로 지냈잖아. 태욱이는 너한테 특별한 존재였니?

 

미경은 웃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나와 태욱이가 친한 친구사이로 보였나보다. 하긴 고등학교 입학하고부터 늘 태욱하고는 잘 지냈으니까? 그렇게 오해 받을 수도 있겠다.

 

김미경: 태욱이 집안은 의사, 변호사, 사업가, 국회의원 그런 사람들만 있어. 나랑 동등한 입장에 있다고 생각했어. 한마디로 말해서 같은 레벨이라고 할까? 운동도 잘하고, 유머감각도 있고, 공부도 썩잘하고, 얼굴도 잘생긴편이고, 또래 여자한테도 인기가 많았고.. 그래서 처음부터 내가 찜했어. 그 정도면 친구로 지내도 괜찮을거라고 생각했어. 단지 그건 뿐이였어.

최승민: 그럼 난 뭐였니? 너한테 난 그때 뭐였니?

김미경: 좀 부끄러운 얘기지만.. 넌 그때 나한테 반에서 1등이였어. 전교 1등 반에서도  1등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였어.

 

미경은 과거를 회상했다. 그때로 돌아가 승민이와 못다한 얘기를 시작할려고 한다.
 

승민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미경은 다른 친구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학교에서 미경이 왕따는 더욱더 아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기 스스로 퍼펙트하다고 생각한 미경은 다른 친구들과 거리를 두었다.  그런 미경에게 승민은 그저 별볼일 없는 이 학교 학생 중에 한명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지영이 미경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지영은 끊임없이 미경의 자존심에 상처를 내주고 싶어했다. 그걸 인생의 목표로 삼았는지 미경을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었다. 그러나 미경도 그렇게 호락호락할 성격은 죽어도 아니어서 늘 지영만 당했다.

 

최지영: 이번 중간고사 성적 나왔는데 넌 10등 했더라. 이 학교에서 제일 잘난척 잘하는 명품 공주는 어찌 10등을 했을까? 난 7등 했는데... 성적을 보면 닭대가리인데 예능쪽은 그러고보니 타고났나봐. 과외를 해도 성적은 나보다 못한걸보면 머리에 문제가 많나봐.

 

미경은 한순간 저런 거지같은 애한테 이런 모욕적인 말을 듣고 있다는 자체가 참을 수 없었다. 자존심 강한 미경은 차마 내색은 하지 못하고  침착하게 지영을 바라보았다.

 

김미경: 내가 늘 일등하면 너같은 애가 세상살기 더 힘들어지잖아. 여기서 더 완벽하면  재미없잖아. 너는 세상이 참 재미있겠다. 그 얼굴로 성적이라도 나보다 좋아야지 안그래.

 

성적때문에 지영이한테 이런 말을 듣게 될줄 상상도 못했다.  이런 일로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될거라고 생각하니 미칠 것 같았다. 이런 더러운 느낌 처음이다. 참을 수 없을정도로...


최지영: 어~~그러셔. 그럼 이번 기말고사에 1등한번해봐. 날 위해서 말이야.

김미경: 내가 1등하면 한달동안 내 도시락 싸와. 그래야 공평할 것 같은데 말이야.

최지영: 그래 어디 한번 1등해봐. 과연 그 머리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말이야. 난 벌써부터 재미있어지거든. 너도 그랬으면 좋겠다.

 

비웃는 듯한 지영의 얼굴이 너무 거슬린다. 일단 큰 소리는  쳤지만 이 성적도 죽을 힘을 다해 유지하고 있었다.  자신도 과연 잘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집에서 과외를 받지만 더이상 성적은 올라가지 않는데 무슨수로 1등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예능쪽으로 빠졌는데.. 1등은 나로써 무리한 요구야. 그걸 알면서도... 앞으로 어떻게 할거야.
그때 미경의 눈에 들어온 사람이 승민이였다. 그래 최승민.. 미경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한번도 남한테 부탁이라는 걸 해본적이 없는 미경은 승민이한테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할지 난감했다.
미경은  승용차를 타고 등하교를 했다.    그날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승용차를 타를 가는데 승민이가 혼자서 걸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김미경: 아저씨 잠시 차세워봐.

 

승민의 옆에 차를 살짝 세웠다.  그리고 창문을 살짝 내린 미경은 땅만 열심히 보고 걸아가는 승민의 이름을 불렀다.

 

김미경; 승민아

 

자신을 부르고 있는 미경을 보고 승민은 몹시 당황스러워 했다.

 

김미경: 타.

최승민: 괜찮아.

 

당황한 승민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을 했고, 미경은 슬슬 짜증나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미경은 타라고 말했고, 승민은 할수 없이 차에 타게 되었다.

 

김미경: 학원에 가는 길이니?

최승민: 아니.. 집으로 가는 길이야.

김미경: 그럼 집에서 과외하니?

최승민: 아니 혼자서 공부해.

 

학원도 안다니고.. 과외도 안 받는다고.. 그런데 학교에서 1등만해. 괴물아니야... 하긴 공부라도 잘 해야지.. 너는 공부만 해라. 박사나 뭐 그런게 너한테 딱이겠다.

 

최승민: 근데 그건 왜 물어.

김미경: 아무것도 아니야.

 

차안에 어색한 공기가 흐르고.. 이런 범생이한테 부탁을 해야할 입장할 이런 상황이  더욱더 미경을 화나게 만들었다.  그래 부탁은 내가 왜해. 혼자서 공부하는 것 보다 내가 같이 해주면 지도 영광이지. 학교에서 친구도 없는데.. 내가 잠시 해주면 되잖아. 지도 손해 볼 것은 없겠지. 그래 이건 이용하는게 아니야. 내가 보답하면 되잖아. 선물 같은 걸로.. 그럼 좋아하겠지.

 

김미경: 우리집에 갈래.

 

승민은 지독하게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기말고사 시험에서 아무리 열나게 공부해도 승민이가 우리반에 있는 이상 난 일등은 하지 못한다. 전교 1등을 내가 무슨 수로 이길 수 있단 말인가? 최지영 이번에는 아주 교활했어. 내가 인정하지... 머리 쓰느라 애쓴다. 최지영...

 

김미경; 싫음 말구.

최승민: 아니야 가고 싶어.

 

과정이 좋은 의도였든 나쁜 의도였든 승민은 처음으로 우리집에 오는 손님이었다.  제일 반가워하는 사람은 엄마였다. 한번도 내가 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온적이 없어 엄마는 승민이를 무슨 왕 대접하듯이 대해주었다. 좋아라하는 엄마를 보면 자신도 같이 좋아라 해야하는지 알수가 없다. 솔직히 별로 좋지는 않다.  엄마는 나와 정반대의 성격이다. 엄마는 자상하고 남한테 친절하고 따뜻한 분이셨다. 그럼 난 누굴 닮았지.. 아빠도 좋은 분이신데..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장학사업도 하셨다.  아빠 덕분으로 공부하는 언니 오빠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뭐 자세히는 모르지만.. 별 관심도 없다는게 맞을 것 같다.

 

엄마: 어쩜 남자답게 잘 생겼네. 미경이와는 같은 반 친구야. 앞으로 자주 놀러오고 그래.

최승민: 네 알겠습니다.

 

승민이가 잘 생겼다고.. 엄마 눈에는 안 예쁘고 안 잘 생긴 사람이 있을까?  엄마 앞에서는 덜 긴장하는것 같다. 내가 무서운가?

 

김미경: 이층으로 가자. 아줌마 치즈케익이랑 오렌지 쥬스 이층 손님방으로 갖다줘.

엄마: 엄마는 예쁜 내딸이 일하는 사람이라도 예의 바르게 말을 써줬으면 좋겠구나. 반말하지마 그럼 상대방은 마음으로 무시할거야. 엄나는 내 딸이 무시당하는게 싫어.

김미경: 노력할게요.

 

그러나 한번도 미경은 그런 노력을 한적이 없다. 언제나 말뿐..... 돈 받고 일하는 사람한테 왜 자신이 예의를 가져야하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김미경: 가자.

 

승민은 계속 집안을 두리번 거리면 얼어 있었다.

 

최승민; 니 방이니?

김미경: 아니 손님방이야.

 

당근 내방이 아니지.. 널 내 방에 있게 하고 싶은 생각은  진짜 완전 없거든... 여기까지 올 수 있는것도 영광이라고 생각해.
사실 이런 말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미경은 그때 승민의 감정을 완전 무시하고 있었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게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 이젠 알지만 그땐 미경은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오만에서 오는 자만심이라고 할까?

 

김미경; 비법이 뭐니? 공부 잘하는 노하우.

 

승민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그렇게 또 다시 어색한 분위가 둘 사이에 흘렀다.

 

최승민: 내가 도와줄까? 난 시간 괜찮은데...

김미경: 니가 원한다면.. 난 상관없어.

최승민: 그래 알았어.

 

승민이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김미경: 그럼 수업 끝나고 여기서 공부하자. 2시간씩 어때.. 나랑 같이 아빠차 타고 오면 돼. 괜찮지.

 

승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승민과 나의 관계는 이어지게 되었다. 지영과의 대결에서 이기고 싶었다. 승민의 감정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채 그저 지영과의 이번 싸움에서 이기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학교에서는 승민을 아는척도 말도 걸지 않았다. 그러나 집에서는 전혀 아니다. 늘 붙어있다보니 어느 정도 승민이를 알게 되었다. 승민이 얼마나 좋은 친구인지 조금씩 조금씩 알게 되었다.
승민은 한번도 묻지 않았다. 왜 내가 공부를 같이 하자고 했는지에 대해서도. .학교에서는 왜 말을 하지 않는지 전혀 묻지 않았다. 어쩔때는 내가 말해주고 싶었다. 왜 묻지 않는지 내가 따지고 싶을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말할 수 없었다. 한번도 내가 한 행동에 대해 변명을 하거나 설명한적이 없었다. 언제나 내 스스로 해결했다. 부모님한테 애교 많은 딸이거나 말을 많이 하는 딸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언제나 내 스스로 모든 걸 결정하는 독립적인 아이로 자란 것 같다. 그렇다고 속상하게 해 드린 적도 없는 것 같다. 고집이 센 딸이긴하지만...

 

김미경: 넌 뭐가 되고 싶어.

 

갑자기 튀어나온 말이었다.

 

최승민; 의사가 되고 싶어. 아주 따뜻한 의사.우리  부모님도 의사셔.

김미경: 의사 집안이니.

최승민: 그렇다고 볼 수 있어.

김미경: 그래서 너도 의사하는거야.

최승민:아니.. 내가 하고 싶기때문에 하는거야. 부모님이 의사라도 내가 싫은데 억지로 한다면 환자들한테 너무 미안하잖아.

 

과연 승민이 다운 대답이다. 흰 가운을 입은 니 모습이 정말 상상이 간다. 아마 환자들을 끔직하게 생각하는 의사가 될거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김미경: 내가 만약 이번 기말고사에 일등하지 말라고하면 안할거야.

 

승민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석고상처럼 가만히 날 쳐다보고만 있었다.

 

김미경: 못 들은 얘기로 해줘.

 

이런.. 곧 후회했다.  해도해도 너무 뻔뻔한 짓이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거야...

 

김미경: 너 안경 벗고 다녀.

 

이런 말 꼭 해주고 싶었다. 승민은 그 검은 안경으로 얼굴은 반쯤 가리고 다녔다. 늘 그 안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까이 보니 좀 괜찮은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말 고사 일주일 정도 남겨놓고 승민이 나한테 노트 한권을 주었다. 

 

최승민: 이것만 보면 기말고사에 일등할 수있을거야.


그걸 받았다. 정말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손이 저절로 갔다.  그때 처음으로 승민이한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승민이한테 사실대로 말할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차마 말할 수가 없다. 미경은 그저 그런 감정들을 애써 모르는척했다.

그리고 기말고사에 난 1등을 했다. 

 

김미경: 내일부터 내 도시락 준비해.

 

지영은 분해서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교실을 나갔다.  승민이 쪽으로 고개를 돌렀다.  노트도 돌러주고 싶고, 승민한테 무슨 말이라도 해야할 것 같아지만 자꾸 미루고 있는 나를 보았다.  왜 자꾸 승민를 피하게 되는지 모르지만 그냥 모르는 척 그냥 넘어가고 싶은 마음뿐였다.

다음날 지영이 싼 도시락을 반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돌러주었다.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던졌다고 해야할 것 같다. 그냥 나 자신한테 화가 났다. 그걸 지영이한테 화풀이하고 있었다.


김미경:혹시 이거 집에서 늘 먹던 음식아니지. 도저히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 할 수 없겠거든. 한달동안 한 약속 지키지 않아도돼. 너희집 음식 못먹겠다.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다. 지영은 울면서 나갔다.  그 모습을 보는데.. 내 안에 악마가 웃고 있는 듯한 착각도 들었다. 원래 좋은 성격은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바닥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금 내 모습은 절대로 해서는 안될 그런 행동이었다.  이건 최악이다. 왜 그랬을까?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점심시간. 미경은 승민이를 찾았다.   그냥 뭐라고 말해야 할 것 같아서.. 이대로 있다가는 안될 것 같았다.


김미경: 왜 1등 안했어.

 

혼자 벤치에 앉아 있는 승민 옆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최승민: 실력이 부족했어.

 

거짓말. 누가 들어도 다 아는 거짓말이다.

 

김미경: 이젠 만날 일 없을거야. 우리 집에 더이상 안와도 돼.

최승민: 난 네가 날 친구로 생각하고 있을거라고 생각했어. 우리 친구 아니야.

김미경: 친구 아니야. 그 동안 공부 같이한 사이라고 해두자.

최승민: 날 이용했니?

 

순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이 한 행동이 얼마나 부끄러운 행동인지 뼈저리게 알았기 때문에...

 

김미경: 마음대로 생각해.

 

미경은 그 말밖에 하지 못했다. 그 말에 충격 받은 승민은 굳은 얼굴로 돌아서면 멀어져 갔다.  미경은 승민을 부르고 싶었지만 차마 부르지 못했다.  두 손을 꼭 잡고 멀어져 가는 승민이만 바라보았다.
그게 나와 승민이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일주일 뒤 부모님의 사고로 미경은 학교에 나가지 않게 되었고, 바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미안하다는 말 그 한마디 고맙다라는 말 그 말이 정말 하고 싶었다. 10년이 지나고 이제서야 하게 되었다.

미경은 진심을 담아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다시는 누구의 마음에 상처주는 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바람이 시원해서 그런지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그 동안 못했던 밀린 숙제를 끝낸 기분이다.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아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 가시였는데 지금은 그 가시가 사라진 느낌이다. 

 

김미경: 이제부터 다리 뻗고 잘 수 있겠다.

 

승민은 그저 웃을뿐이다.  나무 같은 친구다. 나무 같은 남자다. 나무같은 마음이다.

 

최승민: 다시는 아프게하지마라
김미경; 안그래. 지금은 다 나에게 소중한 것들뿐이야.

 

한 사람만 빼고... 그 못된.. 나쁜.. 바퀴벌레 같은 사장은 빼고... 서재준.  미경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날 미경은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숙제를 다하니 홀가분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과거로부터 또 한발작 멀어진 기분이다.

 

최승민: 내일 회사 갈거니?
김미경: 당근.. 내가 아프지 않는한.. 내가 미친척 여행가지 않는한.
최승민: 그럼 열쇠줘.


당황스러웠다.  미경은 황당한 표정으로 어떻게해야할지 몰라 가방만 무의식적으로 꼭 잡았다. 

 

최승민: 열쇠 달라니까?

김미경: 왜? 우리집 열쇠는 뭐하게..

 

거절해야하는데 뭐라고 거절해야할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라서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잘 몰랐다. 뜬구름 없이 여자혼자 사는 집열쇠는 왜 필요한건지 승민의 속이 의심스러워졌다.

 

최승민: 훔쳐갈 물건이라도 있어. 금덩어리라도 숨겨났어.

김미경: 그런 물건은 없지만... 그래도 니집 놔두고 우리집 열쇠는 니가 왜 필요해. 말이 안되잖아.

최승민: 필요해. 가끔 술먹고 오고 싶을때... 그때 필요해. 줄거야 말거야.

김미경: 술먹고 남에 집은 왜 오냐.

 

할 수 없이 미경은 비상 열쇠를 승민에게 건네주었다.

 

최승민: 오버하지마. 니 말대로 좋은 우리집 놔두고 내방보다 작은 이런 집에 살기 싫거든.

김미경: 나한테 지금 작업거니?

최승민: 작업은 아무한테나하냐.  그 동안 내가 혹시나 상처받을까봐 말안했는데.. 너 10년동안 많이 늙었어.  여자 나이 28살이면 노처녀 소리 들을 나이다. 신경 좀써라. 얼굴이 그게 뭐냐.

김미경: 야 최승민

최승민: 거울 좀 보고사세요. 예전에 잘나가는 김미경은 없고, 주름투성인 아줌마만 남았네요. 누가 데리고 갈까? 대게 궁금하네.

 

미운 말만하고는 미경한테 혹시나 맞을까봐 승민은 도망갔다. 도망가면서도 손흔드는 일만은 잊지 않았다.  승민때문에 자꾸자꾸 웃게 된다.


다음날 회사에서 미경은 안 좋은 소식을 들었다. 기획팀에서 한 사람 사장실로 가야하는데 그 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잡 일을 해야할 사람이  필요하다면서 지원요청을 했단다. 그런데 더 기막히 일은 왜 내가 가야하냐고 했던니 부장님이 하시는 말 ' 그저 심부름이나 하는 일에 고급인력이 갈 필요는 없지' 그럼 난 고급인력도 아니고 잡일에 필요한 사람이니 가도 된다는 말이 된다. 사람 어떻게 보고.. 이래봐도 나도 고급인력이라구... 웃기시네.
잡일도 괜찮고 다 좋은데 왜 하필 그 바퀴벌레 재수없는 사장하고 하루종일 일을해야하냐구. 난 그게 싫을뿐이다.
내일 난 단기간 회사 다닌 사원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이유는 바퀴벌레 사장과 싸워 김미경사원 짤리다. 명예로운 퇴직은 아니군. 지랄...
똑똑. 미경은 심호흡을 한번 크게하고는 억지 미소를 짓고 사장실에 당당하게 들어갔다. 뭐 당당하게는 좀 거창하고 사뿐이 들어갔다.

 

서재준: 테이블 위에 있는 서류 날짜별로 정리해.

 

아무리 사장이지만 반말이나 찍찍 날리는 사장 정말 아니라고본다.  시대가 변하는 만큼 사장들도 변해야된다고 본다.

 

서재준: 녹차 좀 주세요.

 

인터폰에서 울리는 비서의 낮은 울림.
사람 차별하나.. 비서한테는 '녹차 좀 주세요.' 하고 상냥하게 말하면서 나한테는 왜 반말이냐구. 다 같은 직원인데.. 치사하게.

 

서재준: 불만있어.

김미경: 네.. 아니요.. 있어요. 이런 일은 비서가 해도 되는데 굳이 왜 다른 사람을 시키나요.

서재준: 내 마음이야. 늦게까지 일할거야. 약속있으면 지금 취소해.

김미경: 환영해 있는데.. 취소가 안될것 같은데요.

서재준: 자동 취소될거야.

 

어련 하겠냐. 바퀴벌레.. 해충... 요충... 십이장충.. 히히히. 비록 책상위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그에게 말하지 못했지만 속으로라도 말하니 한결 기분은 좋았다.

 

서재준: 바보 같이 웃지 말고, 일이나 해.

 

허걱... 미소까지 사라지게 하는 인간.  저 사람만의 특기인것 같다. 누가 데리고 갈까. 애인은 있을까? 있으면 한쌍의 바퀴벌레일거다. 최지영하고 말이다. 지영이 좋아하는 걸 보니 애인은 없는 것 같고... 그럼 싱글이라는 말인데.. 참 묘한 사람이다.
몇시간 같이 일을하다보니 그는 프로였다.  일처리하는 능력은 남들보다 탁월했다. 그건 인정한다.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는지 알것같다. 
젊은 나이에 사장까지 올라오기까지는 한 사람의 능력이 없다면 힘든 자리이다.  그것도 아무런 배경이 없이 말이다. 회장의 아들도 아닌데 이런 자리까지 왔을때에는 그 만큼 뭔가가 있기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분명 그는 여기까지 올 충분한 자질과 능력이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한다.
정신 없이 일에 빠지다보니 벌써 시계가 6시를 말하고 있었다.  한 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사람 피말리게 일을 시키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서재준: 짬뽕하나 시켜놓고 퇴근하세요.

 

짬뽕이라는 단어에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나는 퇴근하라는 말인가?  분명 한그릇만 시켰다. 그럼 나는 퇴근해도 좋다는 말인 것 같다.

 

김미경: 저는 이만 갈까요?

 

서류에서 눈도 떼지 않고 사람 면전에 있는데도 쳐다볼 생각도 없는지 그저 한다는 소리가 '컵라면이나 여기서 먹으랐다'  기가막혀서.. 니 입은 입이고 내 입은 주둥이냐. 성질나서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짬뽕이 얼마나한다고 시킬때 같이 시키지. 치사를 떨어라. 바퀴벌레만도 못한 인간아. 미경은 쇼파에 앉아 서류를 정리하는척 했다.

 

서재준: 오늘은 그만 가봐.  부모님 기일이지.

 

그의 한마디에 미경은 정리하던 서류를 놓쳤다. 

 

서재준: 서류는 거기에 놔두고가. 내일도 여기로 출근해.

김미경: 어떻게 아세요?

서재준: 개인적인 일이야

 

아직도 책상위에 놓여져 있는 서류에만 신경쓰는 그에게 그 개인적인 일이 뭐냐고 묻고 싶었다. 정말 간절히 묻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물어도 그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를 잘 안다. 나와 닮아서 개인적인 일이라면 절대로 남한테 말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에 대한 얘기를 절대로 남한테 말하지 않을 것이다.  아예 무시하는 쪽을 택하지 .. 그걸  알기에 미경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사막한 그의 사무실를 나왔다. 그와 닮은 인테리어로 꾸민 사무실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 미경은 동네에 있는 작은 마트를 찾았다. 지금은 시간을 아끼는게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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