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시청자들에게 드라마를 왜 보느냐고 질문하면 어떤 답변을 할까?
예컨대 ‘시간이 남아돌아서’, ‘이유 없이’ 혹은 ‘재미있으니까’, ‘별 생각 없이’와 같이
신통치 않은 답변이 줄을 이을 것이다.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메시지를 끝없이 송출함으로서,
사색할 틈새를 주지 않는 ‘바보상자’에 대한 질문에 수준 높은 답변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일지도 모르겠다.
TV 드라마는 ‘중학생’ 정도의 수준이면 적당하다고 보기 때문에 일상적인 가족 드라마의 경우도
보통 15세 이상 관람가로 되어있다. TV드라마는 그 매체 성격상 대중들이 원하는 기호에
접근해야 살아남기 때문에 경제적, 사회적 변화에 민감하고, 대중들의 기호에 집착하는 상품을
생산해내야 한다. TV는 그런 의미에서 ‘바보상자’인 동시에 대중들이 심리의 밑바닥에 깔린
내면의식을 투명해내는 나르시스의 샘이다.
여성 시청률과 전국 시청률은 왜 비슷할까?
TV드라마가 점점 여성적이 되어가는 이유는 여성들이 시청률을 높이는데 큰 일익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과학적인 데이터로 접근해 보면 여성 시청자의 편중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여성이 남성보다
TV 드라마를 많이 본다는 것은 어제 오늘 있어온 현상도 아니지만 그 차이가 얼마나 큰지는
데이터를 봐야 금방 알아챌 수 있다. 전국 시청률과 성인여성의 시청률이 대체적으로 일치하기 때문이다.
여성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해보면 ‘파리의 연인’이나 ‘풀하우스’ 같은 신데렐라 드라마는 없어져야
한다는 답변이 나온다. 재미있는 것은 시청률 조사를 해보면 반대의 데이터가 나온다는 것이다.
파리의 연인은 51.2%를 기록했고 풀하우스는 40.2%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여론조사에서는
최악의 드라마로 꼽혔다. 즉 여성들은 ‘난 신데렐라 드라마를 좋아하지도 않고 그런 드라마를
없어져야 해!’하고 항변하면서도 막상 신데렐라 드라마를 보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신데렐라’, 남성들은 ‘영웅’
IMF 당시 대량 감원이 줄을 이었을 때 직장을 양보해야 해야 했던 비율이 여성들에게 상대적으로 높았다.
남성들은 처자식을 부양해야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앞섰고, 경제적 책임감이 약한 여성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감원에 동참해야 했다. IMF 이후, 전체 비정규직 중에 여성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70% 에 달한다. 1997년 이후로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떨어져버린 것이다.
경제호황기였던 1990년대 중반 무렵 ‘이혼’과 ‘남녀평등’을 부르짖으며 가정을 뛰쳐나오던 드라마
여주인공들이 재벌 자제와 결혼하고 싶다는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 이 즈음이다.
그때까지 신데렐라 드라마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의사’나, ‘판사’, ‘교수’ 같은 빈곤하더라도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는 것을 꿈꾸거나, 남자들에게서 해방되어 캐리어우먼의 성공을 꿈꾸는
여주인공이 ‘돈 많고 무조건으로 잘해주는 잘 생긴 남자’에 대한 기호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남자에게서 아무리 해방되어도 경제적, 사회적으로 비루하게 살 수 밖에 없다는 불안감이
‘신데렐라드라마’의 여주인공에 대한 대리만족으로 나타난 것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삶이 힘들어지는 것은 여성들만이 아니다. 남성들 역시 여성과 마찬가지로
드라마로 대리만족을 하려한다. 무한경쟁 시대에 ‘영웅’ 드라마가 절대 우위를 차지하는 것은
남성들이 드라마를 통해 위안을 삼으려는 속성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여성들은 ‘신데렐라 드라마’나
‘로미오와 줄리엣 식 드라마’로 위안을 삼고 남성들은 ‘영웅 드라마’나 ‘조폭 드라마’로 위안을 삼는 것이다.
문제는 여성 취향의 신데렐라 드라마는 안 좋은 것이오, 남성 취향의 ‘영웅드라마’는 좋다는 의식이다.
여론조사에서도 알 수 있지만 여성들은 스스로 신데렐라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현대
여성 중에 남성에게 의존해서 신분 상승하고 싶은 여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다만 현실이 워낙
각박하다보니 좀 다른 세계를 꿈꿔보고 싶은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각박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슈퍼우먼처럼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여성들이 드라마에서까지 발에 땀이 나도록 일하고 있다면 얼마나
스트레스에 쌓일 것인가? 이런 여성들에게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쓰여진 ‘신데렐라 드라마 비판’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