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어떻게 먹었는지 조차 기억에 없다.
가슴이 답답하고 무언가 계속 치밀어 오르고 있다.
현주는 멍하니 복도에 서서 창밖을 응시하며 가슴을 쓸어내리기 시작했다.
[현주야! 너 오늘 시간 돼지?]
갑자기 교실 뒷문으로 고개를 내민 한 학생이 반 강요적인 말투로 묻는다.
[...왜?]
[우리좀 살려주라. '미팅'잡혔는데 쪽수가 안맞는다. 너 정도면 문제 없으니까 부탁하자 응? 너 거절 안할거지? "퀸카"들로 도배했으니까 믿고 나와도 돼!]
[미..미팅?]
또다...
항상 거북한 자리를 만들어 자신을 이용하는 아이..
이번이 벌써 3번째던가...아니 5번째던가...
자신이 거절하지 못할걸 알고 접근하는 아이.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항상 소외되었던 자신...
여자들은 거북하다.
아니, 낯선 사람과 마주하는게 서툴다.
그런 그를 이용해 시선을 끌고 결국엔 자신들의 욕심을 채워 하나, 둘, 빠져 나간다.
결국 혼자인건 항상 자신이었다.
어느땐 못마시던 술을 억지로 먹여 기절한 경우도 있었다.
[미. 미안한데... 이번엔...]
그는 현주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더욱 가까이 접근한다.
[그러지 말고 함 도와주라. 우리학교 얼짱이 빠지면 김새쟎아? 응? 갈꺼지? 뭐 거북하면 그냥 자리만 지켜주면 뒤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승낙한거다?]
[무슨 일이야?]
곤란한듯 보이는 현주의 어깨에 올려진 그의 팔을 내려놓으며 도윤이 그를 매섭게 바라본다.
[반장~ 이번이 마지막이다. 진짜야~현주도 분명 좋아할꺼야."예고"다니는 얘들인데 장난아냐!!]
약간의 오버스러운 행동을 보이는 그를 향해 도윤은 예상했다는듯 작은 숨을 토해낸다.
[참 잘도 물어온다]
[하하하 내가 쫌 능력이 되쟎아]
[안돼! 가지마!!]
[?? 야! 반장!!]
도윤은 심호흡을 길게 내쉬며 나즈막한 소리로 읊조렸다.
[너 이번이 벌써 5번째야. 아니 6번째인가? 현주가 거절못하는거 이용해서 데리고 나가고, 그 뒤 어떻게 했었는지 벌써 잊어버린거냐? 가뜩이나 낯가리는 녀석 하루종일 장식품인양 데리고 다니고 못마시는 술 마시게 해서 매번 12시넘어서 내가 데리러 갔었던것! 그때마다 너 그게 마지막인양 부탁했었쟎아. 더이상은 내가 싫어! 아참! 기절도 했었지?]
구구절절 흘러나오는 도윤의 이야기에 그는 약간은 미안한듯 현주를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인다.
[...너무 그러지마..미안해. 이번엔 그냥 빼주라]
[현주야. 그래두 나쁜뜻은 없었어. 널...이용한건 부정할수 없지만...]
현주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막상 그렇다고 말하는 그가 조금은 서운했고, 그걸 알고 있는 도윤이 거북하다.
[너도 이제 적당히 하지 말고, 싫으면 단번에 거절해]
[...응...]
[ㅋㅋㅋ완전히 엄마네 엄마...웃기지 않냐? 쟤네들 뭐냐? 아무리 단짝이라지만...반장 너무 오버하는거 아냐?]
예비 종소리와 함께 교실로 들어서던 신현과 2명의 아이들이 그들을 지나쳐가며 일부러 큰소리로 한마디씩 내뱉는다.
[한 두번이냐...매번 느끼지만...혹시 쟤네들 그렇고 그런거 아닐까? 안그러냐? ]
[ㅋㅋ이거 우리학교 폐교하는거 아냐? 호모학교라고 ㅋㅋㅋ 어? 신현!! 어디가?? 수업 안받아?]
앞서 걷던 신현의 맞장구를 기다리던 그는 뒤돌아 다시 복도를 빠져나가는 신현을 당황해 불러보지만 점점 멀어져 가는 신현이었다.
[휴~~~]
밖으로 나온 신현은 빠르게 호흡을 가다듬는다.
화가나서 자신도 모르게 그를 향해 주먹을 쏘아올릴것 같았다.
그냥 농담으로 지나치면 되는데 컨트롤이 되지 않는다.
현주옆에 서 있는 도윤도 참을수 없는데...문득 사라져 버린 현주의 시선은 더 더욱 그를 조급하고 당황스럽게 했다.
바로 아침에 그렇게 겁을 먹은 충혈된 눈동자의 현주를 지우기까지 얼마나 노력했던가!
언제나 의레히 자신을 따라 움직이던 시선...
그것을 알고서도 모른척 즐겼던 그.
무언가 빠져버린 허탈한 기분과 더더욱 커져만가는 도윤에 대한 질투심이 그를 화나게 했다.
[젠장~ 정신차려 유신현!!.....'이건 마치.....내가...녀석을...???!!!...' 하하하 미친놈...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그때,
이미 교정을 벗어나 강당을 향하던 그 앞에 3명의 사내가 앞을 가로 막아 섰다.
[이게 누구야? 귀하신 1학년 아닌가?]
그들은 신현을 바라보며 비꼬듯 희죽거리며 미소를 보낸다.
넥타이를 보니 3학년이었고, 언뜻 안면이 있는걸보니 질이 좋지 않아보인다.
그리고 목에 붙은 뱃지...선도부원이 분명하다.
" 최 진명의" 하수인들...
신현은 반사적으로 그들을 경계하며 뒤로 한발자욱 물러섰다.
[왜? 꼽냐? 너 진명이가 호출했는데 쌩깠다며? 대단한 새끼야!ㅋㅋ 아니지...엄청 무모한 새낀가?]
[왜 이런 녀석한테 흥미를 느끼는거야? 사리분별도 못하는 새끼를]
[ㅋㅋ이번에 2학년 멋지게 밟아주셨다고? 기특하기도 하지...손수 병원으로 보내기까지 하셨다니...감동적이야]
[용건이 뭐야?]
[ㅋㅋㅋ용건? 살아 있으라는 진명의 전언이다. 부디 살아있으라고..하하하..기대되지? 유 신현]
[얼마나 버틸수 있을까?]
그들은 흥미롭다는듯이 혹은 가엽다는듯이 신현을 훑어보곤 연신 혀를차며 그를 비켜 지나갔다.
아주 기분나쁜 예감이 신현을 두드리고 있다.
[최 진명...대체 뭘 꾸미고 있는거지?]
그와 특별히 원한 관계도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를 잘 알지도 못했다.
'저스틴'모임에서 아주 잠깐 스쳐지나갔을 정도의 안면?
그런데 생각보다 집요하다. 왜 하필 자신인가?
얼마전 교실로 찾아왔던 2학년들도 특별한 원한관계는 아니었다.
말그대로 힘겨루기 한판....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전언...[여기서 끝이 아니야. 시작점 이지...]
처음 싸움을 시작한건 중학교 2학년...그땐 이유가 없었다.
그저 자신을 무시하던 아이들을 상대로 휘둘러 댔을뿐...
운동신경이 남들에 비해 좋았고 상대방의 기술을 빨리 파악했던탓에 최후의 승자는 언제나 자신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과도기도 잠시...싸움은 패거리로 발전되었고, 여기 저기 신현을 중심으로 아이들이 모여 들었다.
그땐 그것이 그의 유일한 분출구 였다.
재미없는 세상에 작은 몸부림치듯...하지만 싸움은 시간이 갈수록 무리수가 많아졌고 신현의 패거리또한 피해가 오기 시작했다.
어느 시점에 와서 그들은 무너졌고, 신현만이 그 중심에 홀로 서 있었다.
그리고 반 강제적인 고등학교 입학...
그러나 변한건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금 되풀이 되고 있는 먹이 사슬의 퍼즐처럼...흩어졌던 이들이 그를 따르기 위해 다가오고 원한도 없는 이들이 수시로 덤벼든다.
'최 진 명'...그는 "신 우 회"의 리더이다.
이 학교의 회장이며 이 학교 이사장의 손자...겉으론 모범생의 모습을.. 숨겨진 다른 한쪽은 감히 상상도 할수 없는 잔인한 존재....
그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
적이 아니면 아군이 되라는 그의한마디...쉽게 거절하고 돌아선 신현을 밞으려 한다.
그 시작점이 "짱개미"파와의 마찰...
처음부터 그의 작전이었던 것이다.
신현은 발길을 돌려 건물옥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며 몸을 기대어 담배한개피를 꺼내 입으로 가져간다.
[나좀...내버려 두라고....]
고교3년동안 상위권을 유지하며 큰사건없이 졸업하면 독립을 해도 좋다는 아버지의 조건...
그 지긋 지긋한 곳을 나올수 있는 합당한 방법...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그래도 최선을 다해 숨죽이고 있는 그인데...
그런 그를 자극 하고 있다.
그 안에 몸서리 치도록 부셔버리고자 하는 욕망이 잠자고 있음을 알지 못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