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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night Julia...

mars |2003.09.02 17:35
조회 197 |추천 0


GOODNIGHT JULIA...


"여긴 일년에 네 번 눈이 내리는 곳이야.."
"일년 내내 네 번밖에 눈이 안 와?"
"아니..봄에 한번 여름에 한번 가을에 한번..그리고 겨울엔 원래 눈...계절마다 내린다는 뜻이지.."
"거짓말...지금 봄인데 눈 언제 온다는거야?"
"이번 주에 꼭 올 거야..."
"풋..웃겨 정말..."



잠에서 깼을 땐 늦여름이긴 하지만 유난히 쌀쌀한 날씨만큼이나 어색한 내용의 꿈에 한동안 멍하니 방문만을 쳐다보았다.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던 순간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그때의 그 공원과 자주 앉던 벤치..그 사람의 목소리.. 모든 게 그대로였다.


2002년 어느 늦가을
그 공원을 찾은 건 그 꿈을 꾼 지 두 달도 더 지난 어느 날이었다..
무심히 지나치던 그 공원 벤치에 등을 기대고 앉으니 쌀쌀한 가을바람에 저만치 높은 플라타너스 나무의 갈색 낙엽들이 눈이라도 오는 듯 천천히 팔랑거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가을이면 괜시리 공부가 하고 싶다는 의욕만 앞선 그를 따라 도서관에 들렀다가
세시간을 못 넘긴 채 빠져나와 점심을 먹고 거리를 걸어다니며 낙엽을 밟곤 했었다..


2002년 겨울
첫 눈이 내리고 있었다.
집에서 비디오를 볼까 하다가 문득 극장 생각이 나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얘는..아침부터 영화는 무슨 영화..있다 저녁때 전화해.."

집으로 발길을 돌려 걷다가 공원 안으로 들어섰다..눈이 내리는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벤치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본다..하지만 앉지는 않았다..
언젠가 눈사람을 만든다고 그와 함께 손이 어는 줄도 모르고 눈 뭉치를 굴리던 때가 생각나 피식 웃어본다.
푸른색의 촌스러운 장갑이었지만 그의 품에서 나온 장갑에 두 손이 꽤나 훈훈했었다.
혼자서 서성이며 눈 위에 발자국을 찍다 이내 돌아서 나와버렸다..


2003년 봄 어느 날
봄 들어 처음으로 짧은 셔츠를 입고 출근을 한 날이었다..
직장 동료의 연인이 선물했다는 네 잎 클로버를 구경하다 평소보다 십분 늦게 퇴근을 했다.
새해 들어 공원에는 처음 가는 길이었다..
공원 안의 나무들에서 날리는 하얀 꽃가루가 하늘을 가득 메우고 아주 천천히 눈처럼 내리고 있었다...
이런 날이면 풀밭에 무릎 꿇고 앉아 네잎 클로버를 찾다 풀물이 들어버린 서로의 바지를 보며 웃곤했었다.
그 날 이후로 그 바지는 입지 않은 채 아직도 옷장 어딘가에 잘 개어져 있을 것이다.
떨어지는 꽃가루를 똑바로 쳐다보고 싶었지만 눈에 들어갈까 걱정되어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2003년 여름의 문턱
열어놓은 사무실 창문으로 거리의 소음과 초여름의 훅한 공기가 밀려들어온다..
켜놓은 컴퓨터에선 소리를 줄여 켜 놓은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집에 두고 온 서류철이 맘에 걸려 애태우다 결국 점심시간에 조용히 문을 열고 나와버렸다..
느긋이 20분이면 왕복할 거리를 일부러 더 느리게 걸어본다..
돌아오는 길에 음료수 하나를 사서 공원 벤치에 앉았다..
지난 해 열렸던 플라타너스 열매가 터지며 빛 바랜 노란색의 솜 같은 씨가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그와 함께일 때는 이 공원에 일년에 네 번이나 눈이 내린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한 시간 만에 일어서자 노란 솜털이 쌓인 벤치에 앉았던 자리만이 휑하니 비어 있었다...


그 이후로 공원에는 들르지 않았지만 꿈속에선 가끔씩 눈 내리는 작은 풍경을 볼 수가 있었다.
그는 떨어지는 눈을 팔로 휘저으며 언제까지나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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