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ㅎㅎ저는 강원도에 사는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입니다
많이 읽어봐주시면 좋겟네요ㅠㅠ저희가 처한 상황이 하도 답답해서요
제가 작년에, 그러니까 1학년 때 학급실장을 맡았습니다. 실장 일을 하면서 놀랐던 건 중학교 때와 달리 2주일에 한 번씩(시험기간에는 한 달에 한 번) 전교 학생회 회의를 해서 각 반의 건의사항과 불만사항 등을 들어주고, 교내에 큰 일이 생기면 회의를 해서 학생들의 의견을 물어본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 때 느낀 건 아, 고등학교는 참 민주적이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라고 하면 모두 다 그런 줄 알았습니다. 저희는 그 회의를 위해서 반 아이들의 의견을 또 모을 수 있게 학급 회의 역시 진행했고, 학교는 학생 성원 모두의 의견을 들어주진 못하지만 최대한 의견을 충족시킬 수 있게 운영되었습니다.
2학년이 되자 교감선생님이 바뀌셨습니다.
저희 학교는 사립학교입니다. 이사장 재단의 빽을 썼다는 선생님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새로 되신 교감선생님도 그래서 젊은 나이에 교감이 됐다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그래도 전 교감선생님이 되게 좋았어요. 일단 교감선생님 당신의 딸이 저희 학교 학생이고, 젊으시고 하니까 학생들 잘 이해해주실 것 같았구요. 또 원래 평교사였을 때도, 진짜 정말 잘생겨서 인기가 많으셨거든요.
그 전 해에 저희 학교에서 서울대를 한 명도 보내지 못했습니다. 강원도는 비평준화라 고등학교별로 수준이 딱 나누어져 있는데 저희 학교는 일류까지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 해에, 저희 학교보다 한 단계 수준 낮은 학교에서는 서울대를 보냈습니다. 교감선생님으로서는 학생들의 학력 향상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셨겠죠.
그래서 교감선생님은 'xx반'이라는, 일명 특수반을 만드셨습니다. 문과 전교 7등, 이과 전교 5등, 1학년은 전교 12등까지, 학년별로 이렇게 12명을 모으고 그들을 위해 따로 교실을 만들어 거기서 다른 아이들보다 1시간 더 많이 야자를 하는 거죠. 저도 운 좋게 그 반에 소속이 되었고,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저희 지역의 학교들이 그 대세를 따르고 있었거든요. 그 반은 학생회의실 옆의 빈 교실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또 학급실장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학생회를 담당하시는 선생님이 바뀌셨습니다. 그 선생님은 학생회에 전혀 관심이 없으신 듯 하셨고, 회의에도 얼굴을 한 번도 비추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회의는 학생들이 자치적으로 하는 것이라 아무 상관이 없지만, 중요한 건 건의사항들을 아예 듣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학생회의는 점점 이상하게, 학교에서 곧 있을 일을 전하기만 하고 학생들의 의견은 듣지 않는 쪽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xx반'을 확장한다는 소식이 들렸고, 정말 어느 날 갑자기 학생회의실은 없어졌습니다. 그게 5월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1학기 말에 부학생회장으로 당선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회의를 한 적이 없습니다. 회의를 할 장소가 없기 때문이죠. 1학년 실장들만 10명, 2학년 실장들이 10명, 그리고 학생회 임원이 10명. 이렇게 30명이 둘러앉아 회의를 할 수 있는 곳은 학교에 학생회의실밖에 없었습니다.
학생회에서는 요즘 작은 축제 같은 것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수능이 가까워지는 어느 날, 선배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으로, 아침에는 3학년 학생들에게 떡과 음료수를 나눠주고, 정규수업이 끝나고 보충 1교시에 모든 학생을 강당에 모아 놓고 선생님들과 후배들의 응원 메시지를 담은 동영상을 보여준 뒤 전교생이 응원의 노래를 부르는 겁니다. 그리고 헬륨풍선을 나눠주고, 대박을 기원하며 풍선을 날려보냅니다. 그 행사를 위해서 학생회 임원들이 커다란 조형물을 만들어야 하지만, 저희 때부터 하지 않기로 작년 학생회 언니들이 정했습니다.
또 수능 응원을 준비합니다. 어쩌면 유난이라고 하실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거슬러 내려오는 전통이기에 저희 역시 이것을 준비했습니다. 여태까지 그 어느 선생님도 이 일에 반대하시는 분이 없었습니다. 작년에도 역시 준비했었습니다. 10월 중순 무렵부터 1학년 실장들이 수능 날 쓸 포스터나 플랜카드를 제작하는데, 모두 야자를 빼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한 달 내내 야자를 빼는 건 조금 비합리적인 것 같아서, 저희는 올해는 조금 줄이자고 합의를 했습니다. 그 행사를 할 때도 또 원래 포스터나 플랜카드의 디자인을 정해 오면 바로 퇴짜를 맞곤 했는데, 저희는 곧바로 가장 괜찮은 아이디어들을 뽑아냈고, 저희가 직접 짜기도 했습니다. 또 저희가 그 작은 축제에서 쓸 조형물을 만들지 않기 때문에, 1학년 실장들과 함께 만들어서 빨리 끝내기로 했습니다. 또 그 수를 조금 줄이기로 했습니다.
저희는 교감선생님께 이 일을 할 장소를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교감선생님은 대뜸 그런 짓은 그만두라고 말하시며 차라리 그 시간에 공부를 하라고 했습니다.
저희가 모두 설명을 했습니다. 예전보다 훨씬 시간이 적게 들 것이고, 빨리 할 것이고, 양도 줄였고, 부담갖지 않을 시간으로만 할 것이다, 라고요. 교감선생님은 이런저런 이유로 핑계를 대면서 저희가 쓸 수 없는 장소만을 제공했습니다. 3학년 교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다목적실은, 야자 시간에 썼다간 3학년들이 야자시간에 시끄럽다고 건의할 게 뻔했고, 남교사 휴게실은 쉬는 시간마다 선생님들이 담배를 피워대는 통에 냄새도 심하고 또 야자 중간중간 선생님들이 들어오시기 때문에 불가능했습니다. 저희를 결국 저희는 학생회 동아리장의 양해를 구해 사물놀이실을 썼습니다.
1학년들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만들었고, 저희는 2주일이면 끝날 것 같았습니다. 일부러 시작하는 날은 중간고사 끝나고 얼마 안 돼서 시작했고요. 부담이 적게 말입니다.
사물놀이부에서 태클이 들어왔습니다. 사물놀이부 선생님이 직접 오셔서 사물놀이실이 학생회실이냐고 화를 내셨고, 저희는 사정을 설명했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다시 교감선생님께 찾아갔고, 교감선생님은 정말 너넨 어쩔 수 없다는 듯, 자상하게 웃으시면서 동창회의실의 키를 주셨습니다. 거긴 이사장 재단 쪽이라 쉽게 빌려주시기 힘드셨을 텐데도 말이죠. 저희는 나름대로 감동을 받았습니다. 교감선생님 이따가 놀러오시라고, 장난스럽게 말도 걸었습니다.
동창회의실에서 열심히 만들고 있는데, 갑자기 교감선생님이 불쑥 찾아오셨습니다. 저희는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갑자기 교감선생님이 소리를 지르시면서 화를 내시는 겁니다. 누가 이렇게 많이 만들랬느냐면서. 내일까지 다 끝내버리라고. 그러더니 이따가 학생회 임원들은 다 따라와, 라고 하시고는 나가버리셨습니다.
저희가 가자 교감선생님은 다 너희가 걱정돼서 그렇다면서 저걸 만들 시간에 공부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곤 내일 바로 끝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는 게 저희는 그 주 월요일에 시작을 했고 그 날은 수요일이었습니다. 저희는 다음 주 수요일까지만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또 학생회의실이 없어진 것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교감선생님은 알았다고만 할 뿐 아무런 조치가 없었습니다. 또 "학생회에선 이러니까 작품이 안 나오지"라고 말씀하시더니 각자에게 가고 싶은 대학을 물었습니다. 저희가 대답하자 거기 가려면 뭘 준비해야 되는지는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몇몇 아이들이 대답하지 못하자,이런 거 만들 시간에 그런 거 조사해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갑자기 그 다음날 교감선생님이 회장에게 동창회실을 쓰지 말라고 통보하셨습니다. 거길 우리가 쓰는 바람에 자신이 이사장 재단에게 욕을 먹었다는 이유였습니다. 결국 우린 다시 사물놀이실로 가야만 했습니다. 사물놀이실이 학생회들이 쓰는 곳이냐는 비아냥거림을 들어 가면서 말입니다.
저희는 수능 응원 준비를 진짜로, 쉬는 시간 잘 거, 식사 시간 밥 먹는 거 줄여가면서 이번 주 수요일까지 다 해냈습니다. 그리고 응원 메시지를 담은 동영상도 틈틈히 촬영했습니다. 그런데 목요일에 갑자기 학생부장 선생님이 부르시더니 그 축제가 취소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신종플루 때문에요. 물론 그건 저희 의지로 어쩔 수 없는 것이니 저희는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동영상을 거의 다 찍어 놓았는데, 그건 그냥 떡을 저녁에 나눠주고 그 때 그 동영상을 틀어주면 안 되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선생님은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말씀하셨고, 저희는 목요일과 금요일 내내 동영상을 찍고 부분부분 편집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토요일, 저희는 마지막으로 교무실에서 교감선생님 주변에 앉아 계신 선생님들을 촬영하러 갔습니다. 그러자 교감선생님이 갑자기 화를 내시면서, 그 축제를 안 하면 동영상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하지 말라면 하지 말 것이지 왜 자꾸 고집을 부리느냐면서 가서 공부하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지켜보고 계시던 전 학생회 담당 선생님이 저흴 밖으로 불러서, 너희가 이 일을 열심히 하고 싶어하는 것은 알겠다고, 하지만 교감선생님이 지금 예민하시고 또 이 일을 반대를 하신다, 그러니 그만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거의 애원하듯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동영상을 다 만들었다고 하자 보관은 일단 해 놓으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무튼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겁니다.
사실 다른 학교는 모르겠는데, 저희 학교 학생회가 하는 일은 주로 이것이었습니다. 학생회의 2주에 한 번씩 주최, 선생님과 학생 의견 조율, 일주일에 세 번 선도 서기, 그 수능 응원의 작은 축제 주최, 수능 응원 준비와 수능 전날 새벽에 나가서 응원하기, 축제 준비와 스탭.
이번에 신종 플루가 유행해서 축제는 하지 못할 것 같고, 그럼 저희가 학생회가 되어 하는 일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얼마 전부터 갑자기 교감 선생님이 선도도 서지 말라고 말씀하셨거든요. 이유는 신종 플루.
수능 전날에 나가서 응원하는 것 하나 있는데 지금 교감선생님께선 그것마저도 꺼리는 눈치입니다. 선생님들 대부분께서도 저희 사정을 알고 계셔서 미술실이나 음악실이나 과학실 같은 곳을 빌려주시려고 하셨지만, 그 곳들이 모여 있는 후동에는 'xx반'이 있고 방음시설이 잘 안 되어 있어서 무언가를 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친구들도, 언니들도 건의사항이 넘쳐납니다. 하지만 회의를 하지 못하고 있고 학생들은 여전히 불만이 가득한 상태입니다.
물론 저희들이 뭘 모르고 행동한 점도 많겠고, 수능 응원 준비 같은 건 분명히 비합리적인 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건 저희들이 '자치적으로'운영하는 일이고, 역시 계속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또 부담 갖지 않는 기간 내에 끝을 냈구요.
하지만 학생회의실이 없는 것은 분명히 잘못입니다. 학생회의실을 없애고 그 자리에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었단 것도 잘못입니다. 학생회의실을 없앤다는 건 학생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실제로도 그렇게 되고 있고요.
긴 글 읽어주시느라 감사합니다. 정말 분해서 한 번 써 봤어요ㅠㅠ. 학생회 애들이 이거 한 번 톡에 올려보자고 그래서요ㅋㅋㅋㅋ 쓰다 보니 상당히 기네요
교감선생님이 또 한 번은 그러신 적이 있대요. 그 'xx반'을 만들기 위해 그 시설이 잘 운영되고 있는 원주의 한 고등학교를 방문하신 뒤에 "우리 학교는 너무 지나치게 학생들의 말을 들어주는 것 같아"라고 말씀하셨다고요. 그 때가 5월 중순이었을 거예요. 회의실이 없어진 건 5월 말이고요.
아무튼... 저희가 학생회의실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