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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 감추느라 소화제 한봉지를 다 먹고

감동감 |2003.09.18 21:34
조회 2,373 |추천 0

1.출근길이면 소영이와 선영이가 묻는다/ '아빠 머리빗 넣었어?' 라고


요즘 고민이 하나 생겼다. 나의 대머리이다. 중학교때 앞집에 살던 ‘홍열이 아버지’

가 대머리였었는데 나는 늘 홍열이를 놀려대곤 하였다. “홍열이 아버지 대~머리, 반짝반짝 대~머리”

하면서. 그 놀림죄(?)로 인한 것인지 40대 초반인 내가 벌써 대머리가 된 것이다.

여덟살된 딸 선영이는 심심하면 아빠에게 질문을 던지곤 한다.

“아빠는 왜 가운데 머리가 없어?” “어, 어 그건 말이야.

옛날 아빠가 ‘귀신잡는’ 해병대를 갔다왔는데 훈련받을 때 늘 머리에 고무보트를 이고

훈련했기 때문이지.” 그러면 녀석은 아주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또 있다. 지하철 계단을 내려갈 때면 은연중에 신경질이 난다.

그 많은 사람들의 눈길이 모두 반짝이는 나의 대머리로 향해 있을 것이라는 기우 때문이다.

기실, 나의 대머리의 역사는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아내와의 연애시절부터 시작되었다.


2. 바람부는 날이면 '소갈머리' 보일까봐 데이트를 미뤄야 했던 총각 시절


10여년 전, 당시 서른한살의 노총각(?)이던 나는 주말이면 여기저기 맞선을 보러다녔다.

어림잡아 서른번은 봤을 법하다. 충청도 촌놈이 서울에 올라와 8년이라는 긴 자취생활을

하던 터라 빨리 결혼해 안정된 생활을 하고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이런 조급함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다.

나는 세상 여자들에게 흥미가 너무 많은 사람인데도 내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은 나타나주질 않았다.

물론, 나와 맞선본 상대편도 그러했을 테지만 말이다.

서른한살. 연애시절이었다. 수원시에서 공직생활을 하던 아내와의 주말 데이트 장소는

주로 수원성곽과 서울의 고궁이었는데, 만날 때마다 늘 나는 ‘소갈머리’가 없는 머리

때문에 고민이었다.

데이트 약속이 있는 날, 바람이 많이 분다는 기상뉴스라도 나올라치면 나는 아예

데이트를 미루기도 했다. 그래서 연애시절 나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은 다름아닌

‘회색 머리빗’ 한 개였다는 사실. 왜냐면 데이트 성공을 시키기 위한,

아니 결혼을 골인시키기 위한 ‘마법의 빗’이었으니까.

데이트 전 화장실에 가서 머리만 잘 빗고 나오면 그날의 데이트는 성공.

어느 날이던가 둘이 고궁을 걷다가 모진 바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날따라 나는 ‘회색 머리빗’을 점퍼안에 넣고오는 것을 잊었다.

그날 난 하루종일 수도없이 화장실을 들락거려야했다. 머리 손질을 하기 위해서.

마누라가 말했다. “속이 안 좋은 가보죠?” “으~응, 어제 동창회 모임이 있었는데

술을 많이 먹어서 탈이 났나봐.” “그럼, 진작에 소화제를 드셨어야죠.”

“소화제? 으~음 먹어야지.” 마누라는 금세 발길을 약국으로 돌리고 있었다.

그날 난 소화제 한 봉지를 다 먹었다. 탈모증에 소화제 먹은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3. 가발, 뭔가를 소유 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거추장 스러운 일이랴


지금도 출근 때면 어김없이 ‘회색 머리빗’을 챙긴다.

아내는 물론이고 사랑스런 두 딸 소영이와 선영이까지 내가 출근할 때면 꼭 묻는다.

‘아빠 머리빗 넣었어?’라고.

이제 결혼한지도 10여년이 훨씬 넘었다.

세월이 흐른 만큼이나 나의 탈모도 심해져 결혼전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여서

요즘은 가발을 하나 맞출까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금세 마음을 돌렸다.

이대로 있기로. 가발. 그 무엇인가를 하나 소유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거추장스러운 일이랴.

 

 

이글은 광진구청 하수과에 근무하시는 이문연님의 글 입니다.

너무 재미있고 애틋해서 퍼왔네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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