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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신촌 버스노선에서 변태를 봤습니다.

alice |2009.08.17 23:34
조회 2,410 |추천 6

 

두서 없는 글이 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까지도 온 몸이 덜덜 떨리네요.

 

저는 서울에 살고 있구요. 시내버스를 애용합니다. 오늘도 시내버스를 환승해서 갈아타고 집에 오는 길이었구요.

버스 번호는 말씀 안 드리겠지만, 압구정에서 신촌 오가는 버스예요.

 

버스 환승하는데, 저와 함께 어떤 남자분이 한 분 타시더군요.

연령대는 얼핏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 제가 솔직히 사람들 연령대를 잘 못 맞춥니다.

근데요. 왠지 그런 느낌 있잖아요. '이 사람 뭔가 위험한 사람 같다..'라는 느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 밤 10시쯤이 되면 사람이 많다못해 꽉꽉 차서 다니던 버스가 오늘따라 한산하더군요.

그런데 그 남자, 희안하게 버스에서 혼자 서서 가는겁니다.

그러다가 한 분이 내리시고, 그 자리가 비었어요.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 앉더군요.

 

그 앞자리엔 여자분 한 분이 앉아계셨구요. 졸고 있었습니다.

근데요. 그 남자분 손이 참.. 애매모호하더라구요. 왠지 느낌이 딱 왔습니다. 변.태.다.

2인용 좌석에 혼자 앉아서 창가쪽에 몸을 붙이고 한 손을 앞쪽 여자분 의자로 쑥 집어넣고 있더군요.

순간 '이건 뭔가..' 했습니다. 솔직히, 저요. 20년 넘게 살면서 변태 처음 봤어요. 벙쪘습니다.

나름대로 자기 팔뚝을 가리고자 종이가방으로 눌러놨더라구요.. 허 참..

 

아니겠지 하는 마음이.. 그 남자 손 위치가 졸고있던 여자분 가슴팍이라는 걸 확인하고나니 섬뜩해지더군요.

예전에 그런 얘길 들었거든요. 버스에서 창가 쪽으로 가슴 만지는 변태가 있다는 얘기를요..

아차 싶었습니다. 온 몸에 소름이 끼치는데, 저만 본 것 같진 않았어요. 하지만 다들 외면하더군요.

지켜봐야 되는건지, 아니면 나서야 되는건지 순간적으로 판단이 안 섰습니다.

여자가 남자를 상대로 어떻게 덤빌 수도 없는 노릇이었구요.. 많이 무서운게 사실이죠.

 

그치만, 잠에서 깬듯 한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잠든 척 얼어있는 그 여자분을 보니까 화가 나더군요.

직접적으로는 못 하더라도 그 상황을 면해보고자 전화기를 붙잡았습니다.

 

솔직히 그 상황에서 생각나는 사람이 엄마밖에 없었어요.. 오빠들도, 친구도 아닌 엄마요.

 

엄마가 전화를 받으셨고, 저는 얘기를 꺼냈습니다.

'엄마, 난데.. 왜 내가 예전에 말했던.. 있잖아. 버스에서..'라며 자연스레 얘기를 꺼냈죠.

신경도 안 쓰더군요. 되려 더 대범하게 그 여자분을 추행하는겁니다.

엄마는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시고, '요즘 세상 흉흉한데 나서지 말라'고만 하시고.. 저도 그러고 싶었죠.

근데 눈 앞에서 변태한테 당하는 여자분을 보니까 그게 안 되더라 이겁니다.

 

안되겠다 싶어서 수화기에 대놓고 크게 말했어요.

'아, 뭐하는 짓인지 몰라. 사람들 다 보는데서 저러고 싶나? 지가 변태짓 하는거 모르는 줄 아나?'

엄마는 자꾸 말리시더군요. 그러다가 칼 맞을 일만 생긴다고..

 

압니다. 저도 알아요. 그치만, 피해자가 제가 될 수도 있는거고.. 제 가족, 혹은 제 친구가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버스에 사람이 정말 많았어요. 젊은 남자분들도 많았구요. 아무도 도와주시는 분이 없었습니다. 다들 외면하시더군요.

 

제가 자꾸 뭐라고 하니까 저를 쳐다보더군요. 개의치 않았습니다. 쳐다보면 왜 쳐다보냐고 비웃었죠.

자리를 옮기더군요. 다른 여자분 뒤로 가더군요. 그리고 그 놈에게 피해를 당하던 여자분은.. 도망치듯 내리셨습니다.

화가 나더군요. 도망쳐야 될 사람은 그 여자분이 아닌데, 자기는 떳떳하게 다른 타겟을 잡고 있잖아요.

 

대놓고 또 말했습니다.

'아, 뭐하자는거야.. 정말. 이젠 다른 여자 뒷자리로 갔다? 아.. 진짜 웃기지도 않아서..'

자꾸 쳐다보더군요. 노려봐야 할 사람은 지가 아닌데, 되려 저를 노려보는겁니다.

제가 언제 내릴런지 기다리는건지.. 저를 따라서 내리려는건지..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제 얼굴과 옷을 체크하는 것마냥, 자꾸 저를 쳐다보더군요. 소름 끼쳤어요. 웃더군요.

 

일부러 방범대가 있는 정거장에 내려서 무작정 들어갔습니다.

버스에서 변태를 보고 대응을 했는데, 놈이 쫓아올런지도 모르겠다고.. 무섭다고.

버스 번호랑 어디쯤까지 갔을런지.. 놈이 무슨 옷을 입었는지 상세히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닌지라 성립이 되질 않는다 하더군요.

제가 아무리 나서봤자 피해자가 내려버린 상황에선 신고가 성립이 되질 않는다구요.

버스 뒷자리나 앞자리로 조용히 와서 몇 번 버스 다음 어느 정류장인데,

여기 변태가 있고 피해자가 있으니 여기로 출동해 달라 신고해야 된다구요..

그리고 피해자가 원할 경우에만 처벌이 가능하다구요...

 

네, 맞아요. 압니다. 안다구요. 결과적으로 버스 운수업체 측에 주의하라고 권고만 들어간다는 것도 알아요.

 

그냥, 서운했어요. 너무너무 화가 났어요.

한산하다 해도 사람이 꽤 많은 버스였는데 도움 주신 분은 한 분도 없었어요.

제가 아니라 남자분 한 분만 나서주셨더라도.. 좋았을껍니다.

 

위험하다는 것도 알구요, 나서봤자 좋을 것 없다는 것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만 이건 아니잖아요.

당신의 가족이, 혹은 여자친구가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피해자분도 물론 얼어붙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예요. 어렵다는 거 압니다.

그치만, 일어나셔서 자리를 옮기신다거나 그 상황을 벗어나셨으면 했어요. 저는..

 

여자분들, 지하철도 변태가 많지만.. 버스도 무시 할 수는 없습니다.

누가 도와주지 않아요. 자기 몸은 자기가 지켜야 합니다..

 

두서 없는 이야기 읽어주셔서 감사하구요.

오늘 밤 10시 가량, 신촌께를 지나는 파란색 압구정-신촌노선 버스 타신 분들..

주황색에 뒤에는 '매 니 아'라고 써있는 티셔츠를 입고,

체크무늬 종이가방을 들고있는 짧은 스포츠 머리의 남자.. 혹시라도 다시 보시게 되면 주의하세요.

 

그 놈 정면 사진을 용기가 안 나서 찍지 못했지만,

자리 옮겼을 때 뒷통수는 찍어뒀는데.. 그것도 올리면 안 되는 거겠죠?

 

아.. 아무튼 두서없는 이야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수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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