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신 마비요? 우린 장애없는 부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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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달려!" 부릉 부릉 부와아앙. 바람은 점점 더 세게 얼굴을 때린다. 여자는 남자의 허리를 꼭 끌어안는다. 오토바이에 미친 한 쌍의 남녀. 윤광석(47. 광고 콘티작화가. 서울 논현동)·김명자(46.여)씨 부부다. 오토바이를 모는 건 남편 윤씨지만 볼트를 조이고 기름을 치는 등 정비는 아내의 몫이다. 윤씨는 하반신을 쓸 수 없는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오토바이광인 윤씨가 장애인이 된 건 오토바이 사고 때문이다. 1988년 12월. 첫번째 아내와 이혼한 뒤 방황하던 시절이었다. 술에 취해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오토바이는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뒤집어졌다. 요추 골절. 사고 이후 허리 아래쪽 감각이 완전히 사라졌다. 1년간 병원에서 재활 훈련을 받았지만 대소변도 혼자 처리하기 어려웠다.
"집에 혼자 있을 때 뚫어져라 한 시간 동안 변기를 바라봤죠. 어떤 방법으로 손을 짚고 몸을 옮기면 좋을지 궁리했어요. 막상 해보니 쉽더라구요."
자신감을 얻었다. 다시 붓을 잡았다. 다행히 다리를 쓸 필요가 없는 직업이었다. 장애를 인정하자 인생이 즐거워졌다.
다시 달리고 싶었다. 눈만 감으면 달리는 꿈을 꿨다. 일이 없는 날이면 퇴계로 오토바이 거리에 나가 장애인용 바이크 만드는 방법을 연구했다. 10년 전부터는 오토바이 동호회에 가입해 오토바이대신 차를 몰고 모임에 나갔다. 다른 오토바이들이 달리는 모습만 봐도 기분이 좋았다. 1996년, 83년식 할리 데이비슨을 트라이크(삼륜차)로 개조해 타고 다니기 시작했다. 삼륜차는 넘어질 위험이 없기 때문에 하반신을 쓸 수 없는 그도 탈 수 있었던 것. 그때 얻은 별명이 '전설의 라이더'. 인간승리였다. 그러던 중 우연히 김씨를 만났다. 김씨도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하고 세 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었다. 그는 아이들을 반듯하게 키운 그녀가 믿음직스러웠다.
"자식을 하나 키우기도 힘들었는데 셋씩이나 잘 키운 걸 보니 보통 사람이 아니다 싶었죠. 저를 책임질 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녀는 그의 무엇이 그리도 좋았을까.
"이 사람 별명이 하회탈이에요. 얼굴에 성격이 나타나잖아요. 장애인이라는 걸 느끼지 못할 정도였어요. 그냥 앉아서 활동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농담도 잘하고, 대화가 통했어요."
첫 번째 데이트를 하던 날, 김씨는 치마 정장을 차려 입고 하이힐을 신었다. 윤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공주 스타일'이었다. 얼마 못가 그녀의 스타일은 확 바뀌었다. 가죽 재킷에 롱 부츠, 청바지에 두건과 헬멧으로. 머리도 윤씨처럼 한 가닥으로 질끈 묶은 조랑말 꼬리 스타일로 바꿨다. 오토바이 데이트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원래 청바지를 좋아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망가질 줄은 몰랐죠."
처음엔 그녀도 윤씨를 미쳤다고 했다. 오토바이 사고로 다친 사람이 오토바이에 미쳐 있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타고 싶으니까 탄다'는 그의 마음을 이해하기로 했다.
"까짓것 같이 미쳐버리기로 했죠."
결혼식도 오토바이를 타고 치렀다. 2000년 9월 30일 2차 호그(할리 데이비슨 오너 그룹) 랠리 도중에 열린 결혼식. 할리 본사의 부사장인 티모시씨가 주례를 섰다. 라이더 4백여명이 결혼식 하객으로 참석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두 가족이 한 지붕 한 가족이 됐다. 김씨는 몇년 전 풍으로 쓰러져 시동생이 모시던 시어머니도 다시 모셔왔다. 남편은 고생할 아내를 걱정해 말렸지만 아내는 완고했다. 윤씨는 그런 아내가 고맙고 존경스럽다고 말한다.
윤씨가 프리랜서로 집에서 일하다 보니 부부는 24시간을 함께 지낸다. 그래도 서로 간섭하지 않아 싸울 일이 없단다. 일이 없는 날이면 부부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까운 청계산이나 남한산성에 달려간다.
하지만 오토바이가 낡은데다 이륜차를 임의로 삼륜차로 개조한 터라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시간 보다 수리하는 시간이 더 길었을 정도. 길 한가운데서 오토바이가 고장나 김씨가 끙끙대며 집까지 밀고 가느라 일주일을 앓은 적도 있었다.
그러다 몇달 전 새 오토바이를 장만했다. 윤씨의 낡은 오토바이를 박물관에 기증하는 조건으로 할리 데이비슨 측에서 트라이크 키트(이륜차를 삼륜차로 개조하는 장치 일체. 이륜차 한 대 가격과 맞먹는다)를 전달했다. 이들 부부는 이륜차 값만 부담했다.
이후 두 부부의 라이딩은 더 흥이 붙었다. 지난 주말에는 강원도 랠리를 다녀오다가 큰 비를 만났다.
"시원~하다. 꼴 조오~타들!"
비에 흠뻑 젖은 채 아내는 깔깔대며 웃었다.
윤씨는 아내를 '탠덤 퀸'이라고 부른다. (오토바이 뒷자리에 타는 걸 '탠덤'이라고 한다. 운전자와 혼연일체가 돼야 안전하게 달릴 수 있다.) 아내가 뒤에 타면 한 몸인지 두 몸인지 헷갈릴 정도로 편안하단다. 오토바이 랠리를 하다 보면 로드 마스터가 '프리 투어 신호(길에 차가 없으니 마음껏 달리라는 신호)'를 보낼 때가 있다. 윤씨가 미처 신호를 보지 못하면 아내는 남편의 옆구리를 찌르며 소리지른다. "이랴!"
젊은 동호인들이 윤씨에게 하는 인사는 "형수님은요?"란다. 두 부부가 늘 붙어다니다 보니 간혹 윤씨 혼자 오토바이를 몰고 나가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본다는 것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세계일주를 하고 싶다'는 윤씨의 꿈은 이제 부부의 꿈이 됐다. 이 별난 부부는 오늘도 오토바이를 타고 데이트를 한다.
"여보, 저기 봐. 너무 멋지다. 우리 늙으면 저기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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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박종근 기자 2003.07.31
하이든 첼로협주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