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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이야기 7

이구아나 |2007.12.31 15:16
조회 262 |추천 0

New Company
    
뉴욕의 날씨는 참으로 변덕스럽다. 몇 일간 계속된 비에 기온이 뚝 떨어져 나는 거의 초겨울의 추위를 느끼고 있었다. 8월의 추위가 이토록 혹독하다니.. 나는 결국 감기에 걸려 콜록거리는 중이다. 아무래도 오늘은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 그저 창문 옆에 서서 바깥을 잠시 바라보았다. 창 밖의 시린 풍경과 방안의 싸늘한 한기는 나를 한없이 가라앉게 만들고 있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이 건너온 낯선 땅 뉴욕.. 나는 한 달이 되도록 외톨이로 지내고 있다. 프랑스 아저씨와 DJ가 선사한 불순한 기억들은 나를 더욱 침울하게 만들 뿐이었다.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엄마가 혹시나 모르니 가져가보라며 부득부득 챙겨준 봄자켓을 껴입는 순간 눈물이 났다. 수건으로 목을 동여맨 채 이불 속에 몸을 웅크렸다. 철저한 혼자. 한국의 친구들과 가족들이 못 견디게 그리웠다. 침대시트가 눈물로 젖어 들었다. 나는 코를 훌쩍이며 잠을 청했다. 내일은 기필코 겨울 옷을 사러 갈 작정이다.

다음날 나는 16가와 7th Ave에 있는 Loehmann’s 백화점으로 향했다. Designer labels의 옷을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곳.. 수천 수 만벌의 옷들로 꽉 매어진 그 곳에서 나는 점퍼와 머플러, 그리고 기모노스타일의 블랙드레스를 구입했다. 할인된 가격에 회원가입을 통한 10%추가할인! 총 100불도 안 되는 가격에 나는 그 모든 것들을 구입할 수 있었다. 가슴속 우울한 찌꺼기들이 씻겨나가는 기분! 역시 기분전환에는 쇼핑만한 것이 없어. 다시 기분이 좋아진 나는 당장에 점퍼와 머플러를 걸치고 32가의 코리아타운으로 향했다.

뉴욕에 온 이상 철저히 미국의 문화에만 집중할 작정이었지만 한국인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나는 전날부터 하루 종일 간절했던 김치찌개를 시켜서는 허겁지겁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얼큰한 국물이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 감기가 뚝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역시 한국음식 만한 건 없어! 그렇게 혼자 숟가락을 놓으며 주위를 휘 둘러보았다. 식당에는 한국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며 점심을 먹고 있었다. 마치 한국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렇게 웃고 있는 그들을 보자 더욱 짙은 외로움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가 된 느낌.. 나는 계산을 마치고 도망치듯 32가를 빠져 나왔다.

일주일만 기다리자. 일주일 후부터 나는 두 달간 시나리오 수업을 듣는다. 내가 이 수업을 선택한 이유는 미국인들과 함께 writing에 관한 수업을 듣는다면 나의 영어실력이 드라마틱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어가 모국어인 그들 사이에서.. 나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쇼핑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뜻밖의 메일을 확인했다. 미래의 클레스메이트로부터 온 한 통의 이 메일.. 아카데미의 연락망을 통해 전체메일을 보낸 것이었다.
Jeff라는 이름의 그는 조지아주로부터 뉴욕까지 이 수업을 들으러 오는 작은 마을의 청년으로서, 기회가 된다면 수업 전에 만나 친목을 도모해보자는 뜻을 전하고 있었다. 이거 이거.. 미국인과 생활영어를 익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니더냐? 수업 전에 조금이라도 영어를 더 익혀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마음이 급하던 내게 이건 절호의 찬스였다. 나는 당장에 그에게 답 메일을 보냈다.

‘안녕.. 나는 너랑 같은 수업을 들을 Jamie(내 이름은 하루에도 열 두 번씩 바뀐다.)라고 해. 나도 뉴욕에 온지 얼마 안됐는데 너 오면 같이 관광도 다니고 그러자구.. blah..blah..’

그는 이틀 후 뉴욕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 후 이틀 동안 우리는 몇 번의 메일을 더 주고
받으며 뉴욕에서의 만남을 기약했다. 그리고 이틀 후..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여보세요.”

“Hello, Jamie?”

예상보다 fresh한 그의 목소리에 나는 괜스레 마음이 설레었다.

“Yeah.. It’s Jamie.”

“나 제프야.. 메일 보냈던…”

“오.. 그래! 도착했어?”

나의 Oh!라는 감탄사는 왜 이렇게 어색한 것일까?

“응.. 지금 막 짐 풀었어.”

“어딘데?”

“난 East village야. 넌?”

“어디서 만날래?”

나는 오직 나의 물음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아무데나 니가 정해.. 근데 너 지금 어딘데?”

“어디서 만나지? 넌 지금 어딘데?”

“난.. East village..”

똑 같은 대답을 반복하고 있는 그의 목소리는 혼란에 가득 차 있었다. 제길.. 역시나 아직 내게 통
화는 무리다.

어쨌거나 우리는 8시, 타임스퀘어에서 만날 것임을 약속하며 통화를 마쳤다. 타임스퀘어..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제프와의 첫번째 만남.. 언젠가 벙개를 하기 직전의 순간처럼 나는 가슴이 설레었다. 흑인일까, 백인일까? 키는 어느 정도일까? 뚱뚱할까, 날씬할까? 머리 색은 어떤 색일까? Oh, man.. 나는 그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몇 개의 옷가지를 놓고 고민하던 난 검은 레깅스와 깜찍한 겨자색 원피스를 입고 타임스퀘어로 향했다. 그리고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Sephora에서 메이컵을 하며 그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8시..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Hello..”

“Hey! 제이미, 나 지금 Grand central에 도착했는데 어디야?”

잉? Grand central이라니?

“너 거기서 뭐 하는데? 우리 타임스퀘어에서 보기로 했잖아.”

“뭐? Grand Central 아니었어?”

그의 목소리는 다시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무슨 말이야? 나 지금 타임스퀘어에 있으니까 여기로 와.”

“Oh, ok… 거기 도착하면 연락할게…”

“그래! 빨리 와..”

그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뭐가 문제지? 제길... 역시나 내게 통화는 무리다.

그렇게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우리는 약속시간으로부터 1시간이 지나서야 역사적인 첫 번째 만남
을 가질 수 있었다.

“Hey Jamie. Whew.. I’ve finally caught you.”

옅은 갈색머리에 파란 눈.. 178정도의 키에 Skinny한 몸매.. 평범한 진과 스트라이프 폴로 티셔
츠…


간단히 말하자면 미국의 전형적 모범생? 그것이 그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이었다.
 
큰 기대를 한 건 아니지만.. 역시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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