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에르는 앞에 서 있는 문지기 당번 때문에 짜증이 나려고 하는 중이다.
"허억! 허억! 허억!"
"으이그~"
무언가 자신에게 빨리 알리려고 죽어라 달려온 덕분에 빨리 자신 앞에 서긴 했지만 이렇게 숨을 헐떡거리느라 말을 못하고 있으니...... 오히려 걸어와서 말하는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리겠다.
"흐으읍! 휴우~"
"이제 됐냐?"
"아, 예."
"그럼 빨리 말해 봐. 왠 호들갑이야?"
오늘 문지기 당번은 뚱뚱한 녀석이다.
먹을 것도 부족한 판에 도데체 어디서 무얼 먹고 저렇게 많은 살들을 유지하는 것인지 궁금한 놈이다.
"누, 누가 찾아왔습니다."
"누가?"
"저...... 그건 말할 수 없다는데요."
"왜 왔데?"
"스파키를 만나게 해달라는데요."
"갔잖아."
"그럼 그렇게 말할까요?"
키에르는 한숨을 쉬었다.
머리를 좋게 해주는 약이 엔젤마을에 있을지 궁금해졌다.
있다면 자신의 살을 떼어주고라고 가져와야 한다. 이 마을의 미래를 위해.....
그런 말같지도 않은 생각을 하자 얼마전에 엔젤마을에서 온 전령이 전해준 소식이 떠올랐다.
카란.....
결국 그렇게 죽었구나.
전령의 말에 의하면 카란은 갑자기 쳐들어온 몽크들에 의해 큰 상처를 입고 그 날 밤에 결국 숨을 거두었다고 했다.
햇볕을 싫어하는 놈들이 왜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마을을 습격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스파키가 그곳에 있었으니 큰 피해는 없었으리라 생각하고는 카얀이 마을을 잘 이끌 수 있도록 도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것이 그를 원망하며 지낸 세월에 대한 보답일것이다.
키에르가 잠시 카얀의 고생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잠잠하게 있자 문지기가 물었다.
"어떡하죠?"
"어떡할까?"
"예?"
"네 생각에는 어떻게 하면 좋겠냐?"
"그러니까..... 여자가 스파키를 찾으니까...... 근데 여기 없으니까....... 어디갔지?"
"너, 지금 여자라고 했냐?"
"예. 여자던데요. 한명이요."
"여자 혼자 여기까지 와?"
메탈타운은 오래 전 전쟁의 잔해 위에 세워진 마을이다.
주변은 거의 대부분이 사막이다.
그런 곳에 여자 혼자 그를 찾아왔다면 수상한 부분은 충분하다.
"내가 가겠다."
잠시 후, 키에르는 방문자 앞에 섰다.
다행히 버닝타임이 지나는 시간이기에 그는 맨 얼굴을 드러내고 상대의 얼굴을 살폈다.
상대는 계속 얼굴까지 가리고 고글을 착용한 채 서 있었다.
얼핏 봐서는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하기 힘들텐데 저 돌머리가 어떻게 알았는지 불가사의하다.
"내가 이 마을의 지도자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지도자라는 말에 방문객이 얼굴을 드러냈다.
힘든 여행이었는지 입술과 볼이 바짝 말라있다.
"손님을 이렇게 입구에만 세워두는 것이 관례인가요?"
"길트스캐너를 가져와라."
누군가 바로 큼직한 기계를 가져왔다.
작은 모니터가 달려있는 그 기계는 테크타운에서 비싼 대가를 주고 사온 것이다.
그리고 그 값을 톡톡히 하는 물건이다.
"음..... 감염되진 않았군."
"그럼 들어가도 됩니까?"
"틀렸소."
"무슨....."
"그는 여기 없소. 스파키 그 자는 오래전에 떠났소."
"그럴 리가. 이곳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온 것인데..... 어디로 갔나요?"
"그건 말할 수 없소."
"........."
"당신이 왜 그를 찾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에게 해가 될 일이라면 우린 도울 수 없소."
"그렇군요......."
여자가 실망스런 눈빛을 하며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자 키에르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를 왜 찾는지에 달렸지."
"그건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럼 잘 가시오."
키에르는 바로 몸을 돌려 마을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몇 발작 걷자 문지기가 불렀다.
"어, 키에르. 저기....."
키에르는 수상한 여자가 갑자기 공격이라도 하려는 줄 알고 단도를 꺼내며 몸을 돌렸다.
하지만 여자는 공격은 커녕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저녁이 되자 여자는 정신이 들었다.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 눈을 살짝 뜨고 주변을 살피려는데 갑자기 손이 확 다가오더니 자신의 눈꺼풀을 뒤집으며 얼굴을 들이댔다.
"음....... 이제 깨어날 때도 됐는데......"
"수상하면 그냥 죽여버리죠."
키에르가 눈꺼풀을 다시 놔주며 말했다.
"글세...... 누군지도 아직 모르는데 수상하다고 죽일수야 있나~"
"스파키가 누군가 자신을 노린다고 했습니다. 수상하니 일단 죽여야 안전하죠."
"그래도......"
"힘드시면 제가 하죠 뭐."
카얀이 칼을 뽑자 스릉 하며 쇠가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여자가 쓰러지고 나서 바로 메탈타운에 도착했다.
앞으로의 일을 상의하기 의해 키에르를 찾은 것이다.
여자는 갈등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죽을 것이고 살기 위해 싸우면 그들은 스파키의 행방에 대해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싸우다가 죽을수도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순간 칼을 든 자가 성큼 다가오더니 다시 그녀의 눈꺼풀을 뒤집었다.
"이야~ 자세히 보니 예쁜데요. 그죠?"
"음..... 그렇군."
"눈도 푸른 색입니다. 제가 젤 좋아하는 색이죠."
그가 다시 그녀의 눈꺼풀을 놓았다.
"너 혹시....."
"요즘같은 세상에 이런 여잘 보는게 어디 흔한 일입니까?"
"그럼. 나 먼저....."
"어허~ 나이를 생각하셔야죠."
"어허! 이놈! 어른을 공경해야지. 어디서."
"어차피 힘도 없으신데 제가 나서야 아이라도 생길 것 아닙니까?"
"음...... 그렇구나. 내가 그 깊은 뜻을 몰랐구나. 미안하다."
"그럼 자리를....."
"그래, 알았다. 그럼 난 내일 오마. 참, 위험할지 모르니 먼저 손을 묶도록 해라."
"예."
카얀은 일부러 흐흐흐 소리를 내며 여자의 손목을 모아 줄을 감기 시작했다.
그러자 여자가 벌떡 일어섰다.
"자, 잠깐!"
여자는 벌떡 일어서다가 하마터면 목이 날아갈 뻔 했다.
카얀이 슬며시 칼을 미리 움직여서 여자의 공격을 대비한 것이다.
그가 칼을 뒤로 움직이지 않았으면 목에 박혔을 것이다.
"얌전히 있어."
"자, 자, 자, 잠깐만요."
"누워."
카얀이 칼을 다시 목에 가까이 대며 윽박지르자 여자는 눈물까지 흘리며 떨기 시작했다.
"제발......"
"손 내밀어."
카얀이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밧줄을 들어보이자 여자는 거의 사정하듯 말하기 시작했다.
"제 말 좀.... 들어보시고...."
"급한거 해결하고 나중에 듣지."
여자가 주변을 보니 자신의 짐들이 선반 위에 있는 것이 보였다.
무기들도 함께 있었다.
여자는 용기를 내어 카얀의 손을 밀쳐 칼을 멀어지게 했다.
그와 동시에 벌떡 일어서며 무기를 집기 위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의 손이 먼저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바닥에 엎어진 그녀는 필사적으로 앞으로 기어가려 했지만 그는 얼른 위에 올라타더니 들고 있던 칼을 던지며 그녀의 두 손을 뒤로 꺽어 빠른 속도로 묶어버렸다.
그리고는 그녀를 번쩍 들어서 침대 위에 던지더니 그 위에 올라탔다.
그런 다음 몸을 눕혀 다시 칼을 집어든 그는 그녀의 바지 밸트 안쪽에 스윽 집어넣으며 속삭였다.
"가만있어. 안그러면 뱃가죽이 벌어진다. 이 칼은 아주 잘 들거든."
"흑...."
엎어지면서 가슴을 세게 부딪혔지만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이대로 목적도 이루지 못하고 당하다니.......
눈 앞이 캄캄했다.
카얀은 칼날을 위로 세우며 벨트를 잘라버렸다.
그리곤 한 손으로 그녀의 바지를 끌어내렸다.
여자가 다리를 움직이려고 하면 그는 그녀의 배에 닿아있는 칼등을 조금 흔들며 위협했다.
"움직이면 피 본다."
"제발....."
"좋아. 아주 조오아~"
카얀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기 시작했다.
얼굴도 조금 빨개진 것 같다.
그의 칼이 그녀의 팬티를 찢어내기 위해 그녀의 몸과 팬티 사이로 차갑게 들어갔다.
그녀는 차가운 느낌에 소름이 돋으며 죽고싶은 마음이 드었다.
그가 동작을 멈추며 말했다.
"근데, 스파키... 그 자는 왜 찾지?"
"그건....."
"혹시 모르지. 그 이유를 말하면 살려줄지도."
".........."
"그자를 쫒아다니는 이유가 뭐야?"
여자는 갈등이 일었다.
그 이유를 말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 자들이 스파키의 친구라면 다행이지만 적이라면 자신은 이 상황의 끝을 보게 될 것이 뻔하다.
결국 욕보이고 죽겠지.
하지만 용기를 낸 그녀는 마지막 시도를 했다.
"당신은 그사람의 친구인가요?"
"적이라면?"
"말 못해. 차라리 죽여."
"오냐. 알았다."
그가 웃으며 대답했고 그의 칼이 팬티를 위로 조금씩 올리며 찢기 시작했다.
그러자 여자가 기겁을 하며 입을 열었다.
"마, 말할께요. 도, 도움을 청하려고..."
"무슨 도움?"
"힘을 빌리려구요. 어엉~"
여자는 울음보를 터트렸다.
절망감과 수치심과 살고싶다는 마음과 비밀을 누설했다는 비참함이 그녀의 눈물을 마구마구 쥐어짜고 있었다.
"엉~엉~엉~"
카얀은 무언가 더 물어보려고 했지만 그때 키에르가 들어왔다.
"이야~ 카얀, 너 혹시 경험 있는거 아냐? 왜 이렇게 리얼해?"
"이렇게 해보자고 한 사람이 누군데 그래요?"
"야~ 그래도 생각보다 리얼하다 야. 나 봐라. 흥분했어."
키에르가 아랫배를 앞으로 쭈욱 내밀며 헤죽 웃었다.
남성이 옷을 뚫으려는 모양이다.
"우리 연극팀 만들까? 성인용으로 말야."
"..........."
카얀이 조심스럽게 칼을 빼서 칼집에 넣으며 그녀의 옷을 다리 위에 덮어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당신이 왜 그를 찾는지 솔직한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제서야 울음을 그친 여자가 눈을 들어 강간범을 보았다.
"네?"
"당신이 절대 말하지 않을거라고 하면서 이런 연극을 하자고 한 사람이 저 사람이죠. 그러니 날 원망하지 말기 바랍니다."
"에......"
"당신을 헤칠 뜻을 추호도 없었습니다. 나가있을테니 옷 입으시면 부르십시오. 얘기를 들어본 후에 그의 행방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카얀이 키에르의 팔을 잡고 끌고 나가듯이 나가자 키에르가 또 장난을 쳤다.
"야, 시동을 걸었으면 조금이라도 움직여야지. 내가 할까?"
카얀은 대꾸도 하지 않고 그를 끌고 나갔다.
여자는 생전 처음 먹어보는 포도라는 것을 껍질과 씨까지 전부 씹어먹으며 놀라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 이것이 그 말로만 듣던 과일이라는 거군요."
여자가 개걸스럽게 포도를 먹어치우는 것을 보며 키에르가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카얀이 마음을 크게 먹고 가져온 귀한 것이다.
키에르는 사라져가는 포도를 보며 저 여자가 조금만 늦게 왔더라면 저것을 지하저장고에 숨겨 놓았을 거라는 생각에 침을 꿀꺽 삼켰다.
양도 얼마 되지 않는데........ 같이 먹기도 그렇다.
여자의 바싹 마른 볼에 남은 눈물자국을 보며 카얀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좋지 않은 목적을 띠고 있을지 모르니 그 속셈을 알기 위해 그런 짓을 하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아니요. 어쨌든 전 그사람에게 해꼬지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힘을 빌린다고 하셨는데 그에게 무슨 부탁이라도 하실 계획입니까?"
카얀이 천천히 묻었지만 키에르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카얀. 우선 다 드시면 그때 얘기해도 늦지 않다."
"아, 예."
여자도 방금 카얀이 물은 내용을 잘 듣지 못했는가보다.
앞에 놓인 음식과 물을 정신없이 먹어대고 있었다.
포도가 순식간에 사라지자 그녀는 말린 빵을 물에 찍어가며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
잠시 후에 카얀이 다시 질문을 했다.
"그는 왜 찾으십니까?"
"힘을 빌리려구요. 저흰 그 사람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에게 부탁하실 것이라도 있습니까?"
"네."
"무슨 일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저흰 그 분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은인이죠. 그를 위험에 빠트릴 만한 것이 있다면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을겁니다."
"저희에게도 그 분이 은인이 되어주셨으면 해요."
"무슨 일이냐에 따라 달렸죠."
가만히 있던 키에르는 카얀의 물음에 망설이는 그녀의 눈빛을 조용히 살피고 있었다.
악의를 품은 눈은 아니다.
무언가 애절한 사정이 있지만 함부로 말했다가는 무서운 일을 당할수도 있다는 그런 눈빛이다.
키에르는 느긋한 표정을 지으며 결정을 내렸다.
"그는 지금 테크타운으로 갔소."
"예? 테크타운이요?"
카얀이 대답했다.
"아마 이틀 후면 그곳에 도착할 겁니다. 바이크를 타고 갔으니 그쯤이면 도착할겁니다."
"이런, 서둘러야 해요."
여자는 갑자기 일어서더니 비틀 하며 탁자를 짚었다.
카얀이 얼른 일어나서 부축을 해 주며 다시 자리에 앉혔다.
힘든 여행으로 지친 몸에 황당한 경우를 당한데다가 긴장이 풀렸으니 멀쩡할 리가 없다.
"우선 진정하시고 저희에게 자세한 얘기를 해 주십시오. 저희는 스파키의 친구입니다. 그가 당신을 도울 일이라면 저희도 돕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여자는 이제서야 앞에 앉은 두명의 눈을 들여다 볼 여유가 생겼다.
맑아보였다.
여자는 결심을 하고 입을 열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밤을 세울 정도로 긴 이야기였다.
키에르와 카얀도 그것이 정말이냐며 조금식 흥분을 하기도 하고 탁자를 치기도 하면서 경청했다.
결국 다음날 그녀는 카얀이라는 든든한 보디가드와 함께 스파키를 찾아 테크타운으로 향하기로 했다.
카얀이 키에르에게 종이를 주며 말했다.
그 종이엔 키에르가 대신 해야 할 일들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아저씨만 믿습니다."
"이래도 되냐? 늙은이한테."
"이 여자는 스파키가 누군지 모릅니다. 그를 아는 사람이 같이 가야죠. 더군다나 중요한 일인데. 최대한 빨리 돌아오겠습니다."
"그래. 하는 수 없지. 안부 전해라."
"네. 그럼."
인사를 하며 떠나는 카얀의 마음엔 키에르에게 말하지 않은 속셈이 있었다.
스파키와 함께 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바이크의 속도를 높이는 그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키에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카얀이 부탁한 일을 하려면 지하농장이 있는 엔젤타운으로 가야 한다.
그깟 포도는 벌써 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