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SEX (#2 : 판결문)

김웅환 |2003.09.26 09:06
조회 1,244 |추천 1

이 글은 J.B.Grunuie님의 글을 퍼온것 입니다.

 

긴 머리를 뒤로 묶고, 베이지색의 긴 코트와 검정색 정장을 입은 유하는 법원의 돌 계단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었다. 유하는 사회 1면을 장식한 머리기사를 읽고 있었다. 유하의 혼자 말로 읽고 있던 기사의 제목을 중얼거렸다. ‘성전환 여성 성 폭력사건 오늘 최종 판결…’ 잠시 후, 유하는 보던 신문을 접고 법원 안으로 들어갔다. 
 
유하가 법정 안으로 들어섰을 때, 안에서는 이미 판사가 판결문을 읽고 있었다.
 
“사건
96도 791사건 강간치상
인정된 죄명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등에 관한 법률위반 및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위법 법률.
주문
검사의 피고인들에 대한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유하는 조용히 맨 뒷자리에 앉았다. 실내는 유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평온해 보였다. 그리고 판사는 여전히 판결문을 계속 낭독하고 있었다.

 

“상고 이유
1. 원심은 이 사건 주위적 공소사실 즉, ‘피고인들이 공소 외 1인과 합동하여, 1995, 4, 24, 00:30경 서울 용산구 한남동 산 10의 136 하이얏트 호텔 부근에서 호객행위를 하던 피해자 유설희(36세)를 승용차에 납치하여 서울 중구 장충동 2가 산5에 있는 한국 자유총연맹 건물 부근의 골목길로 끌고 간 후 폭행과 협박을 가하여 피해자의 반항을 억압한 다음, 차 안에서 피고인들 및 위 공소인 외인의 순서로 성기를 위 피해자의 음부에 삽입하여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위 피해자를 각각 강간하고 이로 인하여 위 피해자로 하여금 전치 1주를 요하는 안면 타박상 등을 입게 하였다.’는 성폭력범죄 처벌 및 피해자 보호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6조 제1항, 형법 제297조 위반의 점에 대하여 위 피해자 유설희는 형법 제297조의 객체가 되는 부녀라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이를 무죄라 판단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2. 형법 제297조는‘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한 자’라고 하여, 객체를 부녀에 한정하고 있다. 위 규정에서 부녀라 함은 성년이든 미성년이든, 기혼이든 미혼이든 불문하여 곧 여자를 기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무릇 사람에 있어서 남자, 여자라는 성의 분화는 정자와 난자가 수정된 후 태아의 형성 초기에 성염색체의 구성(정상적인 경우 남성은 XY, 여성은 XX)에 의하여 이루어 지고, 발달과정이 진행됨에 따라 각 성염색체의 구성에 맞추어 내부 생식기인 고환, 또는 난소 등의 해당 성선이 형성되고, 이어서 호르몬의 분비와 함께 음경 또는 질, 음순 등의 외부성기가 발달하며, 출생 후에는 타고난 성선과 외부성기 및 교육등에 의하여 심리적, 정신적인 성이 형성되는 것이다.”

 

판결문은 지루하게 계속 낭독되고 있었다. 그러나 유하는 왜 인지 계속 땀이 나고 덥지 않은 날씨에도 불쾌지수가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므로 형법 제297조에서 말하는 ‘부녀’, 즉 ‘여자’에 해당하는지의 여부도 위 발생학적인 성인 염색체의 구성을 기본적인 요소로 하여 성성, 외부성기를 비롯한 신체의 외관은 물론이고 심리적, 정신적인 성, 그리고 사회생활에서 수행하는 주관적, 개인적인 성역할(성전환의 경우는 그 전후를 포함하여) 및 이에 대한 일반인의 평가나 태도 등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회통념에 따라 결정하여야 할 것이다.”
 
지루한 판결문 낭독을 끝날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었다. 유하의 시선에 비친 대부분의 사람들의 뒷모습은 판결문을 환청이나 자장가쯤 되는 듯… 멍하니 아무 반응이 없어 보였다. 유하는 어느새 자신도 그 틈바구니에 꿈을 꾸듯 빠져 들어갔다. 그러다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듯 의지를 차며 일어섰다. 의자와 바닥이 부닥치는 소리에 판사의 판결문 낭독이 일시 중단되었고, 모든 사람의 시선이 유하에게 집중되었다. 유하는 꿈에서 깬 듯… 시선이 흐려졌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죄인인 듯 밖으로 빠져 나와버렸다. 유하가 나가자 판사는 자신의 낭독을 멈추게 한 잠시동안의 소란이 불쾌한 듯 다시 판결문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 그런데,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위 유설희는 1958, 8, 3 생이고 남성으로서의 성기구조를 갖춘 자로 태어나 남자중학교까지 졸업하였으나, 어릴때부터 여자옷을 즐겨 입거나 고무줄놀이와 같이 여자가 주로 하는 놀이를 즐겨하는 등 여성으로서의 생활을 동경하고 여성으로서의 성에 귀속감을 느낀 나머지 1989년경부터 수년간 여장남자로서의 생활을 하여 오다가 1991년과 1992년에 일본에 있는 병원에서 자신의 음경과 고환을 제거하여 그곳에 질을 만들어 넣는 방법으로 여성으로서의 성전환수술을 받음으로써 여성으로서의 질구조를 갖추고 있고, 유방이 발달하는 등 외관상으로는 여성적 쾌감까지 느끼고 있으나 여성의 내부성기인 난소와 자궁이 없기 때문에 임신 및 출산이 불가능한 상태라는 것이다. 그리고 위 유설희는 본래 남성으로서, 달리 여성의 성염색체 구조를 갖추고 있다거나, 성염색체는 남자이면서 생식선의 분화가 비정상적으로 되어 고환과 난소를 겸비한 진성 반음향, 또는 고환이나 난소의 발육이 불완전한 가성반음양이라고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그렇다면 위 유설희가 비록 어릴때부터 정신적으로 여성에의 성귀속감을 느껴왔고, 위의 성전환수술로 인하여 남성으로서의 외부성기의 특성을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으며, 남성으로서의 성격도 대부분 상실하여 외견상 여성으로서의 체형을 갖추고 성격도 여성화되어 개인적으로 여성으로서의 생활을 영위해 가고 있다 할지라도, 기본적인 요소인 성염색체의 구성이나 본래의 내, 외부성기의 구조, 정상적인 남자로서 생활한 기간, 성전환수술을 한 경위, 시기 및 수술 후에도 여성으로서의 생식능력은 없는 점, 그리고 이에 대한 사회 일반의 평가와 태도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보면 위 유설희를 사회통념상 여자로 볼 수 없다 할 것이다.”
 
유하는 어느 새 다시 법정의 2층에서 판사의 낭독을 듣고 있었다.

 

“원심판결을 그 이유 설시에서 강간죄의 보호법익 등에 관하여 선뜻 납득할 수 없는 근거들을 내세우는 등 흠이 없지 아니하나, 위와 같은 취지에서 판단한 결론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가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내세운 바와 같이 부녀의 개념이나 강간죄의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라 할 수 없다.  
3. 그러므로 검사의 피고인들에 대한 상고는 모두 이유 없으므로 이를 모두 기각하기로 하여 관여법안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유하는 또 다시 꿈결에 빠져 드는 듯 했다. 그러나 그것은 끔찍한 악몽에 빠져드는 듯 매우 축축하고, 따갑고, 알 수 없는 불쾌한 꿈이었다. 유하의 귀에 이미 판사가 마지막으로 하는  판결은 구체적으로 들리지 않는 환청이 되어 버렸다. 지루하던 판사의 판결이 이제 끝을 맺으려 하고 있었다. 유하는 다시 판사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위 유설희가 비록 어릴 때부터 정신적으로 여성에의 성귀속감을 느껴왔고, 위의  성전환수술로 인하여 남성으로서의 외부성기의 특성을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으며, 남성으로서의 성격도 대부분 상실하여 외견상 여성으로서의 체형을 갖추고 성격도 여성화 되어 개인적으로 여성으로서의 생활을 영위해 가고 있다 할지라도, 기본적인 요소인 성염색체의 구성이나 본래의 내, 외부성기의 구조, 정상적인 남자로서 생활한 기간, 성전환수술을 한 경위, 시기 및 수술 후에도 여성으로서의 생식능력은 없는 점, 그리고 이에 대한 사회 일반의 평가와 태도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보면 위 유설희를 사회통념상 여자로 볼 수 없다 할 것이다.  
따라서 ‘성폭력범죄 처벌 및 피해자 보호’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6조 제1항, 형법 제297조 위반의 점에 대하여 위 피해자 유설희는 형법 제297조의 객체가 되는 부녀라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이를 무죄라 판단한 제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한다.”
 
실내는 조금 어수선해 지는 선에서 아무일 없었던 듯 관계자와 방청객은 무덤덤하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다만 피해자인 유설희 만이 얼굴을 다리 사이에 파묻은 채 울고 있었다. 이를 마지막까지 지켜보던 유하도 밖으로 나와 버렸다.

 

마침 그때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피고인들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몇몇 기자들이 두 사람을 취재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유하는 멀리 서 이들 두 명의 남성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에는 두려움과 함께 살기가 서려 있었다. 유하는 신문을 휴지통에 버리고, 가지고 있던 편지를 우체통에 넣고 더 이상 오래 머물고 싶지 않은 듯… 법원을 뒤로했다.

추천수1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