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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을 기억하다.(일부공개)

해찬솔 |2009.10.09 23:27
조회 2,596 |추천 4

2시. 종말을 기억하다.

 

무척이나 우주에 관심이 많았다. 뭐... 별과 행성과 같은 천체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천체물리학과 같은 물리학의 최전방에도 흥미가 있었다. 블랙홀, 우주의 기원과 운명, 중력, 상대성이론과 같은 현대물리학, 천체물리학에 관한 대중서적들을 읽으며 겉핥기 식으로 맛보기도 했었다. 당시의 그러한 독서는 지금의 사고관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정말이지 당시엔 나름대로 천문학, 물리학적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공상을 많이 했었다.

 

태양계의 4번째 행성 화성. 물이 흘렀던 하천자국이나 암석들의 성분과 같은 수많은 증거들은 과거 화성에 액체의 물이 존재했었음을 보여준다. 한때 화성은 지구처럼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생명체의 보금자리였지 모른다. 그러나 한때 대재앙으로 대기는 뜯겨져 나갔으며 물은 지하에 얼음의 형태로 숨어버렸다. 화성은 정말이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행성이다.

 한창 순수하게 우주에 관심 있었을 때(물론, 지금도 우주에 대한 나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고 믿는다. 오히려 좀더 고급화된 접근으로 공부하려 한다.)에 우연히 '우주의 지문'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사실 다 읽지도 않았다. 앞의 절반 정도만 읽었고 이해하는데 꾀 오래 걸렸다. 원래 '우주의 지문'의 원작 이름은 Mars mystery이다. 말 그대로 화성의 수수께끼를 다룬 얘기인데 주제를 짧게 말하자면 이렇다. 화성은 치명적인 소행성이나 혜성충돌로 인해 살해되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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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6500만년 전 바다에 떨어진 천체.(혜성일 것이라는 게 유력하다.) 직경 약 10km 크기의 혜성이 충돌하면서 전지구적 기후변화를 초래했다. 이 엄청난 대종말 사건을 K-T사건이라 부른다. K-T사건을 경계로 백악기가 끝나고 1억년 넘게 지구를 지배해오던 공룡은 영원히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만다.

 즉, 화성은 과거에는 물과 대기가 풍부해 생명체가 있었을지 모를 푸른 행성이었으나 어느 날 대재앙으로 지금과 같이 붉고 생명력 없는 사막 행성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대피라미드 꼭대기에 선 그레이엄 핸콕. 신의 지문에는 그가 피라미드를 오르기까지의 험난했던 경험을 말하고 있다.

 핸콕이 말하는 문명과 대재앙 그레이엄 핸콕은 고대 문명들은 거대한 재앙으로 멸망했다고 말한다.

 신의 지문의 저자 그레이엄 핸콕이 우주의 지문 저자라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다. 또... 그가 세계적인 고고학 미스테리 분야의 풍운아라는 것을 13년씩이나 지나 알게 되어 느낌이 묘했다. 마치 수업에 지각한 느낌이었다. 책 신의 지문은 우주의 지문보다 약 2년 정도 더 빨리 출간되었다. 엉뚱하게도 후작을 먼저 읽어버린 셈이었다. 고고학적 미스테리를 다루는 신의지문을 읽지 않고 우주의 지문을 읽었으니 상당부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생겼기 마련이었다. 신의 지문을 읽은 계기로 고대문명과 종말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결국 웹사이트에 글을 올리는 원동력이 되었다.

 앞으로의 종말을 생각하기 위해 과거의 대재앙에 관해 자세히 알아보아야 한다. 자세히 알수록 우린 스스로의 운명에 대해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고대로부터의 메시지들은 후임 문명들(현대문명)에게 종말을 경고하고 있다. 우린 그들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는 문명적 수준과 책임을 지닌 단계에 이르렀다.

 지금으로부터 1만 2천년 전인 기원전 1만년은 마지막 빙하기가 녹기 시작한 때이다. 이 무렵 전세계적으로 홍수에 의한 대재앙이 있었음을 고대인들은 말한다. 그리고 그 유명한 전설의 문명 아틀란티스도 이쯤에 최후를 맞이했다고 전해진다.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졌던 모양이다.

 아틀란티스... 이름만 들어도 신비로움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아틀란티스는 실제로 있었던 대륙, 문명이었을까? 이에 답할 수 있는 실질적 증거는 아직 없다. 그렇다고 허구적인 공상으로 치부할 존재는 아닌 것 같다. 아틀란티스는 지금으로부터 약 1만년 전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들은 현대문명과 비슷한 또는 그보다 뛰어난 문명이었다고 하지만 이것은 논제를 벗어난다. 그래도 아틀란티스는 찬란했던 문명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전)과 솔론(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쓴 티마이모스와 크리아티스라는 책에는 아틀란티스에 관해 적혀있다. 플라톤은 고대사람 치고 유일하게 아틀란티스의 전설에 대해 알려오고 있다. 플라톤도 우리들 입장에선 고대사람이지만 그 역시도 아틀란티스시대와는 무려 7000년 이상의 시간차이가 있다. 고대 그리스라 해도 까마득히 먼 과거 같은데 그보다 거의 1만년을 거슬러 올라가자니 아틀란티스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다.

 플라톤에 의하면 기원전 9500년경에 대서양에 위치해있던 거대문명 아틀란티스가 하루아침에 홍수와 대지진으로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고 말한다. 이 정보는 그의 먼 친척인 그리스의 정치가, 시인이었던 솔론으로부터 들은 내용이다.

 솔론은 지중해의 여러 지역을 여행했고 이집트도 들렀는데, 거기서 이집트의 사이스라는 도시에서 사제들과 면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플라톤에 의하면 솔론은 이집트 사제들에게 "옛날 사건들"에 대해서 물었다고 한다. 솔론은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 된 사건들은 어떤 것이냐고 묻자 사제들은 참으로 믿기 어려운 대답을 해주었다고 한다.

 먼저 솔론이 그리스인들의 기억에 남은 가장 오래 된 사건을 이야기하자 사제들은 그를 비웃고 꾸짖었다. "솔론, 솔론, 그대의 그리스인들은 모두 어린이라네."하며 말이다. 사제들은 이집트 역사가 당시 그리스 문명보다 수천 년 앞섰다고 자랑했다. 이집트인들의 국가제도는 8천 년 전에 시작되었고 이집트인들은 국가건설 이전에 벌어진 사건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제들은 9천년 전(기원전 9570년) 아테네에 이미 대도시가 존재했다고 주장했다.

 

아틀란티스의 상상도.

 솔론 시대의 그리스인들은 그러한 도시에 대한 기억이 없는데 그 이유는 중간에 재앙들이 일어났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재앙은 아틀란티스의 멸망과도 연관되며 세계 각지의 고대문명도 포함된다. 고대 아틀란티스인들은 많은 문명으로부터 신격 존재로 추앙되었지만 부패와 탐욕에 빠져들어 신들에 의해 재앙으로써 처벌 당하기에 이르렀다. 신의 지문에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상식을 넘어 더 오래되고 진보된 초고대문명(저자는 아틀란티스라는 직접적인 언급은 피한다)이 있었으며 그들은 처참히 파멸 당했고 세계 곳곳에 신의 지문과 같은 흔적을 남겼다는 것이 글의 요지이다. 그것들이 고대이집트를 비롯한 문명들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얘기는 사실 추측에 불과하다. 그래도 2012년 종말을 얘기하기 위한 기본적인 몸풀기라 생각하면 좋겠다.

 이집트에는 불가사의한 건축물이 무언가를 기다리듯 묵묵히 서있다. 그 유명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이다. 사실... 신의 지문을 읽기 전만해도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같은 고대문명의 흔적에 관심이 없었다.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고 그저 옛사람들의 유적이라 여겼다. 아직 실제로 가본적이 없지만 죽기 전(2012년 종말이 실제 하지 않는다고 가정할 수 있다면...) 한번쯤 둘러보고 싶다. 확실히 관심이 있음과 없음의 차이는 아는 것에 대한 확실한 차이를 보여주는 것 같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에 대해 더욱 알아보고자 한다면 상식을 깨야 할 것이다.

 

1862년 Francis Frith가 찍은 기자의 피라미드. 지금으로부터 150년 가량 전의 모습이지만 너무나 완벽한 형태로 보존되어있다. 이런 말이 있다. 모든 것은 시간을 두려워하고 시간은 피라미드를 두려워한다고...

 이집트 피라미드는 기자의 3대 피라미드라고 불린다. 가장 큰 피라미드는 대피라미드(Great Pyramid)라 불리고 두 번째로 큰 피라미드는 카프레 피라미드, 그리고 가장 작은 피라미드는 맨카우레 피라미드라 불린다. 대피라미드는 쿠푸왕의 피라미드라 불리지만 왕의 무덤이라는 것에 의구심이 들기 때문에 옳은 표현은 아니다. 이집트 피라미드가 파라오(고대이집트의 왕)의 무덤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이집트학계의 주장이다. 그렇지만 최초로 탐험한 이래 피라미드 내부에선 어떠한 유물이나 파라오의 유해가 발견된 바 없다. 왕의 무덤이라 불리는 건 불확실성을 크게 내포하고 있다.

 이집트 피라미드는 굉장히 많은 의미들을 담고 있다. 피라미드들은 웅장한 자태로 수 천년 간 보는 이를 매혹시켰다. 수 천년 전에 어떻게 저렇게 큰 건축물들을 지을 수 있었는지 이해하기 힘든 고대의 자취이다. 셋 중에 가장 큰 대피라미드는 가로세로 230m에 높이 137m로(윗부분의 9m가량은 현재 사라지고 없다.) 약 230만개의 반듯이 조각된 벽돌로 이루어졌다. 누구나 다 느끼겠지만 어떻게 지었을지 매우 기이하다.

이집트 기자. 오른쪽부터 대피라미드, 카프레, 맨카우레 피라미드이다. 또 중앙 언저리에는 엎드려있는 스핑크스도 보인다.

 기이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난 솔직히 이것이 더 무서울 정도로 소름 끼친다. 피라미드의 각 면은 정확히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고 그 오차는 평균 3분 이하이다. 각도에서 1분은 1도의 60분의 1이로 3분이면 육안으로 식별 불가능할 정도이다. 왜 이런 정밀한 작업이 필요했으며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 의문 투성이이다.

 또한 기자 피라미드의 위치는 북위 29도 58분 51초이다. 고대 이집트 공학자들은 정확히 북위 30도에 맞추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실수를 범한 걸까? 그러나 이에 대한 해석이 있는데 그것은 위치를 알려주는 밤하늘의 별을 이용했으나 대기에 의한 굴절로 29도 58분 22초로 나타난 것이다. 각도에서 1초는 1분의 1/60에 해당하는 극히 작은 값이다. 놀라우리만큼 일치한다. 

 대피라미드는 약 4500년 전인 기원전 2500년 제4왕조 시대에 건설되었다는 것이 학계의 주장이다. 당시의 파라오는 거의 신격으로 추앙 받았으며 많은 문구들은 파라오가 죽은 뒤 신들의 세상으로 간다고 믿었다. 그 신들의 세상으로 가기 위한 장치가 결국엔 피라미드란 소리인가?

 아무리 파라오의 권력이라 할지라도 이 어마어마한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시간과 노동력, 자재와 운반수단 그리고 뛰어난 공학적 기술과 연락체계, 도구들이 반드시 필요할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다른 진보된 문명으로부터의 도움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피라미드와 2012년 종말은 무슨 관계란 말인가? 왕의 무덤이든 아니든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상관없지 않은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좀더 멀리서 기자지역을 보면 알 수 있다.

 종말의 기억에 관해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피라미드 자체보다는 그들의 배치이다. 벨기에의 건축기사 로버트 보발은 오리온 미스테리라는 책을 통해(또는 그러한 주제를 통해) 기자의 피라미드와 오리온자리 삼태성과의 연관성을 주장했다. 당시로썬 지상에만 관심 있었던 학계와는 달리 고개를 들어 하늘과 연관시킨 건 그가 처음이다. 그의 주장은 당시엔 신선한 폭풍으로 다가왔다.

 

겨울철의 대표 별자리 오리온자리. 가운데 오리온밸트의 3개의 별이 기자의 피라미드 배치와 일치한다.

 

이집트 기자의 위성사진

오리온자리의 허리부분인 삼태성

 오리온 미스테리가 주장하는 바는 피라미드는 무덤 이상의 가치로써 별들의 배치를 땅에 고스란히 옮겨놓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자의 3개의 피라미드와 오리온자리의 삼태성은 위치가 매우 흡사하다. 거의 동등한 배치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의 사진만 본다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대피라미드와 카프레 피라미드를 잇는 연장선에 맨카우레 피라미드가 일치하지 않는다. 이러한 배치의 의도를 설명하는 보발의 주장은 이전까지의 고정관념을 깨부수고 새로운 해석의 장을 마련했다.

 더 나아가 이 주장의 핵심은 피라미드들은 알려져 있던 기원전 2500년의 하늘이 아닌 그보다 8000년 전인 기원전 10500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다른 페이지에 자세히 알아보겠지만 세차운동에 의한 천체위치의 변화를 고려한 것이 분명하다.

 기원전 10500년은 계속 언급되겠지만 빙하기의 끝 무렵으로 세계 각지에 종말의 기억을 심어준 시기이다.

 이집트 기자에는 또 다른 신기한 건축물이 있다. 사자 몸통에 사람 얼굴을 한 스핑크스이다. 스핑크스는 그리스 신화에도 등장해 문제를 내고 풀지 못하는 자를 잡아먹는 이야기가 나온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문제를 풀지 못했는데 그가 오이디푸스이다.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의 문제를 품으로써 스핑크스는 자괴감에 자살한다.

 스핑크스는 본래 거대한 석회암 둔지를 깎아 만들었다고 한다. 이집트학계에 의하면 스핑크스 역시 기원전 2500년경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스핑크스가 카프레 파라오의 얼굴을 본 따서 만들었다는 게 그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그레이엄 핸콕은 여러 진보적 학자들의 지질, 천문학적 주장을 고려해 스핑크스는 기원전 10500년 전에 지어졌다는 획기적인 주장을 했다. 피라미드와 같이 기원전 10500년을 중요시 생각해 누군가에 의해 놀랍게 건설되었다는 것이다.

 수수께끼의 본체 스핑크스는 정확히 동쪽을 향하고 있다. 영원히 일출을 감상하도록 만들어진 모양이다. 스핑크스는 왜 만든 것일까?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나는 나름대로 많은 서적을 읽으면서 고민을 많이 했고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런데 글자 하나하나를 타이핑하면서도 계속해서 지울 수 없는 의문은 떠오른다.

 

 

카프레 피라미드를 등지고 있는 스핑크스

 스핑크스에서도 피라미드에서처럼 의문점을 발견할 수 있다. 사막기후인 기자에 위치한 스핑크스는 물에 의한 침식흔적이 표현에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사막에 비라도 온 것일까?

 스핑크스가 약 4500년 전인 카프레 시대에 건설되었다는 가정을 한 문구에는 3300년 동안 모래에 파묻혀있었다고 한다. 그럼 스핑크스가 흐르는 물과의 접촉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sphinx-temple-Henri-Bechard-1887

1887년 찍힌 스핑크스와 대피라미드. 스핑크스는 많은 시간 동안 사막의 모래에 파묻혀서 일일이 치워주어야 했다.

 이집트 기자는 지금으로부터 기원전 7000년 전은 습기가 많고 수풀이 우거진 환경이었다. 그렇다면 스핑크스의 건설연대를 기존의 기원전 2500년대가 아닌 그보다 수천 년은 더 뒤로 후퇴시킬 수 있다. 로버트 쇼크 교수에 의하면 스핑크스의 지질학적 증거에 의해 지금으로부터 1만년 그 이전에 지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의지문의 저자 그레이엄 핸콕은 앞서 말한 기원전 10500년 전을 모델 삼은 3개의 피라미드 배치와 스핑크스의 건축은 결합된다고 말한다. 즉, 스핑크스 역시 10500년 전을 가리켜 무엇인가 전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레이엄 핸콕은 더 나아가 스핑크스 역시 하늘의 움직임과 연관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기원전 10500년경에 태양은 춘분에 사자자리를 배경으로 떠올랐으며 이를 스핑크스가 응시하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사자의 몸을 하고 있는 스핑크스와 사자자리와의 연관성이다.

 

기원전 10500년을 가리키는 기자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기원전 10500년에 맞추어야 할 중대한 사실을 내포했다고 볼 수 있다.

 이집트 기자의 수수께끼에 대해 지루하게 설명한 것 같다. 그렇지만 결국엔 기원전 10500년이라는 한 시대에 대해 알려주었다. 대관절 기원전 10500년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성경은 역사적, 문화적으로 인간의 값진 고서이다. 마치 중국의 역사서 '사기'처럼... 하느님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를 서술했다는 성경은 동시에 유대인의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몇 이야기들은 과장되었을 수 있으나 과거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성경뿐만 다른 고대인들에 의해서 신기하게 전달되고 있다.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그러니까 수천km의 바다가 있음에도 같은 얘기를 전하고 있다. 그 얘기는 머나먼 과거에 일어난 대홍수 전설에 관한 것이다.

 

대홍수 전설

 노아의 방주라고 다들 들어봤을 것이다. 노아의 방주에 관한 얘기는 구약성경 창세기 6장~9장에 나온다. 요약하면 타락한 인간들을 대홍수로 쓸어버리고 은혜를 입은 노아와 그 가족만이 살아남는다는 얘기이다. 여호와는 온갖 동물들 암수 한 쌍과 식물들을 잣나무로 만든 거대한 방주 안에 넣을 것을 명했다. 대홍수 이후 새로운 시대를 위한 대책임 셈이다. 노아의 방주는 단지 물에만 뜨는 거대한 상자라 생각하면 된다. 그것은 3층 구조로 성경에 쓰인 대로라면 앞뒤 길이가 135m, 너비가 22.5m, 높이는 13.5m로 추측할 수 있다. 실로 거대한 규모이다.

 성경에는 40일간 밤낮으로 계속적인 폭우가 쏟아져 대홍수가 일어났음을 말하고 있다. 물은 더욱 불어서 높은 산들을 덮었고 그 후로도 150일 정도를 육지를 매웠다고 한다. 그 후 약 1년에 걸쳐 서서히 물이 빠져나갔고 방주는 아라랏 산에 머물렀다. 노아는 물이 빠진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비둘기를 날려보냈고 3번째 보냈을 때는 더 이상 돌아오지 않았다. 즉, 대홍수가 끝났음을 말하는 것이다. 노아의 방주 사건으로 하느님의 뜻대로 노아를 제외한 모든 지상의 생명체는 종말을 했다.

 

노아의 방주

 이런 대홍수로 인한 재앙은 전세계적으로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과장과 신화적 성격이 부여되었지만 전하는 바는 뚜렷하다.

 고대 수메르에는 영원한 생명을 얻은 길가메시라는 왕이 있었다. 길가메시에 관한 정보는 메소포타미아의 신화와 도자기로 만든 서판에 설형문자로 알려져 있다. 이 서판들 중 오래된 것은 기원전 3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이다. 과거의 사라진 문명과 끔찍한 사건에 대한 기억을 담고 있다.

 길가메시의 업적을 세계에 알리려고 한다. 이 사람은 뭐든지 알고 있었다. 세계의 모든 나라를 알고 있는 왕이었다. 현명하고, 불가사의하고 비밀스러운 것을 알고 있었으며, 홍수가 일어나기 전의 일에 대해서 말했다. 그는 긴 여향을 떠났다가 지치고 피곤한 모습으로 돌아와 쉬었으며 돌에 모든 이야기를 새겼다.

 길가메시가 돌아와서 들려준 이야기는 우투나피시팀이라는 왕이 그에게 전해준 얘기이다. 우투나피시팀은 대홍수로부터의 생존자였다.

 당시의 세계는 인구증가로 인해서 사람들로 넘치고 있었다. 세계는 야생의 황소처럼 소리를 질러댔고 위대한 신들은 싸우는 소리에 잠을 깼다. 엔릴은 싸우는 소리를 듣고 신들의 회의에서 말했다. "인간들의 소란스러움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소음 때문에 잠을 잘 수 없다니까." 그래서 신들은 인류를 멸망시키기로 했다.

 물의 신이었던 에아는 우투나피시팀을 가엽게 여겨 대재앙이 닥칠 것을 미리 알렸다. 신기하게도 노아의 방주와 같이 그의 가족이 살아남을 방주를 만들라고 경고했다.

 집을 허물고 배를 만들어라. 소유물은 어찌되어도 좋으니까 살아남을 것만을 생각하라. 세속적인 것은 버리고 영혼을 구원하라. 집을 허물어라. 제대로 된 배를 만들어라. 폭과 길이가 조화로운 배이다. 살아있는 모든 종자를 배에 실어라.

 또한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싣고 모든 생물의 종자를 실었다.

 우투나피시팀이 전하는 대재앙은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와 흡사하다. 매서운 폭풍우와 홍수가 온 세상을 암흑천지로 만들었다. 마치 양손에 폭풍과 홍수를 무장한 군대가 치열한 전투를 하는 모습이다.

 7일째 되는 날 석양 무렵에 비둘기를 날려보냈다. 비둘기는 날아갔다가 머무를 곳이 없어서 그대로 돌아왔다. 다음에 제비를 날려보냈지만 역시 머무를 곳이 없어서 돌아왔다. 까마귀를 날려보냈다. 까마귀는 물이 빠진 곳을 찾았고 먹이를 먹었으며 주위를 날다가 울음소리를 내고는 날아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성경하고 너무나 흡사하게도 새를 날림으로써 물의 빠짐 정도를 확인했다. 이것은 우연인가? 아니면 전해들은 것인가? 어쩌면 노아와 우투나피시팀은 동일인인 것인가?

 

http://www.cyworld.com/SK-2내용의 일부만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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