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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투데이... 24

송수민 |2003.05.06 10:41
조회 81 |추천 0

학교 전체가 녹색으로 가득하건만, 현주는 남은 실기 시험을 앞두고 걱정이 가득해져 그 기분을 느낄 겨를도 없다는 걸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모두가 보는 곳에서 치러야 하는 시험인 만큼, 현주는 신경이 아주 많이 쓰였다.
서울콩쿨대회 때문에 받고 있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는 것으로 인해 이번 실기시험에서 보여질 자신의 실력을 보고 또 이러쿵저러쿵 이야기가 나올게 될 말들에 현주는 걱정이 앞섰다.

건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시작될 긴장감에 현주는 계단 끝에서 쭉 건물 전체를 올려다보며 숨을 크게 들여 쉬었다.

 

*

 

민혁은 여전히 복도에서 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종료 시간까지 시험지를 붙잡고 있는 정민을 기다리면서 이제 10여분만 더 기다리면 되겠다 싶었다. 예년하고는 영 다르게 매 시험마다 종료시간까지 맞추고 나오는 정민의 시험태도가 그냥 넘어 가지지 않았다.
술에 잔뜩 취해 했던 민이의 말들도 그렇고.. 정말 민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뻐근해진 목을 돌려보던, 민혁은 문이 열리고 조교가 나오자, 얼른 인사를 하고 열려진 문으로 들어갔다.

*

 

강의실에 혼자 남아 있던 민이 책상위로 쓸어진듯 누워있었다.
민혁은 마치 민이가 방해하지마란 표현을 그렇게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기분이 들었다.
민혁은 반대편으로 걸음을 옮기며 창으로 섰다.
강의실 창으로 서 있는 민혁과 여전히 책상 쪽에 있는 민은 서로가 쳐다보는 시선이 틀렸다.

"나가자."

잠시 후 민이 가방을 챙기면서 말했다.

여전히 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던 민혁은 돌아보지 않았다.

"민혁아! 나가자구. 시험도 끝나고.. 방학이잖아... 뭐, 어차피 방학하고는 거기가 멀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만큼은 우리도 버려야 하는 거 아니냐.. 응?"

민은 의자에서 완전히 일어났다.

"민아."

돌려본 민혁의 얼굴을 민은 그냥 쳐다보고 섰다.

"바다 보러 가자, 우리."

완전히 결심을 하고 말하는 듯한 민혁의 얼굴을 보면서 민은 웃었다.

 


"아까, 그 자식 얼굴 봤지?"

앞서 가는 준에게 바짝 붙어 걷는 성민이 투덜거리듯이 말했다.

"누구, 형민이?"
"그럼, 내가 누굴 말해, 지금."

성민은 준이가 이름을 부르며 아무렇지 않게 말하자, 화가 더 나는 것 같았다.

"괜한 화는 수명을 줄인다, 성민아.."

노인장처럼 늘리며 말하는 준은 여전히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넌, 출전도 빼앗긴 데다가, 유난스럽게 우리 앞에서 똥 폼잡는 그 자식이 아무렇지도 않게 보인단 말이

야 지금 그럼?"

성민은 걸음을 멈추며 화를 냈다.

"됐어, 임마. 전화할게."

준은 돌아보지 않고 조금 큰 소리로 말하고 계속 걸어갔다.

성민은 고개를 벽 쪽으로 가볍게 돌리며 어이없어 했다.


*

 

현주가 슈즈를 챙겨 들며 일어났다.

"잘하긴, 잘한다.."
"잘하긴, 교수님하고 일대일 교습 받은 결과로 나아진 거 겠지."

현주는 뒤로 들리는 말을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려다가 멈춰 섰다.

"애들아, 방학들 잘 보내라."

환하게 웃으며 뒤로 보이는 애들에게 현주는 말하고 탈의실을 나왔다.

"뭐냐, 쟤? 어유- 재수 없어."
"야 - 너도 너무 그렇게 말하지마."
"뭘..?"

현주의 돌려진 얼굴이 슬프게 변했다.

 

*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어.. 어쩌다가 그랬어."

 

현주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그 이진희가 또 뭐라고 시비 걸디?"

채현은 짐작이 가자, 현주를 세워놓고 말했다.

"아냐."

 

현주는 표정을 고쳤다.

"난 2주 후 부터나 되야 방학이잖어. 그 땜에 심통 나서 그래."

채현은 현주의 말이 거짓말이란 걸 알았지만, 그냥 덮어두기로 했다.

"오늘은 시험도 끝났으니깐, 쉬고 내일부터 다시 나와서 하는 거지?"
"아니."

너무나도 당연하게 묻는 채현을 보고 현주는 한 층 더 불쌍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그럼..?"

채현이 놀라하면서 현주를 보자, 현주는 채현의 짐작대로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놀랍다, 놀라워." 채현이 고개를 가로로 흔들었다.
"집으로 갈 거지?"
"아니. 무슨 일인지.. 아빠가 가족들끼리 저녁 먹자고 하셔서. 그리로 가봐야 돼."
"그..래?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 보다. 가족들 외식을 다 잡으시구."
"그런...가?"

채현이 현주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좋겠네."
"참, 현주야. 우리 오빠, 아빠 회사 나간다고 했었나, 내가?"
"오빠.. 회사 나가?"

 

현주가 놀란 토끼 눈이 되었다.

"말 안했구나, 내가. 응, 몇 일 됐어. 너도 놀랍지?"

현주는 대답은 하지 못하고 그냥 채현을 볼뿐이었다.

"오빠 때문에 요즘, 우리 집 분위기 왕 좋잖아. 아빠랑 오빠 사이도 좋아졌고..
그래서 엄마랑 내가 가장 좋구. 암튼 그래. 그러고 보니, 아빠가 그래서 저녁먹자고 하시는 건가 보네."

 

채현은 그 생각이 맞는 것 같았다.

"다행..이다."
"..응?"

현주의 혼잣말처럼 나온 말에 채현이 되물었다.

"아니, 정말 잘 됐다구.."

현주는 정말 진심에서 나오는 기쁜 얼굴이 되었다.

 

*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출입구의 직원이 알아보면서 자리를 안내했다.

"우리 딸 왔구나."

제일 먼저 보인 아빠가 채현을 맞이했다.

"아빠!"

채현은 아빠, 엄마와 눈을 맞히고 나서 그 맞은 편으로 앉은 정이사 부부의 모습을 보고 놀래했다. 

채현은 그제야 세팅되어진 자리가 가족 수보다 많이 준비되어졌다는 걸 살필 수 있었다.

"채현이, 인사 안 드리니?"

채현은 엄마의 말에 어색한 표정으로 정이사 부부에게 인사를 하며 자리에 앉았다.

"아직 막내라 그런지 이렇습니다.."

채현은 엄마를 쳐다보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제 여대생이라 그런가..훨씬 더 여성스럽네요."

정이사 부인의 인사말은 채현을 어색하게 했다.

가족들끼리의 오붓한 식사시간을 고대했던 만큼 채현은 정이사 부부를 보는 시선이 곱지 못했다.

"엄마.."

채현은 엄마를 나직하게 부르며 눈치 체지 않게 정이사 부부가 왜 여기에 있는지를 눈빛으로 물었다.

다른 말없이 잠자코 있으란 엄마의 표정을 읽은 채현은 앞에 놓인 물 컵을 들어 마셨다.

"여보, 무현이 오네요."

채현은 엄마가 아빠에게 하는 말을 듣자, 물 컵을 들은 체로 출입구를 쫓아 보았다.

그리고 그 뒤로 걸어 들어오는 오빠의 비서 정지나의 모습도 함께.

채현은 왠지 오늘의 자리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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