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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두라스 한지수씨 면회후...

. |2009.10.14 15:57
조회 5,461 |추천 15

 지난주에 온두라스 라쎄이바에 수감된 한지수씨 면회를 갔다 와서 갔다온 후기 쓰기로 한 사람 입니다. 이혜정씨가 카페에 후기를 썼는데 저는 제가 본 관점과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 약간 쓰려고 합니다. 조금 길수도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지난주에 평소 알고 지내던 이혜정씨의 요청으로 저는 라쎄이바로 한지수씨의 면회를 가기로 하였습니다.  당시 "다음"에 한지수씨를 위한 까페가 있다는것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 이었지만 네이트에 썼던 글을 까페에 퍼 갔더라구요

많은 분들이 좋은일 한다고 ,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출발전 이혜정씨와 잠시 만나서 한국 식품점에서 참치, 김, 김치등등 밑반찬을 구입하였으며 마트에 들러서 여성용품을 준비 하였습니다. 이혜정씨의 출장 관계로 과일, 라면을 끓여 먹을수 있는 냄비, 머리 묶는거 ( 한국말로 기억이 안 나네요 곱창 이라고 불렀던것 밖에는 ... ) 는 제가 준비 하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바로 근처에 살고 있는 형네 집으로 갔는데 도착해서 차를 세우니 지난주에 면회 갔다 왔다던 김윤철총무가 ( 현재 한인회는 없어졌으나 한인들을 위해서 많은 일들을 해주고 있으신분 ) 형네 집 앞에서 형수님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희 형네 바로 앞집 이라서 저도 형네집 방문시 자주 만나곤 합니다.

제가 쎄이바로 한지수씨 면회를 간다고 하는것을 미리 알고 있었으며 갈때에 건내 주라고 회화책 두권을 건내 받았습니다. 많은 내용들을 이야기 하였지만 대부분의 내용이 다음 까페에 나와 있고 그분의 요청으로 기존 네이트 판에 썼던 내용은 지웠습니다.

그분의 표현으로는 지수씨가 수감되어 있는곳은 너무나 무섭고 열악한 환경이어서 가기 전부터 걱정만 앞섰습니다.

 

그날 저녁 인터넷을 보다가 다음 카페에 한지수씨를 위한 카페가 있다고 하여 검색해서 들어가 보았습니다. 자세히는 보지 못 하였으나 내용중에 딴지일보에난 기사를 보면 모르는 분들은 내용을 쉽게 이해 할수 있도록 정리된것을 알수 있습니다.

 

http://www.ddanzi.com/articles/article_view.asp?article_id=4842

 

다음날 카페에서 본글을 기억하고 온두라스에 있는 한 한인교회 관계자께 전화를 걸어서 월요일에 라쎄이바로 한지수씨에게 면회를 갈 예정이니 교인들에게 문의 하여 도와주실 의향이 있으신 분들은 부식이나 김치등 부탁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다음날 교회 수련회 일로 그분께서는 시간이 될찌 모르겠다고 대답 하셨습니다.

그후 연락이 없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약간의 서운한 마음이 조금 있긴 하지만 시간이 너무 촉박하여 도와주지 못한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점심식사후 형수님과 라면 구입을 위하여 한인 식품점으로 갔는데 사장님께서 과자도 챙겨 주시고 직접 다른 한인교회 박명하 목사님께 연락을 하여 도와주자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다음날(일요일) 저녁에 형네집에서 하루종일 있다가 집으로 돌아 오는데 형수님께서 내일 가서 먹으라고 김밥을 싸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새벽5시에 출발 하니까 적어도 4시30분에는 준비되어야 한다면서 2시정도에 일어나셔서 준비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집에 돌아 오는 길에 이혜정씨가 연락이 왔습니다. 지금 공항에 도착 하였는데 준비하기로 했던것들 다 준비 했는지 확인하려고 전화한 것 입니다.

제 핸드폰 배터리가 없는 관계로 집에 도착하면 저한테 연락을 주기로 하였습니다.

30~40분후 연락이 와서는 제차가 좁은 관계로 한인 중앙교회 정동진 목사님께 차를 빌리기로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갑자기 다른 한 사람이 연락이 되어서 같이 가야 한다고도 말 했습니다.

30분 정도 후에 다시 전화가 오더니 라쎄이바에 계시는 한지수씨 아버님 핸드폰 번호를

현재 갖고 있지 안으니 카페에다 물어 보라고 하여 가입을 하고 물어 보았더니 잠시후 지수씨 언니분께서 연락처를 쪽지로 보내 주셨습니다.

 

11시 정도에 자려는데 거의 항상 새벽 3시 정도에 잠을 청하는 저로써는 잠이 오질 안았습니다. 12시 정도까지 잠을 청하려다 실패하고 잠을 안 자기로 결심을 하고 3시까지 있다가 샤워를 하고 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외에 집에있는 쌀과 숟가락 , 젓가락을 챙겼습니다.4시20분경에 형네집에 가서 5인분의 김밥과 삶은 계란을 챙겨들고 오면서 이혜정씨 한테 전화를 했더니 집에 거의 다 왔다고 하였습니다. 주차를 하고 잠시 기다리니 이혜정씨가 도착을 하여 짐을 옮겨 싣고 시동을 켜니 깜빡잊고 주유를 하지 안아 시동이 켜지질 안았습니다. 그시간에 열은 주유소를 찾아서 시동걸고 출발 하기는 시간이 많이 걸릴것 같아서 다시 제차로 짐을 옮겨싣고 다른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하여 약속 장소로 향하였습니다. 가는 중에 전화를 하니 늦을수 있을것 같아서 4시부터 나와 있었다고 하더군요.

도착하여 보니 스타렉스가 한대 있어서 그쪽으로 차를 대니 김호관씨 삼촌과 김호관씨가 차에서 나왔습니다. 제차가 작아서 끼어타야 한다고 했더니 흔쾌히 그차를 타고 가라고 하셔서 스타렉스와 바꾸어 타고 5시경에 출발 하였습니다.

가는 도중에 동이트고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혜정씨 말로는 온두라스에 거주하는 한국인들 중에는 한지수씨가 수감되어 있는것에 대해서 잘됬다 라고 생각 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 이었습니다. 이유는 그 어린 나이에 뭐하러 여기까지 와서 스쿠버 다이빙을 배우다가 ... 한마디로 까불다가 그런일을 당했으니 잘됬다라고 하는 모양 입니다. 그말에 나는 발끈하여 지네 딸이 그런일 당하면 그런말 할수 있겠냐고 한참을 흥분하여 떠들어 댔습니다. 우리 형수님 말씀처럼 이런 일들은 정말 누구에게나 일어날수 있는 일 임에도 불구하고 자기일이 아니라고 많은 사람들이 함부로 말을 하고 함부로 생각 합니다.

 

쎄이바 가는 길은 오랜만에 가는 길인데 길이 너무 좋아졌습니다. 전에는 도로 중간 중간에 구멍이 많아서 속력을 낼수 없어 3시간~4시간 정도 걸렸었는데 시속 150km 정도도 밟고 했더니 약 2시간 30분 정도 후에 라 쎄이바에 도착 할수 있었습니다. 도착전에 어느정도에 그랑하뻬날이 있는지 확인후 쎄이바에 들어서면서 지수씨 아버님께 이혜정씨가 전화를 하여 메가쁠라사 라는 몰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그안에 있는 웬디스에서 조식을 하였습니다. 한인교회 박명하 목사님도 출발 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조식후 잠시 밖에서 기다리니 한지수씨 아버님께서 도착 하셨는데 너무도 밝은 모습에 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찌 몰라 가만히만 있었습니다. 아버님께서 하시는 말씀 중에 두명의 변호사가 사건에 대해서 맡겠다고 하고 있는데 한명은 한국 대사관에서 소개한 사람이고 한명은 김윤철씨가 소개한 사람 이라고 하였습니다. 두명다 믿음이 가지 안기에 어느쪽을 택해야 할찌 저희들에게 오히려 물으셨습니다. 저는 어떤 변호사던지 빨리 결정을 하여서 믿고 맡겨야 하지 안겠냐고 말씀 드렸습니다. 아버님께서 먼저 원하시는 것은 가택연금(?-한국말로는 잘 모르겠음 - 여기서는 casa por el carcel 이라는것 같음

) , 출소하여 재판을 받게 하기를 원하시는데 한변호사는 그게 가능하다고 하며 다른 한 변호사는 그것은 불가능 하지만 재판에서는 이길수 있다고 장담 하였답니다.

또한 대사관에 신원보증을 부탁 하였는데 거절 당하였다고 들었습니다.

 매스컴쪽에서 독점 취재를 원하고 계신다는데 우리가 준비할수 있는 모든게 다 준비가 되어야 시작할수 있지 안겠냐고 하였습니다.

 

약 15분후  아버님께서 어딘지 알려 주셨으며 Granja Penal 4Km 라는 표지판을 보았습니다. 약 5km 정도의 자갈길을 천천히 달려서 도착 한곳은 산에 있는 그랑하 교도소 였습니다. 교도소 정문 밖에 차를 세우고 이혜정, 김호관, 저 이렇게 셋은 약간 긴장을 하며 가져온 짐들을 풀어 저는 통화 하시는 지수씨 아버님을 기다리고 그외 두명은 몇가지 짐들을 가지고 먼저 들어갔습니다.

약 300m 정도 걸어서 들어갔더니 사람들이 대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혜정씨와 김호관씨는 가져온 짐들을 검사하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저는 보지 못 하였지만 이혜정씨 말로는 저쪽 창살이 있는문 건너편에서 지수씨가 보고서는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고 합니다. 도착 하면서 경찰들에게 줄 음료수를 사려고 했었던걸 잊었다는걸 깨닫습니다. 마침 교도소장이 입구에서 사람들과 이야기 하고 있는것을 보고 잠시 이야기를 하자고 했더니 자기 사무실로 데리고 갔습니다.  우선 지수씨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물어 보았더니 아~주 잘 지내고 있으며 요즘에는 스페인어도 많이 늘어서 다른 사람들과도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아무 문제 없도록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많이 주시하고 도와주려 하고 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지수씨 아버님께서 부탁으로 소장에게 아버님의 선물을 전달하며 핸드폰 사용을 허가해 달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죄수들중에 핸드폰 사용 하는 사람이 몇이 있는데 위에서 갑자기 검사하러 나온 사람들에게 들키면 뺏긴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자기 선에서는 허락을 하겠다는 말로 검사하러 사람들이 나오면 알아서 잘 숨기라는 말 입니다.  면담후 나와보니 짐 검사가 끝나고 ( 쇠 젓가락만 반입을 불허 )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수씨 아버님을 포함하여 같이온 사람들은 들어가기 위해서 입구 앞으로 갔으며 저는 소장이 청소하고 계시는 아주머니 몇몇분들을 소개하여 주었습니다.

아주머니들은 지수씨와 같이 수감하고 있다고 말을 하였고 환하게 제 이름을 물어 보았습니다. 그후 바로 기다리는 일행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지수씨와 인사를 하는데 정말 환하게 저희를 맞아 주었습니다.

 

가져온 짐들을 풀으며 이혜정씨가 짐 검사 할때에 초코파이와 몇개의 과자를 뭐냐고 묻고 관심을 갖는거 같아서 몇개 나누어 주었다고 하길래 잘 했다고 하였습니다.

김호관씨는 온몸을 만지면서 수색 하였다고 하길래 "어? 나는 몸수색 안했는데?" 그러면서 핸드폰을 꺼내 놓았더니 잘 됬다고 박명하 목사님이 어디까지 오셨는지 통화를 해보자고 하셔서 형에게 전화하여 박명하 목사님 핸드폰 번호를 묻고 통화를 했더니 이제 비포장도로 통해서 들어 온다고 하였습니다. 산이라서 그런지 핸드폰 시그널이 왔다갔다 하고 통화가 잘 안됩니다.

 

부족하게 준비한 약,  물건들,음식들에 지수씨 아버님과 지수씨는 너무너무 고마워 하셨습니다. 특히 형수님께서 싸주신 김밥, 삶은 계란과 같이온 나무 젓가락이 반가우셨던 모양 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지수씨가 나무젓가락을 사용 할수 있도록 김밥은 손으로 먹기로 하였습니다. 다섯개를 싸왔는데 지수씨가 너무 밝아 보여서 그런지 배고픈지도 잘 모르겠더라구요.

 지수씨가 생활하고 있는 방을 보았는데 너무 비좁은 공간에 2층침대 2대가 있는데 안에는 정말 너무나 덥습니다. 오랫동안 온두라스에 생활한 나도 너무 덥다고 느껴지는데 지수씨는 오죽 하겠습니까...

마당에는 빨래들이 널려 있는데 수감하고 계시는 아주머니들이 경찰들 옷을 빨아주며 약간의 급여를 받는 모양 입니다. 청소를 하고 급여를 받는다고도 합니다.

식사는 한달에 한번씩 쌀, 옥수수가루, 팥 이렇게 세가지가 나오는데 방장 아주머니가 관리를 한다고 하며 사식은 면회시 어떤 것도 허용이 되는 모양 입니다. 다행히 방장 아주머니가 지수씨 아버님이 닭등 음식을 주면은 요리를 해서 지수씨에게 나누어 주며 잘 생활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목사님 일행이 도착 하시기 전에 지수씨 아버님께서 잠시 일들을 정리하여 말씀 하셨는데 아무래도 한국 정부에 섭섭한 마음이 많으신 모양입니다. 잠시후 목사님께서 약간의 먹거리를 가지고 도착 하셨습니다. 같이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목사님께서 지수씨에게 어디 아픈데는 없냐고 물으십니다. 얼마 있으면 선교하러 온두라스에 오시는 분 중에 한의사가 있으니 기회가 되면 와서 침을 놔주실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지수씨는 이집트에서 수감되어 있을때에 맨 바닥에서 잠을 자서 목이 돌아 갔는데 며칠동안 목이 움직이지 안아서 고생을 했고 지금도 많이 아프다고 합니다. 내색은 안 했지만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단식원과 어학원을 왔다라고 생각하고 좋게 생각 한다는 말에 말은 저렇게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할까, 그동안 남모르게 얼마나 슬퍼하고 울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도 그러는 동안에 그렇게 있으면 아무 문제도 해결이 안된다고 생각하고 좋게 생각하려고 노력을 하는것 같습니다. 정말 제가 보기에는 천진 난만한 어린아이 같은 지수씨 입니다. 같이 많은 대화는 나누지 못하였지만 정말 그런 죄를 지을 사람이 아니란것을 감히 단정 지을수 있었습니다.

 

오늘 회사 직원과의 대화 중에 이 사람은 만나 보니까 정말 그런 죄를 지을 사람이 아니다고 생각이 들었다고 하니까 어떻게 사람을 외모로 판단을 할수 있냐고 되 묻습니다.

그말에 제가 내가 오랜 세월을 산건 아니지만 지금 까지 만나온 사람중에 내가 확실 하게 단정지을수 있다고 느껴지는 사람은 처음 이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만큼 그 어린 나이에,그만큼 의연하게 밝게 있을수 있는것 같습니다.

 

대화도중 이혜정씨가 음료수를 구입하러 매점에 가겠다고 합니다. 가면서 많이 사서 경찰들과 함께 수감하시는 분들에게 모두 음료수를 돌리자고 하였습니다. 매점에 가는 길에 청소 하시는 아주머니께서 "조나딴" 이러면서 부르십니다. 혜정씨는 어떻게 벌써 사람들이 오빠 이름을 알고 있냐고 유명해 졌다고 농담까지 합니다.혜정씨와 호관씨 한테는 먼저 가라고 하고는 저는 멈춰 섰습니다. 아주머니는 청소하고 있으면서 수고 하니까 음료수를 사달라고 하였습니다. 알겠다고 지금 저 사람들이 음료수 사러 갔으니까 사오면 꼭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아주머니께 여기에 얼마나 수감 되어 계셨냐고 물었더니 아무렇지 않게 4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얼마나 남았냐고 했더니 15년 정도 남았다고 정말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합니다. 장기수인데 굉장히 활발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안쪽에서 청소하시는 한 아주머니께서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어 자기도 음료수를 사달라고 합니다. 걱정 하지 말라고 지금 음료수 사러 사람들 갔으니까 가서 확인해서 꼭 챙겨 주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건물안에 들어서서 안쪽으로 들어가니 문이 하나 있고 쇠창살이 하나 있는데 건너편에 남자 죄수들이 들여다 보고 웬 외국 남자가 있나 하고 신기해 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가보았더니 음료수를 33개를 구입을 하였습니다. 돌아 오려는데 아까 그 아주머니께서 따라 오셔서 음료수를 달라고 합니다. 음료수를 드리고 나오면서 아까 창문에서 얼굴 내미신 아주머니를 찾아서 음료수를 건내 드리고 보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죄수, 경찰을 떠나서 다 음료수 하나씩 나누어 주고 말은 안 했지만 한지수씨 잘 부탁 한다는 말은 마음으로 하였습니다. 다시 안으로 들어 가서 보니 한국분들도 음료수 하나씩 드시고 있었습니다. 날씨가 하도 더워 저도 땀이 비오듯 하는데 , 목도 많이 마른데 음료수에 손이 안 갑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잘해주고 어느정도 자유롭게 지낸다고 하여도 갇혀 있는데 밝게 웃는 지수씨의 얼굴에 마음이 너무 안쓰럽습니다. 이혜정씨는 울것 같은 표정으로 참는게 내 눈에는 빤히 보이는것 같습니다. 나중에 호관씨는 지수씨와 지수씨아버님께서 진심으로 반갑게 맞이해주었을때,긍정적으로 생각을 해주었을때,마음한켠에서는 정말 잘 왔구나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목사님과 같이오신 전도사님은 지수씨 대학 2년 선배라고 하였습니다. 이혜정씨가 번역을 하고 있는 지난번 재판후 담당 변호사 보고서가 13페이지 정도 되는데 아직 9페이지 밖에 번역을 못했다고 합니다. 제가 아는 분 중에 지수씨와 같이 서강대 경영학과 출신이 있습니다. 93학번 최용석 이라는 분인데 빠라과이에서 20년동안 살고 20세에 대학을 한국으로 간 사람 입니다. 처음에 한국말을 잘 못하여 고생을 많이 하였다고 하는데 번역일 보니까 그분이 생각나서 바로 전화를 하였습니다. 그분께서는 흔쾌히 번역일 도와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혜정씨도 잘 하고 있지만 시간이 많이 없는듯 하여 나머지는 우리가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난것 같아 시간을 확인하니 12시도 채 안되었습니다. 지수씨 아버님께서는 숙소를 구하러 쎄이바로 다시 돌아 가셔야 한다고 하고 저희 일행은 지수씨에게 필요한 물건을 더 구하러 쎄이바로 가야 해서 지수씨에게 필요한거 있으면 전화 하라고 하고 제 핸드폰을 맡겨놓고 지수씨 아버님께는 작별을 고하고  목사님 일행과 지수씨 아버님은 함께 쎄이바로 가시고 우리또한 따로 쎄이바로 출발 하였습니다.

 

쎄이바 길을 잘 모르는 저희 일행은 수퍼마켓을 물어서 필요한 빗자루와 야채 채써는 칼 ( 나중에 구해본 결과 쇠로된 네모난 형태의 것 이었음 ) 그리고 우산을 구입 하였습니다. 비가 올때에 우산이 없어서 비를 맞고 생활을 해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했던 긴치마 ( 샤워 시설이 없어서 밖에 마당에 호스를 통해서 산에서 내려온 물을 받아놓고 그 물로 씻는데, 위쪽에서 감시하고 있는 남자 경찰들이 볼수 있는 가능성도 있음 ) 를 찾으러 백화점으로 갔습니다. 백화점에 도착하여 우선 지수씨가 방장 아주머니의 핸드폰을 편하게 쓸수 있도록 핸드폰 카드 몇장을 구입하였습니다. 치마를 찾는데 오래 걸려서 평소 운동 부족인 나로써는 더이상 따라 다닐수 없어서 백화점 안에 위치한 작은 의자에 앉아서 혜정씨에게 치마를 찾아 오라고 부탁 하였습니다.

한참만에 치마를 찾아서 밖으로 나온 우리 일행은 잠시 코코넛물을 마신후 다시 그랑하 뻬날로 출발 하였습니다.

 

 소장님의 배려 때문인지 도착후 소지품 검사 없이 간단하게 가져온 물건들만 검사하여

안으로 들어갈수 있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후 사진을 같이 찍기로 했는데 제가 지수씨에게 인상을 좀 쓰고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면 사람들이 좀 측은하게 생각하지 안겠냐고 말을 하자 지수씨는 또 환하게 웃습니다. 그 순간에 사진을 찍었는데 그 사진이 클럽에 올라 왔더라구요.

기특하게도 갔다온 동안에 지수씨가 혜정씨에게 편지를 썼더라구요 . 혜정언니와 남편분께 라고 시작 되는데 아마도 나를 혜정씨의 남편으로 오해를 한 모양 입니다. 나 절대 남편 아니라고 총각 이라고 하는 순간에 혜정씨가 찰칵 하고 사진을 찍습니다. 내 모습은 너무 어색하게 나왔네요.

그후 같이 생활 하시는  아주머니들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순간 순간들 아주머니들은 너무나도 좋아 하시는것 이었습니다. 우리끼리 이야기 였지만 정말 너무나도 정이 많은 분들인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같이간 호관씨는 아주머니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짱(?) 이었습니다.

 다시 또 산뻬드로로 돌아와야 하는 우리는 아주머니들에게 인간적인 모습으로 대해 준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모두 껴안아 주고 온두라스식 인사 ( 서로 얼굴을 맞대고 쪽 하고 뽀뽀하는 소리를 내는것 )를 하였는데 어떤 한분은 울먹이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나중에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면서 이야기를 하였더니 그분이 평소에도 잘 운다고 하더라구요.

나올때에 혜정씨도 호관씨도 저도 짧게 지수씨와 포옹을 하며 인사를 하였는데 혜정씨와 호관씨는  몇마디 응원을 말을 하였으나 저는 생각이 나질안아 잘 지내라는 말만 하고 왔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꼭 오겠다는 말을 뒤로하고 복잡한 심정으로 돌아오는데 발걸음이 너무 무거웠습니다.

 

 쓰다보니 너무 길어졌네요

두서없이 쓴글들 , 제 개인적인 견해가 많이 들어간것 같습니다.

제가 본 관점에서 쓴 글이니까 많이 이해해 주시리라 생각 됩니다

그후 내용들은 카페에 올리겠습니다.

 

http://cafe.daum.net/onlyforhan

 

 꼭 가입하시고 도움이 되어 주세요

한지수씨가 빠른시일안에 누명을 벗고 나오시길 기원 합니다.

 

끝으로 혜정이, 호관이 수고 많이했다!!

 

온두라스에서...

 

 

 

 

 

 

 

 

 

 

 

 

추천수15
반대수1
베플개한민국|2009.10.14 16:00
<!--espresso editor content start--><div id="espresso_editor_view" style="font-size:10pt;">참 개한민국 웃기다...나라에서는 신경도안쓰고 어찌 네티즌들이 구해낼생각하지?선진국이였으면 전쟁이라도 할기세일텐데 개한민국 신발 이명박<u>강아지</u></div><!--espresso editor content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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