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여자애가 있습니다. 나랑 동기니까 4년 전에 대학에 같이 입학한 애에요. 얼굴은 아주 예쁜 편은 아닌데, 꽤 반반하고 전체적으로 여리게 생겼습니다. 그러니까 딱 보고 예쁘다 생각할 정도는 아니지만, 고백 받으면 거절하진 않을 스타일이지요.
근데 얘가 대학 들어오면서부터 인기가 장난이 아닌 겁니다. 인기라는 게 '걔 조카 예쁘더라~'이렇게 드러나는 인기가 아니구,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 남자들이 하나하나 걔한테 고백을 하는 뭐 그런 거였습니다. 남자애들이 멋모르고 어떤 애 좋다고 징징대는 거야 대학교 1학년 때 흔히 있는 일이긴 하지만, 그 외모에, 성격이 아주 나긋나긋한 것도 아니고... 난 도저히 왜 주변의 남자들이 걔한테 엮여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었지요. 더군다나 걔한테 고백을 한 수많은 남자들 중에 그 누구도 OK 싸인을 받지 못하는 겁니다. 으레 그 때 남자애들이 그렇긴 하지만 걔한테 차이고 나서 죽을둥 살둥 폐인 되는 놈도 여럿 봤어요.
그러다 그 여자애랑 나랑은 어쩌다보니 같은 동아리를 들어가게 됐는데, 그 여자애랑은 안면도 좀 있었고 이래저래 성격이 꽤 맞아서 친하게 지냈습니다. 어느날 메신저로 이야기하는데 그녀 왈, "너랑 이야기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어... 너랑 나랑 잘 맞는 것 같다! 우리 내일 밥먹을래?" 그 때 나는 어장관리니 뭐 이런 개념이 전혀 없는 조꼬딩과 다름없는 人이었기 때문에 마음이 확 가버리더군요. 다른 남자애들이 걔한테 고백했다 차였다는 이야기는 여러번 듣긴 했지만, 나에게는 이렇게 특별할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밥을 같이 먹는데 가슴이 쿵쾅거리고, 자꾸 생각나고. 아무튼 그래서 좋아하게 된 겁니다.
나한테만 하는 것 같은 특별한 멘트는 그 이후에도 여럿있었습니다. 오래된 지라 기억은 잘 안나네요. 나는 점점 그 아이와 나 사이의 관계가 특별하다고 생각했고, 타이밍 놓치지 말라는 친구들의 조언을 등에 업고 고백을 합니다. 그게 6월 정도 되던 여름이었던 것 같아요.
당연히, 난 따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차였는데, 그런 감정의 기복을 감당할 만큼 성숙치도 못했으므로 한 며칠 징징댔습니다. 서로 그 사실을 말하진 않았지만, 과에는 소문이 났고 나는 나에게 쪽팔림을 주는 대학과 과라는 공간이 무척 두려워졌죠.
그래서 일찌감치 집에 내려와서 알바를 하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오는 문자. "사람들이 널 보고 싶어해, 학교로 얼른 돌아와^^" 난 희망을 품었고, 이후에 용기내서 서로 메신저도 하고 문자도 하고 그랬답니다. 그러다가 동시에 알바하는 자리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여차저차 잘 되어 가고 있었던 차라 그 애를 좋아하던 감정도 거의 희석이 됐었습니다. 그래서 2학기 복학했고 당시에 알바를 하다 만난 애랑 사귀고 있었어요. 근데 눈에서 멀어지다 보니 감정도 멀어지고. 아까 말했던 그 여자의 특별한 멘트는 계속 되고... 또다시 착각이 반복되면서 알바하다 만난 애랑 깨졌습니다. 왠만한 립서비스 멘트엔 내성이 생겨서 괜찮았는데, 걔랑 술 마시고 얘기하고 (물론 전부 1:1) 그러면서 친해졌습니다.
그 즘 친해지니까, 옛날에 자기가 누굴 좋아했었고 이런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걔가 좋아했던 사람은 다름아닌 6살 연상의 선배. 내가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성숙하고, 지적으로 충만하고... 뭐 그런 사람이었는데... 그 선배란 사람은 여자친구가 있었고 그래서 자기가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하더군요. 물론 이야기는 전부다 과거형이었기 때문에, 얘가 지금 이런 얘기를 나한테 하는 거, 그런 거 때매 진지하게 얘가 날 좋아하는 건가 생각이 되는 겁니다.
다시 좋아하기 시작하니까, 분명히 걔도 날 좋아한다고 믿을 수 있을 만한 증거는 너무 많은데, 생각만큼 진도는 안나가고.. 죽겠는 겁니다. 힘들어지고.
그런데 그 시기에도 걔를 좋아하는 사람은 무지 많았습니다. 내가 알던 것만 7~8명 됐던 거 같아요. 그런데 연애 관계에서 남자의 생각이라는 게 항상 자기 중심적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보다 내가 특별하다 여겨지는 겁니다. 실제로 그럴 만큼 많이 만나기도 했고, 3자 입장에서 보기에 곧 사귈 거라는 이야기도 많았기 때문에요.
그렇게 2학년이 됐을 때, 걔가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겁니다. 물론 직접 들었습니다. 또다시 충격...
그때 걔를 속으로 무지하게 욕했고, 이후 연락 단절했지요. 그 때 걔의 행동을 애정결핍, 내지는 뭐 어장관리다... 요론 식으로 단정했습니다. 남자 감정 헤아릴 줄 모르고 제 멋대로인 뭐.. 그런 식으로요. 그렇게 감정이 정리될 즘 해서 후배 중에 절 좋아하던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걔랑 사귀기로 했습니다. (물론 나쁜짓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해서 후배랑 정 들고 그러면서 걔는 기억 속에서 잊었습니다.
그 이후에 걔를 좋아하던 남자들이랑 무슨무슨 일이 있었다더라 이런 얘기 들려오는데, 가관인 겁니다. 감정이 정리되고 나서 보니까,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 걔 하나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너무 안스럽더라구요. 개 중에는 나처럼 걔를 막 욕하면서 대강 정리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착각 -> 좌절 -> 착각 -> 좌절 패턴이 계속 이어지는 경우도 많이 봤고. 심지어는 3년 동안 그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 하나하나랑 술먹으면서 걔 미쳤다 낚이지 말라 얘기를 많이 했는데 그런다고 감정 정리하는 놈 못봤고.
그런데 화가 나는 건, 그 이후에 내 후배들이 걔한테 낚이기 시작한 겁니다. 그 중 한 놈은 그 여자애 자취방에 가서 걔 올 때까지 문 앞에서 기다리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더 가관인건 놈을 데리고 밤새 술을 같이 마시고, 술김에 놈이 기습 키스를 하려고 했음에도.. 그 다음날 똑같이 방에서 술을 마시더라는 겁니다. 구렁텅이에 빠진 그 놈 살려보겠다고 내가 데려다 놓고 얘기를 많이 했는데, 자신만큼은 그 여자애한테 특별한 존재라고 여기는 막무가내 착각 앞에서는 아무 소용 없더군요. 나중엔 그 놈 거의 반 폐인이 되서 집에서 혼자 생활하다가 군대에 갔습니다. 그 녀석 살려보겠다고 정신차리라고, 욕도 하고 그랬었는데 녀석이랑 나랑 의도 많이 상했지요.
아무튼 그 이후에 나는 학비를 버느라 잠시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고향에 내려오게 되었고, 걔는 학교에서 단대 회장을 하면서(무척 열심히 사는 애입니다. 매력이라면 매력일 수 있는 부분) 학교에 계속 있었어요. 걔 후배랑 내 후배랑 거의 일치하기 때문에 제가 단대 회장을 하면서 챙겼던 후배들을 걔가 그대로 이어받아서 챙겨주고 있었어요.
그런데 나랑 3학번이나 차이가 나는 한 후배 녀석이 어제 술자리에서 자기가 죽고 싶다는 겁니다. 원래 감정과다인 녀석이기도 하고 이게 뭔 뻘소린가 해서, 안 들을려고 했는데 징징대는 투여서.. 왜 그러냐 물어봤더니..
그거였습니다. 늪에 빠진 거죠. 나는 꽤 충격을 받았는데, 그 녀석이라면 나랑 술을 가장 많이 마신 녀석 중 하나였고, 내가 그 마녀한테 낚였던 일을 다 알고 있는 녀석이었기 때문이지요. 녀석은 자존심 때문에 그 여자애를 좋아한다고 말하진 않고 다만 어쩔 수 없었다라고 말을 하는데. 안그래도 최근에 학점이니 동아리 활동이니 다 때려치고 병신 짓 하는 게 이상하긴 했는데... 걔가 뭐라뭐라 자세하게 해명할려고 하긴 하던데... 듣고 싶지도 않고 어차피 머릿속에 있는 케이스중에 하나일 게 분명해서 잘 듣진 않았습니다.
아끼는 후배가 병신되고 나니까 안타까운 마음에 그 ㅁㅊㄴ이 또 생각나는데... 도대체 걔는 왜 그러는 걸까요?
제 판단은 그렇습니다.
1. 어장관리는 아닙니다. 연기성성격장애도 아니고. 인기에 집착하거나 그런 건 아니고, 누군가가 자길 좋아한다고 하면 즐긴다기 보다는 마음 아파하는 스타일입니다.
2. 아마, 동성 이성 구분 안 짓고 친구를 만들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그 친구라는 건 자기 내면의 상처라든가 어려움이라든가 이런걸 충분히 나눌 수 있는 사람... 아주 속깊은 상대...
3.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주변 남자들의 패턴 (친구 만들고 싶다 -> 그런데 얘가 고백하네?(아님 날 좋아하네) -> 거리를 좀 둬야겠다. -> 남자는 미치고, 그걸 가만 두기는 미안하다 -> 연락하고, 다시 친구 관계가 되고 싶다는 식으로 접근 -> 다시 반복)을 충분히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오히려 친구들을 많이 잃었음에도 행동 개선의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것.
4. 전반적으로 타인의 감정에 대한 이해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도 아니고 그런데... (이성문제 말고는 다른 사람을 파악하거나 감정 이해하는 능력이 무척 뛰어납니다) 유난히 남자와의 이성 관계에 대해서는 대처하는 법이 정말 ㅄ입니다.
그러니까 솔직히 말하면 진짜 ㅁㅊㄴ이라던가 남자 가지고 고의적으로 장난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자꾸 욕이 나오고 분명히 잘못된 점이 있다 생각해서, 조만간 이 여자애를 만나서 진지하게 얘기할 생각입니다. 근데 이 여자애의 행동을 고치려면 감정적으로 얘기하거나 그래서 들어먹을 애가 아닌데다... 자기 입장에선 자신의 행동들이 무척 정당하기 때문에 어느정도 논리적인 구조를 가지고 만나야될거 같아요. 이런 건 정신분석학적으로라든가 아니면 여타 관점에서 무엇이 문제인거 같다.. 지적해주면 공부좀 해보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이상황과 아주비슷한상황이있었거든요..
이게 도대체뭔지 아는분 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