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까번쩍 휘황찬란한 백화점 명품 코너에서
정중한 대접을 받으며 신상품 설명을 듣는 것도 좋지만,
시끌벅쩍하고 어수선한 장터에서
평범한 서민들과 상인들의 일상을 엿보고 좌판을 구경하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다.
그래서 난 어딜 가나 시장이나 좌판 구경을 즐긴다.
여기 우에노(上野)에도
아메야요코쵸우 (アメヤ横丁) 라고 제법 유명한 시장이 있다.
대개 아메요코 (アメ橫) 라고 부른다.
듣자하니 토쿄 유일의 재래시장이란다.
정말로 유일인지 무이인지는 나도 모른다.
서울도 다 알지 못하는데 이방인이 더 크고 더 넓은 토쿄를 어찌 다 알 수 있으랴...
한국 사람들은 아메요코를 '토쿄의 남대문 시장'라고도 하는 모양인데,
재래시장 (분위기)라는 점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일 뿐,
한국의 남대문 시장에 비해 그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그리고 남대문 시장처럼 아메요코 시장도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소위 미제물품들의 암시장으로 시작된 것 같다.
'아메'로 발음되는 일본의 한자들이 몇 있는데,
가령,
비를 말하는 '雨',
엿을 의미하는 '飴',
하늘을 지칭하는 '天',
콩 삶은 콩물을 뜻하는 '豆汁',
송어? 산천어? 뭐 그런 물고기 '鯇' 등등...
예전에 엿(飴, 아메)을 파는 가게(屋, 야)들이 주욱 늘어서(橫, 요코) 있었기 때문에
飴屋橫, 즉 '아메야요코'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고,
그러나 발음이 비슷한 한자들이 많지만 그걸 쓰지 않고,
카타카나 アメ(아메)로 표기한다는 점에서,
아마도 '아메리카'에서 따온 '아메'인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잘 아시겠지만,
단어를 팍팍 줄이거나 일부만 따오는 게
일본(어)에서는 전혀 드문 일도, 어색한 일도 아니다.
참고로, 오오사카에도 아메리카촌, 아메무라(アメ村)가 있다.
그러나 오오사카의 아메무라는 시장이 아니다... ^^)
아, 우에노의 아메요코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는
한국 식품과 의류 등을 파는 코리안요코쵸우 (コ-リアン橫丁)가 있다.
엊그제 그 아메요코에서 목격한 일 하나...
어느 나라엘 가나 한국 사람들이 없는 곳이 없고
따라서 한국말이 귀에 들리는 게
더 이상 신기한 일도, 격하게 반가운 일도 아닌데,
"네, 어머님... 어쩌고" 하는 소리가 들리길래
자연히 그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한국인 고부, 즉 시어머니와 며느리였는데,
대충 분위기를 짐작컨대,
며느리는 시집온지 얼마되지 않은 것 같았고,
일본과 일본말에 익숙하지 않은 듯 했다.
반면 시어머니는 비교적 익숙해 보였는데,
아마 일본에서 생활하는 것 같았다.
그들 고부는 새우를 살 작정이었던 듯,
산 새우를 가리키면서 며느리가
"어머님, 저기 새우..."
그러자, 시어머니는
아주 권위적인 표정과 말투로,
"넌 그것도 모르냐? 저건 생으로 먹는 오도리야..."
그러면서 몸을 획 돌려 앞장서 가는 것이었다.
물정 모르는 새색시는 '오도리'가 뭔지 모르는 표정으로
황급히 뒤따르고 있었고...
한국식 일본어 '오도리'는
아시다시피, '날로 먹는 산 새우'를 지칭하는데,
일본말로 제대로 쓰면,
えびの躍(おど)り食(ぐ)い(에비노오도리구이)쯤 될 것 같다.
여기서 에비(えび)는 새우...
여튼,
그 한국인 고부를 보면서
잠시 아쉬운 점이 있었으니,
남남도 아닌 고부간에
좀 더 따뜻하고 정겹게 표현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같은 말이라도,
"아가, 저거는, 우리가 사려는 게 아니고,
생으로 먹는 새우란다..." 하고,
물정 모르고 현지 사정에 어두운 며느리를
시어머니는 좀 더 살갑고 인자하게 배려할 수는 없었을까?
시어머니는 자신의 그런 모습과 행동이
권위를 만들고 그래야 위엄이 생긴다고 믿는 것일까?
그들의 속사정이야 알 수 없고,
사실 내 알 바도 아니지만,
아쉽고 씁쓸했던 장면이었다.
'권위'와 '권위주의'는 다른 것일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