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전 친구부부 소개로 친구남편의 절친한 친구와 연애끝에 16년전 약혼과 결혼을 했다.
시부모님은 대학을 졸업하신 인텔리지만 아버님은 사업부도후 40세부터 가사를 하시고
어머님이 종합시장에서 여러가지 일을 하시며 가사를 꾸려나가며 19평 아파트에서 3남매를
키워 오셨다
내가 약혼후 결혼날짜를 잡았을때 결혼한 시누이가 자신의 집으로 나를 불러서 집안형편이
어려우니 맞벌이를 권하였다.
그때까지 시댁이 그렇게 어려운지 몰랐던터라 순간 당황스러웠다.
남편이 전혀 그런내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옆에있던 남편과 시누이가 언쟁을 시작했다 .
남편이 자존심이 상해서...
난 그자리에서 시선처리가 힘들어 신문에 눈을 떨구고 있었다.
그때 난 대기업의 중요부서에서 촉망받는 여사원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퇴직을 종용했고 시부모님 잘 모시고 살림이나 잘 해주길 바랐다
그런 남편의 제안이 너무 남자답고 멋있었고 나를 너무 사랑해서 그런것이라 생각하고
회사에서도 , 나또한 아쉬워했지만 결혼식 1주일을 앞두고 퇴직을 했다
시누이 집에서 난 남편이 원하는 터라 결혼과 동시에 퇴직하겠다고 말했다.
시부모님 잘 모시고 매일 사장으로 출근하시느라 살림을 못하시는 어머님을 대신해 살림이나
잘 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며칠후 시어머님의 전화를 받고 시장 다방에서 기다리는데 시어머님이 다방문을 들어서시는
모습이 불길했다
아니게 아니라 시어머님은 의자에 앉으시며 동시에 탁자를 치시며 "야! 너 우리아들과 결혼할려면 하고
말려면 말어! " 하시는 것이었다.
순간 다방안의 모든 시선이 우리에게로 집중되고 탁자의 물컵이 나뒹굴었다
난 고개를 떨구고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어머님 왜 그러세요? " 라고 반문했다
어머님은 " 너! 시누이가 너한테 충고하는데 신문만 쳐다보고 있었다면서? "
그것이 이유였다
그래서 그때의 상황과 내 마음을 솔직히 말씀드렸다
요지부동 이었다
" 너 시집에서 맞벌이 하라는데 그 아까운 자리를 그만둘려고 그래? 잘 생각해 보고 결혼 할려면 하고
말려면 말어 시집식구 알기를 우습게 아네 이것이." 그러며 나가셨다
그날저녁 남편을 만나 하염없이 울다가 파혼을 선언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친정 부모님께 오늘의 일을 말씀드리고 파혼하겠다고 말했다
뒤따라온 남편과 한참을 얘기하신 친정 아버지가 "어머님은 살면서 네가 잘하면 변하실테니
남편보고 살아라 한국시어머님은 그럴수도 있으니..
우여곡절끄에 결혼을하는데 " 네 시누이가 설악산으로 신혼여핻 갔으니 너희도 제주도 가지말고
설악산으로 신혼여행가라" 고 했다
우리는 친정아버지의 주선으로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신혼여핻을 다녀온지 1주일 만에 시할아버지 기일이었다
시어머님은 새벽에 나가시며 제사준비 하라고만 하셨다
막막했다
친정어머니를 만나 시장을 봐서 전화로 설명을 듣고 음식을 준비했다
저녁에 시작은아버님댁 식구들과 시누이네 식구들 모두 모여 제사를 지냈다
식사가 끝난후 시누이와 시어머니. 시작은어머님은 안방문을 닫은채 전혀 기척이 없었다
결국 나 혼자 시작하고 끝을 냈다. 눈물을 흘리며...
그날밤, 남편한테 하소연하며 울었더니 남편은 아무말 없이 자버렸고 새나간 울음소리에 다음날
부터 시어머님은 인사도 받지 않으셨다
그렇게 시작된 시집살이는 하루도 편하지가 않았다
대책이 필요해 맞벌이를 남편에게 제안했다
하지만 남편은 펄쩍뛰며 안된다 그럴려면 이혼하자고 했다
1달후 입덫이 있어 병원에 가서 임신확인을 받았다
그리곤 통 냄새도 못맏고 먹지도 못했다
시어머님이랑 남편이 새벽에 출근하고 나면 사아버님은 좁은 거실로 이불을 들고와 커튼을 치고
다시 주무셨다
방이좁아 나와 동갑인 시동생은 거실에 커튼을 치고 잤다
시동생이 밤근무를 마치고 아침 10시에 퇴근하면 시아버님이 일어난 자리에 시동생이 바로 눕고
시아버님은 그때서 아침을 드시고 놀러 나가셨다
물만 겨우먹을수 있었던 터라 건강이 매우 안좋았다
시어머님은 걱정이 되셨는지 오장동냉면을 사오기도 하시고 이것저것 신경을 써 주시는듯 했다
그래도 입덫은 가라앉질 않았다
당시 전국이 가뭄이어서 물사정이 엉망이었는데 시댁은 5층 이어서 더욱 심했다
새벽에서야 아랫층들이 다 받고 난후에 찔찔 나오는 물을 그것도 겨우 양치물과 먹을물이어서
집집마다 지하수 공사로 동네가 엉망이었다
아파트는 소방차가 와서 급수를 받았지만 만삭의 몸으로 5층까지 물을 긷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당연히 큰 빨래는 서울 시누이 집과 친정신세를 지고 속옷만 겨우 손세탁했다
어느날, 소방차 급수도 못와서 밥도 할수없었다
퇴근하신 시어머님께 사정을 얘기 했지만 호통만 돌아왔다
"사이다라도 사다가 밥을 했어야지 도내체 집에서 하루종일 뭐하는 거냐? "
그런 시어머님의 냉대는 날이갈수록 더해지고 목청크신 시어머님의 음성만 들어도 몸이 움츠려 들었다
급기야 첫아들을 낳고 10개월쯤 됐을때 난 아버님과 다투시는 시어머님의 큰 소리에 소변을 싸며
정신을 놓고 말았다
정신이 들었을때는 3일이 지난후였고 난 한강성심병원 정신병동에 있었다
남편이 면회왔을때 부둥켜 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퇴원후 친정에 갔지만 바로 시댁행을 고집했다
후에 들은 얘긴데 그때 시어머님은 친정엄마를 만나 " 댁의 딸이 정신병자인데 속아서 결혼한것 같다고
했단다
그후의 시댁생활은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때마침 남편이 회사에서 상사와 다투고 사표를 낸후 멀리 잠실에 있는 회사에 취직이 되었다
난 정말 벗어나고 싶었다
말도 안하는 나에게 시부모님도 감정이 좋을리 없었을 텐데 난 처음으로 시부모님께 분가를 내비쳤다
분노하신 시어머님의 진노는 하늘을 찔렀고...
그래도 그 순간 혼나고 분가해서 잘하겠노라 생각했다
결국 시어머님이 500만원을 해주셨고 남편퇴직금 200만원 친정동생결혼자금 300만원을 빌려 고덕동에
분가했다
분가후 첫날부터 시어머님께 안부전화를 했으나 쌀쌀맞게 끊으셨다
그래도 난 매일 시어머님의 그냉대를 하루도 걸르지 않고 받았다
그무렵 시동생이 결혼을 해서 새댁에서 살게되었다
어느날 동서가 우리집에 놀러오겠다기에 그러라고 했는데 그날이 마침 시누이딸 유치원 재롱잔치였다
동서가 우리집에 도착후 시어머닌의 전화가 왔다
시누딸 재롱잔치에 같이 가자고 했는데 동서가 우리집으로 온 것이 화근이었다
그 화살이 모두 나에게 꽂혔다
"나거 뭔데 니동서를 니맘데로 좌지 우지하냐? "는 것이었다
"너도 니 시작은엄마 닮아서 시댁 알기를 우습게 아냐? 여러가지로 똑같다 못된것 같으니.." 하면서
욕설과 함께 전화는 끊어졌다
난 더이상 참을수 없었다
시어머님께 전화를 걸어 심한건 알지만 도대체 저한테 왜 그러시냐고 물었다
결론은 입에담기 조차 싫은 욕설만 돌아왔다
난 동서앞에서 일어난 일을 근무중인 남편을 불러 상황을 얘기하고 어머님 근무처인 곳으로 향하게 했다
무척 흥분되고 격앙된 나는 이렇게 억울하게 사느니 차라리 어머님을 만나 서로 얘기후 모든결혼생활을
끝낼 요량이었다
그러나 시어머님은 자리를 피한 상태였고 동서와 남편과 함께 시누이집으로 향했다
악 밖에 남지 않은 난 내가 받은 모든 모욕을 되돌려 주고 끝내고 싶었다
시누이 집에서 깽판을 친 난 결국 시누이가 우리 친정으로 전화를 해 정신병자 데려가라는 걸로
마무리 했다 . 기가 막혔다
집으로 와서 남편은 당분간 난 시댁에 가지 말고 살자며 달랬다
후에 아들 돌날 오시라고 했으나 시어머님은 동서까지 못가게 하고 안오셨다
그렇게 날짜는 가고 남편으로 부터 아버님이 손주를 보고싶다고 하기에 남편회사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롯데월드 2층 민속관이었다
뜻밖에 아버님은 어머님과 함께 나오셨다
술과 음식이 차려지고 어머님이 비아냥대는 말씀으로 "너 아주 좋구나 살만하니? 그말끝에 "어머님 왜
이러세요 어머님도 같은여자 입장으로 절 좀 이해해 주세요 " 한말이 화근이었다
순간,술과 음식이 차려진 음식상이 어머님의 손에 의해 게세게 들였다 놓아지며 " 뭐! 이 썅년아! 시발년아! 개년아! 하며 욕설이 그 음식점 전체를 아수라 장으로 만들고 구경꾼이 모였다
그자리에서 난 꼼짝도 못하고 고개를 떨구고 아버님은어머님을 억지로 끌다시피 모시고 나갔다
후에 들은 얘긴데 그자리에 시어머님은 내 원피스를 사가지고 오셨는데 그자리를 벗어나 그 원피스를
빡빡 찢어서 백화점 쓰레기통에 버리셨단다
하긴 어버이날 선물로 가죽 핸드백을 내가 사드린 적이 있는데 그것도 가위로 발기발기 잘라버렸다고
자랑하셨다는걸 들은적이 있으니 가히 그러셨을것이다
남편회사 에서 있었던 그일 이후 우리는 그냥 시댁을 잊고 살자는데 합으했다
그러던차에 남편이 시댁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당시 흥행하던 실내낚시터를 하자고 했다
난 말렸다
그러나 남편은 요지부동이었고 집문서를 내주신 시어머님은 그 화풀이를 내게 쏟아내셨다
어찌 어찌하여 남편혼자 시댁을 들락거리며 일을 진행시켰다
말리는 나와 진행하는 남편사이에 자주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럴때면 남편은 이혼하자며 아이를 데리고 시누이집으로 가서는 며칠있다왔다
그 시누이집에서 시부모님과 남편은 나와 살기 힘들다고 했고 다음에는 못된년으로 낙인찍힌 나는
자살을 결심했다 (시어머님이 전화를 걸어 서 그리했다)
수면제를 사 모았지 주기가 싫었다 살면서 돌려주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독한 마음도 내 본심이 아니었나보다
어느날 시댁에 가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시련은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회사에 다니며 부업으로 실내 낚시터를 하던 우리는 3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함께출근해서 남편은
회사로, 나는 근처 놀이방에 아들을 맡긴후 실내낚시터에서 하루를 일했다
돈이 정말 만져졌다
순수 현금장사로 하루 수입이 100만원이 넘었으니...
그무렵 시어머님이 , 입시학원을 개원한다는 사람에게 속아 시장가게 보증금을 몽땅털어넣고도 빛을
지고 무력해 지셨다
남편이 나는 집에서 얘나보고 시부모님이 실내낚시터를 운영하게했다
시부모님은 낚시터에서 숙식을 하시며 운영하셨고 남편은 내가 운영할때는 매일 자기가 마감을 했는데
시부모님이 계신후부터는 일절 손을떼고 가끔들러보기만 했다
그때부터 우리 부부에게 벼락이 떨어졌다
남편의 귀가가 새벽으로 이어졌고 상가집 조문의 거짓말이 늘었으며 급기야는 회사에서 출근여부를
묻는 전화까지 받게 되었다
그렇게 며칠씩 집에도 출근도 안하는 날이면 난 밤을새며 회사에서 의정부집까지의 경찰서 병원으로
전화를 하며 며칠씩 날밤을 새고 먹지도 못했다
결국 시부모님도 알게되고 시아버님과 통화하며 하소연했는데 옆에서 들려오는 시어머님의 목소리,
"집구석에서 편하게 해줘야 걔가 들어가지"
기가 막혔다
행방이 묘연한 아들을두고...
그런날이 한달쯤 됐을때 단서를 잡았다
며칠만에 들어오는 남편의 주머니에서 수백만원씩 현금 수표 때론 어음도 있었다
불안했다
경리과장으로 은행 자금일을 하는 남편이 뭔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날 또 며칠을 집과 회사를 연락끊은 남편을 찾아나섰다
방배동에서 실내낚시터를 한는 절친한 친구를 찾으면 될것 같았다
그사람은 원래 포커를 자주한다고 알고 있던터라... 혹시?
새벽2시에 아들을 데리고 의정부에서 택시를 대절해 방배동을 샅샅이 뒤져 한 오피스텔주차장에서
남편의 차를 발견해 경비실을 통헤 남편을 불렀다
남편의 눈은 이미 풀어져 있었다
그라곤 이미 너무 많은걸 잃어서 지금 끝내면 회사공금문제도 그렇고 큰일난다고 했다
결국 남편회사 사장님이 알게되었고 남편은 법적 조치대신 변상으로 합의봤고 퇴직금도 없이 집을 모두 내놓고 안산에 전세얻고 변상했다
그때 둘째 임신 3개월이었다
또 첫애때와 같은 입덧이 시작되었다
직업이 없던 남편이 운영하는 작은 회사에서 일을 거들기로 했다
그러나 남편은 또다시 포커판으로 갔고 그앙몽이 살아났다
울면서 빌면서 아이들을 볼모로 사정도 해 봤지만 끄떡도 안했다
자연히 생활비도 없어서 친정아버지가 엄마몰래 대주셨다 7개월동안.
어느날 남편이 울면서 전화해왔다
한강이라고. 죽고싶다고.
난 하늘이 무너지는듯했다
같이 죽겠다고 엄포도 놓고 해서 남편을 간신히 불러들여 들은 말은 내 목을 졸랐다
그 친한 친구에게 속아 사기 포커판에서 당시 1억 5천만원이란다
또 지금 당장 갚아야될돈이....
결국 전세집을 내놓고 5살아들과 뱃속에 9개월된 만삭의 몸으로 살림은 남편의 선배집 지하실에 놓고
옷과 이불만 가지고 시누이집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영문모르는 아들도 나도 부둥켜 안고 울면서...
그게 충격이었을까? 예정일 보다 20일 빨리 둘째아들이 세상에나왔다
병원에서 2일후 퇴원하면서 친정부모님의 권유를 뿌리치고 시누이 집으로 갔다
남편을 생각해서...
시누이작은 아들이 우리아들과 1살터울이라 자주 다퉜고 형한테 물리기까지 하는것이 내처지의
슬픔에 더 가중시켰다
남편은 시누남편과 지방 출장가면 혼자떨어져 있고 월급대신 우리4식구 먹여주고 재워준다는 것에
막막한 미래에 불안해졌다
급기야 며칠만에 돌아온 남편과 시누집ㅇㅔ서 크게 언쟁을 하게 되고 시누가 개입하고....
아뭏든 시누네 살이 3개월만에 집을나왔다
막상 갈곳이 없었다 돈도 없었다
신혼인 남동생집으로 무조건 갔다. 남편도 따라왔다
그때 올케가 너무 고마웠다
결혼한지 얼마안된 신혼이었는데...난 지금도 올케가 너무 좋고 미안하다 항상
지금도 우리아들들은 엄마가 외숙모한테 하는것처럼만 고모가 엄마한테 했으면 좋겠단다
우리올케는 자기 친정언니나 엄마한테 못하는 얘기도 나랑은 하며 지내는 사이다.
남동생 집에서 1달만에 남편이 100만원을 구해 왔다
우리는 이주단지라는 곳에 한옥집 지하실을 개조해서 만든 연탄아궁이 집에 보증금 100만원에 10만원의 월세를 주기로 하고 남의집 지하실에 보관된 살림의 일부를 찿아와 생활했다
부탄가스로 우유병 삶고 먹거리를 해결했다
동네 교회 집사님이 집요하게 먹거리를 해결해줘 그공덕에 교회에도 잠시 나갔다
친정식구들은 사위와 사돈댁이 미워서 내삶을 보려하지 않았다. 와보지도 않았다
남편은 중국행을 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
바로 옆에 있는 유치원 원장님께 형편을 말하고 큰아들을 유치원에 보냈다
그원장님은 나를 안쓰럽게 여기며 급식반찬을 챙겨주셨다
주인집 아주머니도 월세을 늦추어 받으시곤 했다
그집에 산지 2년 7개월만에 남편은 4천만원을 만들어와 이사했다
친정근처 3천7백만원 짜리 연립 전세였다
그집으로 이사한후 아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승용차도 중형으로 뽑아 이젠 모든 고생이 끝이려니 했다
2년째되던 어느날 새벽에 건장한 남자 여럿이 우리집문을 두드렸다
사채업자였다
동네가 어수선했다
남편이 사채보증을 섰는데 긋람이 도주해서 남편에게 변상하라는 것이었다
또 불안했다
그동안 남편이 중국에 다니며 친정엄마를 통해 동네 아주머니들께 빌린돈을 해결하고 싶었다
그런데 남편과 시집식구들이 시동생한테 빌린돈 부터 갚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악이 생겼다
친정엄마가 동네 아줌마들한테 받을 수모를 해결해야 했다
집을내놓고 빛을갚고 나니 한푼도 남지 않았다
그러자 시어머님은 내가 돈을 빼돌렸다고 빌린돈 내역을 요구했다
나는 수첩에 날짜별로 빌리고 갚은내역을 보여드렸다
믿지를 안았다
그후 모든살림을 친정집 지하실에 놓고 친정살이를 했다
그때 남편은 빛쟁이한테 할부가 얼마 들어가지도 않은 차를 빼앗기고 정릉산속으로 끌려가 죽음의
공포를 맛보아야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그렇게 할수밖에 없었다
친정살이는 더욱 힘들었다
5남매의 맏딸인 나는 부모님 눈치, 동생들눈치,귀가후 시동생빛 갚지 않았다고 스트레스 부리는 남편눈치, 결국 남편과 언쟁이 잦았고 남편ㅇ을 홀대하는 친정엄마와 동생들과 큰 싸움이 났다
그일로 엄마와 동생은 집을나갔고 친정살이 1달만에 우리는 갈곳을 찿아야 했다
마침 나의 실력을 인정해주는 이웃집남편의 운수업체에 취직하고 거기서빌려준돈 200만원으로 그회사
바로옆에 있는 시건장치도 안돼고 푸세식 화장실이 있는 허름한 한옥으로 이사했다
공교롭게도 친정집베란다에서 내려다보이는 집이었다
집과 회사가 앞뒤로 있어 아이들 돌보기도 좋고 이젠 열심히 돈만 벌면되었다
그런데 남편은 해결할일이 많다며 나갔다 들어오기는 했는데 수입은 전혀 없었다
당연히 나는 남편에게 독려를 했고 그럴때마다 심하게 다투었다
급기야는 남편이 나의 회사생활에 제동을 걸었다
운수회사라 기사가 많은것을 빌미삼았다
"너 낮에 어떤놈이랑 이집에서 무슨짓했어? " 였다
치고 받고 육탄전까지 벌어졌는데 나는 흠씬맞고 구둣발로차이고 마당으로 질질 끌려나가고 옆집사람들이 와서 말리고...
어느날 새벽 난 집을 도망쳤다
갈곳이 없었다 돈이 없어서 더욱 그랬다
잔돈을 겨우 춧스려서 인천으로 갔다
사업부도맞고 전화없이 사는 친구집이었다
거기라면 연락이 닿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며칠후 친구들이 찿아왔다
우리애들 얘기며 친정부모님 말씀과 시댁의 반응을 말해주며 결국은 애들봐서... 였다
난 이혼을 결심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필요했다
2주일쯤 지나니 친구남편 눈치도 보이고 미안해서 빨리 끝낼요랑으로 남편을 만났다
남부지원 에서 이혼서류를 들고서...
난 바보였다
남편을 만나자 불쌍해보였다
아니 솔직히 이혼하면 폐인될것 같은 그사람그림이 그려졌다
그럼 애들은...
어영부영 우린 제시간에 법정문을 열지 못했다
그렇게 애들때문에 우린 다시 삶의 둥지로 돌아왔다
그런데 며칠후 남편의 구속소식을 접해야 했다
밀수...
남편을 면회하러 간 나는 쌀쌀한 시누이와 마주하면서도 아득한 현실에 눈물만 흘렸다
남편을 구해야 했다
담당검사를 찿아갔지만 만나주질 않았다
난 애들을 등교시킨후 곧장 인천으로 향했다
만나주지 않는 검사실 앞에서 무릎꿇고 울면서 빌다가 경찰한테 끌려나기도 했지만 난 다시 그자리에가서똑같은 짓을 했다
며칠이 지났던가 담당검사가 탄원서를 써서 접수하라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기뻤다
그런데 법원에 탄원서 접수는 변호사 사무실이나 사법서사를 통해 정해진 규격에 의해 접수해야 한단다
서둘러 해당 사무실을 찿았지만 대행료가 필요했다
그것도 사건 금액에 따라 가격이 다르단다
남편이 연류된사건은 10억이 넘으니 대행료도 비싸서 엄두를 낼수가 없었다
그동안 시댁에서는 손도쓰지 않았다 . 돈이 없다는게 이유였다
난 남편을 면회가지도 않는 시댇식구들이 미웠다
당시 우리집엔 전화도 없었다
무심코 길을 가다가 공중전화를 발견하고 시어머님께 전화를 걸었다
"어머님 저얘요" 하자 대뜸 "왜 내아들이 그런데 가서 있어야 하니?" 하는 울음섞인 악성이 들려왔다
순간 " 저한테 왜 이러세요? 어머님이 저보다 힘드세요?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저만큼 죽고 싶으세요?"
하고 소릴 질렀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지도 않았다
그런다음날 새벽에 어머님은 밑반찬과 생활비를 가지고 오셨다
그때 어머님 이 지금껏 나에게는 가장 따뜻한 어머니 셨다
난 그돈으로 술을사서 마시고 날밤을샜다
그렇게 술병이 쌓인걸 세벽에 시어머님이 들러서는 술 그만먹고 살아야지 하실때면 지금껏 나에게
비춰진 시어머님을 미워했던 내 자신을 반성하곤 했다
어머님도 정말 따뜻한 분이시구나 배우신분이라 틀려... 하면서
남편을 면회하고 오는길에 동인천역 지하상가서점에서 법원양식에 관한 책을샀다
내가 해볼양으로
그리곤 서류를 준비했고 구구절절이 탄원서를 썼다
동네 병원을 돌아다니며 형편을 솔직하게 얘기하고 가짜진단서도 끊었다 그것도 무료로.
그때 작은아들 뇌막염 진단서와 심장병이란 내 가짜진단서를 끊어주시며" 애기엄마 정성으로 남편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걱정까지 해주신 두병원 원장님께 너무 감사했다
두 진단서와 월세 계약서 그리고 구구절절이 착하기만 해서 남에게 이용당한 남편의 억울함까지 쓰고
지금 우리가정에서의 남편의 자리의 중요성을 열거하여 법원으로 갔다
당연히 접수가 안돼었다
규격에 맞지 않고 자필로 썼다는게 이유였다
난 항거했다 .없어서 이렇게 밖에 할수 없다는것을. 오랜 실랑이 끝에 편지지에 쓴 탄원서를 규격사이즈로 복사해서 인지를 붙일수 있었다
그후 남편의 탄원서를 읽은 검사님이 국선변호사를 선임해 주셨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변호사 협회에서 순번제로 해준단다
국선변호사가 정해진후 시댁에서 처음으로 시아버님이 남편의 면회를 같이 가자고 오셨다
난 그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남편을 면회가면서 지쳤었는데 그래도 기댈아버님이 같이ㅏ 가신다니
섭섭한 마음이 조금 덜했다
그동안 난 내가 면회신청을 해야 그나마 남편이 걷는 운동이라도 할것이라 생각하고 매일 갔던것이다
그렇게 3개월동안 남편은 구치소에 있고 난 어머님께 생활비를 받으며 남편한테 매일 다녔다
추석전날 시댁에서 음식준비를 하는데 법원에서 전화가 왔다
보석금 300만원을 입금시키라고...
시아버님이 작은아버님께 빌린돈으로 추석연휴 다음날 두부를 사가지고 가서 남편을 데려려왔다
그후 몇번을 남편과 법정에 서서 재판받은후 밀수를 방조한 죄로 집행유예3년을 선고받았다
다행이었다 남편의 결백이 밝혀져서.
그집에서 3년을 쥐가 방안을 돌아다니고 홍수때는 재래식화장실 똥물이 넘칠지경이고 방안 천정은 4귀퉁이가 새서 이불을 깔지 못하고자기도 했다 . 모기가 들끓어 1년에 10개월은 모기향을 피워야했고
마당에 뱀이 나타나서 백반을사다 뿌리기도 하고 이사온날 부터 애들이 화장실을 무서워해서
환자용좌변기에 두아들의 똥오줌을 하루에도 몇차례씩 받아내고 씯고 했다
큰아들 5학년때까지 3년 7일을..
그집에서 3년째 되던해 시누남편이 간암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운명하시기전 병원에가서 간병을 도운적이 있다
그때 시누남편의 말을 난 지금도 잊지 못한다
"00엄마 불쌍해서 어떡하누~~"
정신이 흐려지면서 하신 말이다
그렇게 시누남편이 돌아가신후 시누남편의 유언데로 그회사를 남편이 운영해주기로 했다
남편도 뭔가 할려고 하던차에 사무실도 쓸수있으니 잘된일이었다
또, 시누회사 오더를 따면 이익금을 나누기로 한터라 나로서는 적극 환영이었다
남편은 100만원이 빌렸다며이사를 하자고 했다
비젼이 있으니 1년동안 월세로라도 번듯한 아파트로 가자고 했다
5학년 1학년이던 두아들의 소원이어서 더욱 그랬다
후미진곳 고층아파트25평을 1000만원 보증금에 월세 60만원에 1년 계약했다
그곳으로 이사하기전 한옥집에 살때 시부모님은 1억원을 외삼촌한테 받았다며 통장을 내보이며
자랑하신일이 있다 우리는 200에 20만원 다쓰러져가는 집에 사는데 말이다
그때 난 남편한테 남한테 60만원 월세 주느니 부모님께 월세를 드리고 원금은 갚자고 했다가 심하게 다툰후부터 자기혼자 애들데리고본가에 다니기 시작했다. 나도 굳이 가고싶지 않았다
한번은 혼자만 가냐고 따졌다가 "너같은건 우리식구들도 보고싶지않아하니까 갈필요없어!" 라고하길래
굳이 갈려고 하지 않았다. 속마음은 그게 아닌데..
그렇게 2년이 넘게 남편과 애들만 시댁에 다녔다
난 무척 마음이 아프고 불편했지만 그냥 그러기로 했다
어느날 동서로부터 마나자는전화가왔다 2년만이었다
아버님의 칠순잔치에 참석하라는 것이다
기회가 좋았다
지난일 다 접어두고 그날저녁 남편과 시댁으로 가서 그동안의 잘못을 빌었다
그리고 칠순잔치 날.
인사도 받지않는 시누의 냉냉한 눈빛을 받으며 그자리에 찿아준 20여명의 내 친구들과 있을수 밖에 어ㅄ었다
그자리에 친정동생네와 아버지가 오셨는데 사회자의 주문에 시어머니는 큰며느리한테 할말이 없고
우리 착한 둘째며느리칭찬에 마이크가 울려퍼졌다
순간 창피했다 친정식구들은 더했으리라
울컥해서 옆방으로 갔더니 시댁 친척들이 나에게 한마디씩 던지는 것이었다
"니 시어머니가 네얘길 그렇게 하냐? 잘좀해라"
보나마나 그날저녁 우리 부부는 대판 싸웠다
며느리들 앞에서 어머님의 동생댁과 동서욕도 적나라하게 하시는 분이니 내욕은 얼마나 많이 하셨을까
가히 짐작이 가고 남음이다
언젠가 동서로 부터 시누이가 결혼전 가출해서 다른남자와 동거한적이 있다는 소릴 들었는데
어머님은 평소에 집안의 누구를 지칭하며 처녀가 아니었데 하는소릴 하신적이 있다
당신 딸이 그러면서 남을,그것도 나에겐 시댁어른인데 그사람을 그렇게 표현할땐 정말 어른으로 보이질 않았다
당신아들도 노름으로 집안이 망했는데 시댁 어른을 지칭하며 노름으로 망한것을 자연스럽게 욕하기도 한다
입에 담기 힘들 언사를 쓰시며..
남편이 구치소에 있을때 어머님이 속상한 마음을 나에게 심한말로 화풀이 하셨을때 그땐 정말 이집안과
끝낼 생각으로 대든적이 있다
시누이의 과거까지 들먹이며...
그때 아버님께 뺨맞고 시어머님은 과격해지고 난 동서앞에서 못된동서가 되어야했다
진정후 어머님께 빌기는 했지만 어머님도 시누의 과거사에 용서하기 싫으셨을게다
나도 이판사판 으로 우리 친정엄마한테 정신병자딸이라고 함부로 말씀하시고 나한테 그동안 함부로 해오신 어머님에 대한 일종의 앙갚음을 한셈이다
하지만 편하지가 않다
죄를 받을것 같아서...
결혼해서 지금까지 살면서 남편한테 시어머니의 편견과 욕설에 대해 남편에게 따질때마다
남편은 몇달이고 각방을 쓰면서 이혼을 요구해 왔다
지금도 남편은 나랑살기 지겨우니 이혼하쟎다
일을 저지른후 애들수습할테니 무조건 이혼하쟎다
벌써 두달째 각방을 쓰고 남편은 잦은 출장에도 말도없이 그날아침 출장가서 있다오곤한다
왜 미리 얘기안하냐면 싸우기 싫어서란다
나도 과거를 지우고 싶은데 그 응어리가 쉽게 풀리질 않는다
난 주변에 친구가 많다
항상 모임의 분위기를 살리느데 일익ㅇㅡㄹ 담당했는데 언제부턴가 웃음이 사라졌다
그저 가슴만 답답하고 꼬집듯 아파서 괴로룰 뿐이다
지금도 시누회사일을 도맡아 하면서 시누네도 집사고 시댁도 50평이 넘는 새집으로 이사했는데
우리만 2000만원에 80만원씩 하는 월세를 살면서 그저 맨날 돈타령이나 하다가 결국 싸움으로 반복되는
이 생활을 계속해야 하는가? 누가 시원한 답을 내려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