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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싸다

완벽한... ... |2003.10.11 03:04
조회 24,536 |추천 0

지난번 그사람을 만났을 때...

신경질을 내며 나가는 걸 붙잡아 터미널로 데려다 줄 때...

'내 짐 모두 보내' 하더군...

오늘 그사람의 짐을 부쳤다.

 

요즘 종이로 만든 배상자 만한 박스로 6개가 옷으로만 꽉 차더군...

집나갈 때....

해외여행도 안해본 사람이 바퀴달린 새가방으로 장만을 해서 잔뜩 싣고..

전혀 본적이 없는 타동네의 세탁소 아주머니와 아저씨 두사람을 불러서 한더미를 맡기고 떠났는데...

두번째 짐싸러 들어와서 또 몇 박스 분량을 실어서 나갔는데...

아직도 남은 것이 수백벌은 되는 것 같더군...

그런데 내가 입은 것을 단 한번도 본적이 없는 옷이 왜 그리 많은지....

듣도 보도 못한 메이커 제품들이 수두룩하더군...

 

34개의 핸드백과
11개의 모자와
33켤레의 신발들이 보내고 남아 있는 것들이였다.

핸드백과 신발만 3상자 분이더군...

그런데 못보던 남자 옷의 정체는 무어란 말인가???

아무튼 그리하여 대형박스 두개를 포함한 8개의 박스에 가까스로 담을 수 있었다.

 

이젠 화도 많이 가라앉고 많이 덤덤해 졌지만 그래도 다시 화가 나더군...

오늘 그중 6상자를 우체국에서 부쳤다...

나머지 두상자는 내일 부쳐야지..

아예 흔적을 남겨 놓지 않기 위해서...

참 토요일 우체국이 놀던가?

 

덕분에...

장롱속에 들어가질 않아 옷걸이 밑에까지 꽉 들이찼던... 옷가지들과.. 핸드백..

다용도실을 메꾸었던 상자곽들....

아이들의 장롱까지....

텅텅비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무슨 죄책감인지 미련이 남은 건지는 몰라도....

오늘 엄청난 실수를 해버렸다.

 

아이의 무릅관절이 좋지 않아서 일찍 퇴근하는 김에 병원엘 데리고 갔는데...

엑스선 촬영과 깁스를 하고 나니 주머니의 돈이 말라버린 거다.

할 수 없이 은행엘 가서 현금 인출은 했는데....

카드를 빼서 지갑에 넣고서는 현금을 꺼내질 않고 그냥 나와버린 것이다.

약국에 가서 아이 약을 짓다가 보니 이런... 현금이 없네...

다시 부랴부랴 갔더니....

어떤 여자가 황급히 은행문을 빠져 나가는 건 봤는데...

내 현금은 없었다...

이런 황당한 일이...

 

내가 충격을 먹은 것인가?

금쪽 같은 내돈 10만원....

안그래도 그여자가 만들어 놓은 빚이 많아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데...

도대체 내 정신은 어디로 도망을 갔다는 말인가???

당황한 사람이 그래도 취소를 취소한다는 쪽지를 미쳐 챙기질 못했더군...

월요일 은행에 알아보면 되겠지...

 

수취할 주소를 물어보려 전화를 했더니...

명랑한 목소리로 무슨 일이 있었냐는듯이 '이시간에 왠일이야?'

이젠 정말 소름이 솟는다...

 

작년에 싸돌아 다니며 돈쓰느라 바쁘면서도..

집안엔 먹을 것이 없어

어머님이 손수 기르신 야채들로 초원의 밥상을 차렸을 때...

맛있다는 듯이 먹어치우면서...

도서관에서 1500원짜리 식사를 먹었다는둥... 그래서 꿀맛이라 떠들던 그녀...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 침대 밑에 잔뜩 쌓아 놓았던 신발들...

귀가를 하면서 신고 나갔던 신발들을 몰래 들고 들어와 침대 밑에 넣곤 하던 그 모습이...

섬뜩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의 나약함일까?

 

애증의 갈등도... 사라지고...

남아있는 증오조차도 탈색되어가는 이마당에...

다시 또 고개를 쳐드는 이 성냄은....

어쩌면 아물어 가는 상처에 묻은 소금기일지도....

 

그나저나...

작은 놈의 무릎을 다 치료하려면 4개월은 족히 걸린다는데...

그간 놈의 비만이 도지지만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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