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양냉면… 아주 살살 떠오르는 우리음식의 '잇 아이템'이다. 중독성이 있는 듯, 평양냉면의 약간 밍밍한 육수에 냉면발에서 나오는 특유한 맛과 질감이 한번 맛을 들이면 헤어나질 못하게 하는 것 같다. 이름 알려진 평양냉면 집을 가보면 예전의 손님들 대부분이 '피양 사투리'를 하시는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거나 중, 장년층이었는데, 지금은 나이와 상관없이, 젊은 여성들도 친구들과 같이 평양냉면을 즐기는 모습을 많이 본다. 분위기도 많이 '샤방'해졌다. 주말에는 서빙 홀은 손님들이 가득하고, 문밖엔 줄까지 길게 서서 기다리는 모습이 평양냉면에 대한 인기를 확인 시킨다.
이런 인기와는 비교가 되게 막상 평양냉면을 어떻게 맛 봐야 하는지, 즉, 맛의 포인트를 모르시는 분들이 아직 많다. 냉면 맛이 좋다고 인터넷에 글들이 올라가 막상 갔는데 잘 못 집어서 갈 때도 많고. 이왕 시간 내서 카메라 챙겨서 갔는데 이상한데 가서 이상한 냉면버전을 먹고 오면 시간 버리고 입맛 버리는 메롱 같은 시추에이션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황당함을 피하기 위해, '피양종자'3대, 기억이 시작된 아주 어릴 때부터 짜장면보다 '피양냉면'을 더 먹고 자라온 내가 서울에 있는 확실한 곳 몇 곳을 소개하면서 평양냉면 맛의 포인트를 설명하고자 한다.
마포 염리동 '을밀대'

마포 염리동 동사무소 옆에 '을밀대'라는 냉면집이 있다. 면발이 다른 유서 깊은 곳들보다는 좀 두껍고 냉면 육수에 갈은 얼음이 나와 좀 정통성이 벗어난다는 말도 많은 곳이다. 그러나, 이 집의 두꺼운 국수발은 평양냉면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분들에게는 평양냉면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인 메밀 맛을 잘 느끼게 해 줄 수 있어 을밀대 냉면을 소개한다.

평양냉면 국수의 주 재료는 메밀이다. 메밀은 끈기가 없어 국수를 만들 때에는 밀가루나 다른 전분가루를 섞는다. 매밀 껍질을 얼마나 남기고 메밀 가루를 만드냐에 따라 메밀국수의 맛도 달라진다. 정통 평양냉면집은 직접 면을 뽑아 냉면을 만드는데, 메밀과 밀가루 등의 비율과 메밀껍질의 함량, 그리고 반죽을 만드는 과정과 국수 면발크기 등의 정도에 따라 각 냉면집 특유의 맛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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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밀대의 냉면은 메밀 껍질이 적당하게 남아있어 면 색갈이 좀 짙다. 메밀가루 함량도 괜찮아 식감도 좋고 메밀 맛도 잘 느낄 수 있다. 아까도 얘기했듯이 면발이 좀 굵어 냉면 국수의 맛은 잘 볼 수가 있다. 그러나 면발과 면발 사이에 묻어 나오는 국물의 양이 적은 것 같아, 냉면을 한 젓가락 떴을 때 면 맛과 육수의 맛을 동시에 느끼기엔 좀 힘든 거 같다. 아마 이것이 평양냉면의 내공이 높으신 분들에게 감점을 받는 이유인 것 같다.

평양냉면집 냉면 모습은 그 집 냉면의 예고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을밀대는 소고기가 얹혀 나와 이 집 육수는 소고기 국물 만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곳은 돼지고기 편육도 쇠고기와 같이 올라오는 데, 그런 곳은 돼지고기 국물과 소고기 국물을 섞어 냉면 육수를 내어 놓는다 라고 생각하면 된다.
얼음가루가 가득 차 있는 을밀대 냉면 육수는 정말 시원하다. 이 집 육수 맛은 가끔 단 맛이 높아져서 평양냉면 애호가들의 논란거리가 되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보통 갈비집 냉면처럼 국수 본래의 맛을 손상시키는 시금털털한 맛이 나지는 않는다. 아무리 변하여도 평양냉면의 맛을 잘 지킨다. 이 집 육수는 소고기 국물 맛이 밍밍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아주 깔끔하게 느껴진다.
얼마 전 TV를 보니까 '냉면은 식초랑 겨자 맛'이라면서 과도하게 식초를 넣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 것은 평양냉면집에서 하면 안 되는 행위이다. 죄 받는다. ㅋㅋ 가끔가다 예쁜 여성분이 노란 겨자병을 쭉 짜서 냉면 국물에 푸는 모습을 보는데, 정말 흉하다. 밉다.
물론 테이블에 식초도 있고 겨자도 있지만 그것들을 과도하게 넣어 메밀의 향과 맛을 가리면 평양냉면을 먹는 의미가 없어진다. 조금씩 넣어 육수를 입맛에 맞게 '튜닝'정도만 하면 된다. 평양냉면의 육수 맛이 약간 밍밍한 것은 냉면 자체의 메밀 맛을 손상하지 않게 하려는 조상의 지혜이다.

만약 국물 맛이 너무 밍밍하다고 느끼면, 냉면에 곁들여 나오는 아주 마일드한 무 김치를 넣어서 먹으면 된다. 원래 메밀과 무는 궁합이 잘 맞아 몸에도 좋고 맛도 좋으니까 참 괜찮다. 아 그리고 만약 김치를 주는 곳이라면 김치를 약간 넣어서 같이 먹어도 무방하다. 뭘 해도 좋으나 냉면에 있는 메밀 맛만 손상하지 않으면 평양냉면을 즐기는 데엔 지장이 없다.
을밀대의 무 김치 맛이 좋아 한 두 젓가락 정도를 냉면 그릇에 넣어 면을 감싸서 먹으면 맛이 좋다. 그리고는 국물을 한 모금 마시면 면과 무의 맛이 국물과 섞이면서 조화를 맛보게 한다. 을밀대 특유의 면발 두께의 맛을 볼 수가 있는 것 같다. 색다른 식감과 음식을 씹은 후 목 넘김도 괜찮아 을밀대 고유의 맛을 느끼게 된다.
이제 제목에 씌어 있는 걸 얘기하자. '평양냉면은 겨울 음식'이라는 말은 많이 들 들어 보셨을 것이다.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차디 찬 냉면을 먹는 맛도 물론 아주 끝내준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메밀'에 있다. 메밀은 11월 중순~말 경에 추수가 되는 곡식. 그러므로 햇메밀은 겨울에 팔려 나가기 시작한다. 어떤 곡식이던 '햇'자가 붙었을 때 제일 맛이 있는데, 특히 메밀은 그게 더 심하다고 한다. 메밀의 맛과 향은 보존하기가 쉽지 않아 시간이 가면 빨리 없어 지는 것이 그 이유다. 그래서 평양냉면은 당연히 겨울 음식이 되는 것이다.
평양냉면의 매니아들은 찬바람이 불면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이런 저런 이유를 다 붙여서 냉면을 먹으러 간다. 날씨도 춥고한 데 찬 음식이라 걱정이 되는 분들. 걱정하지 마시라. 대부분의 평양냉면집들은 '면 쌂은 물'을 따뜻하게 주는데 메밀 맛이 가득하여, 이 것 또한 별미다. 을밀대나 또 다른 곳들은 냉면 육수를 데워 주는 곳들도 있다. 그래서 냉면을 먹고 속이 너무 차졌다고 생각하면 따뜻한 면 삶은 물이나 육수를 마시면서 속을 다시 따뜻하게 하면 된다.
재대로 만든 평양냉면은 메밀의 우수한 성분과 섬유질도 많아 미용에 아주 좋은 음식이다. 술을 마실 줄 아는 '선수'들은 술 마신 다음날 해장으로도 즐긴다. 우리 조상의 지혜도 듬뿍 담겨있고, 담담한 깊은 맛으로 다시 인기를 얻는 평양냉면. 이제 좀 신경을 쓰면서 재대로 먹어 보자.
만약 아는 곳이 없거나 기회가 있으면 을밀대에 들려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즐겨보길 바란다. 물론… 애인이 있으면 데이트 하기 좋은 곳이다. 공휴일엔 커플들도 많이 와서 염장 많이 지른다. ㅋㅋ 아 그리고.. 이번 겨울이 끝나기 전에 꼭 평양냉면 드시길 아주 강력하게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