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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평화

게르게르 |2010.01.16 10:26
조회 96 |추천 0

00. 객관(제도)과 주관(신앙)의 최소공배수

 

 뻗어나가는 객관적인 세계와
 뻗어나가는 주관적인 세계 사이에
 공유하는 것은 최대보다는 최소일 것입니다.
 모두를 합친 무엇보다는(전체보다는)
 객관과 주관 사이의 공통적인 무엇이겠습니다.
 공유하는 그것은 최소적인 것이라 추상적이어서
 구체적인 행위이기보다는 개념적인 것입니다.
 불보듯 뻔한 개념적 사실들을 기억합시다.

 


01. 참선 - 지식 - 실천

 

 예수의 참선이란
 본래적으로 이루어진 태생적 것이었기 때문에
 이미 어려서부터 예수는 성스러운 지식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예수라고 불리던 사람 그 자리에서
 그러한 제일류의 직관이 일어나고 있음은
 하나님의 일이었음이 매우 분명합니다.
 참선적인 존재로 말미암아 발설된
 성스러운 지식은 제도 속으로 스며들게 되었습니다.

 


02. 본래의 목적 그것이 무엇이었든지
   제도에 퍼진 지식은 제도 자체를 정비하게 됩니다.
   지식은 권위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식을 구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어떤 지식에 충성하게 됩니다.
   어떤 지식의 내용 그 대상 영역이 세계 전체이라면
   그런 지식을 추구하는 이들은
   세계 전체에 대한 제도적 능력까지 얻을 수 있습니다.

 


03. 지식을 증명하는 실천은
   단연 타인들과의 현실적인 관련에 결부됩니다.
   현재시대에서 사람들 간의 기본적 관련이라
   가정되고는 하는 관계는 경제적인 관련입니다.
   자본주의적 상식에서
   경제적 활동들은 경쟁을 통해 이루어지며
   상호간의 배분에 대해서는 별개로 고려한다 합니다.
   도의적인 배분에 관해서는 별개의 활동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만일 제도가 경제적인 상호관련에 근거하여 있다면
   당연히도 제도는 세계 전체를 넘어서는 유효하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계전체를 넘어서는
   경쟁적이거나 부분적인 역할이 어느 누구에게도 없고
   상호적인 관계에서도 배분조차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세계전체를 넘어서는
   누구든 무얼 소유하든지 자기만으로서 소유하지를 않습니다.
   세계전체를 넘어서는 누구든 하나님의 일부일 뿐으로서
   세계의 조각들인 우리의 와중에서 존재치 않기 때문입니다.
   너와 나 또는 우리와 그들로서 상대적 관계 속에서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절대적 존재 그 분의
   일부로서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에 대한 성스런 지식 그것의 실천은
   제도적인 것으로 확정되지 않겠습니다.
   성스러운 지식의 실천으로서 기본적으로 가장 확실한 것은
   곧 참선이며 참선의 배양입니다.

 


04. 구원을 추구함은, 세상에 살고있는 위상인
   팔자(8자)를 고치는 일이기보다는
   근원을 추구(추9)하는 일입니다.
   누구든 근원에로 회귀할 시엔
   이 세상에서 8자를 순회하지 않게 됩니다.
   반복되는 개체의 생멸 세계를 넘어
   절대적이고 하나뿐인 진정한 주체성에 9원됩니다.
   꿈처럼 아름다운 그 주체성은
   절대자에게 있는 그것입니다.
   이 세상에선 누구나 다른 모든 것들에
   객체가 되어버립니다.
   '찢어진 우리' 이것이 바로 우리의 정체이며
   찢어져 있지 않다면 이미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자체로서 장애며 연극이고 허영이면서
   공상인데, 각자의 자아들이 제각기
   개별존재로서 존재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이의 변통이란 오로지 재조정일 뿐이며
   결코 정상화이지 않습니다.
   비유하여, 합창은 조율이지 통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장은 통일이지만 우리 자체는 여전히도 별다릅니다.
   말하자면, 세상에 응전하는 당신은 내게 등돌린 것이면서
   내 등은 또 누군가의 목표입니다.
   우리는 자체로서 혼란과 무질서이고
   오직 우리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들만이
   어떠한 규칙들에 의거합니다.
   우리 자체의 질서, 통일은 세상에서 부조리하며
   그건 오로지 우리 속 각자들이 절대자에게
   흡수됨으로써 가능합니다.
   구원이란, 우리의 각자들이 우리를 잃어버리고서
   절대자에게 실종되어지는 겁니다.

 


05. 성부, 성신, 성자

 

 구원은 성부에게 있으며
 성신은 우리에게 지식을 주고
 성자는 참선을 배양하는 삶을 실천합니다.
 참선이란, 성스런 지식을 주는 성신에게 몰입하는 일입니다.
 성신은 성자의 속을 채우고 있고
 성자는 성부에게 위탁된 존재이며
 성부는 성신에 의해 알려집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성신에 의해 전달이 되고
 성신은 항상 성자를 찾습니다.
 성자는, 하나님에게서 넘쳐나오는 성신의 흐름으로
 채워진 존재입니다.
 하나님에게로 되돌아가는 길인 성신에 몰입하는 참선 속에서
 성자 예수는 여러 지식을 얻어 제자들에게 알려줬습니다.
 그 가르침의 언어는 세상 언어였지만
 가르침의 내용은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성신에 몰입하는 참선은 세상 속 우리 가운데에서
 우리 속 각자들을 증발시키는 일이기에, 예수의 가르침은
 절대로 세상 속 무언가를 뜻하지 않았으며
 가르침의 비유들 속에 말해진 묘사들도
 현실의 모습들에 그치는 것들이지 않았습니다.
 비유 속 묘사들은 이해를 위해 이용되기는 하였지만
 이해할 내용들은 현실에 있지 않았습니다.
 말하여진 바람도 빛도, 절대로 다른 이들에 의해 목격되지는 않습니다.
 오로지 참선하는 각자에 의해 목격될 스스로의 진상입니다.
 사람들 간에 표준적 척도들이 불가능하며
 오직 성자의 충고들을 고대할 뿐입니다.
 성신에게 몰입을 하는 참선을 위해 우리의 각자에게
 충고를 해줄 예수가 각자에게 필요합니다.
 허나 예수는 지금 여기에 나의 현실에 있어야만 합니다.

 


06. 인생의 현실 속에서 직접 예수를 만난 적 없는 누구에게나
   과거존재 예수는 과거 성자의 모습으로 기억이 되는(전해지는)
   성신일 뿐입니다.
   기독교성경 속에, 어떠한 형태로든 지식이 담겨있습니다.
   그러나 지식이란 파생물이며, 파생되는 원천은 참선이고,
   참선은 성신에게 몰입함이며, 참선하는 과정을 배양하는 존재는
   성자이기 때문에, 우리 각자에게는 현존하는 성자가 매우 필요합니다.
   참선을 가르치지 않으며 파생물인 지식을 변용해석하는 일들은
   그저 제도에 관련하는 행위입니다.
   그러한 행위들은 우리를 모아 권력을 형성하곤 하지만
   우리 속 각자에겐 권력보다는, 살아있는 성자의 충언들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떼짓기를 좋아하지만, 우리 속 각자들은
   완전한 존재에게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참선에 관련하여 던지는 의문들에 대해서
   답변 해주십시오, 참선하는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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