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르릉
멀리서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 거대한 도시의 한복판도 아니건만 뭔가 거대한 빌딩이 무너질때나 날 법한 소리에 우리들은 모두 긴장했다. 그룹 사이에 긴장의 끈이 팽팽하게 조여지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정도로. 필시 어딘가의 건물이 저번 폭격에 의해 망가져 있다가 풍화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으리라.
"무슨 우리동네가 북두의 권에 나오는 세기말 도시도 아니고.."
나는 궁시렁거리며 식칼을 앞으로 드리운 채 발을 옮겼다. 하지만 다른 녀석들은 농을 던질 여유가 없는지 묵묵부답 내 뒤를 따라올 뿐이었다.
우리가 집에서 나온 지 약 10분정도가 지났다. 혼자서라던가 두세명이었더라면 벌써 편의점까지 반은 왔겠지만 일행이 많은데다 경계에 경계를 거듭하고 있는 상태다보니 우리의 움직임은 더딜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우리들은 여기까지 오면서 단 한마리의 좀비와도 싸우지 않았다. 다만 마주쳐도 피해갔을 뿐.. 녀석들이 우리의 시야에 들어올 때 마다 그룹 가운데의 여자들이 심하게 동요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아직 좀비에게 단 한번도 무기를 휘둘러본 적이 없는 재복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후, 후우우.."
깊게 심호흡을 하는 소리와 함께, 재복이가 들고 있는 쇠파이프가 덜덜 떨리는 것이 곁눈으로 보였다. 내가 그 쇠파이프를 손으로 꽉 쥐자 재복이가 나를 쳐다보았다.
"정신 바짝 차려. 적어도 서영이는 니가 지켜야지."
"그.. 그래."
재복이는 온 몸에 잔뜩 열이 올랐는지 거의 눈에 핏발이 선 것이 보일 정도였다. 하기야 엄청난 부담일 것이다. 첫 싸움이 모두를 지키는 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테니.. 나는 우리가 집밖으로 처음 나섰을 때 겨우 한 마리의 좀비에게 몰살당할 뻔했던 일을 떠올리며 입을 삐죽였다.
뭐 나라고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다른 이들보다 아주 조금 더 두렵지 않을 뿐. 그건 나뿐만이 아니라 윤호, 태완이, 수정형도 모두 같을 것이다.
녀석들은 우리를 확실히 죽일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좀비다."
나와 나란히 선두에서 걷고 있던 태완이가 나지막히 말했다.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곳은 양 쪽이 집과 벽으로 둘러쌓여 있는 골목의 큰길. 빠질 길은 없지만 그렇다고 녀석을 꼭 죽여야 하는 것도 아니다. 기척을 내지 않은 채 피해 갈 수만 있다면.
나는 시야를 조금 넓혀 놈의 뒤를 보았다. 금방 골목을 빠져나가는 길이 보였고 그 앞엔 큰길이 보였다. 십자의 교차로였다.
"어쩔까?"
"돌을 던져서, 달리는 놈이면 카운터로 박살. 찌질이면 가서 죽인다."
그냥 지나치기엔 위험부담이 조금 크다. 장거리 무기가 있어서 한방에 끝낸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수정형은 지금 총을 봉인한 상태고, 또 이런 놈 하나를 상대로 귀한 총알을 낭비할 수도 없는 일. 그렇다고 타정총을 쓰기엔 거리가 좀 애매하다. 확실히 처리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 그냥 우리가 나서서 확실히 제거하는 수 밖에.
나는 돌을 집어들며 말했다.
"다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긴장풀지 마."
내 말을 들은 모두가 척 하며 여차할 때 일어날 사태에 대비해 신경을 곤두세우는 게 느껴졌다. 나는 간결한 동작으로 돌을 녀석의 가슴팍에 던졌다.
탁
놈은 뒤로 살짝 비틀 하더니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으음, 이래서는 잘 모르겠는데.
"직접 가서 봐야하나.. 썅."
나는 혀를 차면서 식칼창을 꽉 움켜쥐었다. 태완이와 내가 움찔움찔 하며 놈에게 다가가고 있는데 갑자기 웬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꺄아아아!!"
"어?"
"사람이다!"
소리도 소리지만 더 놀란 건 우리들이었다. 눈앞의 좀비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가 갑자기 들려온 어떤 여자의 비명소리에 우리들은 순식간에 우왕좌왕거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내가 아까 주시했던 건너편의 교차로에서 분명히 한 꼬마가 마구 뛰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뒤로 런너 한마리가 녀석을 미친듯이 쫓아가고 있었다. 중간에 한 번 넘어졌는지 놈은 스스로의 몸을 가누지 못하고 굴렀다 넘어졌다 기었다 달렸다 하며 꼬마의 뒤를 쫓고 있었다.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어이! 여기로 와!"
나는 내 불과 몇걸음 앞에 좀비가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흔들며 녀석을 소리높여 불렀지만 그 애는 들리지 않는지 앞의 차도에서 마구 맴돌며 좀비를 떨쳐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에에이, 답답해!"
퍼까앙
순간, 내 옆으로 뭔가가 확 지나가더니 홈런을 칠 때나 들었을 법한 요란한 소리가 울러퍼졌다. 윤호가 앞으로 달려나가 멍하니 있던 좀비를 쇠빳다로 날려버린 것이다. 윤호녀석이 흥분했던 탓인지 머리를 제대로 부수지 못한 듯, 윤호에게 얻어맞은 좀비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제길! 너란 놈은!"
"우오오!"
퍽퍽퍽퍽
그 광경으로 보고 바로 앞으로 달려나간 나와, 주저하지 않고 마무리를 지으려 방망이를 휘두른 윤호의 협공에 그 좀비는 누더기가 되어 땅에 널브러졌다. 사방에 피가 튀어 난장판이 되자 뒤에 있던 친구들 중 몇몇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않고 바로 앞으로 뛰쳐나갔다.
"뭐해! 저 꼬마 죽겠어!"
"맞아! 다들 뛰어!"
"씨바, 죽기 아님 까무러치기다!"
금방까지만 해도 조용히 이동했던 우리는 억눌려있던 두려움을 떨쳐내기라도 하듯 정신없이 소리를 치며 각자 무기를 치켜들고 짐을 진 채 차도로 뛰어나갔다. 우리의 엄청난 기세에 더 민감하게 반응을 한 건지 그 좀비가 마악 잡기 직전이었던 꼬마를 뒤로하고 우리에게 달려왔다.
"께아아아아아악!!"
몇 번을 보아도 엄청난 박력이다. 놈은 머리를 마구 흔들면서 입을 직각 이상으로 벌리고 피가 섞인 침을 마구 흘리면서 우리에게 달려왔다. 순간 그 박력에 기선을 제압당한 우리들은 언제 달려나왔냐는 듯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제길, 쫄면 어쩌자는 거야!
나는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저 새끼가 런너라는 놈이야! 첨보는 사람 손!"
"손들 여유가 어딨냐!"
"다들 조심해요!"
다들 움찔하는 새 앞으로 나선 건 역시 나와 윤호, 태완이. 이렇게 넓은 곳에서 정면으로 런너를 상대해 본 적이 있는 건 우리들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이들은 말을 하지 않아도 뒤로 물러서며 서로를 추스렸다.
"이재복, 쇠파이프!"
나는 재복이가 차마 대답을 하기도 전에 녀석에게 달려가 쇠파이프를 뺏어들고, 곧바로 몸을 돌려 있는 힘을 다해 런너 좀비를 향해 그것을 집어던졌다. 파이프는 빙빙 돌면서 직선을 그리며 날아가 놈의 어깨를 강타했다. 곧게 달려오고 있던 놈은 힘이 작용하는 방향이 무너지자 요란한 포즈로 땅에 자빠졌다. 허나 놈은 곧바로 굴러 일어나려고 했다.
그걸 가만히 둘 리가 있나, 신발!
"오우라아아아!!"
나는 언젠가 봤던 만화의 주인공이 외치는 기합소리와 함께 젖먹던 힘까지 짜내어 놈을 아래에서부터 쳐올렸다. 뻐억 하는 소리가 나며 내가 휘두른 쇠파이프가 찌그러졌고, 놈의 상반신이 심하게 젖혀졌다. 힘의 반작용을 이기지 못해 잠깐 멈춘 내 위로 윤호가 뛰어들며 외쳤다.
"빠세!!"
퍼까아앙
무시무시한 소리가 울려퍼지며 다시 한번 작렬한 윤호의 홈런. 목 언저리를 얻어맞은 좀비는 만(卍)자를 한 채 땅에서 빙글빙글 돌며 저편으로 굴러갔다. 태완이는 주저없이 그 놈을 따라가 얼굴에 칼집을 내 주었다.
"후우.."
"한마리 정도아 밥이지."
생각보다 빨리 끝나서 다행이다. 나는 한숨을 쉬고 어깨를 빙글빙글 돌린 뒤 찌그러진 쇠파이프를 쳐다보았다. 내 손이 안 다친 게 다행이군.
"흑, 흑.."
각자 안도에 빠져 긴장을 풀고 있는데 그 조용한 틈새로 누군가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그 여자아이였다. 녀석은 가장 앞으로 나간 태완이에게서 열 발자국쯤 떨어진 곳에서 무릎을 꿇고 울고 있었다. 우리는 그 아이에게 다가가 짐을 내려놓고 근처에서 혹시나 몰려올 좀비를 위해 방어태세를 취했다.
꼬마는 긴 생머리에 리본을 달고 비싸보이는 원피스를 입고 있는, 딱 보기에도 꽤 있는 집의 아이처럼 보이는 녀석이었다. 덩치로 봐서는 많아야 열 살 정도 되어 보였다. 나는 무기를 내려놓고 그 아이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괜찮아?"
"만지지 마!"
타악
내가 손을 얹기가 무섭게 녀석은 소리를 빽 치더니 내 손을 쳐냈다. 나는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어안이 벙벙해 아무 말도 못하고 녀석을 쳐다보았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꼬마는 벌개진 얼굴로 씩씩거리더니 발딱 일어나며 외쳤다.
"흑.. 너네들 누구야? 흑! 아까 나한테 달려온 그 아저씨는 누구야! 왜 날 만져? 변태! 엄마- 어딨어! 으아아아앙- 어제부터 어디 있는거야! 엄마아-"
"..."
"..."
뭥미..?
나와 일행은 황당한 얼굴로 녀석을 쳐다보았다.
녀석은 아직 이 나라가 어떻게 된 건지를 모르는 모양이었다. 부모님을 잃어버린 건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녀석은 당치도 않은 소리를 지껄이며 자리에 주저앉아 떼를 쓰고 있었다. 내가 굉장히, 굉장히, 굉장히 싫어하는 종류의 인간이다. 꼬마든, 어른이든.. 나는 실룩거리는 얼굴을 애써 참으며 말했다.
"어이, 꼬맹아. 일단.."
"꼬맹이라고 부르지 마! 그럼 나도 너 변태라고 부를거야!"
"..."
나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별로 관대하진 않다. 나는 아수라백작처럼 양쪽 얼굴이 다른 표정을 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 하. 그.. 그럼 니 리음.. 아니, 이.. 이름이 뭐냐..? 이 망하.. 아니, 버릇이 좋지 않은 새.. 아이야."
"참아라, 김진환."
내가 분노를 겨우 억누르며 횡설수설하고 있는데 태완이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그 꼬마는 눈물을 닦더니 나를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말해줄 이유 없어! 니가 뭔데?"
"..."
진짜 대책이 없는 녀석이다. 이대로 이 녀석과 계속 이야기를 하면 아동 살인범이 될 것 같아 나는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아무나 이 녀석이랑 얘기좀 해봐요."
"내가 할게."
서영이었다. 하기사 여자들끼리가 더 잘 통할지도 모르지. 서영이가 꼬마에게 다가오는 걸 보며 나는 무기를 집어들고 밖으로 빠졌다. 녀석은 여자가 상대라 그런지 조금 수그러진 것 같았다. 서영이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녀석 옆에 쭈그려앉으며 말했다.
"저기.. 이름이 뭐니?"
녀석은 가만히 서영이를 쳐다보더니 다른 곳을 보며 말했다.
"이나라."
"이름이 나라구나. 부모님은 어디 계셔?"
"몰라."
꼴을 딱 보니까 난리통에 부모님과 헤어진 온실속의 화초로군. 이건 또 엄청난 물건을 맡게 되었구만.
내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혀를 차는데 수정형이 다가와 말했다.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하긴요. 부모님이랑 헤어진 쥐뿔도 모르는 꼬맹이죠."
필시 엄청난 일을 겪었을 것이다. 뭐 멀쩡하게 뛰어다니고 소리치는 걸 보니 눈앞에서 부모님이 죽었다던가 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앞날이 걱정되는군.
내 말을 들은 수정형이 뭔가를 말하려는데 서영이와 나라라는 꼬맹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 살았어?"
"합정동에.."
"몇 살이야?"
"아홉 살."
녀석은 저래보여도 꽤나 고달프고 외로웠는지, 대답을 하기 시작하더니 다음부턴 술술이었다. 서영이는 이제 다 됐다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녀석에게 재차 물었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어?"
"엄마랑 아빠랑 다른 사람들이랑 막 버스타는데, 나 잠깐 화장실 다녀온다고 그러고 내렸어. 근데 버스가 가버려서.. 막 쫓아갔는데 못 따라갔어. 분명히 화장실 잠깐만 갔다온다고 했는데.."
"저런."
"쯧."
여기저기서 안타깝다는 듯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거 참, 엿같은 상황이구만.
가만.. 버스?
나는 어제 우리 집으로 돌아오다가 본 지옥버스를 떠올렸다. 분명 그 차가 온 곳은 합정동 방면이다. 게다가 이런 세상에 저런 꼬맹이가 혼자서 며칠을 살아남을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다면..
나는 순간 뭔가가 치밀어올라 욱하는 마음에 녀석에게 거의 사실일 내 추측을 말하려다가 꾹 눌러 참았다. 혹시나 아닐수도 있고, 만약 그렇지 않다 한들 녀석에게 말해서 좋을 건 하나도 없지.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는,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믿음이 살아가는데에 큰 힘을 줄 때가 있으니까.
하지만.. 슬프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배고파서 슈퍼 들어갔는데, 주인아줌마도 없고.. 나쁜 짓이지만 너무 배고파서 과자도 먹고, 걸어오고 그래서 여기로 왔어."
"그래.. 힘들었겠구나."
우리는 방금전 녀석의 안하무인이었던 태도를 그새 잊어버리고 녀석을 동정했다. 하지만 나는 동정에 앞서 녀석이 앞으로 알게 될 너무도 처참한 현실에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버스란 건 내가 봤던 그것일 수 밖에 없다. 나는 당시에 나와 함께 있었던 태완이, 수정형, 아름이를 쳐다보았지만 거기까지 도달한 건 나뿐인 것 같았다.
뭐..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진 말자. 지금은 안전한 곳으로 피하는 게 순서다.
"어이 꼬맹.. 나라야."
나는 말을 꺼내다 황급히 대사를 수정하며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녀석은 한바탕 쏟아내고 난 뒤라 조금 기분이 풀린 듯 했다. 아까처럼 퉁명스럽게 말대꾸를 하지 않는 걸 보니. 나는 혹시라도 녀석을 더 삐뚤어지게 만들까 두려워 조심스레 말했다.
"우린 지금 안전한 곳으로 가고 있어. 아까 널 따라온 변태 아저씨 있지? 그런 사람들이 지금 우리 동네에 가득하거든."
"진짜?"
"응. 그래서 말인데, 우리랑 같이 갈래?"
녀석에게 있어선 뜬금없는 제안이겠지만, 우리에겐 별다른 선택권이 없다. 살아남겠다고 모였으면서 이런 좀비들로 들끓는 곳에 꼬마를 홀로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니까. 더군다나 부모님도 없는.
"으음.."
녀석은 고민을 하는 듯 했다. 역시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우리를 따라나서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이라는 것을. 녀석은 가만히 생각을 하다가 우리들을 차례대로 둘러보더니 마음을 굳힌 듯 했다. 녀석은 대답을 하려다 말고 내가 어깨에 있는 식칼창을 보더니 움찔 하며 말했다.
"그건 뭐야?"
"어? 아아.. 그 변태 아저씨들을 쫓아낼 무기야. 이걸로 지켜줄게."
"정말?"
"정말."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옆에서 서영이가 나를 거들었다.
"나라야. 우리가 지금 가는데는 편의점이야. 컵라면도 있고 아이스크림도 있어."
그 얘기를 듣자 녀석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응! 갈래!"
니가 간다고 안 하면 어쩌겠니. 싫다고 해도 우리가 데려갈텐데. 나는 조금 복잡한 의미를 품고 있는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라도 나를 따라 일어나 다리를 탁탁 털더니 말했다.
"대신 조건이 하나 있어."
쪼만한 게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서..
내가 선뜻 대답을 하지 않고 있는데 내 뒤에서 수정형이 말했다.
"뭔데?"
"우리 엄마랑 아빠를 찾아줘."
나는 그 말을 듣고 움찔했다. 당연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어쩔 도리가 없으니..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것도 있으니까.
'이걸 어째야 돼냐' 라는 듯한 표정으로 나만을 쳐다보는 다른 이들을 대변해 내가 말했다.
"알았어. 노력해볼게."
"와! 엄마한테 새 옷 사달라고 해야 되는데 잘됐다!"
녀석은 기운이 좀 났는지 팔짝팔짝 뛰며 우리에게 빨리 가자고 재촉을 해대었다. 예상치도 못한 타이밍에 예상치도 못하게 일행을 불리게 된 우리는, 이 녀석이 앞으로 우리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 줄지 무겁게 만들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나는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는 주의인데 말이지."
"뭐?"
"아니야."
내 혼잣말을 들은 윤호가 묻자 나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뭐가 어쨌건 또 한명이 늘었군.
만약, 저승이란 것이 있다면, 이 아이의 부모님이 우리를 조금이라도 도와주길 빌 수밖에.
최후의 생존까지, 29일-
..혹은,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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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위해 뛰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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