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밀레의 `만종`같은 풍경, 바르비종(Barbison)
프랑스의 파리 근교 지역을 '일 드 프랑스(ile de france)'라고 한다. 이곳에는 풍요로운 자연 환경과 고성을 비롯한 많은 문화유적지가 있다. 일 드 프랑스로 이야기하는 지역들은 베르사이유, 샤르트르, 바르비종, 퐁텐블로, 콩피에뉴이다.
프랑스 여행을 할 때 파리만 보고 온다면 프랑스를 다녀왔다고 말할 수 없다. 좀더 프랑스적인 면을 보려면 파리뿐 만 아니라 남부 프랑스 쪽도 봐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파리와 일 드 프랑스 중 한 지역이라도 봐야 한다. 
어디선가 본 듯한 바르비종 마을
살다보면 가끔씩 처음 가보는 장소지만 왠지 예전에 왔던 곳 같고, 지금 벌어지는 일을 예전에 경험했던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를 일컬어서 '데자뷰(Dejavu) 현상'이라고 한다. 이 현상은 대부분 정말 경험한 것이 아닌 일종의 착각이라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프랑스의 바르비종을 찾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데자뷰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밀레의 그림 '만종', '이삭줍기'의 무대가 된 곳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시골 이발관이나 후미진 식당에 가면 밀레의 그림이 걸려 있는 곳이 있다. 우리는 은연중에 수없이 이 그림을 보게 되고 무의식중에 이 그림의 배경을 기억한다. 지금도 바르비종은 밀레가 그릴 당시와 거의 비슷한 경관을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어디선가 이 마을을 본 듯한 착각을 느끼게 된다.
바르비종은 퐁텐블로(Fontainbleau) 궁전에서 약 10km정도 떨어진 아주 작은 마을이다. 일단 바르비종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퐁텐블로를 먼저 들러보면 퐁덴블로는 파리에서 남쪽으로 약 70km정도 떨어진 왕실 사냥터이다. 지금은 파리 시민들의 주말 휴양지로 사랑받고 있는 이곳의 퐁텐블로 성은 나폴레옹 시절에 나폴레옹과 죠세핀이 살던 곳이다. 이 성의 한복판에는 '이별의 광장'이 있는데 실제 이름은 '백마의 광장(Cour du Cheval-Blanc)'으로 나폴레옹이 권력을 잃고 엘바섬으로 유배될 당시 친위대원들에게 한 이별의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곳의 나폴레옹 박물관에는 1층에 나폴레옹이 대관식 당시 입었던 옷이 전시되어 있고 나폴레옹과 죠세핀이 사용했던 방이 있다. 2층에는 나폴레옹 가족들의 용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 성은 역대의 왕들이 증·개축을 되풀이해 여러 가지 양식이 뒤섞여 더욱 멋진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특히 사냥터를 상징하는 말발굽 모양의 성 입구 계단이 인상적이다.
바르비종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퐁텐블로를 이야기한 이유는 바르비종과 퐁텐블로는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에 파리 남쪽으로 내려오면 이 두 곳을 모두 들러야 하기 때문이다. 바르비종은 밀레 뿐 만 아니라 바르비종파 화가들이 머물렀던 마을로 유명하다. 밀레가 살던 집이 그대로 보존되어 '밀레 기념관'으로 공개되고 있으며 루소가 살던 집은 현재 '바르비종파 미술관'으로 꾸며져 있다. 밀레의 집은 프랑스의 전형적인 농가주택으로 마을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는데 마을자체가 그림 속 마을처럼 아주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그래서 파리의 부자들이 이곳으로 옮겨와 살거나 별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마을을 빠져 나와 도로를 걷다보면 밀레의 그림 '만종'의 무대가 된 들판이 나오는데 이곳이 바로 데쟈뷰 현상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특히 가을에 찾게 되면 황금 들녘에서 그림의 장면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80일간의 세계일주 하상호) <<'데자뷰(Dejavu) 현상'>> 데자뷰란, 최초의 경험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본적이 있거나 경험한 적이 있다는 이상한 느낌이나 환상이다. 경험을, 기억(remember)된 사건이라고 한다면, 데자뷰는 아마도 최초의 경험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거나, 또는 공들여서 코드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날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현재의 상황이 방아쇠가 되어, 단편화된 과거의 기억을 회상(recollection)한다고 생각된다. 기억의 단편화가 심하여 다른 기억과 강한 연관이 맺어지지 않는 경우, 현재의 경험이 이상하게 느껴질 것이다.따라서 이미 경험했다는 느낌은, 대개 정말로 예전에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경험할 때는 주위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원래의 경험이 잊혀진 것이다. 원래의 경험은, 데자뷰의 단지 몇 초, 몇 분 전의 사건일지도 모른다.
한편, 데자뷰는 브라이디 머피로 알려진 버어지니아 타이에의 경우처럼, 그림이나 생생한 이야기를 수년전에 들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경험들은, 어린 시절의 흐릿한 기억일수도 있다. 이것은 현생에 일어난 적이 없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전생에 일어난 것으로 잘못 믿어질 수가 있다.
그렇지만, 데자뷰의 느낌이 뇌의 신경 화학적인 활동에 의한 것이며, 과거의 실제 경험과는 관계없을 가능성도 있다. 사람은 누구라도 처음 경험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으며, 이것을 오래전 기억과 연결시킬 수도 있다. 즉, 데자뷰(프랑스어로 이미 보았다는 의미)는, 과거에 이미 본 것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는 상관없이 일어날 수 있다.
이 단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초능력 현상에 강한 관심을 갖고 있던 에밀 보아락 (Emile Boirac, 1851-1917)이다. 보아락의 용어는 우리의 관심을 과거로 돌려놓는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데자뷰의 독특한 점은 과거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바로 현재의 느낌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즉, 경험하고 있는 데자뷰 자체를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들은, 새로운 것이 없는 것 같은 경험을 종종 하게 되고, 혹시 전에 이책을 읽은 것이 아닌가하는 질문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이야기는 전에 보았던 모스 탐정(역주 : 영국의 콜린 덱스터의 탐정 소설의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닐까? 이 장소는 매우 낮익다. 내가 전에 와 본적이 있을까? 그러나, 이러한 경험은, 이상한 느낌이 수반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혼란을 겪을 수는 있지만 데자뷰와 관련된 느낌은 혼란이 아니라 이상하다는 느낌에서 오는 것이다. 당신이 읽었던 책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특히, 나이가 50세이고, 지금까지 수 천권의 책을 읽었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데자뷰 경험의 경우, 현재 인식하고 있는 경험이, 이전에 경험했을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부적절한 감각은, 단순히 책이나 영화를 이전에 읽거나 혹은 본적이 있는지 아닌지 생각하는 경우에는 생기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잃어버렸던 기억이나 전생, 천리안 등으로 데자뷰 경험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 길을 찾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데자뷰의 느낌을 이야기해야 한다. 데자뷰의 느낌의 원인이 기억이 아니라, 인식과 관련된 신경 화학적인 요인에 의한 뇌의 상태일지도 모른다. 정신장애자에게서 데자뷰의 느낌이 흔하다는 것은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데자뷰 감각은 측두엽관련 발작보다 먼저 일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또, 와일더 펜필드(Wilder Penfield)가 1995년에, 그 유명한 측두엽에 전기 자극을 주는 실험을 했을 때, 그는 피험자의 8%가 "기억"를 경험했다고 한다. 그는 자극으로 얻어진 것이 실제 기억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것을 지지하는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환각이었고, 인공적으로 생긴 데자뷰의 첫번째 사례일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