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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 수취함 속의 보금자리

유상진 |2003.06.08 08:00
조회 257 |추천 0

6월 접어들면서 날씨는 완전히 초여름을 연상하게 합니다.
길옆에 늘어선 가로수의 잎들이 뜨거운 햇볕을 견디기가 힘들었는지 축 늘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들판의 모내기는 거의 끝이 나면서 시골 마을에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
다.
사실 농번기가 시작되면 마을에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아서 우편물을 배달하는데 상당히
애를 먹기도 합니다.
번지가 정확하지 않거나 또는 아무개댁 이니 하는 식으로 우편물을 보내면 마을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면 우편물 주인을 찾기가 무척이나 힘이 들기 때문이지요.
그러다가 사람을 만나면 어찌나 반가운 지요!
그래서 시골마을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 같이 반가운 일도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이 마을 저 마을로 우편물을 배달하다보니 어느덧 전남 보성읍 봉산리 노산마을로
들어섭니다.
오늘이 5일마다 한번 열리는 장날이라서 그런지 마을의 정자에 할머니 세분과 어린아이가
무언가 정다운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십니다.
그러다 제가 옆으로 다가서자 4~5살쯤으로 보이는 여자어린이가 저를 부릅니다.
그러더니 저에게 “아이찌 아이찌 우리 할머니가요 이~이뿐 것 사 갖고 왔어요~오!” 하면서
저에게 자랑을 합니다.
“응 그래 우리 아가씨가 무엇이 그리 이~이쁜 것이 있어서 나를 불렀어요?” 하고 묻자
“이것 보세요 강아지를 사 갖고 왔어요~오!“ 하면서 등뒤에 감추었던 강아지를 저에게 내
보이는 겁니다.
그런데 그 순간 3~4살쯤 보이는 남자 어린이가 여자 어린이 옆으로 쪼르르 달려와서는
“이리 좀 줘 봐~아!” 하더니 강아지를 낚아채는 겁니다.
그러자 강아지가 가만있겠습니까?
“강아지 살려~어” 하듯이 깨~앵 깽 하고 비명을 지르고 야단이 났습니다.
남자 어린이와 여자 어린이는 서로 강아지를 빼앗으려고 야단이고 강아지는 “강아지 살려!“
하고 비명을 지르고 그리고 옆에 계신 할머니들께서는 그 모습이 귀엽다는 듯 연신 싱글벙
글 웃고 계시고 그래서 할 수 없이 제가 나섰지요.
“애들아 이러다가 강아지 죽겠다! 너희들이 싸우니까 이 강아지는 아저씨가 가지고 가야겠
다. 알았지?“ 하였더니 그때서야 어린이들이 ”어! 그러면 안 되는데!“ 하는 눈초리로 저를
쳐다보는 겁니다.
“강아지 때문에 또 싸우고 그러면 강아지 아저씨가 가지고 갈 테니까 앞으로 또 싸우면 안
된다 알았지?” 하였더니 그때서야 싸움을 멈춥니다. 그러자 할머니 한 분께서
“옛말에 애기들이 많으면 뭐 가지고도 싸운다더니 참말로 그짝 났네!”
하시더니 또 웃음보를 터뜨리십니다.
사실 시골 마을에는 어린아이들이 귀하기 때문에 할머니들께서는 두 어린아이가 싸우는 모
습이 귀엽고 사랑스러웠겠지요.
그래서 모처럼 어린아이들이 하는 모습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다시 다른 마을로 이동을 합니다.
그리고 또 다음 마을로 열심히(?) 우편물을 배달을 하다보니 어느덧 시간은 오후3시가 넘어
가고 있습니다.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마을인 보성읍 쾌상리 빗가리 마을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 빗가리 마을의 세 번째 집 김영요 할머니 댁의 우편 수취함에 막 우편물을 넣는 순
간 갑자기 수취함에서 무엇인가 쏜살같이 튀어나오더니 하늘 높이 올라가는 겁니다.
“아이고 이것은 또 무엇이냐?” 하고 깜짝 놀라 하늘을 쳐다보았더니 조그만 새 한 마리가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가 다시 내려오더니 저의 옆에 서있는 나뭇가지위로 살며시 내려앉는
겁니다.
어른의 엄지손가락보다는 조금 크고 참새보다는 조금 작은 진한 황토색 옷을 입은 예쁜 새
입니다.  (제가 살고있는 보성에서는 새의 이름을 미영새(?)라고 하는데)
그런데 새는 다른 곳으로 날아가려고 생각을 않고 자꾸 제 주위를 빙빙 맴돌고있습니다.
그래서 수취함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무슨 쓰레기 같은 들어있는 겁니다.
그래서 “아니 수취함에 누가 쓰레기를 집어넣었지?” 하면서 수취함을 열어보았더니 수취함
속에는 쓰레기가 있는 것이 아니고 나뭇가지와 나뭇잎들이 새의 털과 함께 수북히 쌓여있고
그 속에 조그만 새알 같은 것이 보이는 겁니다.
어느틈엔가 새가 우편 수취함 속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서는 위험을 무릅쓰고 다른 곳으로
날아가지 않고 제 주위를 빙빙 맴돌았던 것입니다.
“아이고 미안하다! 내가 너의 집을 허가도 받지 않고 함부로 문을 열었구나!” 하면서 얼른
방금 전에 넣었던 우편물을 다시 꺼내었습니다.
그리고 김영요 할머니 댁으로 들어가서 우편물을 놓아두고 나오는데 방금 전의 새는 보이지
않습니다.
알들이 기다리는 우편 수취함 속의 자기 집으로 들어갔겠지요.
우체국에서 우편 수취함 달기 운동을 하면서 많은 가정에서 우편 수취함을 달아놓았습니다.
그런데 외딴집에 걸려있는 우편 수취함에는 가끔씩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는 경우는 있어도
마을에 있는 우편 수취함이 새의 보금자리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부디 우편 수취함 속의 보금자리일지라도 새로운 생명이 잘 자라났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
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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