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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두대 <12>

사나토스 |2003.07.03 14:11
조회 162 |추천 0

고형사 일행은 쌍칼과 마주 앉아 있었다.
쌍칼이 멍는 눈을 문지르며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었다.

 

"이런... 씨팔...... 저런 것들을 믿고 내가 무얼 한다고.... 으이그... 병신새끼들...."
"그래도 자네 덕분에 좋은 정보를 얻었군."

 

이때, 옆에서 연숙이 날카롭게 그를 쏘아보았다.

 

"그럼, 이제 애들 철수시켜도 됩니까?"

 

쌍칼이 계속 눈을 문지르며 말했다.

 

"그건 아니지. 아직 범인을 잡지 못했으니까."
"아까 그 놈은 왜 아니라고 한 겁니까? 일본도까지 가지고 있고 실력을 보니 그 놈이 분명한데."
"그런 사람이 자네한테 순순히 잡혀왔지."
"그건......."
"어쨌든 쌍칼 자네는 계속 감시를 해줘."
"약속 잊으시면 안됩니다."

 

그때, 연숙이 끼여들었다.

 

"그 사람이랑 무슨 얘기를 했길레 그렇게 오래 걸린거죠? 그래서 여기 계신 사장님이 사람들을 준비시킨 거예요. 무슨 일이 생긴줄 알았다구요."

 

연숙의 입에서 사장님 이라는 소리가 나오자 쌍칼이 멍든 얼굴로 찢어지게 웃었다.

 

"어쨌든 그는 범인이 아니야. 아니, 어쩌면 범인을 대신 잡아줄지도 모르지."
"그게 누군데요?"
"이인겸"
"네에?"

 

고형사를 제외한 전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는 소리를 질렀지만 고형사는 태연하게 말했다.
그리고 바로 쌍칼이 소리를 질렀다.

 

"아 그놈이 이인겸이면 범인 맞구만!"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다시 보자구."


끈질기게 달라붙으며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 연숙을 겨우 떼버리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고형사는 옷도 벗지 안은 채 침대에 누워버렸다.
그리곤 천장을 바라보며 머릿속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간의 일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던 고형사는 다시 벌떡 일어섰다.

 

"그렇군..... 이거..... 서둘러야 해."

 

고형사는 그동안에 피살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면서 자신이 아주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서둘러서 전화기를 꺼냈다.
그리고 바로 김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김연숙입니다."


이제 막 욕실에서 나온 연숙은 젖은 머리칼을 한쪽으로 쓸며 전화를 받았다.

 

"아, 김기자. 나야."
"흥, 무슨 일로 전화를 다 하셨어요? 우린 이제 팀도 아니잖아요."

 

고형사가 끝가지 나중에 말해주겠다며 그냥 가버린 것에 대해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고 있던 그녀의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올 리가 없었다.

 

"최근 몇 년 동안 발생한 대형사고를 전부 조사해줘."
"흥, 직접 하세요. 뭐....."
"그러지 말고...... 그 얘기 지금 바로 기사로 나갔다가는 큰일 난단 말이야. 하지만 사건이 해결되는 대로 바로 다 말해줄 테니까........."
"큰 일이 나다뇨?"
"이 사건 유령소동으로 만들거야?"

 

연숙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고형사의 말이 맞다.
만일 이인겸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이 지금 밝혀지면 이제까지 나간 기사는 전부 거짓말이 된다. 연숙 자신도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범인으로부터 직접 듣지 않았는가.
그랬으면서 고형사의 부탁으로 그가 범인일 가능성이 크다는 기사를 계속 썼다.
지금 진짜 범인이 잡히지 않은 시점에서 이인겸의 등장을 자신의 손으로 밝힐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인겸이 제 발로 찾아왔다가 형사와 대화를 나누고는 사라졌다는 기사나 어떤 파급을 가져올 지는 뻔하다. 그리고 그가 일본에서는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도 다른 기자들이 곧 알아낼 것이다.
어차피 다른 기자들이 알기 전에 자신이 먼저 기사를 내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자 이내 목소리가 풀렸다.

 

"그럼 저한테 먼저 모든 상화을 말씀해주시겠다는 약속 꼭 지키세요."
"그럼, 물론이지."
"무슨 일인데요?"
"그동안 일어난 대형사고를 조사하고 그 대형사고가 일어난 곳의 공사가 시작된 시기, 그리고 그 시기에 맞춰 특별한 움직임을 보인 인물을 알아봐줘."
"그건 좀 어려운 부탁인데요."
"경찰이 나서기에는 민감한 부분인거 잘 알잖아."
"흥, 그럼 내일 아침에 봐요."

 

연숙은 새침스럽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전화기를 내려 놓은 고형사는 다시 침대에 풀석 쓰러지며 이제서야 피살자들의 진짜 공통점을 발견한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에 피살당한 강간비디오를 촬영하던 사람과 그에게 여자를 공급하던 직업소개소의 여자는 범인의 살인리스트에 없던 인물일 것이다.
단두대가 노리는 살인대상에 대한 범위를 형사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계책이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고형사는 잠을 청하기가 힘들어졌다.
그는 냉장고로 가서 문을 열고는 오래전에 사다 놓은 소주를 꺼냈다.
그때 고형사는 이상한 느낌을 감지했다.
그는 집에서는 신문을 보지 않는다.
하지만 현관문의 신문이 들어오도록 있는 구멍의 작은 문이 옆으로 조금 움직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고형사는 마음의 동요를 진정시키며 꺼낸 소주병을 거꾸로 쥐었다.
여차하면 무기로 사용할 계획이었다.
안쪽에 권총이 있지만 지금 그 총을 만지면 지켜보고 있을 침입자가 먼저 공격을 할지 모른다.
고형사는 아직 침입자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리고 일부러 피곤한 듯한 모습으로 거실의 불을 켜려고 천천히 다가갔다.
한 손을 스위치 쪽으로 뻗으며 눈은 어딘가에 몸을 숨기고 있을 침입자를 찾으려고 했다.
그는 며칠씩 집을 비우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 현관문의 이상을 발견했을 때는 도둑이 든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는 생각을 바꾸었다.
만일 도둑이라면 뒤진 흔적이라도 있을 것이다.
침입자는 고형사가 들어온 다음 들어온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스위치로 손을 뻗던 그는 몸을 굳혔다.
손 끝이 차가운 금속에 먼저 닿았기 때문이다.

 

"당신인가?"

 

고형사가 물었다.

 

"다시 만나는군."

 

어둠 속에서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처음 들었던 그 자의 목소리는 분명했는데 조금 달랐다. 무언가 고통을 참고 있는 목소리였다.
고형사의 머리속에 오보로 형사가 떠오르면서 독 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해독제를 찾으러 왔군."
"주겠나?"

 

고형사는 천천히 몸을 돌렸고 단두대는 칼을 겨누었다.
실내는 어두웠지만 그의 얼굴에 땀방울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해독제는 주겠다. 대신...."
"자수를 하라는 건가?"
"그렇다."
"이젠 늦었다. 이미 놈들이 날 포착하기 시작했고 고형사 당신이 지금 눈치챈 것처럼 내가 노리는 목표를 지키고 있다. 시간이 없다."
"포기 해."
"해독제를 다오. 시간이 없다."

 

말하는 것도 힘들어진 단두대는 숨을 거칠게 쉬기 시작했다.

 

"만일 주지 않겠다면 당신을 죽일 수 밖에 없다."
"꼭 그래야만 하나?"
"당신 앞에 나 스스로 나타나겠다. 시간을 다오."
"그럴 수 없다. 난 형사다. 그리고 당신은 살인범이고."
"아니..... 난 당신들의 단두대일 뿐이다. 당신은 느끼지 못하는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아무렇지 않게 돈과 맞바꾸는 그런 쓰레기들이 버젓이 숨쉬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가?"

 

그의 숨이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었다.

 

"살고싶다면 자수해라. 해독제를 주겠다."
"자수해도 어차피 죽는다."
 
이 말을 하며 단두대는 칼을 휘둘렀다.
칼은 고형사의 목에서 정확히 멈추었지만 살갗을 살짝 파고들면서 따끔한 느낌과 함께 피를 머금었다.
하지만 고형사는 흔들림 없이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총을 꺼내면 죽는다."

 

하지만 천천히 움직인 고형사의 손에는 총 대신 작은 주머니가 들려져 있었다.
그는 그 주머니를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칼을 한손으로 치우며 천천히 문 쪽으로 움직였다.

 

"김인겸 그 자에게 당신을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적어도 내 손으로는 말이지."

 

이렇게 말한 그는 현관문을 열고 조용히 나가버렸다.

 

집에서 나온 그는 김마담이 운영하는 가게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것인지 온통 혼란스러웠지만 이상하게도 후회는 일지 않는 자신의 감정에 강한 의구심을 품은체 담배를 꺼내물었다.

 

 

 

단두대는 힘없이 칼을 내렸다.
고형사가 떨어뜨리고 간 작은 가죽주머니를 바라보던 그는 고형사가 나간 문을 바라보다가 울컥 하며 입에서 피를 쏟았다.
그리곤 조용히 주머니를 들어서 그 안에 든 작은 알갱이들을 입 안에 털어넣었다.
알갱이를 입 안에서 잘게 부수며 그는 인겸의 모습이 떠올랐다.
배가 부른 채 송장처럼 누워있는 누나의 발을 닦아주며 눈물을 흘리던 모습.
목을 멘 누나를 발견하고 사력을 다해 누나의 다리를 부여잡고 위로 올리며 우는 모습.
그리고 그의 회색이 되어 버린 오른쪽 눈동자........
인겸이 고형사를 통해 자신에게 전해준 해독제를 삼키며 그는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는 눈물을 훔치며 작은 수첩을 꺼냈다.
그리고는 이미 지운 황필승의 이름 밑에 있는 이름을 주시했다.


고형사는 오후 늦게 서에 나왔다.
사무실로 올라갔지만 김순경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김순경, 아직 안나왔나?"
"아니요. 현장에 계십니다."

 

순간 그의 뇌리에 스치는 인물이 있었다.
그리고 김순경이 그의 생각을 현실로 바꾸어 주었다.

 

"새벽에 박충호 의원이 살해당했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다시 방문한 박충호의 집은 지난 밤에 보였던 경호원의 수만큼 경찰들과 기자들로 붐비고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흰 가운을 입은 감식반 요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이미 철수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노과장이 다가왔다.

 

"고형사, 좀 늦었구만."

 

그가 말하는 동안 방 안으로 들것이 들어가고 있었다.
노과장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는 바로 사체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예상한 대로 박충호 의원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목이 잘리지는 않았다.
가까이 다가간 고형사의 눈에 박충호 의원의 목에 남겨진 붉은 선이 보였다.

 

"그자가 아빠를 죽였어요."

 

사체를 관찰하려는 고형사에게 말을 건 사람은 그의 딸인 박성희였다.

 

"당신은 그가 올 거란 걸 알고 계셨어요."
"........"
"그런데 당신은 그냥 가버렸다구. 당신이 경찰들을 배치한다고 했잖아!"

 

분명 고형사는 경찰들을 배치한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쌍칼의 연락을 받으며 그럴 필요성을 잊은 것이었다.
그의 실수로 박충호 의원이 죽은 것이다.

 

"이 나쁜 자식아! 왜 아빨 죽게 내버려 둔거야? 말해봐!"

 

그녀는 고형사의 멱살을 잡으며 절규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그녀의 손에 흔들리며 그녀가 뿌리는 눈물방울이 얼굴에 묻도록 가만 있었다.

 

"너도 아빠가 죽기를 바랬겠지. 이 개자식!"

 

그때 김형사와 연숙이 그녀를 진정시키려 애쓰며 고형사에게서 멀리 떼었다.
그녀는 고형사를 무섭게 쏘아보며 들것에 실려나가는 아빠의 시신을 따라갔다.
고형사가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있자 연숙이 다가왔다.

 

"어떻게 된 거예요?"
"어제 술을 많이 마셨어."
"미쳤어요? 범인 안 잡으실 거예요?"
"맞아. 난 분명히 미쳤어. 그래서 그걸 줘버렸지. 그가 시키는 대로 말야."
"무슨 얘기에요?"

 

연숙은 그렇게 물으며 고형사의 분위기가 평소와는 확실하게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풍겨오는 술냄새에 아마 과음을 해서 그런가 보다 하며 그 느낌을 지워버렸다.
김형사는 옆에서 가만히 있다가 둘 다 말없이 가만 있자 얼른 이제까지 현장을 조사한 내용을 말해주었다.

 

"사건 당시 경호원들은 전부 돌아간 생태라고 합니다."

놀라운 사실이었지만 그날 그가 본 박의원의 얼굴을 떠올리자 그랬으리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성희양은 박의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계속 남아서 박의원 옆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
"네, 범인을 봤다고 합니다. 박충호 의원과 얘기를 나누는 것을 문 밖에서 들었다고 합니다."
"문 밖에서?"
"네, 박의원이 그녀를 내보내고 문을 잡갔다고 합니다. 그리곤 범인과 함께 있다가......."
"범인은?"
"박의원을 살해한 후에 바로 저쪽 창문으로 달아난 것 같습니다."
"같다니?"
"성희양의 신고로 경찰들이 와서 잠긴 문을 부수고 들어왔다고 합니다."
"음......."


박충호 의원의 장례식은 너무 빠르게 치루어졌다.
모든 상황을 예감한 그는 딸에게 자신이 죽게 되면 해야 할 일들을 유언으로 남겼고 그녀는 그대로 실천에 옮겼다.
사체 부검을 하려는 검시관들과의 마찰이 있었지만 유언장을 내민 변호사에 의해 통과되었다.
유언장에는 자식들과 아내에게 남기는 이야기와 얼마 안되는 재산의 분배에 대한 내용이 있었고 자신이 죽은 다음 치루어질 장례식에 대한 것도 언급되어 있었다.
하루를 넘기지 말고 땅속에 묻히게 해 달라는 것을 딸 성희에게 부탁하고 있었다.
자신의 일이 세상에 공개되면 어차피 장례식에 아무도 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박성희 그녀를 제외한 가족들은 이미 외국으로 나가 있는 상태였다.
단두대라는 이름으로 신문사로 배달된 박의원의 과거에 대한 기록은 곧 신문으로 대서특필 되었고 연숙도 그렇게 기사를 썼다.
이번엔 다른 기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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