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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로맨스 11편

운비 |2007.04.17 23:53
조회 1,439 |추천 0

그는 한통의 전화를 받고 급히 나갔다. 어두운 표정으로.. 아니 거의 심각한 수준이라고 할까? 그렇게 아무말 없이 나갔다. 사람 무지 궁금하게 해놓고... 사람 무지 걱정하게 해놓고 나가버렸다.


김미경: 내가 무슨상관이야.  나를 아예 개무시하는게 그런 나쁜놈을 내가 왜 걱정해.

 

밥이라도 같이 먹자고하지 말든지.. 미경은 알 수 없는 감정으로 인해 화가 났다. 괜히 그가 신경 쓰였다.

 

김미경: 내가 알바 아니야. 일이나하자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미경은 서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 회사에 대한 모든 중요한 핵심적인 내용들이 담긴 문서들만 모아 놓은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런 내용들만 담긴 서류들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시키는 일이니까 하긴 하지만 그는 별로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서류를 정리해 놓으라고 한다. 누굴 위해서인지는 모르지만 불필요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는 필요없는 내용인지 모르지만 서류를 정리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공부하는 중이다.  나에게는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 이 회사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미경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읽었다. 그리고 기억했다. 어느새 퇴근 시간이 다 되었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정도다.  그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별문제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미경은 정리한 서류를 서재준 책상위에 얌전하게 놓아 두었다. 뿌듯한 기분으로 돌아서는 미경의 눈에 거슬리는 종이가 한장 보였다.  책상 한쪽 모서리에 삐져나온 종이가 이상하게 눈에 거슬린 미경은 바로 놓기 위해 그 종이를 손으로 뺐다.
그런데 별거 아닐거라고 생각한 그 종이에 적힌 내용은 충분히 미경을 충격스럽게 할 내용들이었다.  처음부터 아버지가 남긴 주식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럼 그 돈은... 다시 읽고 또 읽어 보아도 믿어지지 않았다.
무엇때문에 그가 이런 터무니 없는 짓을 했은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말이 안되는 일이다.  손이 떨리고 심장이 쿵쾅거려서 도저히 서 있을 수도 없을 정도였다. 당장 그에게 가서 따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때 그의 극적인  등장에 쓰러질뻔했다.  거짓말처럼 그가 내 눈앞에 피곤한 얼굴로 서있었다. 문도 닫지 않고, 그렇게 문 앞에 서 있었다.  손에 들고 있던 종이가 스르르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보고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미경에게 시선을 주었다. 당황하는 그의 모습을 비웃어주고 싶었다. 아무말도 하지 않은 그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김미경: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가요?

서재준: 처음부터 주식 같은 것은 없었어.

김미경: 그럼 그 돈은요?

서재준: 내가 당신 아버지한테 진 빚이야. 이 회사가 준 장학금 받고 학교 다녔어. 그래서 돕고 싶었어. 내가 받은 것처럼 나도 돕고 싶었어. 아무 이유없이 돈을 주면 자존심 상해할까봐 조금 연기를 했을뿐이야

김미경: 날 도둑으로 신고할 만큼 절실하게 그 돈을 주고 싶어했군요.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감사해야겠네요. 아버지 돈으로 공부한 사람이 이 회사 사장이 되어 나한테 아버지와 똑같이 동정했다구 좋아라해야하는군요. 그럼 이 회사 들어온것도  당신때문인가요?

 

그는 아무런 말도하지 않았다. 긍정도 부정도.. 그게 사람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 동안 이 사람하테서 동정이나 받고 있었던 것이다.  불쌍한 거짓 취급받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분하고 화가나서 미치겠다. 그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고, 아버지 회사에 들어와서 좋아했는데.. 이젠 이 회사는 나와 상관없게 되어버렸다.  처음부터 상관없었지만... 그걸 이젠 알았다. 이젠 이 회사는 아버지 회사가 아니라는 것을 눈물겹게 깨달게 되었다.


김미경:  서재준씨 참 재주가 많아요.  사람 비참하게 만드는 재주.  사람 아무것도 아니게 만드는 재주.  현실 제대로  깨달게 만드는 재주.  살면서 아니 죽어서도 안 만났으면 좋겠네요.

서재준: 자존심 상했어.

김미경: 자존심요. 이 나이 먹도록  자존심이 있기는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자존심이 있었다면 그 돈 당장 서재준씨에게 준다고 큰소리치고 이 문 박차고 나갔겠죠. 그런데 주고 싶지 않네요. 그 돈이면 앞으로 죽어라 일하지 않고도 살수 있으니까? 주고 싶지 않네요.

서재준: 가져도 돼. 나도 받았으니깐. 당신 아버지한테 나도 받았으니깐.

 

미경의 얼굴에 슬픈 미소가 번졌다


김미경: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미경은 고개를 끄덕이면 인사를 하고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그를 지나쳐 걸어갔다.

 

서재준: 회사는 그만 두지 않을거지?

 

그의 힘없는 목소리가 미경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미안하다는 말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 말이 쉽게 나오는지 미경은 다시 한번 그에게 심하게 상처를 받았다. 아니 심한 좌절감을 맛보았다고 해야하나...그의 시선이 느껴졌다. 알 수 없는 눈빛. 그 눈속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지만 미경은 그 눈빛을 보지 않으려 했다. 시간이 정지된 두 사람. 사장실에는 단 두 사람만이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면 서 있었다.


김미경: 당신이 바퀴벌레인지 모르지, 얼마나 재주없는 인간인지 모르지. 사람 갖고 장난하는거 아니야. 너 같은 인간이 뭘 알아. 하루 24시간 힘들게 일해도 제자리 걸음이야. 그게 어떤 기분인지 너 같은 바퀴벌레가 어떻게 알아. 재수없는 놈. 내가 널 다시보면 사람도 아니다.


속에 담아 두었던  말을 시원하게 다 했다. 그가 어떻게 생각하든 미경은 상관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도 볼 생각없이 미경은 그를 지나쳐 뛰었다. 혹시나 그가 보복이라도 할까봐 조금은 겁이 나기도 했다. 그 싸가지 없는 놈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겁이나기도 했다.

 

김미경: 내가 그럴말 했다고 죽일거야 살릴거야. 빼째라고 그래.. 나도 이판 사판이야.


큰소리는 쳤지만 떨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쫓아오는지 살피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오지 않았다. 회사 밖으로 나온 미경은 무심한듯 하늘을 쳐다보았다.

 

김미경: 이게 현실이야..
      

바로 뒤따라 나온 재준은 씩씩하게 걸어가는 그녀에게로 달려갔다. 이대로 보내면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아 겁이 났다. 다시는 안본다고 할까봐 그게 더 무서웠다. 화를 내도 좋은데..  소리쳐도 좋은데... 그냥 안본다고 할까봐 그게 더 겁이 났다.


서재준: 김미경 거기서.. 가지마.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그녀의 눈에서 한 순간 눈물이 흐르고 그 눈물을 보고서야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느낀 재준은 어쩔 줄  몰라한다.

 

서재준: 울지마. 그냥... 난 .. 내가 잘못했어. 모르면 된다고 생각했어.. 너만 모르면..

김미경: 당신 가슴에 비수 꽂아 놓고 거기데고 잘못했어. 그 한마디면 다되는거야. 그게 없던일이 되는거야. 당신 절대로 용서못해. 한번은 봐줄수 있어. 두번도 실수라고 넘길수 있어. 그런데 세번은 알고도 하는거야. 서재준씨... 당신은 받는 입장이 어떤 기분인지 알면서도 나한테 그랬어. 용서가 될 것 같아. 나쁜 놈.

서재준: 알면서도 하는 내 마음은 편한 줄 알아. 동정으로 받을까봐 아님 한번도 비꼬아서 받아들일까봐 다른 의미로 해석할까봐 그게 어떤 마음인지 아니까 가장 순수하게 마음 다치지 않게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미경씨 생각해서 또 생각해서.. 그런데 방법이 없더라, 찾을 수가 없더라구. 알면 가르쳐줘. 그렇게 화내지 말고, 그렇게 울지말고, 가르쳐줘.

 

진심으로 하는 말 같았다. 그의 말이 진심처럼 들렀다.  그에게 넘어가면 안되는데.. 자꾸 자꾸 그 마음을 믿고 싶어졌다.

 

최승민(두 사람을 보면서) : 미경아,  형도 같이 있었네.


미경은 고개를 숙였다. 지금 이 모습 승민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럼 무슨 변명이라도 해야하니까 거짓말이라도 해야하니깐 그게 싫었다. 거짓말하는게....


최승민: 둘이 싸우고 있는거야. 분위기 왜 이래.

김미경: 아무것도 아니야. 그만 나가자.

 

승민이 미경의 팔을 잡았다.  잡힌 팔을 보면 미경은 승민의 얼굴을 황당스러운 눈으로 보았다.
그러나 의외로 승민은 당연하다는 듯이 아무일 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거기서 잡힌 팔을 빼기는 좀 어색할 것 같아서 그냥 있었다.

 

최승민: 미경이와 저녁 약속있거든. 그럼 우리 먼저 갈께.

 

미경을 잡고 돌아서는 그 순간 재준도 미경의 다른 팔을 잡았다. 순간 세 사람은 그렇게 정지된 듯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최승민: 무슨 할 말 있어.

 

그 상황에서 먼저 말을 던지 사람은 승민이었다. 승민의 얼굴이 서서히 차갑게 변하기 시작했다. 물론 재준의 얼굴도 굳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서재준: 아직 우리 얘기 안 끝났어.

최승민: 다음에 해. 우린 약속있어. 그러니까 형이 미경이 팔 놓아줘.

서재준: 그럴 수 없어.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미경은 두 사람한테 잡힌 팔을  놓았다.

 

김미경: 둘이 뭐하는거야. 누가 보면 삼각관계인 줄  알겠다.

최승민: 나 형 존경하고 좋아해. 미경이 일로 형과 멀어지고 싶지 않아.

서재준: 나도 널 좋아해. 그러나 그건 미경씨가 선택할 문제라고 생각해.

김미경: 지금 두 사람 내 얘기하고 있는건가요. 꼭 내가 투명인간이 된 듯한 기분이 왜일까? 두 사람 지금 뭐하는거야.  나 때문에 싸우는거야. 웃겼어.. 도대체 두 사람 지금 뭐하는거야.

최승민: 오늘은 미경이에게 중요한 날이니 이쯤에서 해두자. 다음에 정식으로 한판 붙자고..

서재준: 겁나지 않아.

 

미경은 두 사람만 남겨놓고 밖으로 나왔다. 정말 어이가 없다. 아니 두 사람 지금 뭐하자는 플레이인가? 사랑하는 한 여자를 두고 싸우는 남자처럼... 웃긴다.  저 바퀴벌레는 오늘 약 먹은 사람처럼 행동하고, 승민이는 날 애인인듯이 행동하고... 둘이 사귀면 참 잘 어울리겠다.


최승민; 미경아, 같이 가자.

김미경: 배고프다. 밥이나 먹자.

최승민: 형이랑 무슨 일이야. 아까 심각하게 얘기하는 것 같던데..

김미경: 별 얘기 아니야. 뭐 맛있는거 먹을래. 나 돈 많다.

최승민: 예약해뒀어.
       
 

승민이를 따라가는게 아니었다. 이대로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 사람의 얼굴이 자꾸 생각나서 미칠 것 같다. '당신 마음 다치지 않게 하기위해 내가 얼마나 생각하고 또 생각할 줄 알아. 다른 방법이 없었어.' 그의 말이 생각나서.. 그의 말을 믿고 싶어서.. 신경이 쓰인다.

 

김미경: 승미아 미안. 오늘은 집에 가고 싶어.

최승민: 형 때문이야.

 

굳어있는 승민의 얼굴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승민의 차가운 눈이 내 마음을 얼게 만들었다. 승민이와 멀어지고 싶지 않다. 그런데 승민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무슨 생각으로 날 바라보고 있을까? 그 눈빛이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마음이 불편했다.

 

김미경: 아니야.  그 사람때문이 아니야. 나때문이야. 나 때문에 그래.

최승민: 생일축하해주고 싶어. 정말 해주고 싶어. 니가 허락한다면.. 니 말대로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난 몰라. 그래도 해주고 싶어.너에게 모든걸 다 해주고 싶어.

 

승민이 미경을 살며시 안았다.

 

최승민: 내 마음이야. 내 옆에 니가 필요해.

김미경: 승민아...

 

당황한 미경은 그저 그렇게 승민의 품에 안겨 있었다.  승민이  이런 마음을 이미 마음은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머리는 그걸 거부하고 있었다. 미경이 편안대로 승민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로 봐야 편했으니까? 그래야 더 승민을 볼 수 있었으니까?

 

김미경: 승민아.. 난.. 난....널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최승민: 약속했잖아. 다시는 날 아프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 그 약속 지킬거지.

김미경: 승민아...

최승민: 지금은 대답하지마. 예전의 미경은 이런 내 마음 받아주지 않을거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넌 날 아프게 하지 않을거야. 지금 미경은 날 아프게하지 않을거라고 믿어. 생일 축하해 미경아. 오늘은 이만 사라져줄게.

 

그는 미경을 웃으면서 놓아주었다. 승민은 다정하게 따뜻하게 웃으면 그렇게 미경과 멀어졌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렇게 멀어졌다.
미경은 무거운 마음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김미경: 도대체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거야. 다 정리하고 떠나고 싶다. 멀리 멀리 도망가고 싶다.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도착한 미경은 곧바로 방으로 들어가 아무생각없이 방에 누웠다. 자리에 누운 미경은 뜨거운 눈물을 흘렀다.
오늘이 정말 싫어서.. 마음이 너무 아파서.. 부모님이 너무 보고 싶어서.. 그렇게 울었다. 자신이 너무 싫어서 그렇게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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