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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연***
형태도,
맛도 알 수 없는 대상을 찾아
멍한 세월도 있었지만
기다림이 많았고
기다림 보다 더 많은 날을
잊는데 쏟아야 했다.
아파하는데 쏟아야 했다.
가슴까지 다 아는 전화번호를
수첩 속 혈흔같은 이름석자 지운다고
지워질리 만무하건만
지우는 연습을 해야 했고
버리는 주문을 외워야 했다.
해 뜨기가 무섭게
수 십년을 여고 앞에서 장님행세를 하며
녹슨 깡통을 끼고 집을 나서는
호호할머니처럼
기억은 육신보다 먼저 잠에서 깨었고
밥 보다 먼저 가슴에 차고 앉았다.
밤새 이루지 못한 잠으로,
새벽같이 집을 나와
허공에 삿대질을 하는 정신을 놓아 버린,
원망의 남정네는 잊어버리고
분노만 남은 여인처럼
여려 터진 심성을 자책(自責)해야 했고
볼 줄 모르는 안목을 자학(自虐)해야 했다.
지인(知人)이 보내온 산삼 모양새를
뚫어지게 바라 본다.
텃밭에 기르던 상추를 보듯
너무 눈에 익고 자연스러운 친근감에
이게 인연이었음을,
이게 기다림이었음을,
통쾌한 자극으로 명치끝을 두드린다.
심마니가 평생을 찾아도 못 찾는다는
그 귀한 산삼은 바로 인연이었다.
많고 많은 초목 속에 숨은 듯 도사리고
많고 많은 능선 속에 안목 있는 자 만이
볼 수 있는
진귀한 산삼은
세상과의 연이었다.
옆에 두고도 찾지 못해 혈안이 되었고
뀅한 눈으로 허공속에다 그려야 했던,
많이 못 주어 미안하고
더 줄래도 더 줄 것이 없어 미안한
세상과의 인연이었다.
글/이희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