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면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경덕왕 때 명주군에 속했다가 고려때 군제 실시후 강릉군에 속하였고, 1906년 고종 43년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하여 강릉군 임계면이 정선군 임계면으로 이관되었다.
ㆍ 점촌 (粘村-임계1리)
과거에 이 지역에는 옹기그릇을 만들어 파는 공장이 있었다 한다. 또한 많은 농가에서 점토를 이용하여 가정에서 쓰는 일상용기 등을 만들어 썼고, 점토가 많이 난다고 하여 점촌이라 불리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ㆍ 장승거리 (임계1리)
임진왜란 당시 아군의 병력이 부족한 것을 왜군이 모르도록 하기 위하여, 사람과 비슷하게 나무로 깎아 만든 장승을 무수히 세워 놓았던 곳을 지금까지 '장승거리'라고 부르고 있다.
ㆍ 도톨고지 (임계1리)
옛날 이 지역은 온 산이 모두 도토리나무가 울창하여 마을 주민들은 도토리를 따서 생계를 유지하였다고 한다. 이렇듯 도토리나무가 많은 곳이라 하여 도톨高地라는 이름이 생겨났으나, 지금은 그렇게 도토리나무가 많지는 않다.
ㆍ 봉산2리 (蓬山2里-본동)
지금부터 약 300년전의 이곳은 쑥밭이었는데 황씨 문중이와 살며 쑥 '蓬'자를 써서 '봉산'이라 하였다. 그 후 1806년 숙종때 현재 살고 있는 덕수 이씨들이 정착하여 지금가지 살고 있으며, 지금은 약 10여 성씨의 주민이 살고 있다.
ㆍ 용산1리
옛날에 인근 용소에서 용이 등천하였다고 해서 용산이라 불리어졌다고 한다.
ㆍ 광산골 (낙천1리)
광산골은 본래부터 많은 광물(금·은)이 매장되어 있었으나 1935년 일제의 약탈정책으로 우리의 고귀한 지하자원을 수탈당하는 비극을 겪어야 했다. 지금도 금·은을 제련하던 제련장이 남아 있으며, 그 당시 우리 나라 제2의 금광으로 꼽힐 만큼 많은 금이 채취되었고 지금도 매장되어 있다는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ㆍ 검무평 (劍舞坪-송계5리)
임진왜란때 왜병이 동해에서 밀려올 것에 대비하여 현재의 검무들에 수천 개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갑옷과 투구를 입히고 활과 창을 무장시켜 줄로 연결, 왜병이 백봉령쪽에서 밀려오면 줄을 당겨 허수아비가 살아있는 병정처럼 춤을 추게 하였다 하여 '검무평'이라 하였다.
ㆍ 적목동 (赤木洞-고양리)
먼 옛날에는 이곳을 '노나무골'이라고 불렀다. 그 원인은 성황당에 나이가 많은 나무숲이 우거져 있었기 때문에 노나무골이라 불렀는데 그후 성황당에 화재가 발생하여 나무들이 붉게 병들어 가자 적목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