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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두려운걸까?

눈부신하늘 |2003.05.20 00:15
조회 4,543 |추천 0

어느 날...
빨래를 널면서 옆에 있던 남편에게..

"하얗게 삶아진 빨래를 보면 보람을 느낀다"라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 날의 땅아 꺼져라하는 내 한숨... 힘없는 손길.....
복잡하고 미묘한 내 마음을 담기에 부족하지 않으리라...


듣고 있던 남편은 작고 조금은 단호하게 들리는 목소리...

"그럼 보람있는 일이지"


우린 서로 그 짧은 대화에
서로의 마음을 찰떡같이 알았다

 

남편은 내가 말하지 않은 것까지 알아차렸고..
나는 그 짧은 답에서 그가 길게 말하지 않은 것까지 들었으니...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컸다고 느껴지며..
이젠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하는지가 두렵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한가한 것은 아닌데...


무얼 하느라 그리 정신이 없던지..집안 살림을  한다고 하지만..
나는 아직 김치 한번 담아 보지 못했고 ..

다림질은 세상에서 제일 싫은 일이라 매 번 밀려 겨우한다.


여전히 지저분한 집안...정말 맘에 드는 게 없다.

가사일 이란 게 그리 쉬운 것도 아니고 의미 없는 일도 아닐텐데..
요즘...나는 주부라는 나의 명함에 약간의 열등의식을 느낀다.

 

오늘....
오래 전의 직장상사에게 전화를 받았다.
내 전화번호를 알아내려고 여기저기 물어 찾느라 ... 힘들었다고..

 

그 동안 결혼도 하고 아이도 둘 낳았고..그렇게 정신없이 있다보니...
시간은 그렇게 흘러 이젠 새댁이라 불러주는 사람은...

내게 무언가를 팔려고 하는 사람들 뿐이고...
김치 냄새 풍기는 아줌마티를 절절 내지만..

 

나도 한 때는 캐리어우먼이었다.
그 직장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내게는 행운이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다니며..일하는 재미와 도전과 성취를 맛보았고..
내게 향한 부러움과 질투의 눈길도 여유롭게 즐겼다.
결국엔 내가 앉고 싶었던 자리에도 앉았다.

 

스트레스도 엄청났었고..
부족한 경험과 판단의 미숙함으로 인해
엄청난 일을 저질러 상사들을 골치 꽤나 썩히게 했었던 기억도 있다.

 

옛 상사...오늘 나를 찾더니..이거저것 나의 근황을 물으며
내려와 나를 찾겠단다.
8년 전에 내가 너무나 하고 싶었지만
소유주의 이해관계로 무산되었던 일을 지금 하고 있다는데..
그 일과 관계되어 나를 찾았다는 뉘앙스를 풍겨준다.

 

그러나...나는 두려워진다.
혹..내게 일을 제의 할까봐.

이젠 감각도 잃었고..그 때 만큼의 배짱과 용기도 없다.
그리고

그 엄청났던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없을 것 같다.


가사를 병행하며 직장 일도 하는 수퍼우먼이 되는 것도 내겐 불가능한 일일 것이고..

그리고 일에 매달려 온통 거기에 촉수를 세워 예민했던 그 당시를 다시 재현한다면..
식구들은 나 때문에 많이 희생도 해야할 것이다.


온통 핑계거리만 찾아본다....참 무기력한 모습이다.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후회를 얼마 전에도 했었는데..

 

그 전화 한 통에...이렇게 두려움을 느끼다니...
용기 없음....
나...왜 이렇게 무능하게 느껴지는 걸까?

 

주부로 산...지난 시간.....
나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은 것일까.....

내가 전업주부가 된 것은 과연 잘한 일일까?


가끔 주부의 일을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는데...

이젠 날아가는 방법을 잃었다는 생각을 하는게...너무 비참하다.

아직 이러면 안 되는데....정말 이러면 안되는데...


새장 속에 너무 오래 있었나.....

참을 수 없는 나의 무기력함이 싫건만...두렵다는 맘 또한 숨길 수 없다.

 

바부팅이.....

오늘 기분은

하루 종일 ....................짙은 회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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