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프리즘 2009-12-10]
측면 수비수 변신, 정말 성공적이었을까. 그리고 수비도 잘 했다는 언론의 평가를 정말 달가와하고 있을까.
그의 원래 포지션은 미드필더. 수비도 곧잘 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박지성은 공격자원이다.
그런 그가 챔피언스리그에서 측면 수비수로 뛰었다. 맨유 입단 이후 처음이었고 명지대 시절 올림픽대표팀에서 잠시 측면 수비수로 활약한지 10년 만이다.
처음에는 그런대로 참을만 했다. 맨유가 3-5-2 시스템으로 깜짝 전환했고 박지성은 5명 미드필더 중 오른쪽 측면을 담당했다. 마이클 캐릭, 대런 플래처 등 원래 미드필더 요원들이 스리백을 구축했다. 박지성으로서는 측면 미드필더를 고수한 것만으로도 그런대로 위안을 삼을만 했다.
3-5-2 측면 미드필더는 윙백이라고 한다. 윙백의 임무는 크게 두가지다. 수비시에는 스리백 라인까지 내려와 상대 측면 공격수를 막아야한다. 스리백이 변형 스리백 또는 노골적인 파이브백으로 변하는 움직임이다. 공격에서 정확한 쇼트패스와 재치있는 중앙 돌파, 빠른 드리블로 상대진영을 휘저어야한다. 왕성한 기동력, 영리한 공간창출능력, 쓸만한 드리블 능력, 전방위 전환능력 등을 고루 갖춘 박지성 스타일과도 어느 정도 들어맞는 포지션이다. 그래서 박지성은 그런대로 만족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후반 29분 이후부터는 악몽같은 시간이 돼 버렸다. 1-1로 팽팽한 당시 퍼거슨 감독은 오베르탕과 발렌시아를 교체 투입했다. 그러면서 포메이션이 원래 포메이션인 4-4-2로 돌아왔고 박지성은 포백의 측면 수비수, 즉 풀백으로 내려갔다. 감독이 오베르탕, 발렌시아를 투입한 것은 이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그의 바람대로 맨유는 이후 2골을 넣어 3-1로 이겼다. 그래도 박지성으로서는 무척 가슴 아픈, 평생 잊기 힘든 경기 중 한경기가 됐을지도 모른다.
풀백의 임무와 역할은 윙백과 다르다. 우선 풀백의 첫 임무는 수비다. 강한 팀과 싸울 때 풀백은 오버래핑을 자제하고 자기 진영 뒷 공간을 메운다. 그래서 풀백은 엄연히 수비자원으로 분류된다. 풀백이 갖춰야할 공격능력도 윙백과는 다르다. 상대 진영 측면 골라인 근처까지 가서 크로스를 올리는 게 풀백의 주요 공격루트다. 윙백이 전후 뿐만 아니라 좌우 움직임이 중요한 포지션이라면 풀백은 소위 ‘기찻길’ 동작으로 불리는 전후 움직임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윙백이 중앙으로 돌파하면서 상대를 뒤흔들고 짧은 패스로 상대 진용을 쪼개 간다면 풀백은 상대 골라인 근처까지 일직선으로 달린 뒤 정확한 크로스를 올려야한다. 윙백은 몰라도 풀백은 박지성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박지성으로서는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고 있어야했다(포항의 최효진이 포항에서는 윙백으로 잘 하고 있지만 포백을 쓰는 대표팀에 오면 그만한 활약을 보이지 못하는 것도 바로 윙백과 풀백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최효진은 엄연한 윙백 스타일이라서 풀백으로는 맞지 않아 보인다.)
박지성은 풀백 전환에 대해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것이다. 수비수로 밀렸다는 것보다 사실 더 가슴을 아프게 하는 사실은 팀이 골이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오베르탕, 발렌시아가 나란히 좌우 측면 미드필더로 교체투입됐다는 점이다. 퍼거슨 감독의 필승 카드가 바로 오베르탕-발렌시아 조합이었다. 그리고 이 둘은 박지성과 함께 측면 미드필더 주전을 놓고 경쟁하는 관계다. 맨유에서 5년 안팎 지켜온 측면 미드필더 자리를 새롭게 맨유로 온 젊은 경쟁자들에게 내준 채 자신은 측면 수비수로 밀린 것이다. 박지성으로서는 적잖은 상처를 받았을 게다.
박지성은 좀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특히 감독의 전술, 전략 등에서는 일체 함구한다. 그런데 박지성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수비수보다 미드필더가 좋지 않냐”는 질문에 “10년 동안 뛰어온 미드필더가 편한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수비수로 뛰는 게 달갑지 않았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발언이다. 박지성이 수비수로 뛴 게 스스로 만족할만했다면 평소처럼 이렇게 이야기했을 것이다.
“포지션을 바꾸는 것은 감독의 고유 권한이다. 나는 감독이 정한 역할을 충실히 했고 팀도 이겨 만족스럽다.”
물론 이번에도 박지성은 “팀이 이겨 만족스럽다”고 했지만 측면 미드필더에서 중앙으로 이동했을 때 입버릇처럼 말했던 “포지션 변경이 감독의 고유 권한”임을 밝히지는 않았다.
박지성에 대한 영국 언론들의 평가도 엇갈렸다. 평균보다 높은 7점을 준 곳도 있었지만 평균 이하인 5점을 부여한 언론도 있었다. 낮은 점수는 1-1 동점골로 연결된 크로스를 막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높은 점수를 준 ‘맨체스터 이브닝 뉴스’는 팀이 어려운 가운데 3-1로 승리한 것을 높게 평가하고 지역지로서 애정을 보인 것 같다.
그런데 정말 수비수로서 잘 뛰었다는 기사와 평가가 박지성에게 도움이 될까. 만일 퍼거슨 감독이 ‘역시 측면 미드필더는 오베르탕과 발렌시아 조합이 좋아. 그리고 박지성은 풀백으로도 무난했어’라고 생각한다면 과연 박지성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까. 차라리 ‘박지성은 측면 수비수로서는 안 되겠다. 역시 측면 미드필더가 제격이야’라고 판단하는 게 낫지 않을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박지성은 10년 동안 뛰어온 자기 포지션에서 승부를 봐야하니까 말이다.
박지성이 측면 수비수로 뛰는 모습, 아마 국내팬들이 보고 싶은 장면은 아니었을 게다. 지금은 맨유가 수비진 줄부상 속에 미드필더를 수비수로 세우는 고육지책을 썼고 박지성도 거기에 해당됐다. 아마 수비진이 돌아오면 박지성은 다시 미드필더로 올라올 것이다. 맨유 같은 빅클럽은 원래 포지션까지 바꾸면서 선수를 팀에 끼워맞추지 않는다. 팀이 필요한 포지션이 있으면 그 포지션에서 잘 하고 있는 다른 팀 선수를 데려오면 끝이다. 포지션을 바꾸면서까지 그 선수를 쓰는 것은 재정이 넉넉지 않은 구단의 고육지책이다.
어쨌든 박지성이 맨유에서 계속 측면 수비수로 뛰는 것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장면은 또 다시 연출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만의 하나 자주 수비수로 내려가야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박지성은 더 늦기 전에 맨유를 떠나는 결단을 내려야할지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이번 시즌에 앞서 다른 구단으로 옮기는 게 나았을 뻔 했다.
〔사커프리즘 김세훈 경향신문 기자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