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진평왕의 딸순위...선덕여왕,천명부인,막내딸이 선화..맞나요? 이게 맞다면 선화는 당연히 신라의 프린세스겠네요..
-> 요새들어 선화공주가 신라의 공주가 아니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여럿계십니다. 하긴 그 기록이 적으니 말이죠. 오죽해야 삼국유사 정도니 말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상식적으로 접근해 볼까요? 서동요라는 노래가 생겼다면 그만큼 극적인 사건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를 완전히 부정하기 보다는 한번 인정하고 봐 봅시다. 즉 우리 생각하기에 한마디로 말도 안되는 이 이야기가... 실제로 존재하였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입니다.
삼국시대의 여성들은 당찬 모습을 보여줍니다. 고구려의 평강공주가 그리하였으며, 선화공주 또한 그리하였습니다.
전... 선화공주가 신라의 공주였으리라고 봅니다. 이 의견에 반대하실 분들이 계시겠지만... 제 의견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그 반대 의견을 보고 그에 대해서 제 의견을 말하겠습니다.
우선 백제귀족의 딸일 가능성...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서동요라고 하는 구체적인 증거와 전혀 상반됩니다. 즉 이 노래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죠. 그런 근거없는 것을 일연이 괜히 삼국유사에 실었을까요? 전 이 한마디로서 백제귀족의 딸이라고 하는 의견을 비판하는 바 입니다.
그럼 신라 귀족의 딸이었을까요? 물론 그럴수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의견이 바로 두계 이병도가 말한 것이죠. 두계는 서동이 동성왕이라고 하고 이찬 비지의 딸이 선화공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근거가 없습니다. 게다가 서동요가 다만 전설이라고 해서 묵과할수도 없으며, 신라 귀족의 딸이라면 그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말을 해 놓아야 하는데 아무런 기록도 없죠. 즉 왕족이라는 기록이 없어서 귀족이라면, 똑같이 귀족이라고 하는 기록이 있어야 하는데 없습니다. 그러니 이 설에 대해서도 뭐라고 단정 짓기 힘든게 사실입니다.
사실 화랑세기엔 사실 천명공주와 덕만공주만 있지 선화공주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후에 무왕이 신라에 한 행동을 봐서... 일부러 빼어 버렸을 가능성도 없진 않습니다. 즉 신라에 대해서 적대적인 행동을 취한 무왕을, 그리고 그 부인 선화공주를 아예 제명시켰다는 것이죠.
그럼 신라의 공주와 결혼을 하였는데, 왜 사이가 좋지 않고 나빴을까요? 이걸 가지고 꼬투리 삼는 분들도 있지만 한번 생각해 봅시다. 무왕이 어떻게 해서 즉위하게 되었나요? 무왕이 힘이 세서 그랬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되려 힘이 없으니 즉위시켰습니다. 즉 자신들이 이용해 먹으려고 귀족들이 그를 옹립한 것이죠. 물론 결과론적이지만 무왕은 그런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무왕이 신라를 친 것은 백제 분위기상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게다가 무왕은 즉위하고 2년 동안 신라를 건드리지도 않습니다. 다만 3년부터는 대대적으로 공격해 들어갔지만 말이죠. 오다 노부나가의 부인은 본래는 자신의 적이라고 할만한 세력의 여자였습니다. 당시 정세적으로 백제와 신라는 서로간에 멸망을 담보로 한 전쟁 중이었죠. 이 과정에서 선화공주는 오다 노부나가의 부인처럼 백제의 편을 들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리고 신채호가 지적했듯이, 무왕은 신라의 왕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라 조정에서의 계획으로 인하여 전례를 깨고 억지로 다른 사람을 왕으로 세웠죠. 이 이후로 화가 난 무왕은 신라를 공격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사실 아직 뭐라고 하기엔 자료가 너무나도 적습니다. 사실 저도 선화공주가 신라공주였을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하지만... 확신하기엔 힘듭니다. 쩝...
2.서동은 정말 백제의 무왕이며 백제의마지막왕 의자왕이 선화의 아들이라는 기록이 있습니까?
-> 기록상엔 아무런 언급도 없습니다. 그냥 무왕의 맏아들이 의자왕이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3.이렇듯 의견이 분분한 이유가 뭡니까.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이 서로 틀리기라도 합니까?
-> 삼국유사에는 그런 기록이 있으나, 삼국사기엔 그런 기록이 없죠. 게다가 화랑세기에도 그런 기록이 없으니 의견이 분분한 것입니다. 게다가 무왕이 워낙 신라를 많이 때려서요...
고대사의 미스테리 중 하나입니다.