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 고향과 익명의 인간
얼마나 잤을까, 눈을 뜨니 몹시 배가 고팠다. 핸드폰에 표기된 시간은 밤 열두 시를 가리키고 있다. 엄청난 가을을 몰고 오려는 듯이 가을을 재촉하는 비는 하루 종일 내린다. 낮에 들여 놓았던 이삿짐을 내버려 둔 채 피곤한 몸을 가누지 못하여 그냥 잠들었었다. 우산도 없이 길거리에 나섰다. 길가에 가득 찼던 식당의 간판불빛이 반 정도는 꺼졌나 보다.
무엇이 그토록 섭섭했는지 떠나는 소도시에서 밤을 꼬박 새웠다. 사방을 가로막은 벽도 정들었고 멍하니 쳐다보던 천정도 아쉬웠다. 밝아오는 새벽에 잠자리에 들었지만 뒤척이며 뜬 눈으로 아침을 맞이했었다.
이삿짐을 운반하는 사람이 일찍 왔다.
대충 싸놓은 짐을 설명하고 서울 주소를 가르쳐 주었다. 먼저 출발하여 달려가는 내 고향 서울이다. 북한강을 끼고 달렸다. 흐린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차는 서울외곽순환도로로 접어들었다. 줄지은 차량은 바위산을 관통한 턴널을 지난다. 멀리 보이는 한강과 숲을 이룬 콘크리트 건물들...... 서울을 바라보면 꼭 뉴욕의 맨하탄이 연상되었다.
거미줄 같은 탐욕의 법칙이 사방으로 얽히고 고층빌딩에 가득 찬 심장들은 박동치고 있다. 백 년 후에는 뼈다귀로 굴러다닐 운명들이 천년의 꿈에 사로잡혀 배회한다. 할렘가에 쌓인 쓰레기더미 사이로 알콜에 중독 된 흑인이 걸어가고 있다.
맨하탄에 거주하는 익명의 인간.
뉴욕 맨하탄은 인간군단의 매머드 서식처다. 부유의 상징이며 빈민가의 대명사다. 동북아에서 외세에 시달려 왔던 조선의 한양은 서울이라는 이름으로 도시화되었고, 이제는 맨하탄처럼 아파트와 빌딩의 숲으로 덮인 콘크리트 정글이 되어버렸다. 광장을 가운데 두고 공직자와 시민이 대립하는 소박한 도시의 개념은 서울에서 사라졌다. 선과 신호등으로 통제되며 자신의 앞만 보고 걸어야 하는 이 곳은 익명의 그림자들이 움직이는 공간일 뿐이다.
서울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만신창이가 되던 날에 내 고향도 아스팔트에 묻혔다. 굴렁쇠를 굴리며 뛰어 다니던 골목은 거대한 빌딩에 압사당하고 몇 푼의 보상금을 손에 쥔 고향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촌사람들은 구름처럼 도시로 몰려들었고, 우리는 밀려나야 했다. 시골사투리가 골목을 가득 매웠다.
몇 십만 명의 서울토박이는 침묵했다. 서울 외곽으로 흩어진 사람들은 그래도 고향인 줄 알고 서울에서 지냈다. 그러나 산천이 무너지고 깎여나가며 제 모습을 상실해 버린 고향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고향 사람이 사라진 그 터가 무슨 향수를 간직할 것인가.
오직 하늘만이 옛 모습일 것이다. 겨우 매연이라도 없는 맑은 날은......
비를 맞으며 길 건너편으로 뛰었다. 둥그런 원탁 가운데 숯불을 피워놓은 식당에 들어섰다. 삼겹살을 뒤척이며 맥주를 한잔 들이켰다. 시원한 기운이 목줄을 타고 내려간다. 옆에서는 술 취한 삼십 대 여성 세 명이 모여 앉아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각자 자신이 경험했던 고달픈 일을 떠들며 스스로를 확인하고 있다. 흡사 실종된 자신을 찾는 것처럼......
인터넷과 전화가 끊긴 나는 실종되었다. 빛을 잃은 별이었다.
막막한 우주에 묻혀 고독의 구조신호를 보내던 전파는 더 이상 날지 못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드는 인터넷, 수많은 별들이 자판을 두드리며 감추어진 외로움을 사방천지로 날리지 않는가.
인간을 벗기고 벗기다 보면 마지막에는 외로움 하나가 나타난다. 누구든지 그 감정의 종착역은 고독감이다. 그것은 인간본질이다.
삶은 미로다.
개인적인 사랑과 부와 명예라는 미로는 신이 내려 준 장난감이다. 추구하는 모든 가치는 미로를 돌고 돌아서 끝내 한 곳으로 통한다. 누구든지 절망감으로 주저앉는 고독의 강......
모두가 고독의 강가에 서서 배가 오기를 기다린다. 이 범주를 벗어나는 인간은 없다. 신이 만들어 놓은 형벌은 끝내 피할 수 없는 쇠사슬로 몸을 묶어 버린다.
중세시대의 신중심사회에서 인간을 발견한 18세기와 그 이후, 마이클잭슨의 목소리에 열광하며 맥도널드 햄버거를 씹는 대중사회에서 파편처럼 산산이 분열하는 정보사회로 들어섰다. 인간을 닮아가는 사회, 필연적으로 고독의 강가에 다가갈 수밖에 없는 21 세기의 이후의 문명은 인터넷에서부터 시작된다. 대규모의 빌딩군단에서 출발한다. 맨하탄처럼......
식대를 지불하려고 만 원권 지폐를 꺼냈다. 자본주의 언어가 저 쪽으로 던져졌다. 식당주인은 또 오라고 말했다. 미로를 헤매는 익명의 인간 둘이서 웃으며 서 있다. 비는 계속 추적거리며 내린다.
등에 진 봇짐 하나 정도의 물건으로 세상을 때우려 했었다. 세상에 대한 미련을 미리 버리려 했던 무의식적인 노력이었다. 고독의 강가에서 뒤를 돌아보며 눈물짓는 어리석은 행동을 차단하려는 마음가짐이다. 그러나 내 몸의 크기를 넘겨버린 짐은 두 차에 가득하였다. 망연한 눈으로 방안을 가득 매운 짐을 바라보았다.
이삿짐을 나른 사람들이 돌아간 직후에 나는 쓰러져 잠들었다.
제 자리를 찾아 달라고 아우성치는 짐 보따리를 아랑곳 하지 않고 깊은 잠에 떨어졌다. 친구가 핸드폰으로 전화했었다. 짐을 다 정리했냐고 묻는 친구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나는 잠을 잔다고 더듬거리며 말했다. 전화를 끊는 순간에 내 몸 자체가 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곤한 의식조차도 짐이 아닌가, 쏟아지는 잠도 역시......
먼 옛날에 서울에서는 수돗물보다도 펌프 물을 더 많이 마셨다. 마당 귀퉁이에 펌프가 박혀 있었고 그 밑에는 둥그런 양동이가 놓여 있었다. 땅 속 깊이서 끌어 올려지는 물은 더운 여름날에 시원하였다. 등짝을 펌프 주둥이에서 쏟아지는 물에 들이밀면 오금이 서늘하였었다.
고향을 맛보려면 고향땅의 물을 마셔야 한다. 수돗물을 틀었다. 미지근한 맛,
한강에서 끌어올려 적당히 소독하여 보낸 고향의 물은 아스팔트 밑으로 묻혀버린 내 고향처럼 허공에 떠 있다. 정수기로 다시 한번 걸러야 하는 정체불명의 물이 고향을 뒤덮었다. 내 고향은 이렇게 실종되었다. 내가 익명의 인간으로 맨하탄 뒷골목을 배회하듯,
서기 2003 년 8 월 20 일, 새벽 4 시 30 분.
실종된 고향을 밟은 익명의 인간은 시계를 보았다. 장난 같은 숫자로 표시된 우주의 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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