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을 맞아 여행을 떠나보자라는 각오로 국내자동차여행을 준비하려고 남푠이랑 찜찔방에 갔다.
카운터에서 얻은 볼펜에 연습장을 놓고 둘이 머리를 짜고 있는데
옆에 목에 수건을 두른 아저씨가 답답했는지 "영덕 가요. 영덕. 서울에서 강릉으로 해가
7번국도 따라 가면 죽이요" 하는 말에 귀얇은 우리는 그냥 그렇게 하기로 했다.
(서울-강릉-정동진--망상-영덕-포항-경주-부산-서울)
강릉에서 7번국도로 빠져 정동진으로 갔다. 그 주변에 고즈넉한
"등명락가사"란 절이 있다.
눈 쌓인 등명락가사
산 위에 있는 절에 오르면 정동진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조용하고 아늑했다. 떠들썩한 도시의
연말 분위기와는 동떨어진 절의 모습. 다시 차에 올랐다. 운전은 심기사가 계속 하는걸로!
죽 내려가다가 바다를 가까이 보고 싶어 망상해수욕장에 들렀다. 푸른 바다와 푸른 하늘. 그리고
운치있는 캠핑카들. 하룻밤에 8만원 정도라는.. 추운 날씨지만 가족 단위로 놀러온 사람도 있었다.
저렇게 공중부양을 해대고 났더니 아침에 먹은 김밥과 만두는 전혀 기억에도 없는 아스라한 어떤 것이 되었다.
국도길에 즐비한 식당들은 물회가 빠지지 않고 간판에 적혀 있었고, 귀도 얇고 눈도 얇은 우리는
물회를 먹으러 들어가서 또 입 얇게도 "맛있다 맛있다"를 연발하며 먹었다.
이 여행의 시작은 찜질방 미스테리 아저씨 님의 " 영덕가요, 영덕 가! 가서 게먹어" 였으니 우린
영덕에 가야 했다.
가는 길에 유명하다는 온양 온천에서 새벽부터 찬 바람 맞은 몸을 뜨끈~ 하게 녹였다.
어이구 물이 좋긴 좋았다. 하지만 왠지 쇠락한 분위기가 온양 전체에 퍼져 있었다. 예전에는 북적였음이
분명한 느낌. 80년대 분위기였다. 어둑어둑 해지고 우린 여행의 하이라이트 영덕을 향했다.
영덕은 초입부터 사람이 많았다. 해맞이공원에서 대대적인 행사를 하는데다
영덕게철이라 호텔은 커녕 민박도 모텔도 꽉 차 있었다. 10군데 넘게 헤매다 가겟집에 붙은 민박에서 6만원에
방을 내어줬다. 정말 시골 할머니집같은. 허나 무슨 상관이랴. 보일러만 빵빵하면 되지. 게다가
해맞이공원에서도 걸어서 갈 수 있는 위치여서 군말 안하고 돈을 지불했다. 시간을 지체했으니 우린
영덕 구경도 하고 "게!" 먹으로
그런데.. 영덕게는 너무 비쌌다. 15만원은 줘야 둘이 배불리 먹는데 난 가열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냥
5만원에 홍게를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영덕게 먹을걸 싶다. 그때는 "둘 다 똑같은 게여!" 했는데
그럴꺼면 영덕까지 왜 간거래? 싶네.. 아. 몰라.
이 게도 정말 감칠맛 났다. 쫄깃하고. 아주머니가 살을 잘 발라주시고. 게장밥까지 서비스.
이거 먹으며 미래 계획을 세우다 동현씨랑 싸움이 났다. 난 감정이 격해져서 눈물을 찔끔거리며
분통을 터뜨렸는데 연애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싸워도 먹을 건 먹어가면서 싸운다는 것이다.
게살을 발라가며 울면서 싸우니 아줌마가 의아해 했을 것이다. 또 나갈 땐 웃으면서 나갔으니. 허허.
추위에 떨은데다 알코올이 조금 들어간 우리 부부는 등이 데일 듯 보일러가 빵빵한 민박집에서 곯아 떨어졌다.
해돋이를 보러 갈 시간엔 정말 그냥 잘까 싶었지만 가져간 옷을 다 껴입고 해맞이 공원으로 올랐다.
해를 보며 소원을 빌고 내려가려는데 행사주최측에서 떡국을 나눠줬다. 아침까지 잘 얻어 먹고 민박집에
들어와 이불과 구들장 사이의 온기 속으로 몸을 집어 넣었다. 아~ 여기 너무 좋아. 우린 또 잠이 들었다.
그러다가 미국에서 진영이의 새해인사 전화를 받았다. 아 새해부터 반가운 사람의 소식을 들었다.
더 잠이 들려는 몸을 일으켜 포항으로 향했다. "네 멋대로 해라"의 마지막을 장식한 손바닥 조형물과
등대가 있는 공원에 갔다. 하지만 나의 목표는 과메기. 과메기를 사는 것.
친정과 시댁에 전화로 문안 인사를 드리고 오랫만에 실컷 바다를 보면서 눈이 아릴 만큼 먼지를 씻어냈다.
과메기가 유명한 구룡포를 가야 했다.
과메기. 과메기. 과메기 사러가자. 과메기도 사고 경주도 구경하고 부산에서 자려면 서둘러야 했다.
과메기 너무 좋아. 시식용 과메기를 어찌나 먹었는지. 구룡포엔 과메기파는 천막이 끝도 없이 있었다.
난 그 천막마다 들러서 과메기를 집어먹었다. 동현이는 과메기를 못먹는다. 의구...!!
거성 호를 배경으로 폼잡으신. 하루 중 제일 좋아하는 노을이 아릿하게 져 오는 시간이 돌아왔다.
경주로 가는 길. 우리 차 앞에 왠 흰 말이 우릴 쳐다보고 있었다. 계속 같은 방향으로 가는지 한참을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어둠이 내려서야 도착한 경주. 부산 고모. 작은아버지께 드릴 찰 보리빵을
사고 밤 속을 걸어 첨성대를 마주했다. 조명때문에 신비로워 보였다. 밤 늦은 시각. 부산 해운대로
갔다. 어제와 민박 비와 같은 값을 내고 침대에 월풀욕조에 왠갖 조명이 난무한 모텔이었지만
어제가 더 아늑~했었던 거 같다. 집에서 싸온 와인과 치즈로 분위기도 좀 내다가 피곤해서 곰방 잠이 들었다.
해운대 근처에 숙소를 잡으니 아침에 산책하기가 좋았다. 빈 속을 달래주고 누리마루를 산책했다.
사람도 없고, 바로 전날 1월1일엔 엄청 붐볐을 텐데. 어제의 해와 오늘의 해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고즈넉하고 이국적이기까지한 동백섬을 둘러보고 광안대교가 보이는 달맞이공원의 카페에가서 차를 마셨다.
작년에 부산국제영화제에 왔을 때 저녁을 먹었던 곳이었다. 그때는 연인이었는데 지금은 부부가 되었다.
광안대교를 보며 폼을 좀 잡아보다가 해운대에 사시는 막내고모댁에 갔다. 그저 하루 전에
전화했을 뿐인데 작은 아버지댁 큰 고모댁 막내고모댁 다 모여 회잔치를 벌여 주셨다. 할머니 산소에도 가고
윷놀이 하다보니 밤이 되었다. 자고 가라는 고모를 만류하고 서울로 출발. 고모는 용돈까지 쥐어주셨다.
다음에 또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서는데 왜 눈물이 나는건지..
그리고.. 이제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하다보니 부산 해운대에서 서울 이수역까지 논스톱으로 왔다. 5시간 조금 안걸렸고 밤이 늦어서 화장실도 갈 필요가 없었다.
7번 국도를 따라 내려간 여행. 해안도로가 펼쳐진 풍경과, 그 알싸하고 청량한 하늘과 공기와 바다가
2009년의 시작을 열어주었다. 율리예타 (우리차)야! 너도 수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