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 통일이여
이 호준
너와 나는 무슨 죽을죄를 지어
서로의 사슴 같은 눈망울에 총알을 박느냐
태어난 곳은 누군가 그토록 바라던 이상향
부르짖을 것 없어 무덤 위에 껄껄 웃느냐
아사달 아사녀는 사랑과 약속을 잊고
만나야 할 어떤 이유도
역사는 홀로 눈물 겨워 가슴을 부여잡고 부르짖는다.
오라, 통일이여
오라, 통일이여
거부하지 못할 물줄기 앞에
가녀리게 떠는 냇물이 되어
누구의 똥 닦기도 되지 못하는
헐어버린 역사책이 되어
오라, 통일이여
오라, 통일이여
미이국과 소오련의 냉전은 할머니 입속으로
그러나 굽이치는 강산, 무궁화 삼천리 얼어붙은 꽃들은
독립을 위한 피의 강이 마르지 않았고
딸아이의 뱃가죽에 칼을 틀어박았던 참상이 끝나지 않았는데
학교, 대학은 죽어
선생도 죽고 교수도 죽고 학생도 죽고
철수, 영철, 미진, 영희 모두 주욱고
온통 시체들만 어지럽게 널려 꽃 피우지
못 하는가
나도 살아나지 못하고
당하기 전에 팬을 거꾸로 들어 가슴에 꽂아
목숨을 취한다
후, 뚫린 숨구멍에서 피어난다
더러운 지린내 속에 향그러운 역사의 잉크가 꽃피운다
그 모든 활자가 생명을 얻어 하나의 물체로
통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