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니나랑 폴이랑 cafe.daum.net/ninapa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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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 레슨 24
시어머니가 다니시는 미국 교회에 한국 가족이 새로 나왔다……
한국에서 막 왔기 때문에 영어를 잘 못하는데도 미국 교회로 온 걸 보면
칭찬해 줄 만한 용기를 가진 가족이었다……
젊은 부부였는데 다섯살짜리 이쁜 딸네미도 있었다…… (가명: 이쁜이)
이쁜이는 첨엔 겁먹은 얼굴이었는데 한달쯤 지나니까 말이 안 통해도
눈치껏 잘 논다…… 역시 애들은 빠르다……
그래도 영어를 잘 못하다보니까 내가 가끔씩 시어머니 따라 미국 교회에
갔다가 “안녕” 하구 한국말로 인사하면 이쁜이가 반가와서 어쩔 줄
모른다……
하루는 시어머니가 부르신다……
시어머니: 니나야, 부탁이 있는데 토욜날 시간 있어?
니나: 네
시어머니: 그럼 부활절 토끼역 좀 할래?
앗! 뭔지 들어보고 나서 시간 있다고 그럴껄…… -_-
부활절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메달렸다가 부활하신 날인데 어찌된
일인지 토끼가 더 설치는 날이 되가고 있다……
크리스마스에 산타 클로즈가 더 설치는 것처럼…… 젠장…… -_-
아, 그나저나 그 더운 토끼옷을 뒤집어쓰고 애들 앞에서 쇼를 해야
한단 말인가……
니나: 하, 하죠…… 뭐……
언제왔는지 신랑이 옆에서 거든다……
신랑: 으헤헤… 토끼옷 털옷인데… 무지 덥겠네~
니나: …… -_- ……
시어머니: 너도 같이 가야 돼
신랑: 어? 왜요?
시어머니: 계란에 선물 넣어서 뿌려야지……
미국에선 부활절에 아이들이 Egg hunting 이라는 걸 한다.
반으로 쪼개져서 열리는 플라스틱 계란을 줍는 거다……
계란 속엔 반지나 스티커같은 작은 선물들이 들어있다……
때로는 황금 색종이를 씌운 황금 계란도 만들어서 진짜 찾기 어렵게
숨겨둔다……
이거 찾는 애한테는 큰 선물을 주기도 하고 가족끼리 할 때는 돈을
주기도 한다……
신랑: 그걸 왜 내가 해요?
시어머니: 그럼 털옷입는 것도 더운데 니나가 하냐?
신랑: ………
으헤헤헤헤헤~ 그럼 나만 보내고 자긴 놀 줄 알았나?
울 시어머니가 나만 일 시킬리가 없지롱~
방에 들어오자마자 얍삽한 신랑, 날 꼬시기 시작한다……
신랑: 토욜날 쇼핑갈래?
니나: 자갸는 쇼핑 싫어하쟎어
신랑: 하니가 좋아하니까 하니를 위해서 가는 거지
니나: 하지만 난 토끼해야 돼
신랑: 안한다구 그럼 엄마두 괜찮다구 할거야
니나: 하지만 하고 싶어
신랑: 정말?
하고 싶긴 뭘 하고 싶어…… 교회에서 하라니까 하는 거지……
글구 신랑이 얍삽하게 구니까 팅기는 거지…… 으히, 재밌다……
신랑: 토끼옷 무지 더워…… 너 후회할걸……
니나: 티없이 맑은 동심을 위해 이 한몸 바치겠어…
내가 확고한 결심을 보이자 신랑이 서서히 삐져가고 있는게 보인다……
이쯤 했으면 입을 한자나 빼물고 나가야 하는데……
반대로 갑자기 쪼그려 앉더니 눈을 비빈다…
니나: 뭐, 뭐하는 짓이야?
인간이 대답은 안하구 마구 가슴에 기대며 눈을 비빈다……
신랑: 쇼핑가자~ 옹개옹개!!!!
니나: ???????
신랑: 옹개옹개!
니나: 옹개옹개??????
신랑: 응~ 옹개옹개~
니나: 뭐하는 거야?
신랑: 안 가면 이렇게 운다구… 옹개옹개…
퍼억~~!!!!!!
그놈의 TV 유치원이 또 말썽이렷다!
모라모라하는 것도 가관이었는데 이젠 옹개옹개라니…
니나: 똑바로 해야지! 응애 응애 (이런 걸 왜 가르쳐야 하지… -_-)
신랑: 옹개옹개…… -_-
니나: 응애 응애라니까!
신랑: 옹개옹개……
엉덩이를 엉덩기라고 하는 인간인데…… 할말 없다…
하지만 나도 그동안 심신이 많이 단단해지긴 단단해졌나 보다……
막강 응애응애 애교에도 넘어가지 않고 꿋꿋히 교회로 왔다……
토끼옷은…… 정말 더웠다……
옷뿐인가, 토끼 귀가 달린 모자, 장갑에 털신발까지……
아우, 쪄죽겠다……
울 신랑은 툴툴대며 플라스틱 계란에 선물을 넣고……
그때 이쁜이가 나타났다
이쁜이: 아저씨!
신랑이 나를 바라본다……
한국 남자 어른이라곤 없는데 이쁜이가 누굴 저렇게 부르나 알수
없다는 표정……
이쁜이가 신랑한테 달려가더니 손을 톡톡 친다……
이쁜이: 아저씨, 안녕하세요!
신랑: 으헉~!
신랑이 나한테 뛰어온다
신랑: 니나, 니나…… 나보고 아좌씨래!
이쁜이: 아저씨, 어디 가세요?
신랑: 왜 내가 아좌씨야?
니나: 결혼했음 아저씨지, 딴 게 아저씨야?
신랑: 엥?????
이쁜이가 또 신랑을 부르며 달려온다……
내가 한국말을 하니까 당연히 울 신랑도 한국말을 한다구 생각하는 거
같다……
이쁜이: 아저씨, 아저씨이~!
신랑: No! No 아좌씨!
니나: 아저씨보고 아저씨라는데 왜그래?
신랑: 나 아좌씨 아냐!
니나: 결혼한 남자는 아저씨야!
신랑: 아냐! 아프리카 테러 아줘마랑 다녀야 아좌씨야!
(신혼여행 일지 참조…… 미치겠다…… -_-)
니나: 웃기는 소리 좀 하지마!
신랑: 싫어! 아좌씨는 Old man 들이야!
그때가 제작년이었으니 울 신랑 나이가 미국 나이로 24살……
봄이라 생일도 지나기 전이니 23살……
아저씨라고 하기엔 사실 좀 어렸다……
그러나 이쁜이가 영어로 하는 우리의 대화를 알게 뭔가……
이쁜이: 아저씨, 계란!
신랑: No 아좌씨!!!!
이쁜이: No? 왜요?
신랑: No 아좌씨!!!
이쁜이: 계란 줘요!!!! 아저씨이~
신랑: No, no!!!!!
으하하하하하~ 영어 못 알아듣는 이쁜이랑 한국말 못 알아듣는
신랑이랑 옆에서 보니까 가관이다……
이쁜이: 아저씨 미워!
신랑: Good! 아좌씨 is 미오! No 아좌씨! Call me Paul
이쁜이: 네?
신랑: Paul!
이쁜이: 아, 폴아저씨!
신랑: No, no!!!!!
으허허허허~ 무슨 쑈가 이렇게 재밌나?
이쁜이는 울 신랑이 계속 No! 를 연발하자 계란을 안 주겠단 말인줄
알고 눈물이 글썽해진다……
구원의 싸인을 담아 나를 바라본다……
이쁜이: 나만 계란 안 준데요……
니나: 아직 계란 주는 시간 아냐, 마당에 뿌리면 찾는거야
이쁜이: 정말요?
니나: 그래, 이따 애들이랑 같이 찾아, 알겠지?
이쁜이: 네~
울 신랑보고 밉다구 그러더니 이제 오해가 풀렸나보다……
신랑 손을 또 톡톡 건드린다……
이쁜이: 아저씨, 안녕~
신랑: 크헉~!
이쁜이가 사라지자 날 붙잡고 쨍쨍거리기 시작한다……
신랑: 왜 아직도 나보고 아저씨래!
니나: 아저씨니까……
신랑: 싫어!
니나: 그럼 싫어해…… -_-
계란을 뿌리고 좀 기다리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이쁜이도 정신없이 바구니에 계란을 담기 시작한다……
앗, 한 남자애가 황금색 계란을 찾았다…
신나서 계란을 들고 상품을 받으러 뛰어온다……
으허허허허, 귀여운 녀석, 금발 머리가 찰랑찰랑, 꼭 인형같다……
니나: 저기 있는 큰 선물 좀 갖다줘
신랑: 오케……
신랑이 선물을 가져다 주자 금발 머리 녀석이 외친다
금발: Thank you, 촤씨!
신랑: What?
금발: 촤씨!
신랑: 촤씨??????
금발: Your name is 촤씨……
금발 머리가 이쁜이를 가리킨다…… 이쁜이가 손을 흔든다
이쁜이: 아저씨이~
금발: 촤씨~
신랑: 켁!
이쁜이가 아저씨, 아저씨 하니까 애들이 따라서 울 신랑을 아저씨라고
불렀나보다……
신랑: 애들이 나보구 촤씨래……
니나: 으허허허허, 좋~오은 이름이구만……
신랑: 시러!
계란을 다 주웠는지 이쁜이가 신랑한테로 온다……
이쁜이: 아저씨이~
신랑: 으헉~!
신랑이 이쁜이를 피해 사무실 쪽으로 간다……
이쁜이가 소리친다……
이쁜이: 어디 가요? 아저씨이!!!!!
이쁜이가 소리를 치자 갑자기 모여있던 아이들이 다같이 소리를 지른다.
아이들: 꺄아아아아아아악~ 촤씨~!!!
우르르 몰려온다……
이쁜이가 갑자기 뛰기 시작한다……
이쁜이가 뛰자 애들도 뛰기 시작한다……
애들은 왜 한 명이 뛰면 다 뛰는 걸까…… -_-
수십명이 갑자기 교회 뜰을 마구마구 뛰기 시작한다……
이쁜이: 아저씨 잡기~!!!!!
미국 아이들: 촤씨~ 차키~!!!!!
신랑, 니나: 뭐하는 짓들이야!
아이들: 꺄아아아악~ !!!!!!
영어도 잘 못해서 맨날 눈치껏 알아서 어울리던 이쁜이가 갑자기
리더가 됐다……
신랑: No, no!
아이들: 꺄아아아아아악~!!!!!
신랑: No Screaming!
아이들: 꺄아아아아아악~!!!!!
그 와중에서도 한 얼라가 있는 힘껏 목청을 높여 날 부른다 ……
얼라: Ms. Bunny~!!!!
니나: 왜?!
얼라: 촤씨랑 결혼했어요?
니나: 응!
아이들: 꺄아아아아아~
또 방방 뛰기 시작한다…… 아이구, 시끄러워…… -_-
사무실에 계시던 목사님과 울 시어머니 뛰어나오신다……
으허허허허허~ 오늘의 스타 토끼는 멍하니 한 쪽에 서있는데 애들이
신랑을 둘러싸고 촤씨!촤씨! 하면서 깡충깡충 뛰는 모습을 보신다……
시어머니: 아니, 너 지금 뭐하냐?
신랑: 얘들이 날 따라다녀요! 어떻게 좀 해봐요!
시어머니: 좋겄다, 인기많아서……
신랑: 그런게 아네요! 다 저녀석 때문이에요!
이쁜이를 가리킨다……
이쁜이는 자기가 끌어들인 수많은 아이들 사이에 취해서 멋대로
아무 소리나 질러대고 있다……
다른 애들도 이젠 자기가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고 꽥꽥거리고 있다……
이쁜이: Bunny 하구 아저씨하구 결혼했데요, 결혼했데요……
아이 1: Infinity and beyond!!!!!!! (갑자기 왠 토이스토리냐…-_-)
아이 2: Pokemon~!!!
아이 3: Digimon~!!!
아이 4: Bang! Bang!
아이 5: Bunny 촤씨 켤해테요~켤해테요~ (참 빨리도 따라한다… -_-)
아우, 정신 사납구 귀가 멍멍하다……
목사님이 나서서 애들을 진정시킨다……
목사님: Children~! Listen~!
오호, 역시 교회에서 자란 애들이라 목사님 말씀은 듣나보다……
단번에 조용해진다……
목사님: 오늘 재밌었죠?
아이들: 네에~!!!!
목사님: 교회에선 조용히 하는 거죠?
아이들: 네에~!
목사님: Bunny한테 Thank you 했어요?
아이들: Thank you, Ms. Bunny!!! (아구, 귀여워라…… 흐뭇… ^^)
목사님: Paul 한테도 Thank you 했어요?
아이들: ………… (머엉~ )
목사님: 왜 Thank you 안 했어요?
아이 1: Paul 몰라요
목사님: ???????
오옷, 갑자기 이쁜이가 소리친다
이쁜이: I, I know! 폴 아저씨!
아이들: 꺄아아아아악~ Paul 촤씨!!!!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버렸다…… -_-
그날은 목사님 말씀에 의하면 교회 창립이래 가장 시끄러웠던
Easter egg hunting 이었으며…… -_-
울 신랑은 혜성처럼 등장한 구원의 쓰레기 트럭 덕분에 간신히
아이들에게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쓰레기 트럭 지나가는 걸 보더니만 이 얼라들이 거의 반 정신이
나가가지구 소리소리 지르며 손 흔들고 울타리에 기어오르고 난리도
아니더구만……
그걸 보니까 나도 어렸을 때 한국에서 동네 애들과 소독약 뿌리는
트럭 뒤를 쫓아다니던 생각이 나면서 아주 잠깐 목도 메었다……
트럭 쫓아다니면서 무지하게 마셔댔던 그 소독약이 아직 목에
걸려 있나보다 ……
한국에선 요즘도 소독약 뿌릴까?
- 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