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Le Corbusier의 묘
금요일 오후
잠실 교보문고 한켠에 자리를 잡고는
대학교 1학년 가을 무렵 설레는 마음으로 처음 펴들었던
Le Corbusier의 '건축을 향하여'를 다시 펴들었다.
재판이 된 책은 표지가 더욱 세련되어지고 종이의 질감도 훨씬 좋아졌지만 나는 아직도 학교 도서관 라디에이터에 걸터 앉아 읽어내려갔던 손때를 타고 누렇게 뜬 그 책이 더 좋다.
현대의 고도로 정보화된 환경에서는 실제로 사람이나 사물을 접하
고 감동할 기회가 눈에 띄게 줄어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정보가
넘치고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 세계 어디든 순식간에 접속할 수
있다 하더라도, 모두 직접 체험에 비교할 수는 없다. 특히 살아가는
일, 무엇을 창조하는 일의 소중함을 몸으로 체험한다는 것, 혹은 체
험한 사람과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 전
체에서 뿜어져나오는 에너지와 자극을 누릴 수 있는 다시없는 행운
일 것이다.
이 책 '건축을 향하여'를 접했던 것은 꼬르뷔제와 나라는 사람은 물
론이고, 타인의 과거와 나의 꿈이 교류할 수 있도록 해준 가장 자유
로운 접속의 형태였다.
공간의 영역에도 정보화의 물결은 밀려들어온지 오래이다. 설계작
업도 손 도면을 그리고 매스 스터디나 모델링처럼 모형을 만드는 수
작업의 영역도 이제는 AUTOCAD, 3D MAX, RHINO와 같은 비물질적
인 세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실제로 지어지는 공간은 어디까지나 물질성을 수반하는 실체다. 그리고 인간 역시 언제까지나 실재하는 존재일 것이다.
훗날, 세상이 바뀌고 바뀌어 이 모든 것들의 위계가 무너지는 때가 오게 된다면, 가장 슬퍼할 사람은 바로 '르 꼬르뷔제'가 아닐까.
20세기 후반에는 근대주의와 지역주의의 대립을 어떻게 풀지가
관건이었다면, 현대의 21세기는 아마도 가상과 실재의 대립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건 아닐까 싶다. 이미 나부터도 대학 3,4학년때 풀지 못한, 아직도 고민하는 영역이다.
세상과의 대립과 이질감을 느끼는 것은 그 형태만 상이할 뿐,
실은 우리 모두 뼈저리게 고뇌하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