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침
“아직은 모종심기가 일러, 여긴 서울보다 적어도 보름은 계절이 늦거든, 추워.”
늦은 저녁, 동네 형님과 소주 한잔을 기울이면서도 초보농부는 귀동냥에 여념이 없습니다. 어떤 땅에 무엇을 뿌려야 하는지, 언제가 파종의 적기인지 도무지 모를 일투성이기 때문입니다. 이럴 땐 입을 다물고 귀를 열어야 하는 것이 제일입니다.
“타고 남은 재 있지요? 쓰레기 말고, 나무 타고 남은 재는 아주 좋은 거름이 됩니다.”
척박한 땅에 마분으로 거름을 주었지만, 마지막으로 심은 호박은 영 신통치가 않습니다. 여섯 개의 모종 중에서 한개는 이미 세 개의 떡잎을 접고 임종을 준비 중인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가, 장작 태운 재를 슬며시 뿌려 봅니다. 땅이 검게 젖어 촉촉할 정도로 물을 주고 또 다른 의미의 하루저녁, 시간을 기다립니다.
한 잔 소주로 삐뚤삐뚤 무게가 더한 어둠 속 창밖엔 동네 개들이 으르르 거리는 소리가 분주합니다. 복실이가 엊그제부터 발정에 들어간 모양입니다. 대개의 진돗개들은 풀어 놓고 기르지 않으니, 늘 잡견들이 모여 하릴없는 싸움들을 합니다. 테라스 문을 열고 나가 파란 달빛아래 섭니다.
이미 몇 번의 돌팔매를 당한 적이 있는 잡견들은 발톱이 땅을 차는 소리가 바쁘게 달아납니다. 복실이를 기르면서는 한 번도 주변에서 개똥을 발견한 적이 없는데, 이런 신부 집에 청혼을 하러 온 것들이 변도 못 가리고 마당을 어지럽힙니다. 그럭저럭 오늘쯤엔 지산선생의 댁으로 시집을 보내야 하겠습니다.
아직은 가끔 마음이 어지럽습니다. 시골에서 채마를 일구고 주변 분들에게 승마를 가르치며, 백낙천(白樂天)을 손에 쥐고 바람을 만지는 즐거움도 보통이 아니지만, 역시 깊은 산중은 아닌지라 여러 가지 일상사와 뜻하지 않은 분들을 마주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말 이거 얼마입니까?”
“경마장에서는 싸게 산대는 데.”
“이말 다리를 저는 것은 아닌가요?”
“말이 왜 이리 말랐어?”
“이 개는 진돗개인가요?”
“골프 보다는 운동이 안 되겠네.”
참 여러 번도 반복하여 듣게 되는 정량적인 질문입니다. 손을 모으고 스윙을 하는 자세를 보이기도 합니다. ‘어이 아저씨, 그런 건 골프장에 가셔서 하세요... 마장에 와서 웬 골프?’ 물 호스를 들고 채마밭으로 가버립니다.
“이전에 말을 타보셨습니까?”
“아니요.”
첫 만남에 첫 인사가 참 쓸데없는 이야기 들입니다. 말 주인은 점점 침묵합니다. 말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나그네는 주인의 마음을 열지 못합니다.
“말 이름이 뭔가요?”
“참 예쁘게 생겼네요.”
뭐 그 정도로 충분할 것을, 나그네들은 주인의 마음을 걸어 잠그는 이야기들만 늘어놓습니다. 결국 누구나 얼마간의 시간을 두고 세상을 살아가다가 모두 놓고 돌아가야 합니다. 얼마면 어떻고 누구 것이면 어떤가? 라는 생각을 합니다. 굳이 세상 만물에 가격이 정해지거나 내 것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음을 열고 세상을 벗으로 삼으면 내 것이 벗의 것이고, 벗의 것이 내 것이 되기도 합니다. 소유권 이전에 세상을 후세로부터 잠시 빌린 것으로 여기고, 그저 소중히 아끼는 마음 정도면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닭이 홰를 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마 준비 운동 같은 것이겠지요. 몇 번 푸드득거리다가 드디어 “복실아아~” 하고 새벽을 알립니다. 자세히 들어보면 늘 그렇게 들리는 것은 요즘 복실이에게 온통 신경이 가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일어나기 전 침대에 앉아 안경을 걸치고 밖을 내다봅니다.
희미하고 푸른 새벽, 검은 실루엣이 아름다운 비월이가 앞발로 모래를 긁고 있습니다. 힘과 속도가 느껴지는 근육의 선을 따라 눈길을 주다가 담배를 하나 빼어 뭅니다. ‘쓸데 있는 결심을 하기’보다는 ‘쓸데없는 결심을 안 하기’에 익숙한 귀동냥 농부는, 요즘 금단 현상이 심하다는 지산 선생께는 나쁜 이웃이지만, 푸른 담배 연기를 옅은 새벽에 불어 넣고 Charlie haden & Pat metheny 의 First song 이 기타 줄 사이로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서서히 판단력을 시운전 합니다.
계단을 내려가면 복실이는 가만히 성숙한 눈으로 바라봅니다. 어쩐지 목도 가늘어 지고 우수에 찬 눈동자 같습니다. 개나 사람이나 시집갈 때가 되면 고민이 많은 모양입니다. 몇 번 목을 긁어 주고, 비월이에게 다가가면 늘 기분 좋은 ‘푸르르!’ 소리를 냅니다. 밥을 챙겨주러 온 것인 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 손바닥만한 콧구멍을 주인의 목에 대고 주인의 냄새를 거칠게 빨아들입니다.
물 호스의 꼭지를 열고 애호박, 수세미, 딸기, 해바라기, 열무, 상추, 쑥갓, 오이에 차례로 물을 줍니다. 마침내 호박의 차례가 되었을 때, 호오! 초보농부는 감탄을 하고 맙니다. 마지막 호박 모종이 세 개중에 한 개의 떡잎을 대지와 45도로 곧추세우고 되살아나 있습니다. 아마도 통나무 태운 재가 효과를 발휘한 모양입니다.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서 신데렐라가 되어버린 잎사귀를 살그머니 털어주고 물을 뿌려 줍니다. 이제 호박의 일생 중 가장 위험한 고비는 넘긴 것일 지도 모릅니다. 멀리 점점 옅어지는 세 개의 산을 넘어 아침이 발아래 긴 그림자로 머뭅니다. 담배를 입에 문 얼치기 귀동냥 농부는 미지근한 바람과 목덜미를 간질이는 햇살로 지금 이시간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침 될 것이라는 예감을 합니다. ‘호박아 정말 그렇지 않니?’
들녘의 고요한 별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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丘中有一士 (악중유일사) 백낙천(白樂天)
산속에 숨은 선비
산 속에 은거하고 있는 선비는
오랜 세월 깊이 도를 지키며
걸을 때는 새끼로 띠를 매고
앉아서는 줄 없는 거문고를 탄다.
탁한 샘의 물은 마시지 않고
굽은 나무 그늘에 쉬지 않으며
눈꼽만큼이라도 의에 어긋나면
천 냥의 황금도 분토같이 버리네
마을 사람들 그의 덕풍에 감화되니
향기 훈훈한 난 꽃이 숲에 피어난 듯
지혜 있는 자나 강한 자라 할지라도
어리석고 약한자 괴롭히지 않더라.
나는 그 은사를 찾아보고자
나섰다가는 다시 멈칫 했으니
반드시 그의 얼굴 볼 필요가 있으랴
오직 그의 마음만을 배우면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