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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잠시 수다쟁이 영감이 되었다고 오해했다

갈매나무 |2009.12.04 18:55
조회 223 |추천 0

무라카미 하루키 할배의 골수 빠돌이인 나로서는 참으로 전신이 떨리는 흥분을 안겨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신작이었다. 연일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린걸 보면 '골수 빠돌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어필한 것 같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나 '해변의 카프카'에서 그랬듯, 두 인물의 시점에서 한 챕터씩 번갈아가며 전개하는 방식을 취했는데 딱히 이런 스타일이 식상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내가 골수 빠돌이라서가 아니라, 식상함은 그런 형식 자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의 '방식'에서 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존작들에 비해 충분히 만족스러울 만큼(말하자면 식상하지 않도록) 흥미로운 변주가 있었다.

 

이대로 완결지어도 큰 무리가 없으리라고 보이는 1, 2권이 출간되었고, 내년 출간을 목표로 3권을 집필중이라 한다. 1권을 거의 다 읽어가면서 '나이를 먹으면 말이 많아진다고 하는데, 무라카미 할배도 이제 환갑을 넘겼구나' 싶어 어쩐히 짠(?)했다. 예나 지금이나 모호한 상징이나 입맛 돋우는 떡밥을 세련되게 뿌려대니 책장 넘기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어쩐지 너무 수다스럽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감히 어떤 '한계'까지도 느꼈다. 물론 2권을 읽으며 이런 나의 예단이 그저 예단에 불과했다는 걸 처절하리만큼 깨닫고 부끄럽기까지 하긴 했지만.

 

'아이큐 84'가 아니라 '(숫자)일Q팔사'가 맞다. 서점에서 직원에게 문의했더니 처음에 잘 못알아듣다가 '아~ 아이큐 팔십사 말씀이시군요' 했다는 에피소드를 어디선가 듣기도 했는데, 나 역시 처음에는 오해했다. 두 명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어떤 힘에 의해 1984년의 세계에서 1Q84라는 세계로 옮겨가게 되는데, 옮겨간다는 말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1984년의 세계와 별개의, SF소설의 소위 패럴렐 월드로 옮겨간 것이 아니라, 1984년의 현실 자체가 1Q84라는 새로운 현실로 전환된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1Q84는 주인공 아오마메가 어느 순간 자신이 알고 있던 기존의 현실이 아닌 별개의 현실속에서 살게 되었음을 깨닫고(혹은 그러한 가설을 세우고) 그 새로운 별개의 현실에 붙여준 이름인데, Q의 일본어 발음은 숫자 9의 일본어 발음과 같다는 점에서 착안한 일종의 말장난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거스를 수 없는, 혹은 인간 개인의 의지 따위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 거대한 힘에 의해 인물의 삶 자체에 중대한 변화가 서서히, 그러나 점점 가속되어 겉잡을 수 없는 양상으로 진행된다는 발상은 지난 작품들에서도 확인된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평범한 전문직종 종사자(가상의 직업인 계산사는 작중에서 상당한 자질과 훈련을 필요로 하는 전문직으로 묘사된다)가 거대한 정보조직 사이의 보이지 않는 전쟁, 그리고 그 전쟁 속에서 핵심적인 열쇠를 쥐고 있는 노박사의 계획 속에서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에 말려들게 된다거나, 태엽 감는 새에서 변호사 사무실 직원으로 일하다가 퇴직한 평범한 청년이 과거 일본제국시절 침략전쟁으로까지 소급하는 거대하고도 무시무시한 운명에 휘말린다거나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세계의 균형을 추구한다는 어떤 수수께끼의 존재에 의해 1Q84의 두 주인공은 평범한(사실 객관적으로 그닥 평범하지는 않다-_-) 일상에서 어떤 운명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결말에서 힘이 빠진다거나 실망스러웠다는 평이 많은데, 내년에 출간될 3권으로 이런 부분이 해소될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나는 2권의 결말이 만족스럽다. 나름대로 '열린 결말'로 볼 여지가 있는지, 아니면 3권을 예비한 포석인지, 아니면 무라카미 할배가 정말로 힘이 빠졌거나 별로 열심히 쓸 마음이 나질 않았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태엽 감는 새에서 한없이 무력하고 작은 존재인 주인공은 종국에는 승리한 것 처럼 보인다. 1Q84의 덴고는 어떻게 될까. 많은 사람들의 추측처럼 '리더'의 뒤를 잇는 새로운 채널이 되는걸까. 혹은 '리틀 피플적인 힘'에 대항하는 '반 리틀 피플적인 힘'이 되어 20년을 기다린 사랑 아오마메를 찾고 승리하게 되는 걸까. 도대체 1984년의 현실과 별개지만 별개가 아닌 1Q84의 세계는 어떻게 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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